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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이야기소년화가의 장안사(長安寺)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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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9.04.10 조회7,1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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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선조 때 인물인 이정(李楨, 1578-1607)은 자가 공간(公幹)이고 호는 나옹(懶翁)이며, 조선 중기의 재능 있는 풍경화가 중의 한 사람이다. 증조부에서 부친에 이르는 삼대(三代)가 불화(佛畵)를 잘 그렸는데, 어느 날 그의 어머니 꿈에 금신나한(金身羅漢)이 나타나 삼대가 불화를 수천 폭이나 그린 공덕으로 아들을 준다는 태몽을 꾼 뒤에 그를 낳았다고 한다.

 

  젖먹이 때 부모를 여의게 된 그는 숙부 밑에서 자랐다. 역시 화가였던 숙부는 일찌감치 이정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에게 화법(畵法)을 가르쳤다. 유년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남달리 재주가 뛰어났던 그는 다섯 살 때 이미 부처와 스님을 그렸고, 8살 때에는 당대의 이름 있는 화가들과 어깨를 견줄 만한 작품을 창작해 소년화가로 이름을 날렸다.

 

  11살 되던 해에 이정은 천하명산으로 알려진 금강산을 찾았다. 금강산의 여러 명소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그는 조국강산의 아름다움을 가슴속 깊이 느낄 수 있었고 금강산을 대상으로 한 훌륭한 산수화를 창작하리라 마음먹었다. 때로는 마음속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지고 다니던 화구들을 바위 위에 펼쳐놓고 명소들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곤 하였다. 그 그림들이 얼마나 선명하고 생동감이 있었던지 발걸음을 멈추고 소년의 그림을 본 유람객들은 원숙한 경지에 이른 소년화가의 뛰어난 솜씨에 모두 혀를 내둘렀다.

 

  그는 13살 때 금강산 4대 사찰 중의 하나인 장안사(長安寺)에 들른 적이 있었다. 인사차 주지의 방을 찾아갔는데 마침 그곳에는 나이 지긋한 스님들이 둘러앉아서 개축공사를 마친 장안사 벽에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가를 의논하고 있었다.

 

  얼마나 열이 올랐던지 스님들은 이정이 들어서는 것도 몰랐다. 그는 문가에 가만히 기대어 선 채 스님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한 스님이 장안사는 어디까지나 불교사찰인 만큼 부처님의 세계인 ‘극락세계’를 그려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그러자 다른 스님이 벌떡 일어나 당시 문인화가들 사이에서 많이 그려지던 사군자(四君子) 중에서 대나무를 택하여 그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명(明)나라에 다녀온 적이 있는 스님은 장안사 벽에는 마땅히 명나라처럼 황룡이나 봉황을 그려 넣어야 한다고 단언하였다.

 

  제각기 자신의 주장이 옳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주지는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 몰라 무척 난처해하고 있었다. 옆에서 들어봐도 더 이상 신통한 의견이 나올 것 같지 않자 이정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황송하오나 제가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스님들의 시선이 일시에 그에게 쏠렸다. 그리고 자신들 앞에 나타난 사람이 나이 어린 소년임을 알고 모두 놀라워했다. 주지 역시 어안이 벙벙해 다시 한번 그 소년을 쳐다보다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소년은 도대체 누구인고?”

 

  “예, 저는 한성에서 온 이정이라고 합니다.”

 

  “이정? 이정이라….”

 

  주지 스님은 그의 이름을 되뇌며 머리를 갸웃거렸다. 이때 어느 스님이 주지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그 스님은 시주 받으러 다니다가 우연히 이정이 그림 그리는 것을 보고 소년의 솜씨를 잘 알고 있던 터였다. 그의 말을 듣고 난 주지는 소년에게 어서 말하라는 뜻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스님들이 저를 불손하다 할지 모르겠으나 저의 어린 소견으로는 지금 말씀하시는 주장들이 합당치 않다고 봅니다.”

 

  “뭐라고?” 스님들은 10대 소년이 당돌하게 자신들의 주장이 틀렸다고 하는 바람에 기가 막혀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정은 스님들의 그런 반응에 아랑곳없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여러 스님들께서 저보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금강산은 천하의 명산으로 이름이 높아 이웃나라 사람들까지도 고려국에 한번 태어나 금강산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 합니다. 또한 금강산의 경치가 하도 신비해 ‘부처의 세계’를 보는 것 같다고 했는데 어찌 스님들은 가 보지도 못한 극락세계나 남의 나라 것을 취하자고 주장하십니까? 여기는 바로 금강산에 위치한 절입니다. 그러니 마땅히 장안사 벽에는 천하명산 금강산의 산수도(山水圖)를 그려야 할 것입니다.”

 

  비록 소년이지만 사리(事理)에 맞는 그의 언변에 주지는 크게 감동하였고 스님들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였다.

 

  “소년의 말이 옳다. 천하에 이름 높은 금강산을 그리지 않고서야 어찌 이곳을 금강산 사찰이라 할 수 있겠느냐. 이제는 도화서에서 화원(員)을 청해 오는 일에 대한 논의나 해보자.”

 

  주지의 말이 끝나자 이정은 머리를 숙이며 겸손하게 청하였다.

 

  “주지 스님! 비록 저의 재주 미천하오나 믿고 맡겨 주신다면 제가 한번 그려보겠습니다.”

 

  스님들은 다시 한번 놀랐다. 그러나 주지는 소년의 그림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던지라 두말없이 종이와 붓을 가져오라고 일렀다. 그의 재주를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고 싶었던 것이다.

 

  주지의 의도를 파악한 이정은 가져온 붓에다 먹을 듬뿍 묻힌 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펴 놓은 종이에다 금강산의 절경을 힘 있는 필치로 그려나갔다. 단, 몇 번의 붓질에 금강산의 이름난 명소들이 어렴풋이 펼쳐지자 주지는 “과연 기막힌 솜씨로군. 이렇게 되면 우리들이 수고스럽게 한성까지 가지 않아도 되겠소.”라고 하며 소년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정식으로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13세 소년화가 이정은 이곳에 머물며 스님들과 불공을 드리고자 찾아온 신도들의 탄복 속에서 장안사 벽의 산수도(山水圖)를 훌륭하게 완성하였다. 그가 그린 그림은 금강산의 일만 이천 봉우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여 당시의 풍경화로는 최고 수준의 작품이었다. 산수도 외에 천왕(天王)의 여러 형상들도 벽화에 담았는데 명나라 사신이 장안사에 들렀다가 그 벽화들을 보고 크게 경탄하여 이르기를 “세상에 견줄 이 드물다.”라고 하면서 이정에게 청하여 산수화를 많이 받아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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