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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이야기박빈거사(朴彬居士) 용선(龍船)을 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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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1.12.20 조회3,1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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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폭동(萬瀑洞) 입구인 금강대 앞의 갈림길에서 왼쪽 계곡인 원통골과 그에 잇달린 수미골이 절승경개(絶勝境界)를 이룬 지역을 태상구역(太上區域)이라 한다. 내금강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태상구역은 산들이 첩첩이 쌓여 수려한 봉우리를 이루고, 아름다운 개울과 다양한 형태의 기암괴석들이 즐비한 곳이다. 이 지역의 개울들이 대부분 자그마한 폭포와 아늑한 소(沼)로 이루어져 아기자기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바위들은 큼직큼직하고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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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대 앞에서 태상구역 쪽으로 갈라진 개울을 따라 올라가면 원통동 골짜기에 들어서게 된다. 원통동은 만천(萬川)과 태상천(太上川)이 합치는 데서부터 원통암(圓通庵: 외금강 송림동 원통암과 구별하기 위해 내원통암이라고도 함)까지 포괄하는 지역이다. 이곳에는 개울을 따라 굽이굽이 연이은 폭포와 소가 있는데 그 기묘한 흐름과 모양으로 이채를 띤다. 만폭동과 향로봉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원통동은 폭포와 소들이 연이어 있다는 점에서는 만폭동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폭포소리가 요란하지 않고 숲의 그늘에 감추어진 탓에 늘 검은빛을 띠고 있어 그 경관은 서로 판이하게 다르다.

 

  이렇게 올망졸망한 폭포와 소들을 보면서 얼마간 가면 우거진 숲 아래에 둥그스름한 소가 보이는데 이것이 용이 자리 잡고 앉았다는 ‘용상담(龍狀潭)’이다. 용상담을 뒤로 하고 흐르는 듯 마는 듯한 개울물과 봉우리 너머의 산들을 바라보면서 한참 올라가면 높이 한 길 가량 되는 곳에서 평평한 너럭바위에 곱게 쏟아져 내리는 누운폭포와 마주하게 된다. 마치 수정으로 발을 엮어서 드리운 듯한 모습에서 수정렴(水晶簾)이라 불리는 폭포이다.

 

  여기서 다시 조금 더 올라가면 갈라지는 개울목에 구류연(九留淵)이 있다. 구류연은 우거진 숲이 물에 그대로 비치는 비교적 크고 아름다운 소이다. 이 구류연 위로 개울의 갈림목에서 왼쪽으로 들어서면 불쑥 나온 언덕에 ‘원통암’ 터가 있다. 높고 평평한 곳에 자리한 원통암 터는 뒤에 높은 봉우리를 지고 개울 쪽을 향하고 있어 전망 좋기로 유명하다.

 

  원통암 터에서 내려와 오른쪽 골짜기 안으로 들어서면 수미골이다. 수미골 어귀에서 바라보면 개울 오른쪽으로 수미봉(1,333m)이 높이 솟아 있고 그 아래로 향로봉 줄기가 첩첩이 잇닿아 있다. 골짜기는 좀 널찍하게 열려 있지만 아름드리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개울 양쪽에 솟은 봉우리들의 기묘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개울을 따라 오르면 연이어 폭포와 소가 나타난다. 수미골의 아름다운 소(沼)를 대표하는 것으로 만절담, 청량뢰, 자운담, 적룡담 등 7개의 못을 수미칠곡담이라 하는데, 이 못들은 주변의 경치와 잘 어울려 아름다운 절경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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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량뢰를 지나서 개울과 동떨어진 산비탈 쪽으로 바위 모서리를 붙잡고 험한 길을 기어오르면 평평한 바위 위에 절간 터 자리가 나타난다. 이곳이 바로 ‘선암(船庵, 1,200m)’ 터이다. 선암 터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면 온갖 바위들을 모아놓은 듯 특별한 경관이 펼쳐진다. 그 바위들 중에서 특히 눈에 뛰는 것으로, 곰바위와 큰 바위 위에서 금세 뛰어내릴 듯한 다람쥐바위, 그리고 유명한 문답석(問答石) 등이 있다. 문답석은 선암 터 동쪽에 있는데 도사처럼 생긴 돌은 말을 하는 듯하고, 가사를 입은 중처럼 생긴 돌은 머리를 수그린 채 서서 대답하는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선암 터 서쪽에는 널찍한 너럭바위가 대처럼 놓여 있어서 몇 사람이 올라앉아 쉴 수도 있고 전망도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청학봉을 비롯하여 멀리 내금강 일대의 경치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전망 좋기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선암 터 아래쪽 바위 밑에는 조그마한 샘이 하나 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장군수(將軍水)’이다. 이와 관련하여 옛날 어떤 장수가 이 샘물을 발견하고 그 맛이 하도 좋아 큰 돌로 감추어 두고 혼자만 마셨다는 일화가 전한다. 또한 내금강의 가장 깊숙한 계곡인 수미골 안쪽에 위치한 선암 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고려 초기 경주에 박빈거사(朴彬居士)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불교를 신봉하고 있었기에 자기도 깊은 산골에 들어가 도를 닦아서 극락세계로 가려고 마음먹었다. 975년(경종 원년)에 그는 자신의 재산을 다 정리하고 처와 함께 금강산에 들어가 사방을 두루 돌아다니며 천상세계로 가기에 좋겠다고 생각되는 곳을 물색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박빈거사는 만폭동에서 원통암으로 가는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갔다. 그가 원통암에 이르니 어떤 스님이 길이 험하니 여기서 더 올라가지 못할 거라며 한사코 만류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는 듣지 않고 개울을 따라 골짜기 안으로 더 올라갔다. 만절담을 지나 한참 가다가 동북으로 꺾어 들어 험한 바위를 손으로 더듬으며 오르니 큰 벼랑이 앞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가 아래를 굽어보았더니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깊은 계곡이었다.

 

  박빈거사는 더 이상 나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떨리는 마음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앉은뱅이걸음으로 비탈진 벼랑을 간신히 내려갔다. 그랬더니 서쪽 높은 절벽에서 폭포수가 힘찬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고,좀 더 올라가니 암자 하나를 지을 만한 자리가 있었다. 그곳은 삼면이 높은 봉우리와 절벽으로 막혔고 오직 서남쪽만이 열려있어 멀리 내금강의 절경이 내려다 보였다. 또 부근에는 만물상 못지않은 기암괴석들이 솟아 있어 정말 신비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는 이곳이야말로 도를 닦아 극락세계로 가기에 알맞은 곳이라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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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박빈거사는 그 터에 자그마한 암자 한 채를 짓고 처와 함께 살면서 한날한시에 도(道)를 깨우치게 해달라고 부처님 전에 빌고 또 빌었다. 그리고 바위 아래의 굴속에서 좌정을 한 채 마음을 닦았는데 조금이라도 해태한 마음이 들면 쇠로 만든 회초리로 사정없이 자신을 때리곤 하였다. 그렇게 3년이란 시간이 흐르자 박빈거사는 소원이 이루어졌는지 세상의 이치를 환히 알게 된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서 갑자기 뇌성벽력이 치더니 공중에서 용선(龍船)이 내려와 암자 옆의 바위에 밧줄을 매고 정박했는데 누군가 배 위에서 박빈거사를 부르며 빨리 배에 올라타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 용선은 보통 배가 아니라 고통으로 가득 찬 속세의 바다를 건너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는 배라고 하였다. 그가 자신의 처와 함께 배에 오르자 정양사 뒷봉우리인 수광대 쪽에서 금빛노을이 환히 비쳤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박빈거사 부부가 이날 극락세계로 떠난 것이라고 말하곤 하였다.

 

  용선을 타고 가던 날 박빈거사는, “3년 동안 여기서 살면 진리를 가려보는 안목이 생기고 10년 동안 살면 나처럼 극락에 가게 된다.”는 글을 남겼다고 한다. 그 후 사람들은 그가 살던 암자를 ‘선암(船庵)’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도 선암 터의 바위 모서리에는 구멍이 있어 이를 계선혈(배를 매어둔 구멍)이라 하고, 바위 아래의 큰 굴을 철편굴(쇠로 만든 회초리 구멍)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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