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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를 읽고 - 인생과 세상을 배우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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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영일 작성일2020.06.30 조회2,6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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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팀 김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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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프로그램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 출현한 이후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진 소설가 김영하가 『여행의 이유』라는 산문집을 냈다. 여행의 의미와 가치에 관해 쓴 책인데, 여행 경험뿐만 아니라 문학 작품, 과거의 삶을 넘나들며 엮어내는 솜씨와 간결한 문장으로 많은 독자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여행의 이유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인간과 세상에 대한 통찰이 더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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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여행은 기대와 다른 현지의 모습에 실망하지만 대신 뜻밖의 기쁨과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다. 이러한 점은 인간의 삶을 닮았는데, “인간은 언제나 자기 능력보다 더 높이 희망하며, 희망했던 것보다 못한 성취에도 어느 정도는 만족하며, 그 어떤 결과에서도 결국 뭔가를 배우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곧 인간을 자신의 분수에 넘치게 욕망하면서도 주어진 결과를 긍정할 줄 알며, 욕망하는 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깨닫고 배우는 존재로 보는 것이다.

  ‘환대의 순환’을 서술하는 부분에서는 저자의 이상향을 엿볼 수 있다. 그는 과거에 읽은 여행기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여행기의 작가가 버스를 탔다가 지갑을 잃어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 현지의 할머니가 요금을 대신 내주었는데, 나중에 갚겠다고 하자 할머니는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발견하면 그 사람에게 갚으라고 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준 만큼 받는 관계보다 누군가에게 준 것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세상이 더 살 만한 세상이 아닐까.”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남을 잘 되게 하는 사람이 많아야 이러한 세상이 가능할 것이다. ‘남을 잘 되게 하라’는 윤리가 생활화된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저자는 여행에서 현지인에게 보낸 신뢰가 환대로 되돌아오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온 게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고 한다. 인류의 삶의 변화와 발전을 이기심만으로 설명할 수 없고, 이타심도 세상을 움직이는 중요한 힘인 것이다.

  여행자가 현지에서 갖게 되는 노바디(nobody: 아무것도 아닌 자)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겸허의 덕이 강조된다. 현지인들은 여행자를 그의 고유성과 관계없이 국적, 성별, 피부색에 따른 정형화된 타입으로 판단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서구인들은 동아시아 남자들을 그들만의 세상에서 소심하게 자기 일만 열심히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즉 바로 떠나는 여행자는 현지인에게 노바디인 셈이다. 그런데 『오디세이아』의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 죽음의 위기에 거듭 처하게 되는데, 저자는 노바디라는 여행자의 정체성을 망각하고 허영과 자만심에 섬바디(somebody: 특별한 존재)로 인정받고자 했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 빠진 것이라고 해석한다. 여행자는 온전하게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노바디의 정체성에 따라 자기를 낮추고 현지인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공부와 수행의 기본인 겸허는 여행에서도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에서 현지인과 신뢰와 환대를 주고받게 된다면 뜻깊은 경험이 되고, 자기를 낮추고 타인을 존중하는 자세를 배운다면 그 가치는 더욱 커질 것이다. 수도의 길에서도 환대와 겸허는 중요하다. 환대는 수도인의 도리인 남을 잘 되게 하는 것과 다르지 않고, 겸허는 인간 존중의 구체적 실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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