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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이야기만폭동 사자바위 화룡담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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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1.12.19 조회6,1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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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처럼 생긴 바위가 머리를 들고 있는 구담(龜潭)을 지나 50m쯤 올라가면 내금강 만폭팔담(萬瀑八潭)의 제7담인 선담(船潭)이 나타난다. 못의 모양이 배와 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외금강 신계동의 선담보다는 규모가 작고,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화되어 배의 모양이 뚜렷하지 않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왼편 봉우리 정상에 머리를 쳐들고 으르렁대는 사자모양의 커다란 바위가 있다. 이것이 바로 호종단을 물리쳤다는 전설이 깃든 ‘사자바위’이다. 이 바위는 향로봉을 향해 서 있는데 뒷다리 발목 밑이 떨어져서 모난 돌을 괴어놓았다. 사나운 모습의 사자바위는 떨어진 뒷다리 때문에 뛰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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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자바위 아래에는 숲이 우거진 가운데 주변의 경치를 거울처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아늑한 소(沼)가 있다. 이 소가 풍운을 타고 천지조화를 부리는 화룡이 숨어 살았다는 제8담 화룡담(火龍潭: 깊이 3.3m)이다. 타원형의 화룡담은 그렇게 큰 편은 아니지만 깊은 못의 물빛이 짙푸른 비취색을 띤 채 우거진 숲과 어우러져 만폭팔담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이 못은 기이하게도 4단으로 되어 있으며, 각 층을 따라 푸른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 마치 용이 입으로 불을 토해내는 것 같다 하여 화룡담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왼편 길가에는 ‘火龍潭(화룡담)’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둥글넓적한 바위가 있다. 이 바위에 올라서면 동북쪽으로 백옥을 다듬어 세워 놓은 듯한 중향성(衆香城)이 멀리 보이고, 동쪽으로 월출봉(月出峰)ㆍ혈망봉(穴望峰)ㆍ법기봉(法起峰)이 마주 보이며, 남쪽으로는 지나온 만폭동의 여러 못 들이 흰 비단에 파란 구슬을 꿰어놓은 듯 연이은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금강산의 여러 명승지 중에서도 만폭동은 만 가지 물의 조화를 한데 모아놓은 폭포와 못에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이 더해져 계곡미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 한편 이곳의 사자바위와 화룡담과 관련해 사자와 화룡이 금강산의 지기(地氣)를 손상시키려고 찾아온 호종단을 물리쳤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호종단(胡宗旦, ?~?)은 본래 송(宋)나라 출신으로 10세기 중엽에 고려에 귀화하여 벼슬살이를 한 자였다. 풍수지리에 밝아서 고려 임금의 신임을 얻었고, 벼슬이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 기거사인(起居舍人: 정5품)까지 이르렀다. 호종단은 5도양계(五道兩界)01를 두루 다니면서 각지의 지기를 돋우겠다고 제안하여 임금의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진짜 속셈은 우리나라의 명소(名所)들을 못 쓰게 만들고 지기를 약화시킴으로써 장차 고려를 침공하는 데 유리한 환경과 조건을 만드는데 있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잘 다듬어진 비석의 글자를 갈아 없애거나 물속에 쳐 넣었다. 강릉의 명승지인 한송정(寒松亭)의 비석도 그가 바다 속에 던져 넣었고 고성 삼일포에 있던 비석도 부숴버렸으며, 경주 봉덕사(奉德寺)의 종도 쇠를 녹여 못쓰게 만들려고 책동하였다.

 

  그런데 바로 이 호종단이란 자가 어느 날 삼일포에 왔다가 외금강의 유점사를 지나 내무재령(內霧在嶺)을 넘어 내금강으로 들어왔다. 그는 천하의 명산으로 이름난 금강산의 땅기운을 어떻게든 손상시키려는 흉계를 갖고 만폭동 골짜기 안으로 접어들었다. 이때 만폭팔담의 윗목을 지키고 있던 사자는 나쁜 사람이 들어온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호종단이 가까이 오자 사자가 분연히 일어나 크게 포효하였다. 금강산을 지키는 신비스러운 사자가 있음을 알게 된 호종단은 혼쭐이 나서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오던 길로 달아나버렸다.

 

  사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펄쩍 뛰어서 단숨에 몇 길이나 되는 앞산 바위 봉우리에 올라갔다. 그런데 앞발과, 뒷발 하나만을 간신히 착지한 사자는 뒷다리 하나가 공중에 떠서 몸의 중심을 잃자 그 아래 담수 속에 사는 화룡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화룡아, 너는 나와 함께 이웃하여 산지 오래되었으니 일이 있을 때 서로 도와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

 

  “그래, 무슨 일이기에 그러시오?” 하고 화룡이 물었다.

 

  “지금 내가 위태로운 곳에 올라와 당장 떨어질 것 같구나. 담수 속에 내가 떨어지면 너도 있을 자리가 없을 터이니 돌을 하나 가져다가 내 발밑에 괴어 주려무나.”

 

  이 말을 듣고 화룡이 즉시 건너편 법기봉에서 돌을 하나 가져다가 사자의 다리 밑에 괴어 주었다. 이로 인해 사자는 간신히 몸의 중심을 잡고 서 있을 수 있었으나, 그 후 서서히 몸이 굳어져 돌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사자 발밑에 고인 모난 돌의 크기와 생김새가 맞은편 법기봉의 돌이 있던 자리와 잘 들어맞는다고 한다.

 

 

 

 


01 고려 시대 최고 지방행정 구역. 『고려사(高麗史)』 「지리지(地理志)」에 의하면 현종 때 남쪽에는 양광도(楊廣道), 경상도, 전라도, 교주도(交州道), 서 해도(西海道) 등 오도(五道)를 두었고, 북쪽에는 서북계(西北界)와 동북계 (東北界)의 양계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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