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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7.02 조회5,3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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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阿彌陀佛)은 대승불교에서 가장 널리 신봉되는 부처로서 서방 극락정토를 관장하는 부처이다.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 혹은 미타라고도 부르는데 아미타불이란 명칭은 범어(梵語)로 아미타바붓다에서 나온 말이다. 여기서 아미타란 아미타유스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한문으로 아미타(阿彌陀)라고 음역하였고, 무량수(無量壽)ㆍ무량광(無量光) 등이라 의역하였다. 즉 헤아릴 수 없는 수명과 광명을 가졌다는 두가지 뜻의 음사이며, 따라서 아미타불은 이 두 개의 덕성을 갖춘 부처라는 뜻이 된다.

  

  

⊙ 아미타불의 전생이야기

 

아미타불은 석가모니가 대승불교 보살의 이상상(理想像)으로 모셔지고 대승불교에 의해서 구원불로서 존숭되었던 때에 출현된 부처로 보고 있다.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01 중 하나인 『관무량수경』에서는 위제희 부인이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사바세계와 같은 악하고 혼탁한 세상이 아닌 청정한 업으로 된 안락한 세계를 보여 달라고 청했을 때, 석가모니는 시방세(十方世) 모든 부처님의 미묘한 불국토를 보여 주었다. 이에 위제희 부인은 “세존이시여, 이러한 여러 불국토는 모두 다 청정하고 광명이 충만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중에서도 아미타불이 계시는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하옵니다.” 하였다. 위제희 부인이 원한 극락세계란 어떤 곳이고, 극락세계를 건립한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일까? 『무량수경』에서는 아미타불이 과거에 어떤 수행을 거쳐 성불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성불인연 설화를 상세히 설하고 있다.

   

 

옛날 아주 오랜 옛날에 정광여래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셔서 무량한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여 모두 바른길을 얻게 하신 후 열반에 드셨느니라. 그 뒤를 이어 수많은 부처님이 출현하셨으니, 그 이름은 광원불, 그 다음은 월광불, 그 다음은 전단향불, …, 그 다음은 처세불이니라. 그리고 다음에(54번째) 세자재왕(世自在王)이라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부처님의 공덕에 따라 이름을 여래ㆍ응공ㆍ등정각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ㆍ세존이라고도 하느니라.

그 무렵 어느 국왕이 있었는데 세자재왕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깊은 환희심을 내어 곧바로 위 없는 바른길을 구하는 뜻을 내었느니라. 그리하여 그는 나라와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법장이라는 비구가 되었는데, 재주와 용맹이 세상에 견줄 바 없이 뛰어났었느니라. 법장비구는 세자재왕부처님의 처소에 나아가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부처님의 오른편으로 세 번 돌고 나서, 무릎을 꿇고 합장하며 게송으로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였느니라.

 

법장비구는 게송을 마치자 세자재왕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저는 위 없는 바른 진리를 깨닫고자 결심하였습니다. 원하옵건대 부처님께서는 저를 위해 거룩한 교법을 말씀해 주시옵소서. 저는 기필코 가르침대로 수행해서 불국토를 이룩하고 청정 미묘한 국토로 장엄하겠사오니, 저로 하여금 이 생에서 빨리 올바른 깨달음을 얻게 하고 모든 생사(生死) 고난의 근원을 없애게 하여 주옵소서.”

그때 세자재왕부처님이 법장비구에게 말씀하셨느니라. “그대가 수행하고자 하는 것과 불국토를 장엄하고자 하는 일은 그대 스스로 마땅히 알고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러자 법장비구가 부처님께 사뢰었느니라. “그와 같은 뜻은 너무나 크고 깊어서 제가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 옵니다.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모든 부처님께서 불국토를 이룩하신 수행법을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수행하여 소원을 원만히 성취하겠나이다.”

이에 세자재왕부처님은 법장비구의 뜻과 소원이 고결하며 깊고 넓음을 아시고 곧바로 법장비구를 위해 경을 설해 주셨느니라. “비유하건대 비록 끝없이 넓은 바닷물이라도 한 사람이 억겁의 오랜 세월을 두고 쉬지 않고 퍼 올리면 마침내 바닥을 드러내어 그 가운데 있는 진귀한 보배를 얻을 수 있듯이, 만일 사람이 지성으로 정진하여 도(道)를 구하면 마땅히 원하는 결과를 얻을 것이니, 어떠한 소원이든 성취 안 될 리가 없느니라.” 그리고 바로 법장비구를 위해 2백 10억의 여러 불국토의 추하고 묘함과 그 천상 사람들의 선악을 널리 말씀하시고 법장비구의 소원대로 이를 낱낱이 나타내 보여 주셨느니라.

이에 법장비구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장엄하고 청정한 나라들을 모두 보고 나서 위 없이 갸륵하고 가장 뛰어난 서원을 세웠느니라. 그때 그의 마음은 맑고 고요하여 집착하는 바가 없었으니, 일체 세간의 어느 누구도 따르지 못하였느니라. 그리고 그는 5겁이라는 긴 세월 동안 선정(禪定)에 들어, 불국토를 건설하고 청정한 수행에 온 마음을 다하였느니라. 법장비구는 이와 같이 수행하고 나서 다시 세자재왕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부처님이 발 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부처님을 세 번 돌고 합장하며 부처님께 사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불국토를 장엄할 청정한 수행을 갖추어 지녔습니다.” 세자재왕부처님이 법장비구에게 이르셨느니라. “법장비구여, 이제 그대가 대중들에게 그대의 서원과 수행을 널리 알려서 그들로 하여금 정토왕생의 마음을 일으키게 하여 그들이 마음을 기쁘게 할 좋은 기회이니라. 보살들은 이를 듣고 수행해서 불국토를 이룩할 무량한 대원(大願)을 성취하게 될 것이니라.” 법장비구는 다시 부처님께 사뢰었느니라. “부디 들어주십시오. 제가 세운 48가지의 원(願)을 자세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것이 석가모니부처님이 기사굴산에서 만이천 명의 대중들을 모아 놓고 아미타불의 전신(前身)인 법장비구가 출가하게 된 인연을 설한 것이다. 『비화경(悲華經)』02에 의하면 법장비구는 출가하기 전에 무쟁념왕(無諍念王)이라는 국왕이었으며, 세자재왕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오랜 세월 수행한 결과 아미타불이 되었다고 한다.

 

법장비구의 스승인 세자재왕부처님은 정광여래부처님(연등불이라고도 함) 이후 54번째로 출현한 부처님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무량수경』의 산스크리트 원전이나 티베트어 번역본에는 이것과 정반대로 세자재왕부처님은 정광여래부처님보다 더 이전, 즉 산스크리트본에는 80불(佛), 티베트어역에는 81불 이전의 부처님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강승개 번역의 『무량수경』에는 정광여래부처님 다음에 ‘차명(次名)’ 혹은 ‘차유(次有)’라 하여 ‘다음 이름은’ 혹은 ‘다음에(또한 부처님이) 있으니’로 되어 있는 것이 산스크리트본과 티베트본에서는 ‘이 부처님보다 더 이전에’로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세자재왕부처님은 아득한 옛날에 출현하신 정광여래부처님보다 훨씬 더 이전의 부처님이 되므로 세자재왕부처님을 스승으로 모신 법장비구의 발원과 수행도 더욱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이것은 법장비구의 발원이 역사적으로 영원하다는 것을 설한 것이다. 게다가 일본의 정토진종에서는 이것을 더욱 확대ㆍ해석해서, 아미타불은 아득한 옛날에 이미 성불하신 분으로서, 결코 세자재왕부처님 때 처음으로 부처가 된 분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석가모니와 마찬가지로 왕위를 버리고 출가한 법장비구는, 모든 보살이 ‘중생과 함께 보리[菩提]를 이루고 싶다.’는 원을 세워 그 원을 목표로 삼아 보살행을 닦는 것처럼, 세자재왕부처님의 처소에 나아가 자신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정토를 건립하고 싶다는 서원을 게송으로 말하고(이것은 나중에 48가지 서원으로 설해진다) 그러한 정토를 세울 수 있는 조건을 일러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세자재왕부처님은 망망대해의 바닷물이라도 억겁을 두고 퍼 올리면 결국 바닥을 드러내듯이 불교의 수행도 지성으로 정진하면 언젠가는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준 후, 시방세계 모든 부처님 정토의 실례를 210억 종류나 보여 주었다. 모든 부처님의 정토를 무량하다고 표현하지 않고 210억이라 한정한 것은 『화엄경』(80권본)에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의 수를 210억이라 한 것에 따른 것인데, 전 우주를 망라한 것이다.

 

이렇게 210억의 정토를 관찰한 법장비구은 그들의 장단점을 선택해서 자신의 정토를 건립할 것을 서원하고 불국토 건설을 위한 준비로 5겁이라는 긴 세월 동안 청정한 수행을 했다. 그리고는 다시 세자재왕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일체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48가지 서원을 세웠다. 그중 제18원은 ‘모든 중생이 그 이름을 들어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염불하거나, 그렇게 열 번 하는 사람이 극락정토에 왕생하지 못한다면, 나는 붓다가 되지 않으리.’라고 굳은 약속을 했으며, 그 약속은 성취되었다. 또한, 경(經) 가운데에, ‘아미타불의 본원력(本願力)은 중생이 그 이름을 들어 왕생하고자 바란다면, 누구든지 모두 극락정토에 왕생하여 스스로 불퇴전(不退轉)03에 이르게 하리라.’라고 강조하였다.

 

이처럼 보살행의 목적이 되는 서원(誓願)을 세우는 것을 본원(本願)이라 한다. 이 ‘본원’은 흔히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신이나 부처님께 부탁하는 정도의 기원’이 아니라, 법장비구가 48원의 각각에 ‘…않으면, 나는 정각을 얻지 않겠습니다.’라 한 것처럼 기필코 이루고 말겠다는 각오가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원’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희망사항’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어도 기필코 성취하고 말겠다는 맹세와 각오가 포함되어 있던 것이다.

  

  

⊙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과 아미타불의 신앙

 

나무아미타불은 진언(眞言)으로 아미타불에 귀의한다는 의미이다. 나무(南無)는 범어로 ‘Namas(Namo)’의 음역으로서, 나모(南謨)ㆍ납막(納莫)ㆍ낭모(囊謨)라고도 한다. 번역하여 귀명(歸命)ㆍ귀경(歸敬)ㆍ귀의(歸依)ㆍ경례(敬禮)ㆍ구아(求我)ㆍ도아(度我)라고 한다. 뜻은 두 가지로 표현된다. Namas는 돌아가 의지한다는 뜻이다. 즉, 무한광명(無限光明=無量光)에 귀의하고, 무한생명(無限生命=無量壽)에 귀의한다고 하는 말이며, 다르마(dharma=法)에 귀의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진리 그 자체와 하나가 되어 왕생극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중생이 아미타불에게 진심으로 귀의하여 공경하며 따른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여섯 글자로 되어 있기에 육자명호(六字名號), 또는 줄여서 명호라고도 불리운다.

 

아미타불은 중국에서는 원행구족(願行具足), 일본에서는 기법일체(機法一體)라고 하는 행법이며 구제받는 법이라 한다. 나무아미타불은 귀명무량수각(歸命無量壽覺)이라고 번역되기도 하나, 아미타불의 본명이 이냐, 무량광불이냐 하는 데에 이론(異論)의 여지가 있다.

 

이처럼 아미타불은 정신적인 완성과 함께 그의 환경을 이루는 국토의 완성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아미타불에 관한 신앙은 우리나라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해 왔다. 6, 7세기경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미타신앙이 대중의 생활 속에 자리잡아 신라 시대에는 집집마다 염불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이 미타염불을 널리 권장한 공로자는 원효(元曉)를 들 수 있다. 그는 정토교(淨土敎)를 보급하기 위해 신라의 각처를 다니면서 미타염불을 권하였고, 이를 뒷받침하는 각종 저서들을 남겼다. 원효 이후의 많은 신라 교학승(敎學僧)들도 미타신앙을 전파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삼국의 치열한 전투 속에서 생겨나는 수많은 전몰자들의 왕생을 비는 데서 자연히 아미타불에 귀의하게 되었고, 수많은 아미타불상의 조성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미타신앙의 한국적 수용의 한 특성은 선(禪)과 극락정토의 회통(會通)적인 노력이다. 아미타불을 찾는 염불과 선이 둘이 아니라는 선정불이(禪淨不二)의 전통은 원효가 “오직 마음이 정토요, 성품은 아미타불과 같다(唯心淨土同性彌陀).”를 천명한 이래, 지눌(知訥)ㆍ보우(普愚)ㆍ나옹(懶翁)ㆍ기화(己和)ㆍ휴정(休靜) 등으로 이어져 지금까지도 그 전통이 계승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찰에서 아미타불을 봉안하고 있는 법당은 극락전(極樂殿), 미타전(彌陀殿), 무량수전(無量壽殿), 무량광전(無量光殿)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며 아미타불은 불교 타력신앙의 중심부처로 인정되고 있다. 아미타불에 대한 신앙을 중심으로 성립된 것이 정토교이다.

 

『전경』에 ‘맹세는 천지와 약속하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천지에 대한 맹세를 저버리면 아무리 좋은 것도 이루기 어렵다’고 하였다.04 맹세는 스스로가 지켜내겠다는 각오이며 결의이다. 법장비구가 세운 서원은 오로지 남을 위하고 중생을 위한 맹세였다. 이처럼 스스로 세운 맹세는 반드시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매우 중요하고 아무리 오랜 세월이 걸리더라도 꼭 이루겠다는 일심(一心)이 지금 수도인들에게도 필요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참고자료

 

. 한국불교대사전편찬위원회, 『한국불교대사전』, 명문당, 1992.

. 한국종교사회연구소 편저, 『한국종교문화사전』, 집문당. 1991.

. 불교교재편찬위원회, 『불교사상의 이해』, 불교시대사, 1997.

. 서종범, 『불교를 알기 쉽게』, 밀알, 1984.

. 장휘옥, 『정토불교의 세계』, 불교시대사, 1996.

. 역경위원회, 『비화경(한글대장경)』, 동국대학교출판부, 1990.

 

 

01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은 정토종에서 가장 중히 여기는 세 경전. 후진(後秦)의 구마라습이 번역한 『아미타경』, 송(宋)나라 강량야사가 번역한 『관무량수경』, 위(魏)나라 강승개가 번역한 『무량수경』이다.

02 인도에서 3~4세기경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후기 대승불교경전, 브리태니커사전 참조.

03 보살(菩薩)이 수행에 의하여 인정한 지위에 달하여 다시 범부(凡夫)로 돌아가지 않는 일.

04 교운 1장 66절. “誓者元天地之約 有其誓 背天地之約 則雖元物其物難成”

 

 

<대순회보 1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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