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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이야기왜적의 침입을 예견한 이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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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5.22 조회6,4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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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세기의 관료이며 유학자인 토정(土亭) 이지함(李之, 1517~1578)은 당시 최고의 성리학자 중의 일인이었던 서경덕(徐敬德, 1489~1546)의 문하에 들어가 많은 영향을 받았고 후일 수리, 의학, 점복, 천문, 지리, 음양, 술서 등에 통달하게 되었다. 1573년에는 벗이었던 이이(李珥)의 추천에 의해 포천현감으로 재직 중, 임진강의 범람을 예견하여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구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그래서 당시 민간에서는 토정을 이른바 “천기(天機: 하늘의 기밀 또는 造化의 신비)”를 내다볼 줄 아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런 그가 생전에 금강산을 유람하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을 짐작하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전해오고 있다.

  1570년대에 이지함은 팔도강산을 유람하다가 어느 해에는 금강산에 찾아갔다. 오십 고개를 넘은 나이에 천하명산을 돌아보게 된 그의 기쁨은 한량없이 컸다. 금강산에 들어선 이지함은 끝없이 펼쳐지는 절경에 이끌려 어느 높은 산마루 아래에 이르렀는데, 그때 해는 이미 서산에 기울고 있었다. 사방은 아직도 환했지만 바위 위에 한 암자가 서 있는 것을 보고 그곳으로 올라갔다. 그는 댓돌01 옆에 지팡이를 세워놓고 난간에 의지하여 황혼 속의 금강산을 바라보다가 피곤에 지쳐 자신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의 꿈속에 두어 명의 스님이 나타나 암자 안을 깨끗이 치운 뒤, 병풍을 갖다놓고 여럿이 앉을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해 놓았다. 그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지금 여러 명산(名山)의 산신령들이 나라에 일이 생긴 것을 근심하여 의논하기 위해 모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촛불과 등불이 휘황찬란하게 비치는 가운데 흰수염을 길게 드리우고 위엄이 있는 옷차림을 한 여러 산신령들이 차례로 들어와 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먼저 삼각산(三角山)02의 신령이 지리산의 신령에게 하는 말이, “요즘 천문(天文)을 보니 장수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데 남에서 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면 남쪽에서 어떤 큰 사변이 생겨날 듯하오. 이것은 왜(倭)의 요사스러운 기운이 동남쪽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겠소.”라고 하였다. 지리산의 신령이 곧 그의 말을 이었다. “비단 별의 운행에 변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일에도 염려되는 바가 있으니 남쪽 오랑캐가 날뛰는 것이 날로 극심해지고 있소. 그런데 조정에서는 연회를 베풀며 ‘태평성대’만 부르고 있으니 나라가 망할 때가 다가왔나보오. 천운(天運)이 이러하니 더 말해 무엇하리오.”

  그의 말을 듣고 풍악(金剛山) 신령이 크게 놀라면서 “조선은 예의지국(禮儀之國)이요, 우리가 이 나라에서 살면서 제물을 받아먹고 있으니 우리 또한 예의지신(禮儀之神)인 셈이오. 그런데 저 추악한 남쪽 오랑캐가 하루아침에 이 땅에 들어와 살게 되면 우리 또한 짐승의 신이 되고 말 것이니, 이같이 부끄럽고 망신스러운 일이 또 어디에 있겠소.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신령들이 제각기 깊이 생각하여 미리 방비책을 세우는 것이 좋을까하오.”라고 하였다. 그의 말에 동의하며 산신령들은 이내 모임을 마치더니 가볍게 인사하고 물러가는 것이었다.

  이때 이지함이 눈을 뜨고 본즉, 당초에 지팡이를 세워두었던 곳은 바위 모서리에 지나지 않았고 몸을 의지했던 것은 한 그루의 소나무였다. 그리고 환히 비치던 불빛은 봉우리 위에 걸려 있는 새벽달이었다.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으나 방금 본 장면들이 눈앞에 너무 생생해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그는 비로소 그것이 꿈이었음을 깨달았다.

  금강산에서 돌아온 이지함은 앞날에 반드시 왜적들의 변란이 있으리란 것을 예견하고 몰래 침입하여 정탐하는 자가 없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살폈다. 그러던 그가 삼척고을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이지함이 스님의 차림을 한 수상한 자를 만났는데 말씨나 얼굴 생김새로 보아 틀림없는 왜놈이었다. 그는 곧 아랫사람들을 시켜 그 스님을 붙들어 오게 하여 여러 모로 심문해 보았다. 그런즉 자기는 조선의 국내형편을 탐지하려고 왜국에서 들어온 염탐꾼임을 실토하면서 제발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것이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이지함은 선조 11년(1578)에 충청도 아산현감으로 있다가 생을 마감했는데 그로부터 14년 후인 임진년(1592년)에 왜병이 침입하였다. 그때 왜장들 중 쓰시마섬[對馬島]의 도주(島主)였던 평의지(平義智)란 자는 이지함이 앞을 내다보고 싸움준비를 단단히 해 둔 삼척고을에는 군사를 들여보내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대순회보> 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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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집채의 낙숫물이 떨어지는 곳의 안쪽으로 돌려 가며 놓은 돌.

02 ‘북한산’의 다른 이름.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의 세 봉우리가 있어 이렇게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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