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순논단상제님신앙 교단들의 연합운동과 대순사상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태수 작성일2018.01.10 조회4,749회 댓글0건본문
증산사상의 민족주의적 변용(變容)의 문제를 중심으로
연구위원 김태수
Ⅰ 머리말
종교를 절대적 신념체계라고 할 때, 이 신념체계는 교조敎祖의 사상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교조의 사상을 계승하여 실천함에 있어 그 본래적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교조의 사상을 오해하여 잘못 해석하였을 때에는 신념체계가 변화하며, 그 변화된 신념체계 하에 나타나는 종교적 실천은 본래 교조가 지향하였던 것과는 다른, 왜곡된 양상으로 나타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대순사상에서는 다행히 구천상제님께서 선포하신 진리를 도주님께서 체계적인 교의敎義로써 정리해 교시하셨으며, 이를 도전님께서 계승 발전시키셨다는 측면에서 사상이 왜곡될 위험에서는 벗어나 있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상제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여타 여러 종단과 상제님의 사상을 연구하는 몇몇 학자들에 의해 그 사상이 왜곡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왜곡현상은 주로 상제님의 사상을 민족주의적으로 해석하는 측면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특히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의 단군담론檀君談論을 통해 형성된 단군민족주의적 성향을 보인다. 단군담론은 제국주의에 의해 민족의 정체성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국가 및 민족의 독립을 꾀하여야 하는 역사적 특정 시기에 형성된 것이다. 이렇게 특수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특정한 목적에 의해 형성된 사상조류에 편승하여 상제님의 사상을 해석할 경우, 일부 내용만을 부각시켜 강조함으로써 그 전체적인 대의를 훼손 또는 왜곡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민족주의적으로 왜곡된 사상에 입각하여 출간된 여러 서적 등을 통해 대순의 도인들이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아왔으며, 지금도 교화를 통해 구전되어 이러한 요소들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상제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여러 교단들의 연합활동에 주목하여 그 민족주의적 특성과 관련된 사상의 변용과정과 내용의 일부를 드러내어 문제점을 파악함으로써 대순사상의 본래 의미를 이해하는 하나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
본 글에서 사용하고 있는 ‘증산사상’이란 용어는 한국 학계에서 상제님의 종교사상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도주님과 도전님의 사상이 배제된 것이다. 따라서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를 신앙 대상으로 삼는 등의 교의내용이 없다. 이에 반해 ‘대순사상’은 대순진리회의 일련의 종교사상을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하였다. 즉 상제님-도주님-도전님으로 이어지는 진리체계에서 나타나는 종교사상을 지칭한다.
Ⅱ. 민족주의의 기능과 단군민족주의
1. 민족주의의 구조와 기능
민족주의의 개념을 파악하는 과정에서는 먼저 민족의 개념과 관련한 구성양식을 살피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것은 다양한 사회적 관계의 총합에 의해서 규정된다. 이 관계들 가운데 영토·언어 등 지속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경우 민족개념에 대한 객관설을 형성하고, 정치·경제 등 역사적으로 변화하는 요소를 그 본질로 파악하는 경우는 주관설을 형성하였다. 특히 주관설에 의하면 민족의 본질은 객관적·사실적 요소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식’과 같은 주관적·심리적 요소 중에 존재한다고 한다. 따라서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일반화의 차원에서 볼 때, 민족의 구성 양식에는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이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절충설에 입각하여 민족주의를 정의하면 ‘어떤 민족의 구성원들이 그들이 속하는 민족을 통하여, 각자의 자아실현을 궁극적 목적으로, 자민족自民族의 통일·독립 및 발전을 지향하여 추진하는 근대 사상과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민족주의는 그것이 추구하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실현할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민족주의는 그 실천 과정에서는 반드시 그 밖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는 형태를 취하게 된다. 이러한 이념의 가변성 때문에 민족주의를 ‘이차적 이데올로기’로 부르기도 하며, 민족주의는 다양한 사회적 이데올로기들과 결합하여 천의 얼굴을 갖게 된다. 자유주의 또는 민주주의와 결합하여 근대적 인간관 내지 정치관을 확립하기도 하며, 파시즘이나 군국주의·제국주의 등과 결합하여 세계의 평화를 파괴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민족주의의 성격은 그 구조를 분석하는 데서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민족주의는 다양한 사회적 이데올로기들과 결합하여 천의 얼굴을 갖게 된다. 자유주의 또는 민주주의와 결합하여 근대적 인간관 내지 정치관을 확립하기도하며, 파시즘이나 군국주의·제국주의 등과 결합하여 세계의 평화를 파괴하기도 하는 것이다.
헤르츠(F. Hertz)에 의하면 민족주의는 민족적 통일統一·자유自由·개성個性·위신威信이라는 4대 열망과 민족적 전통傳統·이익利益·사명使命이라는 3요소를 갖는다.
4대 열망 중 ‘민족적 통일’을 지향하는 노력은 정치·경제·사회 및 문화적 통일성·공동성 내지 연대성을 포괄하는 민족적 통일체를 지향하는 욕구이다. ‘민족적 자유’를 획득하려는 노력은 외국의 지배와 간섭으로부터의 독립과, 비민족적이거나 민족의 명예를 손상시킨다고 여겨지는 세력들로부터 국내적 자유를 의미한다. ‘민족적 개성’을 추구하는 노력은 타민족으로부터 분리·독립·개별성 및 독창성을 추구하는 욕구이다. ‘민족적 위신’을 지향하는 노력은 자민족의 명예·존엄성·위신 내지 위력을 얻으려는 열망인데, 이 열망은 쉽게 타민족에 대한 지배에의 욕망으로 전이轉移되며, 4대 열망 가운데 가장 강한 것으로서 다른 욕망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민족주의의 3요소 중 ‘민족적 전통’은 민족을 과거와 결부시키는 것으로서 이와 결부된 민족주의는 보수적·비합리적 성격을 띠는데, 교육과 사회적 행사 등을 통해서 민족적 명예와 영광을 빛낸 민족 영웅에 대한 찬양이라든가 민족적 성인聖人에 대한 과장된 미화, 민족적 발명 내지 예술품에 대한 존경심의 강조, 국경일·기념비·조상祖上·신화神話 등의 ‘일체화 상징(symbol of identification)’을 통하여 정치적으로 조작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관념이 정치권력과 결부되었을 때에는 배타주의(exclusionism), 국수주의(ultranationalism) 내지 맹목적 애국주의(chauvinism)가 됨을 역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민족적 이익’은 민족을 현재와 관련짓게 하는 것으로 이와 결부된 민족주의는 비교적 합리성을 띤다. 그러나 민족적 이익으로 규정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대체로 민족적 이념에 달려 있으며, 이것은 국가와 시대에 따라 상이하다.
‘민족적 이상 내지 사명’은 민족을 미래와 결부시키는 것으로, 민족의 세계관에 있어서 존재 이유와 장래의 행동목표를 단적으로 제시하여 자국민을 정신적으로 고무하고, 현재 뿐 아니라 잠재적 적국敵國의 국민을 정신적으로 무장해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민족 내지 국가의 기원에 관한 신화는 대부분 이러한 사명감과 결부돼 있다. 일반적으로 이 사명감은 보편화하고자 하는 충동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대내적으로 강력한 권력을 배경으로 현실의 모순을 장래에 대한 목표 설정을 통해서 은폐하는 강제적 성격을 지니며, 대외적으로는 국가적 번영과 결부되어 국가적 위신을 앙양하는 방향으로 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경향이 있다.10
특히 민족주의가 타락하여 제국주의와 손을 잡게 되면 민족적 사명감이 약소민족을 정복하는 ‘백인의 부담(the white man’s burden)’11·‘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 등과 유사한 침략적인 양상으로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이렇게 그 구조를 통해서 볼 때 민족주의는 순기능과 역기능을 동시에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기능은 구조에 따라서 결정되기보다는 민족주의가 어떠한 이념과 결합하느냐에 따라 더욱 크게 좌우된다. 그것이 순기능의 역할을 수행할 경우에는 그 민족의 근대화를 지향하거나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줌으로써 민족주체성을 제고하기도 하나, 그것이 파시즘 등의 이념과 결합될 때에는 세계 평화를 위협하거나 소수의 권력자들에 의하여 민중이 억압되는 역기능을 수행하기도 하는 것이다.
2. 단군민족주의
단군민족주의는 1980년대부터 쓰인 용어로 신용하愼鏞廈가 애국계몽운동기 국학자들의 사회사상을 분석한 글들에서 그들의 사상과 운동에 미친 단군민족주의의 영향을 거론하면서, 한말 애국계몽운동기의 한 사상으로서 ‘단군민족주의’·‘단군내셔널리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조가 사상계에 큰 비중을 두고 전개되다가, 한 흐름은 사학史學으로 흘러 들어가서 신채호 등의 고대사古代史 설명에 투사되고, 다른 한 흐름은 종교로 흘러 들어가서 대종교大倧敎 창건 등에 투사되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단군민족주의가 대중화되던 시점의 대표적 두 흐름으로 꼽히는 국학國學과 대종교를 창시한 사람들은 모두 신민회新民會계 인사들이었다. 이들은 국권의 회복을 위해서 민족이 단합할 수 있는 민족의식을 고취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단군의 이미지를 부각시킴으로써 한국 민족은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는 인식을 확대시켜나갔다.
이러한 취지에서 국학계 민족주의자들은 역사교육을 통하여 민족주체성을 확립시키고자 하였다. 그 결과 1895년부터 교과서가 간행되기 시작했고, 이들 한말의 교과서는 모두 한국사를 단군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는데, 한국이 유구한 역사를 가진 신성한 국가이며, 문명국가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들 교과서에 기초한 교육은 단군인식을 확산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했으며, 나아가 이것이 단군자손의식과 결합하여 애국심과 민족의식 고취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단군민족주의에서 종교적 흐름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대종교는 1908년 나철羅喆에 의하여 단군교檀君敎로 중광重光되었다. 그 후 ‘단군 종교’를 표방함으로써 돌아올 일제로부터의 불이익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대종교로 개칭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정훈모鄭薰模의 분파가 생겼다. 1915년 조선총독부의 종교통제안 공포를 전후하여 대종교본사를 백두산 부근의 청호靑湖로 옮겼으며, 만주 일대에서 상당한 교세확장을 보였고, 만주지역에서 항일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3·1운동 이후 단군민족주의는 상해에서 민주공화주의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성립됨으로써 중요한 결실을 보게 된다. 그러나 사회주의가 유입되면서 임시정부는 사상적·계급적으로 분열되고 만다. 그러나 단군민족주의는 분열된 좌·우진영을 통합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도 그 주역의 하나로 기여하였다.
단군민족주의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자주성을 확립해주고 민족이 근대적으로 발전하는데 기여하였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민족주의의 구조와 기능면에서 볼 때, 패권주의나 제국주의를 지향할 수 있다는 민족주의의 역기능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단군민족주의는 근대 한국에서의 민족운동·근대화운동의 일부분이었다. 이를 통해서 한국 민족은 스스로 자신을 인식하는卽自的 민족에서 타자와의 구분을 통해서 스스로를 인식하는對自的 민족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왕조의 ‘신민臣民’으로부터 민권·주권의식을 가진 ‘국민’으로, 계급적으로 분화된 ‘백성’으로부터 평등한 하나의 ‘민족’으로 변화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자주성을 확립해주고 민족이 근대적으로 발전하는데 기여하였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앞에 설명한 민족주의의 구조와 기능면에서 볼 때, 패권주의나 제국주의를 지향할 수 있다는 민족주의의 역기능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독일이 민족적 문화전통을 강조하면서 근대적 국가를 형성하고 국민적 통합을 이룩하기는 하였으나, 군국주의적軍國主義的 파시즘으로 연결된 면이나, 제3세계의 민족주의가 그 지배세력의 유지 등을 위해 이용된 역사적 실례를 볼 때,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일제하 민족주의 사학이 견지했던 문제의식이 오늘날의 상황에서 남과 북 모두에서 그 건강성을 상실하고 체제 이데올로기로 전락했다는 평가는 단군민족주의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하여 간과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Ⅲ. 상제님 신앙 교단의 연합운동과 민족주의적 성격
1. 연합운동의 전개
상제님께서 화천하신 후 1911년 고수부를 중심으로 처음 교단이 형성되고, 이후 함께 모여 있던 여러 종도들이 차경석과의 불화 등의 이유로 탈퇴하여 각기 교단을 만들면서 상제님을 신앙하는 교단들이 다수 성립되었다. 이후 많은 교단들이 생성·소멸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형성되었던 교단들은 여러 가지 종교의식들을 행하면서 민족주의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김형렬金亨烈은 ‘삼백육십주공사三百六十州公事’를 통하여 민족해방에 대한 염원을 표현하였고, 정인표鄭寅杓는 일본패망을 기원하는 ‘신도행사神道行事’를 하였다. 보천교普天敎의 경우 차경석車京石의 ‘천자등극설天子登極說’은 3·1운동의 실패로 인하여 민족적 좌절감에 빠져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심리적 보상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 당시 상제님 신앙 교단들의 민족주의 운동은 종교의식 위주로 행해졌으며, 크게 드러나거나 성과를 얻은 것이 거의 없다. 오히려 종도從徒들은 상제님의 교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고, 신도들 중 신지식인들도 민족주의적 성향으로 인해서 상제님의 사상에 입각한 교의체계를 성립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교단들을 민족주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상황도 발생하기도 하였다.
상제님을 신앙하는 교단들의 민족주의적 경향은 그들의 연합운동에서 보다 적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일제 당시부터 이들 교단들은 연합체를 구성하려 하였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해방 이후에 보다 조직적이고 일관된 특성을 지니는 활동으로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정립(李正立, 1895~1968)의 활동과 사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그는 일련의 연합운동을 통하여 여러 교단을 통합함으로써 ‘민족적 종단民族的宗團’을 구성하고자 하였다.
이정립은 24세 되던 1919년에 그의 형 이상호(李祥昊, 1888~1966)가 있던 태을교太乙敎에 입교하였는데, 특별히 종교에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나라를 찾고자 하는 열정에 사람이 많이 모여드는 곳을 찾아온 것이라는 사실은 그 사상적 일면을 추측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지식인들에게 유행하였던 사회진화론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으며, 해방 이후 그가 주도한 교단연합운동을 통해서 그의 이러한 사상과 운동이 지니는 민족주의적인 특징을 볼 수 있다.
상제님을 신앙하는 교단들의 민족주의적 경향은 그들의 연합운동에서 보다 적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일제 당시부터 이들 교단들은 연합체를 구성하려 하였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해방 이후에 보다 조직적이고 일관된 특성을 지니는 활동으로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정립(李正立, 1895~1968)의 활동과 사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그는 일련의 연합운동을 통하여 여러 교단을 통합함으로써 ‘민족적 종단(民族的宗團)’을 구성하고자 하였다.
상제님을 신앙하는 교단들의 연합운동은 1926년 결성된 <팔파연합회八派聯合會>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팔파연합회>의 결성취지는 여러 교단 간에 친목하고 교단의 발전에 서로 협조하며 환난을 서로 구조할 것과 경전편찬에 서로 협력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취지로 매달 한 번씩 모이기로 약속하여 그 후 3개월간 계속되었다. 1943년에는 전국민의 사상을 통일하고 건전한 정치세력의 출현을 뒷받침하자는 취지로 6개 교단이 모여 <동아흥산사東亞興産社>라는 회사를 설립하였으나, 일제에 의해 ‘종교통일에 의한 조선독립음모단체사건’으로 몰려 6인이 옥사하고 이정립 등 5인은 광복 당시 출옥하였다. 이상 두 사건은 일제강점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팔파연합회>는 이상호의 경전 집필에 도움을 주었으나 그 외에 특별한 활동이 없었고, <동아흥산사>는 그 결성 취지가 종교적인 성격보다는 정치적 성격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해방 이후 1948년 보화교普化敎에 입교한 유동열(柳東說, 1878~?)이 여러 교단의 통합을 권고함으로써 1949년 17개 교단이 모여 <증산교단통정원甑山敎團統整院>을 조직하였다. 이에 ‘증산교단선언’·‘교의체계’·‘신앙체계’·‘증산교규약’을 채택 선포한 뒤에 임원을 선임하였는데, 통교는 유동열, 교화관장은 이정립이 맡았다. 이후 이정립을 중심으로 순회단을 조직하여 각 지방을 순회하면서 강연하였다. 그러나 김구金九의 흉변으로 순회강연은 중지되었고, 6·25때 유동열의 납북으로 증산교단통정원은 와해되었다. 통정원은 2년여 만에 와해되긴 하였지만 이에 가입하여 이 운동을 선도했던 대법사, 선불교, 삼덕교, 보화교, 법종교 등은 말할 것도 없고 통정원에 가입하지 않았던 교단에까지 교의체계의 수립이나 해석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55년 3월 11일 정부의 군소교단群小敎團 통합을 권하는 공문에 따라 13개 교단 대표들이 모여서 <증산대도회甑山大道會>라는 연합체를 결성하고 위원장에 이정립을 추대했다. 그리고 강령을 제정하였는데, 그 첫 번째가 ‘도조道祖의 사상을 본받아 민족적 종교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홍범弘範을 제정하여 회원교단의 대표들이 정기적으로 회합하기로 했으나 실천이 되지 않아 2년도 안되어 결속력이 없어졌다.
1960년 9월 동학계와 그 외 계통 2개 교단을 포함한 13개 교단이 모여서 <민족신앙총연맹民族信仰總聯盟>을 결성하여 다음 해에 국무원에 등록(등록번호 340)하였다. 강령綱領은 ‘민족단일종교民族單一宗敎의 건설과 민족문화의 건설로 인류문화발전에 기여하자’는 것이었다. 이들의 활동은 5·16군사정변으로 중단되었다.
5·16정변 후에 <민족신앙총연맹>을 종교단체로 정부에 다시 등록하려 하였으나 문정과文政課에서 허락하지 않아서, 각기 교단별로 등록하고자 하였으나 이것도 거절당하였다. 이에 12개 교단 대표들이 1961년 10월 12일 <동도교東道敎>를 결성하여 그해 12월에 문교부 제183호로 등록하였다. 그러나 1963년 민정民政이 된 뒤에 종교단체 등록이 필요 없게 되자 대부분의 교단이 불참하여 4개 교단만 남게 되었다.
1968년 이정립 사후 1971년 1월에 보천교 신도 40여 명과 증산교 신도 50여 명이 <증산신도친목회甑山信徒親睦會>를 결성하였는데, 회장에 박기백朴耆伯, 부위원장에 배용덕裵容德, 총무부장 겸 교화부장에 홍범초洪凡草가 선임되었다. 회원자격은 교파와 상관없이 상제님을 받드는 교인으로 하였다. 취지문에는 “…<증산교단통정원>·<증산대도회>·<동도교> 연합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 더 나아가 실질적인 통일종단의 기틀을 놓기 위하여 <증산신도친목회>를 결성할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고 하였다. 이해 11월 <증산신도친목회>를 해체하고 <증산교단협회甑山敎團協會>로 재발족하였다. <증산교단협회>는 1972년 국조 단군과 각성姓 각가家의 선령신先靈神 합동치성을 열고 가정과 국가의 평화와 안녕을 빌었고, 박종설이 증산종단화보를, 홍범초가 『상생』 1 · 2호를 발간하였다.
1973년에는 10개 교단이 모여 <증산교단통일회甑山敎團統一會>가 결성되었는데, 준비과정에서 교조의 존칭을 ‘증산대성(甑山大聖)’으로 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어 1975년 12개 교단이 모여 <증산종단연합회甑山宗團聯合會>가 결성되었는데, 여기서 1979년 증산종단 공통교의를 심의하여 통과시켰다. <증산종단엽합회>의 대표적 활동은 1983년 6월 24일 ‘조국평화통일 기원대치성’을 봉행, 1985년 12월 22일에 ‘우리의 국조숭봉이념’을 제정·발표, 1995년 ‘새도덕창명학술대강연회’와 ‘새세상 맞이 한마당’ 축전祝典 개최, 1996년 7월 남북통일기원치성, 1997년 10월 ‘일제하 증산종단의 민족운동에 대한 학술대강연회’ 개최 등이다. 이 외에 교리가 서로 다른 교단들이 함께 모여 활동한 단체로는 1976년 <동학종단협의회>, 1980년 <민족종교인친목회>, 1985년 <한국민족종교협의회> 등이 있다.
2. 연합운동의 성격
이상 상제님을 신앙하는 종단들의 연합체 형성과 그 활동들을 간략히 살펴보았는데, 이 일련의 운동이 갖는 성격은 첫째, 연합체 상당수가 형성당시 정권의 종교정책 등 종단 밖에서 강요된 것이어서, 그 사상적 목적에 따른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즉 연합체 이면의 구성은 영세교단들이 주로 공식 종교단체로서 정부의 인증認證을 받으려는 것이 그 일차적 목적인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각 연합체의 활동이 정치적인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결성·와해되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으며, 특히 일부 연합체의 경우 결성 이후 우선적으로 추진한 활동이 정부에 종교단체로 등록하는 일이었다는 점에서 그 성격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현상은 서로 다른 교의를 갖고 있는 종단을 강제로 통합시키려 한 정부의 종교에 대한 무지와 행정편의적인 횡포도 작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그들의 교의나 목적 등에서 민족주의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증산교통정원> 당시 제정하였던 ‘증산교단선언’·‘교의체계’·‘신앙체계’에서 그 모습이 확연하다. ‘증산교단선언’에서는 연합의 목적을 ‘민족적 통일종교의 개창’에 두고 있으며, 이러한 성향은 이후로도 계속 계승되어, <증산대도회>의 첫 번째 강령은 ‘도조道祖의 사상을 본받아 민족적 종교를 건설’하는 것이며, <민족신앙총연맹>의 목적은 ‘홍익문화弘益文化를 진작하여 민족존영의 핵심력을 정성晶成하고 전인류 사회발전의 신방향 계도’였고, <동도교>의 교의체계의 핵심은 ‘단군, 수운水雲, 증산 삼위성인三位聖人의 가르침을 일체로 받드는 것’이었으며, <증산종단친목회>에서는 ‘<증산교단통정원>과 <증산대도회> 등 연합체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을 그 취지로 삼았다.
그가 설정한 신앙은 「단군-수운-상제님」으로 이어지는 ‘삼단신앙(三段信仰)’으로 체계화 되었다. 이러한 내용들은 다분히 ‘민족’을 ‘종교’에 우선시하는 의도가 보이는데, 특히 ‘단군’을 내세워 ‘민족’을 중심에 두고 여러 종교들의 교리를 통합하려 했다는 측면에서 단군민족주의적 성격이 짙다고 하겠다.
여기에서 ‘민족적 통일종교 개창’의 성격이 특히 문제되는데, 이는 연합체에 서로 다른 교의체계를 지닌 동학계 교단이나 단군계 교단도 함께 포함하려는 경향 때문에, 상제님의 사상에 의한 교의체계를 성립시켜 그 종교적 이상을 추구하기 보다는 민족의 ‘시원이념始原理念’이라고 하는 것을 내세워 한국의 신종교들을 모두 포섭하여 새로운 ‘민족의 종교’를 만들고자 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성향은 이정립이 설정한 교의체계의 내용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에 의하면, ‘단군신화의 상징적 내용이 우리 민족의 시원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인데, 이것이 역사를 통하여 변화·상실되어갔으나, 수운을 거쳐 상제님에 이르러 다시 중광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을 삼위일체三位一體로 신앙하는 대종교와 동학계 종단의 교의, 그리고 증산사상을 아우르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하겠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가 설정한 신앙은 「단군-수운-상제님」으로 이어지는 ‘삼단신앙三段信仰’으로 체계화 되었다.
이러한 내용들은 다분히 ‘민족’을 ‘종교’에 우선시하는 의도가 보이는데, 특히 ‘단군’을 내세워 ‘민족’을 중심에 두고 여러 종교들의 교리를 통합하려 했다는 측면에서 단군민족주의적 성격이 짙다고 하겠다.
이러한 사상적 변용들은 결국 이정립의 민족주의적 사상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하겠다. <팔파연합회> 이후 상제님을 신앙하는 교단들의 연합운동은 최근까지 지속되었으나, 그 사상과 교의체계는 단군민족주의의 영향 하에 증산사상이 변질되고 타 종교의 교의와 혼합되는데 일조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Ⅳ. 민족주의적 변용의 문제점
1. 사상의 민족주의적 왜곡
앞에서 일련의 연합운동에 나타나는 목적과 사상적 성격이 민족주의적 성향을 지니고 있음을 고찰하였다. 이러한 민족주의적 성향은 민족주의 자체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어느 정도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형태의 집단주의는 소수의 이익을 다수의 이름으로 가장하고 다수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민족주의는 강한 혈연적·문화적 유대를 기반으로 내부의 이해 갈등을 철저히 은폐·봉쇄하고 타민족과의 대결과 충돌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 ‘민족’이라는 상징기제象徵機制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민족의 역사 찾기’를 먼저 시작한다.
민족주의사학에 의해서 민족주의적 상징이 형성될 때 민족의 주체는 되도록 오랜 과거부터 존재해야 하며, 그 오랜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하나의 ‘단선적單線的인 정통正統’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과거의 시간을 관통하는 ‘우리’라는 확실하고 영원한 존재야 말로 지금의 우리에게 안정감과 자신감을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한국의 민족주의사학은 단군신화를 통한 고조선古朝鮮 민족을 그 기원으로 삼았으며, 이후 단일혈통을 이어온 민족이라고 하였다.
단군에 관련된 이러한 의식은 조선인의 근대적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민족적 통합을 이루어 내기 위하여 몇몇 단군이미지를 통하여 재생산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 인식은 역사연구의 인식론적 가치를 훼손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식 지평을 고정된 민족적 형식에 가둠으로써 현실에 열려 있는 건강한 실천적 지향指向을 굴절시킨다.
그리고 민족주의적 역사 해석은 많은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민족주의 사학의 ‘단선적 정통성’을 중시하는 경향은 증산사상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도 비슷한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즉 한국 종교신앙의 정통성을 단군―화랑도―동학―상제님이라는 일련의 맥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단순화된 맥락은 이정립에 의해서 처음 시도된 것이었다. 그는 <증산교통정원> 활동 당시 단군에서 비롯된 홍익인간·재세이화라고 하는 한국의 ‘시원이념’을 수운을 중간 매개로 하여 상제께서 다시 중광하였다고 하고, 「단군-수운-상제님」으로 이어지는 삼단신앙체계를 주장하였다. 이것은 그가 종단의 연합을 통하여 추진하고자 한 ‘민족적 종교’와 ‘민족적 신앙’의 형성을 위해, 증산사상을 중심으로 동학계열과 단군계열의 종교사상을 혼융混融하고자 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었다.
이렇게 상제님의 사상이 고조선의 종교사상을 계승했다는 해석은 “예전에도 없었고 이제도 없으며 남에게 이어 받은 것도 아니요, 운수에 있는 일도 아니요, 다만 상제에 의해 지어져야 되는 일”이라고 하는 『典經』의 내용에 비추어 보았을 때, 본래 의미와 상충되는 해석임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해석은 민족주의적인 목적에 의하여 왜곡된 것으로 이해된다.
민족주의에 종교가 결합될 때 종교의 절대적·보편적 가치는 ‘민족’이라고 하는 가치에 그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즉 종교가 민족이나 국가의 이익에 이용됨으로써 주객이 전도될 위험성을 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의 가치는 축소되어 도구나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며, 민족주의의 방향성에 의해서 그 종교의 교의는 재단(裁斷)될 가능성이 크다.
민족주의사학에서는 또한 민족의 기원起源을 최대한 고대古代로 설정하고자 했고, 그것이 ‘단군’이다. 신화에 의하면 단군은 하늘로부터 하강한 환웅의 아들이다. 이에 따라 한민족은 천속민족天屬民族이라고 하는 한국적 선민의식選民意識이 드러난다. 선민의식은 민족적 사명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 이 경우 민족주의는 쉽게 패권주의로 전환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증산사상도 변용을 일으키고 있는데, 상제님께서 조선에 강세하셨기 때문에 한민족은 절대자로부터 선택된 민족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따라서 천지공사는 조선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로 인해 한국은 세계의 종주국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한국 민족이 타 민족과 나라를 지배하는 민족이 된다는 내용은 일면 선민의식을 넘어서 패권주의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상제님께서는 “참화 중에 묻힌 무명의 약소민족을 먼저 도와서 만고에 쌓인 원을 풀어주려”한 것임을 밝혀, 상제님의 조선강세는 해원의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은 상극에 지배된 선천에 줄곧 무명의 약소민족으로 살아오면서, 상대적 약자로서 수많은 원을 쌓아왔고, 이러한 약자弱者의 원을 먼저 풀어주고자 이 땅에 강세하신 것이다. 즉, 선천의 세계를 참혹하게 만들게 된 가장 핵심적인 원인이 되었던 원을 해소하기 위한 일환으로 그 폐해가 가장 심한 곳으로 강세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민족주의는 자민족과 타민족을 구분함으로써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한다. 그러나 민족주의가 이러한 사회적 순기능에 그치지 않고, 이분법적 사고와 선택을 강요하며 자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게 되면 그 역기능의 성향을 드러내게 된다. 이에 더 나아가 자민족 중심주의적인 민족주의는 민족을 본래의 모습 이상으로 과장하거나 확대 해석하여 민족을 필연적이며 당위적當爲的인, 그리고 마치 보편적 실체實體로서 인식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민족주의에 종교가 결합될 때 종교의 절대적·보편적 가치는 ‘민족’이라고 하는 가치에 그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즉 종교가 민족이나 국가의 이익에 이용됨으로써 주객이 전도될 위험성을 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의 가치는 축소되어 도구나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며, 민족주의의 방향성에 의해서 그 종교의 교의는 재단裁斷될 가능성이 크다.
대순사상에 있어서도 단군민족주의의 역기능적 성향과 결합되어 그 내용이 민족주의적으로 왜곡·축소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만약 상제님의 사상에 대한 민족주의적 해석에 현혹되어 왜곡된 사상을 전파할 경우, 이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양산하게 되어 왜곡된 내용이 대순사상의 본래적 교의인 것으로 오인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는 상제님의 사상에 대한 민족주의적인 해석을 지양하고 그 본래적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여야 한다.
2. 보편성·세계성의 결여
김홍철 교수는 한국신종교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 그리고 이것을 해결치 않으면 자체의 발전은 물론 한국문화발전에 역기능으로 나타날지도 모르는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중 첫 번째가 ‘교리와 사상면에서 합리성과 과학성이 결여되어 현대 이후의 사회에서 역할하기가 점점 어렵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조의 가르침에 대한 합리적 해석, 교조가 제시한 상징적 가르침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하고, 그것을 새롭게 정립시켜야 한다고 지적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세계종교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이러한 지적은 대순사상에 있어서도 중요한 문제를 시사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몇몇 교단들에 의해서 증산사상이 민족주의적으로 왜곡된 현상이 있으며, 이러한 현상에 대순사상이 영향을 받는다면 교의를 이해하는데 상당한 오류가 생겨서 종단이 발전하는데 큰 장애로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민족주의적으로 왜곡·축소된 종교사상은 그 종교의 신도信徒가 아닌 사람에게는 그 사상에 대한 오해로 인하여 그 종교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애초에 박탈할 수 있으며, 신앙인信仰人에게도 영향을 미쳐 그 활동이 민족주의에 영향 받음으로써, 타 종교나 타 민족, 또는 타 집단에 대해 배타적 성향을 나타내게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종단의 민족주의적 성격으로 인하여 세계적 보편종교로 발전하는데 있어서 장애로서 작용하여 포교활동을 와해시키기도 한다.
대순사상의 교의는 종지(宗旨), 신조(信條), 목적(目的)으로 대별할 수 있는데, 목적에 있어서 지상신선실현(地上神仙實現)이라고 하는 개인의 인간완성을 지향함과 동시에 지상천국건설(地上天國建設)이라고 하는 세계적 이상(理想)을 명시하고 있으며, 선천 현실의 모든 문제를 음양합덕(陰陽合德)·신인조화(神人調化)·해원상생(解相生)·도통진경(道通眞境)이라고 하는 종지 안에서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내용을 지니고 있다.
한편, 기시모토 히데오岸本英夫에 의하면 세계종교(world religion)는, 인종·민족·국적·성별·계급을 초월해서 무릇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퍼져 갈 수 있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 특징은 구상構想이 세계적 규모를 갖춤과 동시에 그 초점이 순수한 개인에게까지 좁혀지며, 인간의 문제해결의 조건을 극한점까지 단순화시키며, 어떠한 민족적·사회적 경계도 방해되지 않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리고 종교가 시대를 초월하고 존속해서 그 소임을 수행해 나가려면, 인간에게 궁극적인 이상理想을 제시할 것과 ‘인간 문제’에 대한 ‘결정적인 해결 수단’이 있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순사상은 교의상 세계종교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대순사상의 교의는 종지宗旨, 신조信條, 목적目的으로 대별할 수 있는데, 목적에 있어서 지상신선실현地上神仙實現이라고 하는 개인의 인간완성을 지향함과 동시에 지상천국건설地上天國建設이라고 하는 세계적 이상理想을 명시하고 있으며, 선천 현실의 모든 문제를 음양합덕陰陽合德·신인조화神人調化·해원상생解相生·도통진경道通眞境이라고 하는 종지 안에서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내용을 지니고 있다.
특히, 해원상생은 현실 속에서 고통 받는 다수의 선각자와 민중들의 아픔을 치유하여 새로운 사회를 여는 구원의 원동력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21세기의 고도로 정보화된 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많은 문제들이 소외疏外의 문화에서 파생될 가능성을 안고 있는데, 이렇게 소외로 인한 문제들을 해원사상의 이념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견해는 미래의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으로서의 대순사상에 대한 이해를 환기시킨다.
이렇게 세계종교로서 성장할 충분한 가능성을 지닌 대순사상이 민족주의와 혼융되어 왜곡됨으로써 ‘민족적’ 종교로만 이해된다면, 이것은 종단이 세계종교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을 막는 저해요인이 될 것이다. 더욱이 대순종단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실천원리가 해원상생이며, 이것을 이루기 위한 한 방법이 ‘포덕천하布德天下’라고 했을 때, 그것을 행할 사상적 근거를 민족주의로 인해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Ⅴ. 맺음말
대순사상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단군사상을 부활하여 고대로 회귀하거나 동이족의 ‘찬란했던’ 문화를 되살려 ‘민족’의 우월함을 천명闡明하는 것이 아니며, ‘민족’이라는 이름하에 여러 종교의 교의를 혼합하여 ‘민족적 종교’를 구성하는 것도 아니다.
오늘날의 종교는 그 존폐를 논할 정도로 세속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종교가 민족주의에 이용되어 강대국의 패권주의에 근거이념을 제공하거나, 이러한 패권주의에 폭력으로 맞서는 테러 등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이념적 역할을 행함으로써 국제적 평화를 와해시키는 기능을 하는 예가 많아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