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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이야기미출암 전설 쌀이 흘러나오는 신기한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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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1.12.20 조회4,1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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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금강의 명경대(明鏡臺)를 에돌아 올라가면 오른쪽에 작은 봉우리가 우뚝 솟았고, 그 봉우리 끝의 바위벽에 조그마한 굴 두 개가 있다. 뒤의 반듯한 바위면 위쪽에 있는 굴이 ‘황사굴(黃蛇窟)’이고, 옆면의 바위 밑동에 있는 굴이 이른바 ‘흑사굴(黑蛇窟)’이다. 직경이 50~60cm 정도 되는 이 굴들은 조금 휘어진 채 뚫어져 있어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그래서인지 황사굴은 극락으로 통하고 흑사굴은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말이 전해온다.

 

  여기서 다시 한 굽이를 돌아가면 커다란 바위가 길을 가로막고 누워 있다. 이 바위 밑으로 난 구멍을 ‘영원문(靈源門)’이라 하는데, 사람이 서서는 지나갈 수 없고 허리를 굽혀야만 빠져나갈 수 있다. 영원문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아름드리나무가 서 있는 가운데 돌로 쌓은 집터 자리가 나타난다. 이곳이 마의태자(麻衣太子)가 궁을 짓고 살았다는 ‘아래대궐 터’다. 여기서 가까운 곳의 길옆에는 위쪽의 도드라진 부분에 맞구멍이 뚫린 둥글넓적한 바위도 있다. 이 바위는 마의태자가 자신의 애마인 용마(龍馬)를 매어놓곤 했다는 ‘계마석(繫馬石)’이다. 바위의 구멍은 말고삐를 꿰어서 매어놓기 적당하게 뚫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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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마석에서 조금 더 가면 평평한 터가 있는데 이곳 역시 마의태자가 궁을 짓고 지냈다는 ‘윗대궐 터’이다. 여기서 우거진 숲속으로 더 올라가면 개울이 갈라지는 갈림목에 이르게 된다. 우측의 영원동과 좌측의 수렴동으로 나눠지는 분기점에 산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여행 도중의 안녕을 빌기 위해 돌을 쌓아놓은 ‘조탑장’이 있다.

 

  조탑장을 뒤로 하고 우측의 영원동으로 들어서면 바람도 살살 불고, 물살도 잔잔하게 흘러 고요하기 그지없다. 영원동(靈源洞)은 조탑장에서 영원동 골짜기 막바지인 백마봉까지를 포괄하는 지역이다. 금강산 중에서도 가장 깊숙하고 고요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가을철 단풍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의 절경을 이루며 마치 단풍의 바다에 빠진 듯한 착각이 든다고 한다. 영원동의 입구에서 왼쪽 하늘을 쳐다보면 봉우리 하나가 앞을 막고 우뚝 솟아 있다. 이 봉우리는 꼭대기가 뿔 난 소머리 같고 아래쪽은 말 얼굴같이 생겼다 하여 ‘우두마면봉(牛頭馬面峰)’이라 불  린다.

 

  이곳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 오르면 전나무, 잣나무, 측백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고 칡덩굴, 다래덩굴이 칭칭 감기고 얽혀서 발을 들이밀 틈조차 없다. 그런 가운데 한 가닥 가느다란 오솔길이 꼬불꼬불 나 있다. 이 길을 따라 걷노라면 개울물 흐르는 소리, 이름 모를 새들이 우짖는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온다. 그러다가 문득 앞에 우뚝 솟은 지장봉(地藏峰: 1,381m)을 마주하고 한 굽이씩 돌기를 몇 차례 하면 탁 트인 곳에 ‘영원암(靈源庵) 터’가 자리하고 있다. 장안사(長安寺)의 부속 암자인 영원암은 지장봉 밑의 평평한 언덕에 있는데, 신라 때 영원조사(靈源祖師)라는 스님이 이곳에 살면서 도를 닦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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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암 터 서쪽에는 하얀 죽순이 돋아난 듯 여기저기 높이 솟은 봉우리들이 있고 기묘한 돌기둥들은 들쑥날쑥 서 있다. 영원암은 금강산 일원에서도 가장 맑고 고요한 수도처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기암준봉들과 함께 봄철의 꽃과 가을철의 단풍으로 이름 높은 곳이다. 여기서 오른쪽에 있는 몇 개의 돌기둥을 돌아서 한참 오르면 영원동 골짜기 일대가 환히 보이는 전망대가 나타난다. 이곳이 전망 좋기로 유명한 ‘옥초대(沃焦臺: 일명 옥적대)’이다. 그 옛날 달 밝은 밤이면 영원조사가 옥초대에 올라 옥적(옥피리)을 불곤 했는데, 그때마다 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옥초대 앞에는 그 모양이 책상처럼 생긴 ‘책상바위’가 있고, 맞은편에는 ‘영월대’라는 또 하나의 전망대가 있다. 그리고 영원암 터에서 왼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십여 명이 앉을 만한 널찍한 바위 하나가 있다. ‘백석’이라 불리는 이 바위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이 항상 머물고 있다는 지장봉을 마주 쳐다볼 수 있게 놓여 있다. 한편 영원암 터 곁에는 바위에서 쌀이 흘러나왔다는 ‘미출암’이 있는데 이에 관한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전해오고 있다.

 

  옛날에 영원이라는 스님이 천하명산 금강산의 깊은 골짜기에 들어와 암자를 짓고 살면서 불교공부를 하였다. 그는 몇 달 동안 솔잎을 씹으며 허기를 채웠고, 세상과 동떨어진 채 명상과 경전을 공부하며 지냈다. 마을에서도 몇십 리나 되고 산세도 험한 이 골짜기 안에는 몇 해가 가도록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영원은 한번 마음먹은 바를 굽히지 않고 도(道)를 닦는 데만 전념하기 위해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솔잎으로 먹거리를 대신하였다. 그는 온종일 앉아서 명상에 잠기기도 하고 경전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낟알 구경을 못한 지가 오래되었고 그의 몸이 점차 쇠약해졌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지장보살은 영원의 뜻과 행실을 기특하게 여겨 먹을 것을 보내주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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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잠시 졸고 있는 동안에 흰머리가 성성한 노인이 나타났다. 그 노인이 영원에게, “내 그대의 정성을 보아 쌀을 보내줄 터이니 암자 곁의 바위를 잘 살펴보아라. 이후에도 마땅히 게으름 부리지 말고 공부에 더욱 정진하도록 해라.”라고 하는 것이었다. 깜빡 졸다가 깨어난 그는 “참 이상한 일도 다 있구나!” 하면서 암자 곁의 바위 밑으로 가 보았다. 그랬더니 어디서 생겨난 것인지 하얀 쌀이 소복이 쌓여 있는 게 아닌가! 쌀의 위쪽을 자세히 살펴보니 바위벽에 쌀 한 알이 겨우 빠져 나올 만한 작은 구멍에서 한 알, 두 알 떨어지고 있었다. 이것은 틀림없이 부처님 덕분이라고 생각한 영원은 그날 밤 오랜만에 죽을 끊여 저녁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이튿날 새벽, 다시 시장기를 느낀 그는 바위 밑의 쌀이 생각났다. “과연 쌀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신앙심이 두터웠던 그는 새벽기도를 마친 후에 그 바위로 갔다. 가서 보니 바위 밑에는 더도 말고 하루 세 끼, 죽 한 그릇을 끊일 수 있는 분량의 쌀이 있었다.

 

  그 후 영원은 하루 세 끼의 식사를 죽으로 대신할 수 있었다. 이것으로 인해 그는 다시 기력을 회복함은 물론 아무런 근심 없이 처음에 결심한 대로 공부를 꾸준히 하여 불교이론에 정통한 이름난 승려가 되었다. 그런데 그가 입적한 후 욕심 많은 중이 더 많은 쌀이 나오게 하려고 구멍을 헤집어 크게 만들어 놓는 바람에 쌀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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