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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이야기이허대전설(下) -도를 닦은 이서방과 허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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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1.12.19 조회7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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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편> 뛰어난 재주를 지녔으나 서자로 태어난 이서방은 신분의 굴레에 갇혀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속세를 등지고 자연을 벗으로 삼고자 금강산에 들어갔다. 금강산을 오르던 이서방은 절경에 도취되어 그동안 쌓였던 시름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도를 닦아 승천한 스님의 소식을 접하고 그 스님이 도를 닦던 곳에 가기 위해 비로봉 쪽으로 오르던 중 마주 내려오던 한 사내와 마주쳤다.

  

 

  이서방은 이 사나이의 행색이 광인처럼 보였기 때문에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비켜섰다. 그 사람은 이서방의 곁을 그냥 지날 듯하다가 문득 발길을 멈추고 “어디까지 가는 길손이오? 금강산경치에 홀리신 게 아니오?” 하면서 크게 웃었다. 그의 말투나 태도로 보아 미친 사람 같지는 않아 이서방이 대답했다.

 

  “이 산에 깊이 은거해 계신 분을 찾아다닙니다. 혹 그분이 아니신지요?” 하니 그 사나이는 더욱 크게 웃으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오. 그러나 이 나라, 이 강산을 사랑하는 사람이오.” 하고 나서 “우리 이왕이면 저기 좀 앉아 이야기합시다.” 하며 상대의 답변은 기다리지도 않고 성큼성큼 걸어 다리 건너편 바위에 걸터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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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 않아도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지금 절이라도 찾아가야 할 판에 만난 사람인 만큼 이서방도 반가웠다. 이서방이 그의 옆에 가서 앉자 그가 “그럼 친구는 금강산 신선을 찾아왔소?” 하고 묻기에, “아니 그런 것은 아니나….” 하고 말끝을 흐리니 그가 대뜸 “그럼 그림 같은 산천을 보며 풍월을 읊으려고 오셨군요.” “사실 그런 것도 아닙니다.” 하고 나서 이서방은 자신이 금강산에 들어오게 된 사연을 이야기했다.

 

  “저는 본래 미천한 몸에서 난 서자(庶子)로서 아버지와 아들의 정의(情義)보다 더 중한 것은 없지만 감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임금의 옆에도 가까이 갈 수 없소이다. 그리고 누구나 나와 벗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니 벗을 사귀는 일조차 없어졌소이다. 이처럼 세상에 용납되지 않는 몸이기에 산천에 묻혀 홀로 살려고 온 것입니다.”라고 하며 금강산에 들어온 후에 도를 닦는 이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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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자 그 사람은 또 크게 웃으며 “나도 들었소. 도를 닦아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더군.” 하고 잠시 말을 끊었다가 “그런데 모를 일이오. 하늘의 신선과 선녀 들도 우리나라 금강산의 경치가 너무 좋아 내려온다고 하며, 또 내려와서 돌아가지 않고 영원히 살거나 심지어는 돌로 굳어지기까지 한다지 않소. 그런데 도를 닦아 하늘로 올라갔다니 하하하! 도를 닦아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구원하는 길도 있을 텐데, 안 그렇소? 친구.” 하고 나서 이서방의 얼굴을 쳐다보던 그는 갑자기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친구, 나와 벗이 되지 않겠소?”

 

  그리고는 벗을 사귀는 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장사치는 이익으로 벗을 사귀고 체면을 차리는 양반은 아첨으로 벗을 사귀지. 이익으로 사귀는 벗은 지속되기 어렵고 아첨으로 사귀면 오래 못 간다오. 깊이 사귀자면 진실하게 오직 마음으로 벗을 사귀며 인격으로 벗을 사귀어야만 하네. 그래야 도덕과 의리를 간직한 벗이 되며 이렇게 사귄 벗과는 만 리 길도 먼 거리가 아니지. 잘은 모르겠소만 그대는 나와 벗이 될 수 있을 것 같소.”라고 하며, “어떻소? 나와 함께 도를 닦지 않겠소? 하늘에 오르는 도 말고.”

 

  이서방이 흔쾌히 승낙하자 두 사람은 서로 손을 굳게 잡고 우의를 다졌다. 어느새 해가 지고 서쪽 하늘이 노을로 붉게 물들었다. 그 사람은 “자, 이제 내 집으로 갑시다.”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까 들고 왔던 목검 같은 것을 집어 들었다. 이서방이 “그것은 무엇인가요?” 하고 물으니, “응, 이거? 이것은 칼인데, 내가 도를 닦을 때 쓰는 물건이지.”라고 하더니 앞장서서 걸었다.

 

  얼마 동안 비취같이 맑은 계곡을 따라 올라가니 한쪽으로 갖가지의 수목들이 둘러서 있었다. 벼랑 쪽에는 자연굴이 있고 그 앞에 작은 폭포가 떨어지는 가운데 조그마한 연못을 이루고 있었다. 그 사나이는 동굴 앞으로 가더니 손짓으로 이서방을 불렀다.

 

  “여기가 내 집이니 어서 오시오.”

 

  그가 넝쿨로 엮은 거적을 들추고 안으로 들어가 부시를 쳐서 불을 켜니 어둡던 굴속이 환하게 밝아졌다. 한쪽 구석에서 바구니를 끌어당겨 놓는데 보니 그것은 송이였다. 그리고 대로 만든 통에서 술을 따라 이서방에게 권하며, “이만하면 신선이 될 만하지 않소? 산열매나 솔잎으로 술을 빚어 마시고 송이로 안주하고 또 여기 밤과 잣도 있소이다.”, “이 송이는 아까 구워 놓은 것이니 어서 드시오. 신선과 좀 다른 점은 나는 익은 음식을 먹는 것뿐이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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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주고받고 몇 잔의 술을 기울인 다음 그 사나이는 말했다. “자 그럼 아까 하던 이야기나 더 합시다. 자네가 서자라 행세할 길이 막히고 또 벗 사귈 일조차 없다고 하더군. 그것은 공명이나 영달을 바라고 하는 소리요.” 하고 한동안 술잔만 기울이다 다시 입을 열어 “이제 나와 벗이 된 이상 한마음 한뜻이 되어 도를 닦읍시다. 따지고 보면 나도 자네와 같은 처지의 사람이라오. 하하하!” 하며 웃었다. 이서방이 “그럼 친구는 무슨 도를 닦나?” 하고 묻기에 바위틈에서 책을 꺼내 그의 앞에 놓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병서(兵書)였다. 듣기만 하고 본 일이 없는 병서를 뒤적이고 있으니, 그가 “자, 그건 이제 급할 게 없소. 내일부터는 읽기 싫어도 읽어야 할 테니 어서 술이나 더 드시오.”라고 하였다. 이서방이 “참, 우리 아직 통성명을 안 했소. 나는 이서방이오만.” 하니 그가, “나의 성 말이오? 내 성은 허가요. 그러니 이제 우리 이름은 이허요.”라고 하였다.

 

  두 사람이 책을 놓고 서로 술잔을 주고받는 사이에 그만 허서방이 먼저 취흥이 돋아 소매 속에서 피리를 꺼내들었다. “우리 몸은 갈라져 있어도 두 몸이 아닐세. 형체는 나누어져 있어도 뜻이 같으니 우리는 형제일세.” 하며 피리를 불었다. 그 소리가 너무도 구성지고 아름다우니 이서방이 흥에 겨워 춤추며 노래를 부르는데 갑자기 밖에서 인기척이 나서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세웠다. 그러자 허서방이 크게 웃으며 굴 문 앞으로 가더니 따라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굴 앞에서는 참으로 괴이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둥근 달이 떠서 못에 비치고 사방은 대낮처럼 밝은 가운데 두루미 떼가 내려와 춤을 추고 있었다. 깜짝 놀란 이서방이, “허서방 하나만 물어봅시다. 신선들은 생황을 불고 거문고를 타서 학을 춤추게 한다던데….” 하니 그가 가볍게 웃고 나서 피리를 이서방에게 주며 말했다. “학이란 짐승이 음을 아나 봅니다. 나도 처음에는 놀랐소. 학뿐만이 아니오. 좀 더 불면 뭇짐승들이 다 모여드오. 이제 오늘은 그만합시다.” 하며 나뭇잎 자리에 눕더니 곧 잠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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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튿날 잠에서 깨어난 이서방과 허서방은 산열매와 구운 송이로 요기를 하고 난 다음 허서방이 목검을 들고 밖으로 나가며 이서방을 손짓해 불렀다. 밖으로 나간 허서방이 잣나무 숲으로 달려가더니 칼을 들어 잣나무를 내리치고 가로치고 곧추 찌르는데 그 칼 쓰는 법이 번개 같고, 이리 닫고 저리 닫는 그의 몸이 날래기 또한 비호 같았다. 때로는 한 길씩이나 몸을 솟구치니 사람 솜씨가 아닌 듯싶었다. 한동안 이렇게 뛰고 난 허서방이 바위 위에 걸터앉으며 이서방을 향해 “어때, 한번 해보지 않겠소?” 하며 씩 웃고 나서 “아직은 급할 것 없소. 오늘은 내가 한 번 더 뛸 테니 구경이나 하시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이서방이 “아니오. 허서방 우선 한두 수만이라도 내게 칼 쓰는 법을 가르쳐 주시오.”라고 말하니, 허서방이 한 번 크게 웃고 나서 “하하하! 이 친구 우물가에서 숭늉 찾겠네.”라고 하였다.

 

  이서방이 정색을 하며 “허서방, 세월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소. 뜻을 정한 이상 한시가 급하오.”라고 하였다. 허서방이 눈이 동그래져서 잠시 그를 지켜보고 있으니, 이서방이 “내 어젯밤에 많은 것을 생각해보니 지난날이 몹시 부끄러웠소. 학문과 병법을 더 익히고 무예를 닦아 이 나라의 쓸모 있는 인재가 됩시다.”라고 하였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다음 날부터 잠시도 쉬지 않고 글과 무예를 익히니, 이서방의 칼 쓰는 솜씨가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이렇게 그들이 수년간 무예를 닦고 병법을 익힌 뒤 산에서 내려가는 날이었다. 이서방이 허서방에게 “허서방, 우리가 처음 만나 벗이 된 곳에 이름이나 새겨놓고 갑시다. 좋은 벗을 만나 내가 새 사람이 되었으니 참으로 뜻 깊은 곳이오.”라고 하며 먹과 붓을 꺼내들고 먼저 내려가니 허서방도 정과 망치를 들고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처음 만났던 자리의 선돌에 “李許臺(이허대)”라고 크게 새겨놓고 산에서 내려왔다. 산을 내려오면서 허서방이 말했다. “우리나라 금강산은 참으로 좋은 곳이오. 경치가 좋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인재를 키워내는 곳이기도 하니 말이오. 오늘도 이렇게 지략과 용맹을 갖춘 이 ? 허 두 장수가 탄생하지 않았소. 하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저녁노을을 안고 산을 내려오는 두 젊은이의 웃음소리가 골짜기 안에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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