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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2.19 조회4,2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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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김오식
 
이제 천하 창생이 진멸할 지경에 닥쳤음에도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오직 재리에만 눈이 어두우니 어찌 애석하지 않으리오. (교법 1장 1절)
 
  세상을 살다 보면 사소한 부분에 집착하거나 급급해 하면서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마는 경우를 가끔 볼 수 있다. 사회적 성공과 부귀만을 추구하다가 소중한 가족들을 돌보지 못해 가족 간에 소원해지고 급기야 가정이 해체되는 경우도 있으며, 작은 이익과 사욕에 빠져 주변으로부터 인망을 얻지 못하고 결국은 자신을 망치기도 한다. 즉 작은 욕심과 집착 때문에 더 큰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고, 자신을 혁신하여 발전시키려는 의지 없이 세상 정세와 우주적인 변화에 대해서도 무감한 경우가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전경』에는 “천하의 형세를 아는 자는 천하의 생기가 있겠지만, 천하의 형세에 어두운 자는 천하의 사기가 있게 된다(知天下之勢者 有天下之生氣  暗天下之勢者 有天下之死氣)”(행록 5장 38절)라는 상제님의 말씀이 있다. 즉 인간은 자신만의 세계를 탈피하여 주변과 세상, 아울러 천하의 형세에 대해 인식하고 지각 실천할 때 생기(生氣)가 따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천하의 형세에 밝지 못하고 그에 대해 무지하면 실패하고 죽게 되는 기운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은 천하의 형세를 인식하고 생기를 얻어 성공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실패하게 되는 것일까?
  천하의 형세에 어둡게 되는 경우는 대략 두 가지 원인에 기인한다고 본다. 하나는 자신의 삶이 몹시 곤궁하고 피폐하여 주변과 남을 돌볼 여력이 없는 경우이다. 이런 상황에 부닥친 사람은 자신의 문제와 고민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주변을 살필 수 없는데 하물며 천하의 형세에까지 정신적, 심리적 여력이 미칠 리가 만무하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욕심 때문에 주변과 세상을 살피지 못하고 등한시 하는 경우이다. 오로지 자신의 출세와 성공, 그리고 재물의 축적 등에 대한 관심에 집중하여 천하의 형세에 마음을 쏟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태에 대해 상제님께서는 “이제 천하 창생이 진멸할 지경에 닥쳤음에도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오직 재리에만 눈이 어두우니 어찌 애석하지 않으리오.”(교법 1장 1절)라고 안타까워하셨다. 즉 천지가 진멸할 지경에 처하게 된 천하의 형세와 지금의 때를 모르고 오직 물욕만을 탐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매우 애석히 여기셨던 것이다. 더군다나 앞으로 천지가 개벽되어 지상선경이 열려 지극한 복을 누릴 수 있고, 수행의 길에 동참하여 지상신선이 될 수 있음에도 욕망에 빠져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염일방일(拈一放一)’이라는 고사가 있다.
 
약 1,000년 전에 중국 송나라 시절, 『자치통감(資治通鑑)』이란 저명한 역사서를 남긴 사마광이라는 사람의 어릴 적 이야기이다. 한 아이가 커다란 장독대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는데, 어른들이 사다리 가져와라, 밧줄 가져와라, 요란법석을 떠는 동안 물독에 빠진 아이는 꼬르륵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그때 작은 꼬마 사마광이 옆에 있던 돌멩이를 주워들고 그 커다란 장독을 깨트려 버렸다. 어린 사마광은 답답하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아이를 구하려는 오직 한 생각, 그 본질 하나만 집중하면서 돌을 주워들어 장독을 깨뜨린 것이다.
 
  ‘염일방일’이란 말은 곧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버려야만 한다는 뜻이다. 위의 고사에서 어른들은 커다란 장독을 아까워하며 다른 방도를 찾다가 정작 한 아이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였다. 장독대보다는 아이를 구해야 한다는 것에 집중한 사마광은 얼른 돌멩이를 주워 장독을 깨뜨린 것이다. 이와 유사한 상황을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생명을 구하는 데 있어 생명 그 자체보다는 경제적 비용이나 자신의 손해를 먼저 생각하는 경우 말이다. 고사에서 깨뜨려야 할 장독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낡은 고집과 집착, 그리고 사사로운 욕심이 아닌가 한다. 그것을 깨뜨리고 버렸을 때 묵은 기운을 떨쳐 버리고 후천의 새로운 기운을 받아 모실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낡은 틀에서 벗어날 때 상제님께서 상극의 천지도수를 바꾸시고 후천의 운로를 열어놓으신 천하의 형세를 인식하게 되면, 이에따라 생기가 수반될 것이다. 이러하기에 버려야 할 하나는 바로 선천의 상극적인 기운과 사사로운 욕심일 것이며, 얻을 수 있는 하나는 무궁한 후천의 복록이 아닌가 한다.
<대순회보> 1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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