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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정유도(更定儒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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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재훈 작성일2017.02.20 조회2,5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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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한재훈

 
 
 
1. 도조 영신당주의 도통과 창도
 
 1) 탄생과 구도


  갱정유도(更定儒道)를 창립한 도조 영신당주(迎新堂主) 강대성(姜大成:1890~1954)은 1890년 9월 17일 전라북도 순창군 구암면 봉곡리에서 농부의 아들로 탄생했다. 그의 부친 강덕진(姜德津)은 평소에 “나는 비록 농부가 되어 농사나 지으며 살지만, 세상을 구원할 훌륭한 자식 하나 낳게 해달라”는 소원을 천지신명께 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에 한 동자가 나타나서 하는 말이 “나는 해와 달의 정신으로서 서방을 밝히고 동방으로 오던 길에 한 노인의 인도를 받아 여기에 왔노라”하였다. 마치 자신의 앞길을 예언처럼 보여주는 이러한 태몽과 함께 영신당주는 이 세상에 태어났다.
  영신당주는 어려서부터 글공부에 비상한 재주를 보였으나, 9세(1898)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후 어머니는 더 이상 아들을 교육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린 영신당주는 일상생활에서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리기를 좋아하였다. 20세가 지나면서부터 그는 마음속 포부가 점점 커져서 일상의 일들보다는 천(天)·지(地)·인(人)의 이치를 궁리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이상은 이처럼 커져만 갔으나 현실의 생활상은 점점 곤궁해져만 갔다. 이러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따른 방황의 나날을 보내던 중 29세(1918)에 그는 아내 문씨(文氏)를 만났고 이듬해 아들 용학(龍鶴)을 낳았다.
  1919년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항거하여 대한의 온 겨레가 독립을 외쳤던 3·1운동이 일어났던 해이다. 31세였던 영신당주 역시 이 민족적 항거운동에 참여했고, 그 때문에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이처럼 그는 민족적 시련과 시대적 모순 앞에 몸으로 저항도 해 봤지만 이러한 방식으로는 당시의 시련과 모순을 해결할 수 없었다. 고민과 방황을 하던 그는 마침내 1922년(33세)에 “진정으로 국가와 민족을 구하고 세상에 큰일을 하려면 도를 이루는 길밖에 없다”는 생각이 열리는 중요한 계기를 맞는다.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사고는 급격한 변화를 보인다. 예를 들면 산에 가서 나무와 풀을 베다가 문득 나무와 풀이 가여운 생각이 들어서 차마 베지 못하는가 하면, 쟁기로 밭을 갈다가 쟁기에 토막이 나 꿈틀대는 지렁이를 보고는 측은하여 쟁기질을 그만 두기도 하였다. 이렇다 보니 농사짓는 것도 점점 두려워지고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또 하루는 아내가 냇물에 나가 민물고기를 잡아왔는데, 이를 보고 그는 “사람이나 미물이나 죽기 싫고 두렵기는 마찬가지이니 살려줍시다.” 라고 회유하였다.
  이처럼 영신당주는 세상과 만물에 대해 사랑과 측은함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지만, 진정한 도를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를 몰라 방황하던 중 어느날 “때가 바쁘니 어서 화개산(花開山)에 가서 수도하라!”는 천신의 외침을 듣게 된다. 하지만 처음 듣는 화개산이 어디인지 알 수 없어서, 그는 자신의 집에서 천신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하는 것으로 수도를 대신하였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1924년(35세)부터는 마음이 맑아지고 정신이 밝게 열리면서 우주자연에 대한 통찰력과 예지력이 생겨, 인간의 길흉사는 물론 『주역(周易)』과 같은 고전들의 표지만 보고도 그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1928년(39세)에 영신당주는 기도중에 “금강산(金剛山) 금강암(金剛庵)에 가서 수도하라”는 천신의 외침을 듣는 신비한 체험을 또 다시 하게 된다. 그는 인근 회문산(回文山) 내에 있는 승강산(勝剛山:금강산보다 더 나은 산이라는 의미)에 옛터로만 전해오던 금강암(金剛庵) 자리에 초가 3칸을 짓고 구도수련을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영신당주의 본격적인 구도수련은 초가3칸이 완성된 이듬해(1929년) 2월 20일부터 시작된다. 영신당주는 혼자서 수도를 한 것이 아니라, 아내 문씨와 10세 된 아들 용학에게도 수도하는 묘방과 정성선심(正誠善心)하는 방법을 일러주어 함께했다. 그는 아내와 아들에게 “이 집은 유(儒)·불(佛)·선(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면서 아들 용학에게는 첫 번째 방에서 유도의 법으로 수도하게 하고, 부인 문씨에게는 두 번째 방에서 불법행으로 수도하게 하고, 영신당주 자신은 세 번째 방에서 선법으로 수도하였다.
 
 
 2) 도통과 생사교역


  영신당주는 부인, 아들과 함께 몇 개월 간 정성(正誠)과 선심(善心)으로 지극한 수도를 한 끝에 일체의 물욕이 없어진 대지선(大至善)·대지성(大至誠)한 경지에 이르러 드디어 도통을 이루게 된다. 1929년 7월, 영신당주는 수도에 정진하던 중 자신의 방에서 천지가 진동하는 우레 같은 고함을 지르는가 하면, 아내와 아들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부디 정신을 놓지 말고 정성을 지극히 할 것이며, 또한 자신의 방에도 접근하지 말라.”고 엄하게 일러두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 우레 소리가 그의 방에서 들려오더니 사방이 안개로 자욱해지면서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가 났다. 영신당주가 그의 방에서 뛰쳐나오더니 부인 문씨를 급히 불러 칠성당에 정화수 한 그릇을 모셔 놓으라고 말했다. 떠다놓은 정화수를 한참 보다가 그 정화수를 들고 마신 뒤, “다시 촛불을 밝히고 정화수를 떠다 놓으라”고 말했다. 재차 정화수를 떠다 놓은 부인에게 영신당주가 “칠성을 잠깐 보시오.”라고 말하자, 부인이 칠성을 바라보니 칠성들이 저마다 부인에게 몸을 조아리며 어떤 말들을 하는 듯하였다. 영신당주가 일어나 다시 정화수를 들고 마신 다음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자 칠성은 모두 사라졌다. 영신당주는 곧이어 문을 발길로 차고 밖으로 나오더니 큰 소리를 지르면서 쏜살같이 동구 밖으로 달려갔다. 부인은 영신당주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 걱정과 불안한 마음으로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는데, 며칠 뒤 영신당주가 금강암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의 얼굴은 이미 며칠 전의 얼굴이 아닌 마치 다른 사람인 양 변해 있었다. 영신당주가 도통을 이루었기 때문이었다.
  도통을 이룬 뒤로 영신당주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말과 행동들을 했다. 때로는 혼자 앉아 수많은 글을 외워 읽는가 하면 명산대천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수많은 성인(聖人)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천하의 악독을 다 없애자. 천하 각국의 선자들을 가려내라”고 큰소리로 외치기도 했다. 또 어떤 때는 “내가 요순이다, 석가여래다, 칠성이다, 상제다, 고금의 성인이 다 나다. 내가 신선이고 금불이며, 동학도 나고 서학도 나다. 예수도 수운도 증산도 다 나다. 내가 누구냐? 천하의 대선과 대지성을 찾아다닌 나다. 선심자(善心者)를 복을 줄 때 해원(解冤)없이 되겠느냐? 창생들의 병독을 내가 다 없애련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천어(天語)라고 일컬어지는 이러한 그의 말은 그가 이룬 도의 이상을 잘 보여준다. 즉 천상의 일기(一氣) -즉, 제성(諸聖)·제불(諸佛)·제선(諸仙)·충효열(忠孝烈)·도덕선심(道德善心)- 를 천하에서 가장 선하고 정성이 지극한 사람을 통해 병독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이 인간세상에 해원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이른바 도덕해원(道德解冤)이다.
  영신당주는 도통을 이룬 뒤 7일간 천상으로 올라가 머물러 있으면서 상제로부터 막중한 대임을 부여받고 내려오는 영적 체험을 한다. 그때 상제가 영신당주에게 말하기를 “이때는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이 변역하는 때로서, 천지가 지천이 되었다가(후천시대) 다시 천지가 되는(선천시대) 때이다. 그러므로 이 일을 맡아 수행할 대성인이 있어야 하는데, 대지선·대지성한 너희 부(夫)·부(婦)·자(子) 3인이 이 일을 맡아야 되겠다. 그러나 그 고생을 어찌 할꼬!”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대임을 받고 내려온 영신당주는 부인 문씨와 아들 용학과 함께 이 일을 분담하게 된다. 영신당주 자신은 천황씨(天皇氏)로서 천상일기(天上一氣)를 인간에 해원시킬 책임을 맡고, 부인 문씨는 지황씨(地皇氏)로서 인간세상의 죄악과 병독을 없앨 책임을 맡고, 아들 용학은 인황씨(人皇氏)로서 유도(儒道)소식을 전해 만민을 해원시킬 책임을 맡게 되었다.
  이러한 대임이 갖는 의미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지나간 시대는 음도(陰道)의 시대였다. 그래서 인간세상은 상극의 논리가 지배하여 온갖 죄악과 병독이 만연하였다. 따라서 그 시대의 성인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천당이나 극락과 같은 피안을 추구하도록 인도하였다. 그러나 새로 도래할 시대는 양도(陽道)의 시대이다. 그래서 인간세상은 상생의 정신이 주도하여 선과 도덕으로 충만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새로운 세상을 열게 될 성인은 천상의 일기를 인간세상에 해원시키는 대임을 부여받게 된 것이다. 이때 세 가지 역할이 필요한데, 첫째는 천상의 일기를 인간세상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둘째는 인간세상의 죄악과 병독을 모두 없애는 것이고, 셋째는 죄악과 병독이 없어진 세상에 모든 사람들을 새로운 사람(新人)으로 만들어 천상의 일기를 해원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세상의 온갖 죄악과 병독을 모두 거두고 천상의 일기를 인간세상에 해원시키기 위해서는 이를 몸소 대신할 누군가가 삶과 죽음을 서로 바꾸는 생사교역(生死交易)이 있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유형의 실제에 앞서 무형의 원리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부(夫)·부(婦)·자(子) 3인이 각각 책임을 나눴다는 것은 이 무형의 원리를 성취하기 위한 생사교역을 스스로 자임했다는 의미이다. 세상을 구제한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생각하면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없겠지만, 그 일을 몸소 담당해야 하는 개인의 차원에서 보면 이보다 더 슬픈 일은 없다. 그래서 영신당주와 부인 그리고 아들은 이 대임을 앞에 두고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면서 수건이 흠뻑 젖을 만큼 한없는 눈물을 흘려 그 눈물을 서로 나누어 마셨다고 한다. 그리하여 영신당주 부부자 3인의 생사교역을 갱정유도에서는 상징적으로 ‘누건수 도리’(淚巾水道理)라고 한다.
  1930년 5월 4일은 후천의 음도 세상을 선천의 양도 세상으로 개벽하기 위해 영신당주 부부자 3인이 생사교역을 한 역사적인 날이다. 생사교역은 삼변성도(三變成道), 즉 세 번의 변역(3변)을 통해 완성된다. 세 번의 변역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제1변은 영신당주가 도통을 이룬 뒤 천상의 일기가 영신당주에게로 귀의함으로써 천지변역의 대임을 받게 된 것을 말한다. 제2변은 5월 4일 부인 문씨의 죽음을 통해 영신당주와 부인 문씨는 영혼을 서로 바꾸게 됨을 말한다. 즉, 영신당주의 영혼은 죽은 부인의 육체로 와서 천상일기를 공난간(탄생을 준비하는 곳)에 머물러 있게 하고, 부인의 영혼은 살아 있는 영신당주의 몸으로 와서 살게 된다.(1954년 8월 16일까지) 제3변은 제2변을 통해 공난간(탄생을 준비하는 곳)에 머물러 있던 상제(上帝: 곧 영신당주)가 아들 용학과 영혼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이상의 생사교역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제1변은 도통을 이룬 영신당주 부·부·자 3인이 천상의 일기를 인간에 해원시키기 위한 준비단계이고, 제2변은 문씨의 영혼이 세상의 죄악과 병독을 씻기 위해 영신당주에게로 오고 영신당주의 영혼은 죽은 문씨의 몸으로 가서 공난간(탄생을 준비하는 곳)에 있으면서 해원되기를 기다리는 단계이다. 제3변은 공난간에 머물러 있던 상제가 유도(儒道)소식을 세상에 전해 만민해원을 시키려고 용학과 영혼을 바꾸는 단계이다. 이처럼 부부자 3인이 생사교역을 함으로써 노천노지(老天老地)를 신천신지(新天新地)로 바꾸기 위한 무형의 원리는 완성되게 되었다.
 
 
 3) ‘여광여취’와 『해인경』


  생사교역(生死交易)으로 인해 부인 문씨의 육체는 죽고 그 영혼이 영신당주의 몸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그런데 부인 문씨가 맡은 대임이 인간세상의 죄악을 모두 씻어 대신 죽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생사교역 이후 문씨의 영혼이 깃든 영신당주의 활동은 인간세상의 죄악을 몸소 체험하여 모든 병을 앓아 보고, 이를 바탕으로 그 병을 치유하여 세상을 깨끗이 할 수 있는 즉 세상을 구원할 약을 마련하는 데 맞추어진다.
  생사교역이 있었던 1930년 10월 이후 영신당주는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전라도와 경상도 일대를 두루 돌아다니며 많은 기행이적을 펼쳤다. 때로는 뜻을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때로는 마치 소(牛)울음 소리와도 같이 ‘음부(陰符)’하고 큰소리를 질러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 어떤 곳에 가서는 9년이 넘은 구와병 환자를 치료해주기도 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명당자리를 잡아주기도 하였다. 얇은 여름옷을 입고도 한 겨울에 아무렇지도 않게 다니면서 그는 세상인심을 탐지하고 다녔던 것이다. 이때 보여준 영신당주의 행적을 갱정유도에서는 ‘여광여취(如狂如醉:미친 사람처럼, 취한 사람처럼)라고 말한다.
  죄악과 병독에 신음하는 세상의 인심을 탐지한 영신당주는 1934년 3월에 전라북도 진안에 있는 운장산으로 들어가서 갱정유도의 기본 경전인 『해인경(海印經)』을 짓게 된다. “백초약(百草藥)을 맛을 보아 해인약(海印藥)을 마련했다”고 일컬어지는 『해인경(海印經)』은 마치 의사가 환자의 병세가 어떤지를 진찰하고 그에 맞는 약이 무엇일지 검토한 다음 가장 알맞은 약을 처방하는 것처럼, 음도 상극시대의 죄악과 병독을 탐지한 다음 양도 상생시대를 맞아 열 수 있는 경전이다.
  『해인경(海印經)』은 매우 짧은 글이지만(4자×7구=28자) 갱정유도 도리의 핵심이 집약적으로 담겨 있는 중요한 경전이다. 그 본문은 다음과 같다.(굵은 글씨의 4자씩 구성된 7개의 한문구절이 『해인경(海印經)』의 본문이며, 옆의 해석은 내용의 이해를 위해 덧붙인 것이다.)
 
 
①우성재야(牛性在野): 우성(牛性)은 천상일기를 상징하며 재야(在野)는 그 일기가 인간세상에 해원되어 존재하게 됨을 뜻한다.
②천지부모(天地父母): 도조 영신당주가 생사교역을 통해 선천과 후천을 변역하여 천지만물을 다시 살린 부모임을 뜻한다.
③궁을합덕(弓乙合德): 궁을(弓乙)은 음양을 상징하며, 합덕(合德)은 음양이 만나 만물을 생육함을 뜻한다.
④음시감혜(吽時感惠): 음(吽)은 소(牛:하늘)와 말(馬:땅)이 함께 우는 소리를 뜻하는 말로, 천지합덕을 상징한다. 따라서 음시감혜(吽時感惠)는 천지부모가 궁을합덕함으로써 만물을 생육하신 은혜에 감사함을 뜻한다.
⑤일심동력(一心同力): 천지부모의 은혜로 다시 살게 된 천상의 신명과 지상의 인생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한 데 모아 상생시대를 열어 감을 뜻한다.
⑥세계소립(世界所立): 세계소립(世界所立)은 오주소립(吾主所立)의 완성태로서, 신천신지(新天新地)의 새로운 지상천국의 세계가 확립됨을 뜻한다.
⑦오주소립(吾主所立): 각자 자신의 심주(心主)를 찾아 보존함을 뜻하며, 모든 인간이 오주소립이 되면 그것이 곧 세계소립(世界所立)이 된다.
 
 

2. 갱정유도의 이상적 세계와 인간


 1) 지상천국의 ‘도덕문명’


  도조 영신당주는 정성(正誠)과 선심(善心)을 바탕으로 도통을 이루었고, 누건수(淚巾水)의 인간적 슬픔을 인류구원이라는 대승적 차원으로 승화시켜 생사교역(生死交易)을 실천함으로써 천지변역을 위한 무형의 천지공사(天地公事)를 완성하였다. 또한 그는 여광여취(如狂如醉)의 고초를 겪으면서 세상인심을 탐지한 뒤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처방전으로서 『해인경』을 세상에 내려 주었다. 그렇다면 무형적으로 이미 준비된 신천신지란 현실적으로는 어떤 세계일까? 이 물음은 갱정유도가 염원하는 이상적인 세계는 과연 어떤 것인가와 관련된다.
  갱정유도의 종교적 이상은 ‘천상에 있는 일기가 인간에 해원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 간단히 줄여 ‘도덕해원(道德解冤)’이라고 말한다. 이때 일기가 천상에 있다고 상정하는 것은 시대를 진단하는 갱정유도의 독특한 이해방식에서 비롯되었다. 갱정유도에서 이해하는 일기 즉, 제성(諸聖)·제불(諸佛)·제선(諸仙)·충효열(忠孝烈)·도덕선심(道德善心)은 모두 우리 인간 세상에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가치들이다. 그러나 지난 시대에는 이러한 가치들이 모두 우리 인간세상으로부터 존숭되고 실현되기보다는 핍박받고 멸시되었다. 그래서 그러한 가치들은 ‘천상의 일기’로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며, 이러한 시대를 ‘음도시대’라고 부른다. 하지만 앞으로 도래할 시대에는 그러한 가치들이 다시 회복되고 존숭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천상에 머물러 있던 일기를 인간세상으로 해원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를 ‘양도시대’라고 한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영신당주의 말씀이다.
  
“세상이 끝날 때에는 도가 하늘로 가고, 새 세상이 열릴 때에는 도가 사람으로 오시니, 가는 것도 무궁하고 오는 것도 무궁하다. 그러므로 음일 때는 올라가 하늘에 있고, 양일 때는 내려와 사람에게 있나니, 무도(無道)는 한밤중이요 이를 뒤집은 유도(有道)는 한낮이다. 그러므로 그 실상은 사람이 하늘에 있으면 음도가 되고, 하늘이 사람에 있으면 양도가 되는 것이로소이다.” (『부응경(符應經)』 중에서)
  
  영신당주는 다시 음도(陰道)를 신도(神道)라 하고 양도(陽道)를 인도(人道)라고 본다. 그리고 신도는 신 중심의 도로서 유불선(儒佛仙) 가운데 선불(仙佛)이 이에 해당하고, 인도는 사람 중심의 도로서 유도(儒道)가 이에 해당한다고 명시한 바 있다. 단, 이때의 유도는 단순히 공맹(孔孟)의 유학이 아니라, 천상의 일기가 인간에 해원되어 신 중심의 도와 사람 중심의 도가 합일한 유불선(儒佛仙) 합일의 도라고 영신당주는 말한다.
  
“신도(神道)는 선불(仙佛)이니 선불에는 사람이 없고 단지 귀신만이 있어 밤 세상에 행하느니라. 그러나 어찌 인도(人道)를 잊겠느냐. 인도란 유도(儒道)이니, 유도는 지난 시대의 유도가 아니고 오는 시대의 새로운 유도이니, 어떤 이치이냐 하면 신이 사람과 함께 도를 합한 것이니라.” (『부응경(符應經)』 중에서)
  
  영신당주의 뒤를 이어 갱정유도의 도통(道統)을 계승한 계도선사(繼道先師) 김갑조(金甲祚,1933~1979)는 이러한 유도의 세상을 도덕문명(道德文明)의 시대로 재정의하였다.
  
양도 춘하시절에는 천당에 갔던 요·순·공·맹·수운·증산·서양 예수·석가여래)·노자·구험, 즉 제성·제불·제선·충효열도덕선심이 낱낱이 지상에 내려와 살게 되니, 이 시절은 유도세계(儒道世界)요. (생략) 이로써 44세기의 도덕문명(道德文明)이 될 것이다. 이 거룩하신 도덕문명이 된다면 만민해원과 충효열도덕선심이 해원될 것이며, 평화통일을 볼 것이며, 아울러 모든 진리가 화합(道合)되고 종교가 화합(敎合)되고 사람들이 화합(人合)되고 마음마다 화합(心合)되리니, 지상천국과 지상극락이 될 것이다. 이것이 즉 유도세계(儒道世界)다. (『만민해원경(萬民解寃經)』 중에서)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갱정유도에서 염원하고 추구하는 이상적인 세상은 천상의 일기가 인간에 해원되는 도덕해원의 세상, 신 중심의 도와 사람 중심의 도가 함께하는 유불선 합일의 유도세상, 상극의 논리를 극복하고 상생의 가치를 실현하는 도덕문명의 세상이다. 그러한 세상이야 말로 지상천국이며 지상극락이라고 갱정유도에서는 보고 있다.
 
 
 2) 천인합발의 ‘신화인’

 

  천상의 일기가 인간에 해원되는 것이 갱정유도의 종교적 이상이라고 할 때, 이러한 이상이 현실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중요한 것이 바로 ‘인간’이다. 왜냐하면 천상 일기가 해원되는 과정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일기의 해원 대상이면서 동시에 해원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이 해원의 대상만을 의미한다면 이는 인간이면 누구나 해원의 대상이 됨을 의미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굳이 도덕해원을 위해 준비하고 노력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즉 인간은 일기의 해원에 있어서 아무런 주체적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아도 되는 소극적 수혜자를 의미할 뿐이다. 하지만 갱정유도에서 도덕해원이라고 말할 때의 인간은 반드시 어떤 조건을 갖춘 적극적 참여자여야만 한다. 
  
“세상이 멸망하지 않고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이 나신다.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시뇨? 그 마음이 곧 하늘의 마음이신 분이시다.” (『부응경(符應經)』 중에서)
  
  영신당주의 이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도덕해원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서는 반드시 새로운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 그 사람은 인간의 사사로운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선한 마음을 그대로 보전한 사람이다. ‘그 마음이 곧 하늘의 마음’이란 곧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천상의 일기가 인간세상으로 재생하여 해원되는 것은 오직 이런 선심을 가진 사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런 까닭에 영신당주는 천지의 변화에 부합하는 사람의 변화를 역설하고, 이렇게 천지와 사람이 함께 변화함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열어나가는 것을 천인합발(天人合發)이라는 말로 정리한다.
  
“천지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의 변화가 일어나니, 천인합발(天人合發) 이 운수, 만변정기(萬變定基) 뉘 알소냐.” (『부응경(符應經)』 중에서)
  
  여기에서 천지의 변화는 영신당주 부부자 3인이 생사교역을 통해 천지의 운수를 변역시켰다는 뜻이고, 사람의 변화는 변역된 천지의 운수에 부합하도록 모든 사람들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천지의 운수가 새로운 천지로 변역하고 사람도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하면 그것이 바로 천인합발이 되는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이 세상 모든 것이 악에서 선으로 상극에서 상생으로 변화하여 제 자리를 잡는 만변정기(萬變定基)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도덕해원의 주체로 거듭나는 사람을 갱정유도에서는 ‘신화인(神化人)’이라고 한다. 결국 갱정유도의 이상적 세상은 모든 사람들이 천상의 일기가 해원될 수 있도록 새로운 사람 즉 신화인으로 거듭 나는 것에서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생사교역의 마지막 대임이었던 ‘유도소식을 전해 만민을 해원시킬 책임’이 완수되는 것이기도 하다.
 
 
3. 갱정유도인의 실천적 수행


 1) 전통 복식과 서당 교육


  갱정유도에서는 도조 영신당주를 천지부모(天地父母)라고 부른다. 영신당주가 생사교역을 통해 선천과 후천을 변역하여 천지만물을 다시 살린 부모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그들은 항상 갱정유도의 기본 경문인 《해인경》에 나오는 ‘음시감혜(吽時感惠)’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축원하며 생활한다. ‘음시감혜’라는 말에서 음(吽)은 하늘을 상징하는 소(牛)와 땅을 상징하는 말(馬)이 함께 우는 소리를 뜻하며, 이는 하늘과 땅이 합덕함을 상징한다. 따라서 음시감혜는 천지부모가 궁을합덕함으로써 만물을 생육하신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런 뜻을 가진 ‘음시감혜’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축원하는 갱정유도인들의 삶은 곧 천지부모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자신들의 삶 속에 실천하려는 삶이라 할 수 있다.
  갱정유도인들의 모습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그들의 전통적 복식이다. 그들은 머리털을 결코 자르지 않는다. 어린 소년·소녀들은 머리를 뒤로 길게 땋아 댕기를 드리우고,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면 남자는 상투를 올려 갓을 쓰고, 여인은 쪽을 찐다. 갱정유도인들이 이처럼 머리털을 자르지 않고 소중히 보존하는 것은 몇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음시감혜’의 정신을 삶 속에 실천하려는 것이다.
  우선 댕기를 드리우거나 갓을 쓰고 쪽을 찌는 것은 우리 고유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의미와 함께 부모에게서 받은 신체발부를 소중히 여기는 효의 실천이라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의미는 갱정유도인들이 머리털을 ‘춘생지기표’(春生之氣表: 봄날 만물이 소생하는 기운의 표식)로 이해하는 데 있다. 즉 천지부모의 생사교역으로 말미암아 장차 도래하게 될 선천시대는 양도시대이고, 양도시대는 화해하고 협력하는 상생의 시대이다. 대립하기보다는 화해하고, 투쟁하기보다는 협력하며, 서로 죽이기보다는 서로 살리는 시대가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시대라고 그들은 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머리털을 보존하는 것은 마치 봄에 움트는 새싹을 자르지 않고 보호하듯 새롭게 도래할 시대의 기운을 보호하는 것이며, 그렇게 하는 것이 천지부모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라고 그들은 믿는다.
  또한 갱정유도인들은 한국의 전통복장인 ‘한복’을 항상 입고 생활한다. 그것은 전통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라는 의미에 더하여 한복이 동방의 옷이라는 데 더욱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즉 음도시대는 서양의 과학기술문명이 주도한 시대였지만, 양도시대는 동양의 정신도덕문명이 선도할 시대라고 갱정유도인들은 믿고 있다. 따라서 복식도 서양 일변도의 양식에서 벗어나 동양의 옷 특히 ‘한복’이 도래할 시대에 부합하는 옷이라고 여기고 있다. 특히 그들은 옥빛 한복을 선호하는데, 그것은 연한 푸른빛인 옥빛이 바로 봄의 빛깔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처럼 갱정유도인들의 복식은 그 자체로는 전통적인 것이지만 그 의미내용은 갱정유도의 도리에 입각하여 새롭게 해석된 것들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이 머리털을 보존하고 한복을 고수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전통을 고수하려는 데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도리에 입각하여 그들의 이상을 삶 속에서 수행하려는 데 근본적인 의미가 있다. 갱정유도인들의 이러한 모습은 그들의 교육 방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갱정유도에서는 한국 전통의 교육기관이었던 ‘서당’의 교육제도를 계승해 오고 있다. 갱정유도의 자녀들은 7~8세가 되면 정규교육기관인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대신 서당에서 갱정유도 자체의 교육을 받는다. 갱정유도에서 운영하는 서당교육은 ‘갱정유도의 도리가 집대성되어 있는 ≪부응경(符應經)≫을 체(體)로 하고, 전통 유학의 경전인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용(用)으로 한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이루어진다. 따라서 서당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은 갱정유도의 도리에 대한 교육과 함께 유학의 경전을 통한 전통교육을 병행하게 된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오늘이 옛을 무시하고, 현대가 전통을 파괴하며, 앎이 삶에 우선하고, 물질이 정신을 압도하는 상황 속에서 전통과 삶 그리고 정신의 가치를 교육 속에 실현하고 있다.
 
 
 2) 수도정진과 사회활동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천지의 변역에는 반드시 사람의 변화가 수반되어야만 한다. 천상의 일기가 인간에 해원될 때, 인간 스스로가 그에 부합하는 주체로 준비되어 있어야 천인합발(天人合發)은 가능하다. 따라서 갱정유도인들은 새로운 천지에 걸맞는 새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수도정진한다. 갱정유도인들의 이러한 수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체는 바로 마음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이란 천지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하늘이 어디에 계시는가. 가까이 마음 안에 계시다.”
“하늘은 먼 데 계시지 않고 가까이 마음에 계시나니, 마음을 공경하지 않으면 하늘이 어찌 오시리요?” (이상 『부응경(符應經)』 중에서)

  
  갱정유도인들에게 있어서 수도란 그 자신이 천상의 일기를 맞이할 수 있는 당당한 주체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다. 즉, 하늘이 그 자신에게로 내려와 존재할 수 있도록 자신을 깨끗하게 만드는 과정이 바로 수도이다. 하지만 그 방법은 먼 데 있지 않다. 왜냐하면 하늘은 높고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하늘이 이미 와 있었던 자신의 마음을 공경할 때 하늘은 진정 그에게로 오게 되고, 이로 말미암아 결국은 천인합발(天人合發)이 가능하게 된다. 이런 뜻에서 『부응경(符應經)』에서는 “마음이 곧 하늘이요, 하늘이 곧 마음이라” 말하며, 이러한 마음을 갖춘 사람을 가리켜 “사람이 또한 하늘이요, 하늘이 또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마음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마음을 공경하는 것인가? 갱정유도에서는 정성(正誠)과 선심(善心)을 마음공경의 두 가지 핵심적 방법으로 가르친다. 영신당주는 정성과 선심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 바 있다. 
  
“속임 없이 하늘을 믿는 것이 정성(正誠)이고, 한 점 물욕(物慾)도 없는 것이 선심(善心)’이다. 정성으로 선심을 알고 선심으로 정성을 알게 되나니, 정성이 곧 선심이요 선심이 곧 정성이니라.” (『부응경(符應經)』 중에서)
  
  속임 없이 하늘을 믿는 정성은 갱정유도의 종교적 의례를 통해 수행되고, 한 점 물욕도 없는 선심은 일상에 임하는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가지려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이 둘은 상보적 관계에 있어서 지극한 정성을 통해 일상에서의 선심은 마르지 않는 샘물을 제공받게 되고, 일상에서의 이러한 선심은 다시 종교적 정성을 더욱 지극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
  갱정유도에서 정성과 선심을 실천하는 수행적 방법으로는 치성(致誠)과 수련(修鍊)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치성에는 갱정유도인이 함께 모여 드리는 특별 치성(3대제와 4산제)과 각 가정에서 개별적으로 드리는 일상의 치성(24절후치성과 일일치성)이 있다. 수련은 특별한 기일을 정하고(15일 또는 100일) 각지의 명산에 위치한 수련당이라는 특별수련시설에 들어가서 심신을 수양하는 특별수련과 일상의 삶에서 실천하는 생활수련이 있다.
  갱정유도인들은 이처럼 각자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 나기 위해 수도정진을 게을리 하지 않지만, 자신들이 발 딛고 숨 쉬는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바로 잡기 위한 활동에도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예를 들어 1954년에 있었던 도조 영신당주의 이른바 <대화중흥국사건>과 1965년 계도선사의 <서울시위사건> 그리고 이후 1984년의 <남북통일·세계평화 기원대제>나 1985년의 <도의앙양강연회>와 1995년의 <도덕성 회복 운동> 등을 들 수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도덕성과 그 도덕성을 기반으로 하는 고유의 정신문화가 상실되고 그 자리에 물질만능주의와 극단적 이데올로기 그리고 천박한 외래문물사조가 유입됨으로써 온갖 갈등과 불신 그리고 폭력에 신음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문제이다. 그동안 세계는 발전신화에 매몰된 채 과학기술문명을 첨병으로 삼아 내달려 왔지만, 지금 그 사생아(인 전쟁과 자연재해 그리고 인간성 상실 등으로 인해 공포와 불안 속에 살고 있다.
  갱정유도에서는 한국 나아가 전세계가 안고 있는 이러한 문제의 근저에 상극의 정신이 자리하고 있다고 보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지속적이고도 적극적으로 상생운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때로는 이념과 정치논리를 넘어서 생명과 인도주의를 역설하고, 때로는 물질적 욕망만을 추구하기보다 도덕적 가치의 중요성을 각성하자고 외친다. 갱정유도는 도덕성에 대한 새로운 각지만이 화합과 평화의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도덕이란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길, 인간이 금수처럼 물욕에 가리어진 채로 살지 않는 길이다. 따라서 그러한 도덕의 길을 걸어갈 때만 우리의 문제상황은 해결될 수 있다고 믿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갱정유도인들이 자아의 수도정진과 함께 사회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는 것은 곧 신화인(神化人)이 되기 위한 부단한 정진과 함께 도덕문명세계 건설을 위한 주체적 참여로 이해될 수 있다.

 

《대순회보》 1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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