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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이야기조병균의 『금강록(金剛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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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9.02.25 조회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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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말엽의 일이다. 천하명승 금강산을 찾는 유람객들이 날로 늘어감에 따라 금강산의 빼어난 절경에 대한 소문이 온 나라 방방곡곡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남녀노소는 물론 존비귀천을 가릴 것 없이 누구나 한번쯤 금강산 구경을 염원하거나 동경하였다.

  당시의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당대의 이름 있던 문인들은 저마다 나라와 민족의 자랑인 금강산을 세상에 더욱 자세히 소개하려는 뜻을 품고 금강산기행문을 썼다. 그때 나온 여러 편의 기행문 가운데서도 특히 이채를 띤 것은 조병균(趙秉均, 1865~?)이 쓴 국문본 『금강록』이었다. 그가 이 책을 저술하게 된 동기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일화들이 전해오고 있다.

  어느 날이었다. 어지간히 밤이 깊어 관청에서 나온 조병균은 시장기를 느끼고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대문을 열고 들어섰더니 늘 환하던 창가에 불빛이 꺼져있었다. 

  그는 혹시 집안사람들이 초저녁 단잠에 곯아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여 헛기침을 크게 하면서 마당에 들어섰으나 방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보이지 않았다. 대청(大廳)마루에 올라 이방 저방의 문을 열고 들여다보았으나 식솔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고, 행랑살이를 하는 하녀도 없었다.

  필경 무슨 곡절이 있다고 생각한 그는 좀 알아볼까 하여 마루에서 내려왔다가 마음을 고쳐먹고는 서재로 들어가 촛불을 켜고 책을 펴들었다. 그러나 배고픔 때문에 글줄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홧김에 책을 탁 덮어놓고 방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한참이 지나서야 대문 열리는 소리가 나고 부인과 딸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부인은 송구스러운 기색으로 밥상을 차려 방 안으로 들어섰다. 괘씸한 것을 생각하면 당장 큰 소리로 욕설을 퍼붓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병균은 그것을 꾹 참으며 침착하게 물었다.

  “도대체 집을 비워두고 어디를 갔었소?”

  “미안하오이다. 실은 옆집 진사댁 부인에게 고성에 사는 손윗누이가 있는데 그녀가 왔다기에 금강산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가 그만 늦었습니다.”

  “뭐, 금강산!”

  “예. 그이가 어찌나 금강산 이야기를 지금 눈앞에서 보이듯 실감나게 하시는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듣다가 그만…, 정말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우리 애들도?”

  “예. 제가 금강산 이야기를 들으러 간다니까 저희들도 덩달아 따라 나서는 바람에….”

  부인은 말끝을 흐리며 무슨 꾸중이라도 달게 받겠다는 듯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흠….”

  부인의 상기된 얼굴을 그윽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던 그는 아무 말 없이 수저를 들었다. 밥 한 술을 떠서 막상 입에 넣었으나 목에 걸려 잘 넘어가지 않았다. 마음은 있어도 남자들처럼 버젓이 금강산 유람을 갈 수 없던 터에,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이 나라 여인들의 간절한 마음이 가슴에 와 닿아서였다.

  또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한 친구가 금강산에 다녀온 화원에게서 구한 <금강산도(金剛山圖)>가 있으니 함께 감상하자고 하면서 집으로 청하였다. 그날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집을 나선 조병균은 혹시 늦을까봐 걱정하며 부리나케 걸음을 다그쳤다.

  그가 친구의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 보니 불빛이 밝은 방문 앞에 이미 손님들이 와 있는 듯 여러 켤레의 신발들이 놓여있었다. ‘늦었구나!’라고 생각하며 기척도 없이 방문 쇠고리를 잡아당기는 순간, 병균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안에는 집주인이 펼쳐놓은 금강산 그림을 가운데 놓고 한 무리의 여인들이 둘러서서 정신없이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문소리가 나자 고개를 돌린 여인들이 기겁을 한 듯 “아이고머니나!” 소리를 지르며 뿔뿔이 달려 나와 신발을 찾아 신으며 한동안 법석이었다. 집주인은 뜻밖의 광경에 멍하니 서 있는 병균에게 어서 빨리 들어오라고 손짓하였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 방에 들어서자 그 친구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글쎄 우리집에 <금강산도>가 있다는 걸 알고서는 동네 부인들이 몰려와서 어떻게나 보자고 성화를 부리던지, 할 수 없이 보여주고 있던 참일세.”라며 변명 비슷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날 밤이었다. 친구의 집에서 돌아와 자리에 누운 그는 아직도 남녀차별의 ‘남존여비’의 제도가 담장처럼 앞을 가로막고 있어 자신의 집 대문조차 마음 놓고 나서기를 꺼려하는 이 나라 여인들을 위하여 금강산의 절승경개를 소개하는 글을 쓰리라 마음속에 굳게 다짐하였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조병균은 등허리에 한 뭉치의 종이며 벼루와 먹, 붓을 짊어지고 금강산 탐승길에 올랐다. 천하명승 금강산을 보고 싶어 하는 여인들의 간절한 소망을 다만 얼마만이라도 덜어주려는 심정에서 탐승여정에 따라 금강산의 절승경계를 알기 쉬운 우리말로 소개한 조병균의 금강산 탐승기 『금강록』01은 이렇게 해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대순회보 102호> 


01 이 작품은 조병균이 50일간 금강산을 여행하면서 곳곳에 얽혀 있는 20여 항의 신앙전설과 지명연기설화(地名緣起說話)들을 소개하고 있다. 또, 당시 금강산의 각 사찰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산승들의 생활상과 음식ㆍ복식ㆍ대인범절 등을 알려주고 있어 조선 말엽에 지어진 국문기행록 중에서도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디지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Ency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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