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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이야기찬샘전설 잎사귀 띄운 물바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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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1.12.20 조회3,0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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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금강 구성구역(九成區域)은 금강군 단풍리 쑥밭마을(봉전리)에서 남동쪽으로 갈라진 구성동 계곡과 진부골에 펼쳐진 명소들을 포괄하는 지역이다. 이 구역은 금강산의 서북쪽이자 내금강의 동북쪽에 있는 곳으로 금강군과 고성군의 경계에 가까이 있으며, 입구인 봉전리에서 개울을 따라 비로봉(毘盧峯)에 잇닿아 있는 깊고 긴 골짜기이다. 험준하고 높은 산은 없으나 골짜기마다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가운데 개울 경치가 연이어 있어 보기 드문 계곡미를 자랑하고 있다.

 

  구성동 계곡의 첫 어귀인 봉전리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우측으로 비로봉, 영랑봉, 능허봉 등의 연봉과 밋밋한 산 능선 위로 ‘월명수좌콩밭등’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옥녀봉, 상등봉 등이 보인다. 봉전리에서 옥영폭포까지의 하구성동에는 구일폭포, 구일담, 구슬포 등이 있고, 윗골짜기인 상구성동에는 세굽이폭포, 연포담, 옥류벽, 선곰바위 등 이름 있는 폭포와 소(沼), 기암괴석이 연달아 있다. 진부골은 구일담에서 오른쪽으로 갈라져 들어간 골짜기인데, 이곳에 용포담, 와룡폭포, 용소 등이 있고 그 막바지에 ‘월명수좌콩밭등’이라고 하는 평평하고 비스듬한 고원이 있다.

 

  구성구역에서 으뜸가는 폭포는 금강산 4대 폭포의 하나인 ‘옥영폭포(玉永瀑布)’이다. 너비 3m, 높이 31m인 옥영폭포는 물이 폭포벽 위쪽에 치우쳐 생긴 절구통 같은 돌확에 한 번 들렀다가 2단으로 길게 물보라를 날리면서 펑펑 쏟아져 내린다. 그 밑에는 길고 둥글게 생긴 넓이 약 200 되는 검푸른 소가 이루어져 있다. 힘차게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주위에 우거진 나무숲과 조화를 이뤄 깊으면서도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하고 있어 보는 이들의 가슴속을 한없이 시원하게 해준다. 이 밖에도 구성구역에는 낙상폭포, 실타래폭포, 방울폭포, 비로폭포 등 이름만 들어도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아름다운 폭포들이 절경을 이루며 힘차게 떨어지고 있다.

 

  구성구역으로 가는 길은 내금강에서 금강천 상류 계곡을 따라 봉전리까지 가서 남쪽으로 갈라진 골짜기로 올라가는 방법과 외금강에서 온정천을 따라 골짜기로 오르다가 우측의 온정령(溫井嶺)을 넘어서 가는 방법이 있다. 내금강 금강읍에서 봉전리까지는 24km인데 반해, 외금강의 온정령에서 봉전리까지는 6.6km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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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정령(857m)은 고성군과 금강군, 외금강과 내금강을 연결하는 고개이며 명승지로도 손꼽히는 곳이다. 온정동에서 온정령 마루까지 백여섯 굽이나 되는 고갯길은 가파르기로 유명하지만 올라갈수록 전망이 탁 트이고, 사시사철 아름다운 금강산의 절경은 이 고개를 넘어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자주 멈추게 한다. 외금강 온정리에서 온정령 고개를 넘어 서쪽으로 내금강 구성구역 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찬샘[일명 한천(寒泉)]’이라 불리는 작은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이 생겨난 유래와 지명에 관한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전해오고 있다.

 

  14세기 말엽 어느 해 여름이었다. 동해안 쪽으로 침입하는 왜적을 막기 위하여 고성군에 주둔해 있던 고려군은 뜻밖에도 금강군 쪽에 왜구가 쳐들어왔다는 급보를 받았다. 이 소식을 접한 우리 군사들은 즉시 왜구와 싸울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서둘러 길을 떠났다.

 

  고성군에서 아침 일찍 출발한 군사들은 외금강 온정리까지 30여 리 길을 숨 가쁘게 달려왔다. 하지만, 온정천과 그 상류인 한하계·만상계를 따라 뻗은 35리 정도의 가파른 산길을 다시 힘들게 올라가야 했다. 휴식 없는 강행군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온정령 고갯마루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한낮이 기울고 있었다.

 

  부대를 인솔하던 장수는 그날 안으로 금강군에 당도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백성들의 피해가 커지고 왜구를 격퇴하라는 군령을 어기기 때문이었다. 그는 군사들이 잠깐 숨을 돌리게 한 다음 다시 출발을 알리는 깃발을 들게 했다. 한여름의 뙤약볕에 땀은 빗물처럼 흘렀고 군복 또한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군사들은 허기진 것은 고사하고 모두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었지만 왜구를 물리쳐야 한다는 일념으로 간신히 버텼다.

 

  온정동에서 금강읍으로 한참 내려가던 군사들은 마침 한 처녀가 물동이를 이고 오는 것을 보자 이내 그녀를 불러 세워 마실 물을 좀 청했다. 처녀는 동이를 내려놓고 바가지에 한가득 물을 뜨더니 길가에 있는 큼직한 나무 잎사귀 하나를 따서 물 위에 띄워 먼저 장수에게 공손히 올리는 것이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장수는 처녀에게 바가지에 나뭇잎을 띄운 까닭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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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녀는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며, “이 물은 저기 향나무 밑에 있는 샘물인데 차갑기가 얼음 같습니다. 한창 더울 때 갑자기 이 물을 많이 마시면 가슴이 막히고 체할 수도 있기에 나뭇잎을 불면서 천천히 마시게 하려고 그리 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장수는 이 말을 듣고 “참으로 기특한 처녀로다.”라고 칭찬하면서 군사들에게 그 샘을 찾아 단숨에 물을 많이 마시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주었다. 군사들이 처녀가 알려준 샘터로 찾아가니, 바위 그늘 틈에서 맑은 샘물이 졸졸 흐르는 곳에 자그마한 우물이 있었다. 그 물을 마시니 진짜 차가운 얼음처럼 이가 시렸다. 그들 모두 나뭇잎을 따서 그릇에 담아 샘물을 조금씩 시원하게 마셨다. 샘물은 참으로 목마른 사람의 갈증을 해소하고 힘을 주는 약수와 같았다. 이로 인해 군사들은 새로운 기운을 얻어 왜구를 물리치는 싸움터로 씩씩하게 행군해 나갈 수 있었다. 이때부터 그 샘물은 ‘찬샘’, ‘한천’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찬샘에 관한 이야기가 전파되자 내금강과 외금강을 드나드는 많은 길손들이 온정령을 넘을 때면 으레 찬샘의 물을 마시곤 하였다. 그리하여 찬샘 부근에 길손들이 쉬어 가는 주막과 여인숙들이 생겨나면서 한 개의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사람들은 그 마을도 ‘찬샘(한천)’이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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