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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이야기연암의 총석정 해돋이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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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9.03.20 조회5,1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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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자는 중미(仲美)이고 호는 연암(燕巖)이다. 그는 이용후생(利用厚生)01의 실학을 강조하고, 당대 사회현실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많은 작품들을 창작한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이며 소설가였다. 서울 양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돈령부지사(敦寧府知事: 정2품 관직)를 지낸 조부(祖父) 슬하에서 자라났다. 연암은 어릴 때부터 글 읽기와 함께 문학작품과 그림을 감상하고 옛이야기 듣는 것을 즐길 정도로 남달리 지식욕이 강했다고 한다.


  그가 16세 되던 해에 이보천의 딸과 결혼한 후, 처삼촌이며 이익(李瀷)의 사상적 영향을 받았던 이양천에게서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3년 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공부에 전념하여 정치, 경제, 역사, 병학, 농학, 문학 등 여러 분야의 경세실용(經世實用)의 학문을 연구하였다. 그가 이처럼 실학사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데에는 장인과 처삼촌의 영향이 컸다. 장인 이보천은 학식이 있었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재야에 묻혀 살았고 처삼촌 이양천은 실학자였다. 그들의 영향을 받으며 실학사상을 접하는 과정에서 박지원은 비참한 농촌현실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착취 받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생활상과 정서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부패하고 무능한 양반과 사회적 모순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 특히 타고난 글재주를 지녔던 그는 이미 18살 때 처녀작인 『광문자전(廣文者傳)』을 지었고 이후에도 여러 편의 단편소설을 저술하였다. 이 작품들을 통해서 박지원은 기지 넘치는 풍자와 해학으로 부귀와 공명만을 탐하며 허송세월을 보내는 양반들의 생활상을 폭로하고 사회의 최하층에서 천대받는 사람들을 동정하였다. 그중에서도 『양반전(兩班傳)』은 양반들의 위선과 무능력, 그리고 하층민에 대한 착취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유명하다. 배꼽을 잡고 웃게 하면서도 양반들에 대한 분노를 느끼게 만드는 이 작품의 풍자적 특성은 사람들이 ‘박지원’ 하면 으레 『양반전』부터 떠올리게 하였다. 


  1780년에 박지원은 8촌 형인 박명원이 청(淸)의 고종 70세 진하별사(進賀別使) 정사(正使)로 북경으로 가자, 함께 수행해 북경과 열하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이때 청의 문물과의 접촉은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는데 이에 대해 정리하여 쓴 책이 『열하일기(熱河日記)』이다. 이것은 단순한 일기가 아니라 『호질(虎叱)』ㆍ『허생전(許生傳)』 등 당시 사회의 위선을 풍자한 소설을 비롯해 청의 풍속과 제도, 문물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조선사회에 대한 비판도 담겨있다. 이 저술로 인해 연암의 명성은 일시에 크게 높아졌으나 홍문관에서 호된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이런 그도 우리나라의 금수강산을 좋아해 젊은 시절에는 명산대천을 유람하는 것을 몹시 즐겼다고 한다. 다음은 그가 28살 되던 해에 금강산과 동해안 일대를 여행할 때 있었던 일이다. 


  통천 땅에 들어선 박지원은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알려져 있는 총석정(叢石亭)02의 해돋이가 정말로 장관이라는 소리를 이미 들었던지라 첫 일정을 총석정 구경으로 잡았다. 마음 같아서는 통천에 들어서는 그 길로 총석정으로 내닫고 싶었으나 이미 한낮이 기울었으므로 어느 한 주막에 들어가 여장을 풀었다. 그는 저녁밥을 먹고 난 뒤 주인을 불러 “내일 이른 새벽에 총석정으로 나가 해돋이 구경을 할 터이니 첫닭이 울 때 잊지 말고 깨워주시오.”라고 부탁하였다. 주인은 그러겠다고 약속하고 물러갔다. 


  그러나 그날따라 주막에는 손님이 많았다. 밤이 깊었건만 건너 방에서는 주인 내외를 찾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고 잇따라 음식상을 들고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나곤하였다. 연암은 일찍 일어날 양으로 초저녁부터 잠을 청했으나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혹시 주인이 밤늦게까지 시중을 들다가 몹시 피곤해 쓰러지면 자기와 한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불현듯 들어 다시 주인을 불러 다짐을 해두었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한동안 몸을 뒤척이던 그는 먼 길을 온 피곤함이 삽시에 몰려들어 깊은 잠에 빠졌다. 


  그런데 어이하랴. 다음날 그가 잠을 깨어보니 벌써 동창이 환히 밝은 것이 아닌가. 연암은 깜짝 놀란 나머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어젖히고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푸른 파도가 밀려드는 망망한 동해를 바라보니 저 멀리 수평선 위로 방금 아침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가 크게 실망한 기색으로 돌아서는데, 그제야 주막집 주인이 저고리차림으로 허둥지둥 달려 나오는 것이었다. 주인은 어젯밤 손님이 그치지 않아 자정까지 시중을 들다보니 그만 늦잠을 자고 말았다고 변명하면서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했다. 괘씸한 생각 같아서는 한바탕 호통을 치고 싶었으나 피곤이 몰려 그렇게 된 주인을 탓할 수도 없었다. 


  연암은 모처럼 작정했던 일이 틀어지자 이제라도 총석정으로 갈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자기가 이곳에 온 애초의 목적이 총석정 해돋이 구경이었던 만큼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뒤늦게 그곳에 가려던 생각을 단념하였다. 연암은 다음날로 미루게 된 총석정의 해돋이 구경을 위해 그날은 밖에 나가지도 않고 충분히 휴식을 취한 다음 저녁때는 행장을 차린 채로 누워 있다가 첫닭이 울기 바쁘게 어두운 밤길을 걸어 총석정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가 조국산천의 아름다움에 대한 긍지를 안고 쓴 시 “총석정의 해돋이”에서 오늘은 총석정의 해돋이를 꼭 보리라 마음 다지며 밤길을 걸어갈 때의 자신의 심정을 첫머리에 묘사해 놓았다. 이렇게 시작된 시는 어둠을 뚫고 하늘과 바다, 구름과 섬, 각양각색의 총석들을 붉게 물들이며 수평선 너머로 불덩어리 같은 아침 해가 서서히 솟아오르는 장엄한 광경을 다음과 같이 격조높이 노래하였다. 

 

 
길손들 한밤중에 서로 주고받는 말이

먼 닭이 울었는가 아직 울지 않을 텐데

먼저 우는 먼 닭은 그게 바로 어드메냐

의중에만 있는 거라 파리 소리처럼 희미하네

마을 속의 개 한 마리 짖다 도로 고요하니 

고요함 극해지고 찬기 일어 마음이 으시으시

이때 마침 소리 있어 두 귀가 울리는 듯

자세히 듣자니 집닭 울음 뒤따르네

예서 가면 총석정이 십 리밖에 되잖으니 

동해에 곧바로 다다르면 해돋이를 보겠구먼

 

-(중략)-

 

갑자기 눈살 찌푸리듯 하늘가 어둑해지더니

기운이 솟아난 듯 어영차 해[日] 수레 미네

바퀴처럼 둥글잖고 독처럼 길쭉한데

들락 말락 하니 철썩철썩 부딪치는 소리 들리는 듯

만인이 어제처럼 모두 바라보는데

어느 뉘 두 손으로 받들어 단번에 올려놨노

  

 


  연암 박지원이 쓴 ‘총석정의 해돋이’는 해금강(海金剛)의 아름다움이 한 폭의 그림처럼 생동감 있고 선명하게 다가와 작품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림을 모르는 사람은 시를 모른다”고 했던 그의 말이 결코 허언(虛言)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해준다. 

 

 

 

 

01 기구를 편리하게 쓰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넉넉하게 하여, 국민의 생활을 나아지게 함.

02 강원도 통천군 통천읍에 있는 정자. 관동팔경(關東八景) 중의 하나로, 주위에 현무암으로 된 여러 개의 돌기둥이 바다 가운데에 솟아 있어 절경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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