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이야기한태갑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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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5.01 조회5,948회 댓글0건본문
중종(中宗, 재위 1506∼1544) 연간에 고성(高城)지역에는 한태갑이라는 군수가 있었다. 그는 본시 강릉지역의 아전으로 있었는데 아전노릇을 하면서 백성들의 재물을 숱하게 긁어모았다. 그렇게 해서 모은 돈이 무려 4만 냥이나 되었고, 이 돈을 어느 정승에게 뇌물로 바쳐 군수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일약 한 고을의 군수로 발탁되었으나 그 자리를 그리 탐탁히 여기지 않았다. 막상 임지에 와보니 땅이 척박하고 바람이 잦아서 농사가 제대로 안 되는데다가 물산도 나는 것이 변변치 않아 한밑천 잡기는 고사하고 벼슬을 얻고자 갖다 바친 본전도 뽑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게다가 그칠 새 없이 금강산 유람을 위해 행차하는 한양 대감님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게 좋지도 않거니와 그러다 보면 재산을 불릴 겨를도 없었던 것이다.
한태갑은 날이 갈수록 심사가 뒤틀려 자기를 고성군수로 보낸 이조판서를 원망하였다. 원래 그는 이조판서에게 보내는 정승의 소개서를 가지고 갈 때부터 쌀 고장에다가 물산도 풍부한 황해도의 연안, 배천 쪽의 군수자리를 청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이조판서를 만난 자리에서 그러한 소청을 올렸으나, 뜻밖에도 고성군수로 임명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내려오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부임한 금강산 유점사의 주지가 인사차 그를 찾아왔다. 한태갑은 그가 온 것을 기뻐하면서 주지와 함께 속에 품은 울적한 심사나 나누려고 먼저 입을 열었다.
“누지에 와서 고생이 여간 아니겠소그려.”
“원 천만의 말씀을. 불도를 닦는 데야 여기 금강산의 절만한 데가 어디 또 있겠습니까.”
짐작과는 달리 금강산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 주지의 기색을 살펴보며 한태갑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대사는 유점사에 오겠다고 자진해서 소청을 드렸겠소그려?”
“그럴 리가요. 그와는 정반대의 소청을 드렸지요.”
“정반대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아니 그럼 사또께서는 아직 이조판서의 성미를 모르셨습니까? 그 영감이야 북쪽에 가겠다면 남쪽에 보내고 남쪽에 가겠다면 한사코 북쪽으로 보낸다는 것을. 그러니 뻔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관동(關東)의 금강산에 오기가 소원이었으니 그 반대쪽인 관서(關西)의 배천 강서사(江西寺)01에 보내달라고 청을 드렸지요.”
“그게 정말이오?”
“그 대감의 고약한 성미야 온 장안에 소문이 파다한데 정말이고 말고가 있겠습니까.”
한태갑은 주지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자기가 고성 군수로 오게 된 까닭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남이 다 아는 대감의 성미도 모르고 우둔하게도 관서 쪽의 연안, 배천으로 가겠다고 청을 드린 자신의 처사가 가슴을 쥐어뜯고 싶도록 후회되었다.
유점사의 주지가 돌아간 후 한태갑은 울화가 치미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지냈다. 그런데 하루는 뜻밖에도 이조판서가 금강산 구경을 왔다. 한태갑은 대감이 내심 괘씸하여 홀대를 하고 싶었지만, 관리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그에게 자칫 잘못 보였다가는 겨우 얻은 군수자리마저 잃게 될까봐 있는 정성을 다해 대감일행의 시중을 들었다.
한태갑은 끼니 때마다 산해진미로 음식상을 차려올리고 밤마다 기생을 교체했으며, 날마다 다리가 아프도록 명승고적으로 길안내를 하였다. 대감은 대감대로 한태갑을 당나귀처럼 앞세우고 금강산은 물론이거니와 통천과 양양, 멀리로는 강릉까지 돌아다니며 ‘관동8경’에 속한 경치들을 구경하였다.
드디어 대감일행이 떠날 날짜가 되자 한태갑은 삼일포의 누각(樓閣)에다가 큰 연회상을 차렸다. 대감 이하 그를 따라온 벼슬아치들과 문객들은 실컷 먹고 마신 뒤 취흥에 겨워 관동8경에 대한 풍월을 읊어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손님접대에 지처버린 한태갑만은 누각의 한쪽 기둥에 기대앉아 조는 듯 눈을 감고 어서 이 놀음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거나하게 취한 대감의 목소리가 울렸다.
“고성군수 한태갑은 어디에 있느냐?”
자기를 찾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한태갑은 몸가짐을 바로 하며, “예,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자네는 금강산의 주인인데 왜 구석에 앉아 졸고만 있나. 사양하지 말고 이리 나와 시(詩)나 한 수 읊게.”
한태갑은 속으론 몹시 언짢았으나 거역할 수가 없어 몇 발자국 앞으로 나왔다. 이제껏 왁자지껄 풍월을 읊조리던 선비들이 어떤 시가 나오나 하여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본시 학식이 얕은데다가 재물 모으는 데만 관심을 가져온 그인지라 적당한 시구(詩句)가 떠오르지 않아 끙끙 거리고만 있었다.
“왜 장승처럼 서 있기만 하는고. 어서 읊게.” 대감이 독촉하였다.
한태갑은 가뜩이나 밉살스럽게 생각해 오던 대감이 자기를 몰아대는 통에 이날따라 그가 더 얄미워졌다. 그래서 한태갑은 자기를 비웃듯 쳐다보는 선비들을 아니꼽게 쏘아보며 분기어린 목소리로 한마디 읊었다.
- 襄陽江陵之雨(양양강릉지우), 通川高城之風(통천고성지풍) -
예상 밖의 시구에 연회장은 숨죽인 듯 조용해졌다. 모두들 다음 시구가 연달아 나오길 기대하며 귀를 기울였지만 한태갑은 입을 봉한 채 먼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기다리다 못해 대감이 “그게 단가?” 하고 물었다. “예, 다올시다. 양양과 강릉은 비가 많이 올 뿐이옵고, 통천과 고성은 사철 바람질뿐인데 그 외에 읊을 게 더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자 대감도 선비들도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
“단 두 행의 글귀로 관동8경을 단숨에 읊었으니 오늘 시 짓기에서는 고성군수가 으뜸이로다.” 대감의 조롱 섞인 소리에 또 한바탕 모두들 폭소를 터뜨렸다.
이조판서는 금강산을 떠나면서 배웅하기 위해 나온 한태갑에게 물었다. “자네 이번에 수고가 많았는데 뭐 나한테 부탁할 거라도 없나?”
그 소리에 귀가 번쩍 뜨인 한태갑은 이때라고 생각하였다. “군수자리를 옮겨주사이다.”
“이런 사람을 봤나. 천하명승도 싫다는 건가?”
“그런 것이 아니오라 저….”
“그래, 어디로 보내주면 좋겠나?”
한태갑은 유점사 주지의 말을 떠올리며 얼른 양양이나 강릉으로 보내달라고 청을 드렸다. 그래야 성미 고약한 대감이 그 반대편인 연안, 배천 쪽으로 보내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계산과는 달리 한 달 후 한태갑은 양양현령으로 좌천되었다. 이조판서가 금강산을 구경할 때 자기를 깍듯하게 시중 들어준 그의 수고를 생각해 여느 때와는 달리 이번만은 그의 소청대로 들어주었던 것이다.
이후 한태갑은 벼슬길에서 소원성취 못한 운수 나쁜 군수로서가 아니라 천하명승인 금강산을 가까이 두고서도 그 절경을 느끼지도, 사랑할 줄도 모르고 웃음거리가 되고만 ‘두 행의 시(詩)’를 남긴 군수로 후세에 알려졌다.
<대순회보> 85호
<참고문헌>
안재청, 리용준 저, 『금강산일화집』,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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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황해도 배천군 강호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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