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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이야기일만이천봉에 못 든 울산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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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6.19 조회5,7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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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바위

  설악산은 주봉(主峰)인 대청봉의 높이가 1,708m이고 우리나라의 척추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중심에 있는 명산이다. 남한에서는 한라산(1,950m)과 지리산(1,915m) 다음으로 높은 산이며 금강산의 절경에 견주어 ‘제2의 금강산’이라 불리고 있다. 설악산은 계곡이 많고 물이 풍부한 내설악과 천불동계곡을 끼고 기암절벽이 웅장한 외설악으로 나뉘는데, 외설악 입구인 설악동에서 신흥사를 거쳐 서북 계곡을 따라 오르면 사방이 절벽으로 된 높이 950m의 거대한 바위산이 나타난다.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웅대함에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데 이것이 바로 ‘울산바위’이다. 미시령계곡을 사이에 두고 금강산 제1봉인 신선봉(神仙峰)의 맞은편에 위치한 울산바위에 대해 다음의 두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조물주가 강원도 땅에 산봉우리의 수가 꼭 1만 2천 개인 천하의 명산을 만들기로 하였다. 그래서 각지의 산 중에서 높고 웅대하여 이목을 끌 만한 산에게 영을 내려 모월 모시까지 금강산 쪽으로 오면 심사하여 합격한 산에게는 그 용모에 걸맞은 자리를 줄 터이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하였다. 이 소식을 접하고 각처에 있던 수많은 산들이 좋은 기회를 놓칠세라 모두 강원도로 속속 모여 들었다.

  이때 경상도 울산 땅에 둘레 10리나 되며 깎아지른 절벽에 웅장하기로 이 고을에서 견줄 대상이 없던 울산바위도 그 소식을 듣고 주위의 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본시 산 중의 왕으로 너희들하고 같이 있을 처지가 아닌데 어쩌다가 이곳에 있게 되어 오늘까지 빛을 못 보고 지냈다. 그러나 이제 조물주께서 금강산이라는 천하의 명산을 만든다 하니 내가 있을 자리가 그곳이므로 즉시 떠나겠다.”

  울산바위는 금강산을 향한 노정에 올라 태백산맥을 따라 가는데 워낙 몸집이 육중하여 빨리 걸을 수가 없었다. 온 힘을 다하여 부지런히 걸었지만 설악산 근처에 이르니 더 나아갈 수 없을 정도로 기진맥진해 있었다.

  “빨리 가야 좋은 자리를 차지할 텐데.” 하며 조바심이 나긴 했지만 힘이 다하여 하루 쉬지 않을 수 없었다. 주위에 쉴 만한 자리를 찾던 울산바위가 외설악의 물과 경치가 좋아 고른 곳이 바로 지금의 그 자리이다.

  이곳에서 하루 잘 쉬고 다음날 다시 육중한 몸을 이끌고 금강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금강산 어귀에 들어서니 이미 금강산이 거의 완성된 것 같았다. 울산바위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바위산의 왕이라 자처하던 터라 ‘내가 왔으니 마땅한 자리가 있겠지.’라며 마음을 다지고 조물주에게 가서 말했다.

  “보다시피 저의 몸집이 워낙 육중하여 걸음을 빨리 걸을 수 없어 좀 늦긴 했지만 이만하면 금강산의 주역 노릇을 할 만하니 한 자리 마련해 주십시오.”

  조물주가 울산바위의 모습을 살펴보더니, “그만하면 족히 금강산의 주역 노릇을 할 만하나 안타깝게도 늦게 와서 자리가 없으니 금강산 주변의 단역을 줄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울산바위는 이 말을 듣고, “체면이 있지 제가 어떻게 금강산의 단역 노릇이나 하겠습니까. 자리가 없어 주역 노릇을 못할 바에야 차라리 그냥 돌아가겠습니다.” 하고는 홧김에 바로 그곳을 떠나 귀로에 올랐다.

  그런데 돌아오며 가만히 생각해보니 처음 울산을 떠나올 때 동료 산봉우리들에게 금강산에 가서 좋은 자리 하나 차지하겠다고 큰소리 쳤는데, 이제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가면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울산바위는 어찌해야 할 지 난감해 하다가 문득 수려한 설악산의 산수와 어젯밤에 쉬었던 그 자리가 떠올랐다.

  “금강산만은 못하겠지만 금강산에서 단역을 맡는 것보다는 어제 그 자리에 가서 앉으면 외설악의 주역 노릇을 할 수 있을 터이니 그 자리로 가자.” 이렇게 마음먹고 찾아가 앉은 곳이 지금의 울산바위라고 한다.

  다음 이야기는 유생들의 기세가 등등하던 조선시대 때의 일이다. 울산 고을 부사가 설악산 관람을 왔다가 이 울산바위 전설에 대한 애기를 듣게 되었다. 그는 승려들을 골탕 먹일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고 밤새 궁리하였다. 다음날 아침 그는 신흥사 주지를 불러 자신의 고을에 있던 울산바위가 이 지역에 와 있으니 지세(地稅)를 내라고 요구하였다. 주지는 울산 부사가 갑자기 나타나 이렇듯 황당한 요구를 하니 이렇다 말 한마디 못하고 그 자리에서 승낙하고 말았다.

  이때부터 해마다 막대한 지세를 물다보니 신흥사의 재정이 점점 어려워져 도저히 지세를 낼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그 때문에 걱정이 태산 같던 주지가 며칠째 잠을 못 이루고 있으니 동자승이 그 연유를 물어보았다. 답답한 마음에 저간의 사정을 털어놓으니 동자승은 자신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울산에서 지세를 받으러 사람들이 왔다. 동자승은 그들에게 “지금까지 우리는 억울한 지세를 물어왔소. 그 우람한 바위가 사찰 주변에 있으니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나지 않아 우리에게 입힌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오. 이미 문 것은 어쩔 수 없고 금년부터는 지세를 줄 수 없으니 그리 알고 가시든지 아니면 울산바위를 도로 울산으로 옮겨 가든지 하시오.”

  그러자 그들은 재로 새끼를 꼬아 울산바위 주위에 둘러놓아 옮겨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해주면 다시는 지세를 받으러 오지 않겠다고 하였다. 동자승은 이를 쾌히 승낙하고 마을 사람들과 절간의 승려를 모두 동원해 며칠 동안 울산바위를 몇 겹 두를 만한 긴 새끼를 꼬게 하였다. 새끼가 다 되자 이번에는 그것으로 울산바위를 칭칭 얽어매도록 했다. 이것을 보고 주지가 동자승에게 물었다.

  “너는 울산 사람들과 약속하기를 재로 꼰 새끼를 얽겠다 해 놓고 성한 새끼로 얽으니 어찌하려고 하느냐?”

  “스님은 그저 구경만 하고 계십시오.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이윽고 얽어 놓은 새끼를 횃불로 다 태우니 울산바위는 완전히 재로 된 새끼로 얽혀지게 되었다. 그런 다음 근처에 묵고 있던 울산 사람들을 불러 말했다.

  “약속한 대로 울산바위를 재로 된 새끼로 얽어 놓았으니 이제 가져가십시오.”

  울산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 아무 소리도 못하고 그냥 돌아갔는데, 그 이후로 다시는 울산바위의 지세를 받으러 오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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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회보> 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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