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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논단대원사 공부의 이해에 나타난 종통의 천부성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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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철 작성일2017.03.30 조회4,9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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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大院寺) 공부의 이해에 나타난 

종통(宗統)의 천부성(天賦性)에 대한 고찰(考察)

대진대학교 대순종학과 교수 박용철

 


1. 머리말

 

강성상제姜聖上帝의 유지를 계승하여 50년 공부 종필로써 전하신 조정산 도주, 그리고 조정산 도주의 유법을 숭신하여 귀의할 바를 삼고자 종단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신 박우당 도전, 즉 강증산·조정산·박우당으로 이어지는 대순진리회의 종통은 우리 도의 생명이다. 종통이 바로 서지 않으면 단지 상제의 권능에 대한 신앙만 있을 뿐, 진리가 없게 된다. 따라서 종통이 없는 종단은 실제적이고 적극적인 행위가 나올 수 없으므로 성공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통을 중요시 여기고 강조하는 것은 아무리 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래서 강증산을 신앙하는 많은 종단이 종통을 주장하여 왔고 또한 우리도 많은 경우를 들어 종통의 천부성天賦性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여러 종단 및 개인이 간행한 경전과 문헌에 나타난 대원사 공부에 대해 살펴 보기 위한 것이다. 강증산께서 신축(1901)년에 전라도 모악산 대원사에서 공부하신 내용을 각 경전과 문헌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그에 대한 비교를 통하여 종통의 천부성을 알아볼 것이다. 즉 각 경전과 문헌에서 ①공부동기(공부를 하시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②공부장소(강증산께서 공부를 하신 장소가 어디인지), ③공부기간(신축년 몇월에서 몇월까지 공부하셨는지), ④공부방법(공부기간에 공부장소에서 어떤 방법으로 공부하셨는지), ⑤공부내용(내적인 면에서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⑥공부결과(공부 전과 공부 후의 차이가 무엇인지) 등을 비교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특히 종통의 천부성을 명확하게 보기 위한 방법으로 여섯 가지 중에 ①공부동기, ⑤공부내용, ⑥공부결과에 더 초점을 맞추어서 면밀히 살펴볼 것이다.

   위와 같은 연구를 위하여 살펴보고자 하는 경전 및 문헌은 『전경』·『선도진경』·『진경』·『보광』·『증산천사공사기』·『대순전경』·『보천교지』·『용화전경』·『대성경집』·『천지개벽경』·『천지개벽경연구』·『도전』·『천지만법전』·『순천도교본』·『삼덕교사』·『증산법종교 60년사』 등이다.

 

 

2. 십여 종의 경전과 문헌들에 나타난 대원사 공부가 주는 의미

 

2-1. 초기 경전인 『증산천사공사기』와 『대순전경』에 나타난 대원사 공부가 주는 의미

 

이상호李祥昊(1888~1966)가 저술 및 간행한 『증산천사공사기』와 『대순전경』(초판~6판)은 신축(1901)년에 대원사에서 강성상제姜聖上帝께서 하신 공부를 면밀히 고찰하기 위해 살펴보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강성상제에 대해 전하는 초기 문헌은 보천교普天敎에서 발행한 보광普光 창간호(1923.10.25), 제2호(1923.12.6), 제3호(1924.1.27), 제4호(1924.3.27) 정도이다. 그러나 이 보광지 내용을 살펴보면 신축년에 대원사에서 하신 공부에 대한 내용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상호가 1922년 교경敎經 편찬을 권고하였을 때 차경석은 이성영, 이영호로 하여금 교경敎經을 편찬하게 하였지만 차경석이 강설한 내용이 십여 건에 불과하여 교경 편찬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보천교의 창설자인 차경석이 정미(1907)년 五월에 강성상제를 처음으로 배알하였기 때문에 정미년 五월 이전에 해당하는 7년 전 사건, 즉 신축년에 대원사에서 하신 공부에 대해서 아는 바나 들은 바가 없었기 때문으로 추측되지만 자세히 알 수는 없다.

   그 이후에 간행된 것으로 대원사 공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있는 최초의 경전은 『증산천사공사기』라고 할 수 있다. 『증산천사공사기』는 1924년 7월 보천교로부터 교직敎職을 파면당한 이상호가 1925년 9월부터 김형렬에게 들은 내용과 전에 차경석에게서 기록했던 십여 건의 내용을 보태어 1926년 3월 5일 집필 및 간행한 것이다. 이상호가 간행한 경전 외에 강성상제의 대원사 공부에 대한 내용을 적은 다른 십여 종의 경전은 『대순전경』 5판(1960) 이후에 발행되었다.

   물론 『증산천사공사기』(1926)와 『대순전경』 3판(1947) 사이에 보천교에서 간행한 강성상제와 차경석에 대한 기록인 『교조약사敎祖略史』(1935)와 『이사전서二師全書』(1946)가 있고, 병술(1946)년 4월에 이중성李重盛이 한문체漢文體로 기록한 『천지개벽경天地開闢經』 원서原書가 있다. 그러나 『교조약사』와 『이사전서』의 문헌에는 대원사 공부에 대한 기록이 없고, 『천지개벽경』 원서는 종통과 관련이 없는 경전일 뿐만 아니라 1986년 이후에야 처음 세상에 드러나기 때문에 검토 대상에서 빼고 다음 절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한편 강성상제의 종통을 계승하였다고 주장하던 보천교의 교주 차경석은 무진(1928)년 정월 4일 설법說法을 한 후 강성상제의 강세치성(음 9월 19일)과 화천치성(음 6월 24일)을 빼는 것으로 강성상제에 대한 신앙을 바꾼 일이 있었다. 이것은 강증산에서 차경석 자신에게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던 종통을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무진(1928)년 이후에 보천교에서 간행한 『교조약사敎祖略史』·『이사전서二師全書』·『보천교지普天敎誌』(1964)·『교전敎典』(1981) 등의 문헌도 종통을 고찰함에 있어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으므로 고찰 대상에서 빼고자 한다.

   『대순전경』 3판(1947) 이후에는 생존해 있는 친자종도親炙從徒들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6·25사변(1950∼1953)이란 역경의 세월을 겪은 상태에서 강성상제에 대한 자료 취합이 사실상 불가능하였으므로 전혀 새로운 경전이나 문헌의 발행은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상호가 저작 및 간행한 경전이 타 경전과 문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부정하기가 어렵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다른 어떤 경전과 문헌보다도 『증산천사공사기』와 『대순전경』이 우리 『전경』과 비교 검토되어야 될 경전일 것이다.

   이상호가 간행한 경전의 증보과정을 살펴보면 『증산천사공사기』(1926)부터 이상호가 죽기 한 해 전 간행한 『대순전경』 6판(1965)까지의 경전 내용은 판이 거듭될 때마다 조금씩 증보되었다. 그리고 이상호가 죽은 후 간행된 『대순전경』 7판과 그 후 판은 내용의 수정과 증보가 거의 없다. 특히 『증산천사공사기』부터 『대순전경』 6판까지 대원사 공부에 대한 수정 및 증보를 살펴보면 『증산천사공사기』에 나타난 대원사 공부에 대한 내용이 『대순전경』 초판(1929)에 수정·변화가 있고, 2판(1933)은 초판과 동일하며, 3판(1947)은 초판에 비해 약간의 내용 증보가 나타난다. 4판 이후부터는 3판과 동일하기 때문에 대원사 공부에 대한 고찰은 『전경』(1974)과 『증산천사공사기』(1926), 『대순전경』 초판(1929) 및 3판(1947)을 가지고 면밀히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4개의 경전에서 공부의 외적인 면(강성상제를 수종隨從한 사람이나 다른 사람이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내용)에 해당하는 ②공부장소(강증산께서 공부를 하신 장소가 어디인지), ③공부기간(신축년 몇월 몇일에서 몇월 몇일까지 공부하셨는지), ④공부방법(공부기간에 공부장소에서 어떤 방법으로 공부하셨는지)과 공부의 내적인 면(강성상제께서 말씀이 없으면 알 수 없는 내용 즉 경전의 저술자가 자의自意적인 해석이 가능한 부분)에 해당하는 ①공부동기(공부를 하시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⑤공부내용(내적인 면에서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⑥공부결과(공부 전과 공부 후의 차이가 무엇인지)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강성상제의 공부장소로 『증산천사공사기』는 ‘전주 모악산 대원사大院寺 칠성각’으로 표기하다가 『대순전경』 초판 이후부터는 ‘전주 모악산 대원사大願寺로 기록되어져 있다. 모악산에 있는 실제의 절은 大院寺대원사인데 초판 이후부터 大願寺대원사로 기록된 것은 오기誤記이거나 다른 의도 하에 기록을 변화시킨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전경』은 실제의 절 大院寺대원사를 그대로 적고 있고 또한 공부장소도 지금은 없어진 칠성각 대신 조용한 방 한 칸을 말하고 있다.

   강성상제의 공부기간을 살펴보면 『증산천사공사기』는 2월에 대원사에 들어 간 것으로 적고 있지만 『대순전경』 초판 이후로는 대원사에 들어간 날짜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것도 사실 관계를 확인한 후 2월이 확인되지 않는 관계로 뺀 것으로 추측된다. 단지 3판(1947) 이후부터는 음력 7월 5일을 공부 마친 날로 적고 있다. 이는 강성상제의 대원사 공부에 대한 사실 관계를 확인한 후 7월 5일을 공부 마친 날로 기록한 것으로 생각된다. 어쨌든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진원지는 공부를 수종한 박금곡(?~1937.11)이라고 생각된다.

   강성상제의 공부방법에 대해서 살펴보면 『증산천사공사기』는 ‘홀로 계셔서 사람의 출입을 금하고 폐문수도閉門修道하였다’고 적고 있지만 『대순전경』 초판부터는 ‘도를 닦다’만 적고 있다. 이는 아마도 이상호가 사실 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대원사 공부에 대한 내용을 『증산천사공사기』에 기록하였다가 사실 관계가 틀린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안 후 『대순전경』 초판부터는 확인되지 않은 부분은 생략한 것으로 추측되어진다.

   대순진리회의 경전인 『전경』에서 대원사의 공부기간을 살펴보면 49일이란 구체적인 공부기간이 나타난다. 그리고 공부 방법도 구체적으로 ‘사람들의 근접을 일체 금하고 불음불식不飮不食 하셨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까지의 서술에서 강성상제의 대원사 공부에서 외적인 측면을 비교해 보면 그 기록이 똑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기록의 진가眞假를 떠나서 『전경』과 타 경전의 외적인 측면 비교만으로는 종통의 천부성을 알아보기는 어렵다. 대원사 공부를 통하여 종통의 천부성을 알아 볼 수 있는 것은 공부의 내적인 면에 있으므로, ①공부동기, ⑤공부내용, ⑥공부결과를 4개의 경전에서 비교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전경』에는 강성상제의 대원사 공부동기에 대해 분명히 나타나지 않는 반면에 『증산천사공사기』, 『대순전경』 초판, 3판에 보면 공부동기가 뚜렷이 나타난다. 대원사의 공부동기를 『증산천사공사기』에서는 ‘천사께서 종전의 알며 행한바 모든 법술로는 세상을 건질 수 없다고 생각하사’이고 적고 있고, 『대순전경』 초판과 3판은 ‘모든 일을 자유자재로 하실 권능을 얻지 않고는 뜻을 이루지 못할 줄을 깨달으시고’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이들 경전에는 강성상제께서 공부동기에 대한 직접적인 말씀이 없었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대원사 공부에 대해 누군가에게 ‘가라사대’와 ‘말씀하시기를’이란 표현을 써서 기록한 곳은 없다.

   친자종도親炙從徒로서 가장 먼저 시종侍從한 김형렬은 임인(1902)년 4월에 강성상제를 배알한 후 천지공정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신축(1901)년 대원사 공부에는 시종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원사 공부 당시를 전후前後로 하여 김형렬이 직접 대원사 공부에 대한 말씀을 강성상제로부터 직접 들은 바도 아닌 것이다. 그리고 대원사 공부를 수종한 주지승 박금곡으로부터 말씀을 전해 들었다는 이야기도 없다.

   그렇다면 『증산천사공사기』와 『대순전경』을 저술 및 발행한 이상호가 강성상제께서 대원사의 공부동기에 대해 직접 말한 바를 누구로부터 들었다는 사실을 경전이나 다른 문헌을 통하여 밝히지 못하면 『증산천사공사기』, 『대순전경』 초판, 3판에 나타난 대원사 공부동기는 이상호와 경전 저술에 관련된 사람들의 자의自意적인 해석을 실은 것이 된다. 실제로 어느 경전이나 문헌에도 대원사의 공부동기는 이상호의 자의적인 이해가 아니라 강성상제께서 직접 말씀한 것이라는 것을 추측할 만한 근거가 발견되지 않는다.

   『증산천사공사기』 및 『대순전경』에 나타난 대원사의 공부동기가 김형렬(1862~1932)과 차경석(1880~1936) 및 경전 저술에 참여한 종도와 이상호의 자의적인 이해에서 나왔다면 공부동기는 바로 그들이 이해한 강증산의 인격人格과 신격神格이 되는 것이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모든 일을 자유자재로 하실 권능 즉 삼계대권을 주재主宰할 권능이 없는 강증산께서 삼계대권을 주재할 권능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러한 권능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대원사에서의 수도修道를 택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호는 수도의 내용을 『증산천사공사기』(1926)에서는 기록하지 않다가 초판(1929)에서는 ‘사종마四種魔를 굴복시키고’로 표현하다가 3판(1947) 이후로는 ‘탐음진치貪淫瞋癡 사종마을 극복하고’로 구체화시켜서 기록하고 있다. 이는 이상호와 경전 간행에 관계한 모든 사람들이 탐음진치 사종마를 극복하면 삼계대권을 주재할 권능을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이상호 및 사람들은 공부결과를 공부 동기와 일치시키지 않고 ‘오룡허풍五龍噓風에 천지대도天地大道를 깨달으시고’로만 적고 있다. 즉 ‘천지대도의 대각’과 ‘삼계대권을 주재할 권능을 갖는 일’을 연계連繫하여 설명하지 않고 있다.

   이상호 및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대원사 공부를 다시 한번 정리하면 모든 일을 자유자재로 할 권능을 가지려면 탐음진치의 사종마를 극복하여야하고, 사종마를 극복하면 천지대도를 깨닫고, 천지대도를 깨달으면 삼계대권을 주재할 권능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이치가 타당한지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삼계대권을 주재할 권능을 갖는 분은 오직 한 분이지만 천지대도를 깨달을 수 있는 분은 다수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천지대도를 깨닫기 위한 조건으로 탐음진치 사종마를 극복하는 것은 필요조건이 될지 모르지만 충분조건이 되는지를 알 수가 없다. 예를 들면 중국 팔신선에 해당하는 ‘운방 종리권’과 ‘여동빈’을 포함한 사십팔장四十八將은 대원사 공부에서 제시된 조건 즉 탐음진치 사종마 이상을 극복한 신선들이다. 이들은 다 천지대도를 깨달을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되기 때문에, 더 나아가서 사십팔장四十八將 모두는 삼계대권을 주재할 권능을 가질 수 있다는 식이 된다. 물론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즉 ‘천지대도를 깨닫는 것이 곧 삼계대권을 주재할 권능을 갖는 것이다’는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사종마를 극복하는 것으로 삼계대권을 주재할 권능을 갖는 필요조건은 될지 모르지만 충분조건은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삼계대권을 주재할 권능을 가지려면 천지의 군생만물을 보화普化시킬 무량대덕無量大德을 가진 분이 천지대도를 대각한 신성과 불이나 천지대도를 대각하고자 정성을 드리는 보살의 추대를 받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상호 및 관련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대원사 ①공부동기, ⑤공부내용, ⑥공부결과로는 ‘강증산께서 삼계대권을 주재할 권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상호가 적은 ‘오룡허풍五龍噓風에 천지대도天地大道를 대각大覺하고’라는 표현은 강증산 위에 ‘천지대도를 열은 신격’이 더 존재함을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강증산께서는 우주의 최고신격을 가질 수가 없게 된다. 이는 ‘상제가 아니면 혼란에 빠진 천지를 구할 수 없다’고 ‘원시의 신성·불·보살이 하소연’ 한 내용과 부합되지 않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강성상제보다 더 높은 신격을 가진 분이 있기 때문에 강성상제가 유일한 분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강증산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으면 상제(하느님)로서 인격을 한없이 격하시키게 되는 것이며 이는 강증산이란 분이 인간 하느님(상제)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과 같으므로 종통을 계승하였다고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종통을 계승한 조정산 도주와 박우당 도전께서는 대원사 공부를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전경』에는 강성상제께서 대원사에서 49일 동안 무엇을 위한 공부인지 그 동기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강성상제께서 대원사 공부를 하기 전에 삼계대권을 주재할 권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내용이 직접적이든 암시적이든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대원사 공부 전에도 삼계대권을 주재할 권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구절이 있다. 강성상제께서 경자(1900)년 어느 날 시루봉에서 ‘오방신장五方神將’과 ‘四十八장’과 ‘二十八장’ 공사를 보았다는 내용이 있다. 이 공사에서 나오는 오방신장, 사십팔장, 이십팔장 신명들은 신명계에서도 극상極上의 신격을 가진 신명들이다. 이러한 신명을 불러서 공사를 보셨다는 것은 삼계대권을 주재할 권능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다. 이와 같이 『전경』은 강성상제께서 삼계대권을 주재할 권능을 갖기 위한 어떤 공부나 행위도 나타나 있지 않다. 그것은 이 땅에 강세할 때부터 삼계대권을 가지고 계신 분이 삼계대권을 가지고 오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강성상제께서 7세 때 지은 글인 ‘원보공지탁 대호공천경遠步恐地坼大呼恐天驚’이라고 하신 표현에도 근거한다. 또 강성상제께서 “거짓으로 행세한 지난 날에 세상 사람이 나를 신인이라 하더니 참으로 행하는 오늘날에는 도리어 광인이라 이르노라.”는 말씀에서도 추측할 수 있다. 이 말씀에서 강성상제께서 광구 천하에 뜻을 두고 정유(1897)년 주유의 길을 떠나기 전을 지난 날이라고 하신 것 같고 참으로 행세한 때는 대원사 공부를 한 후를 말씀하신 것 같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강성상제께서 지난날과 오늘날에 권능의 차등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떤 뜻을 두고 진정으로 일을 하였는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즉 삼계대권을 주재할 권능을 가지고 계신 강성상제께서 언제 뜻을 두고 일을 할지 천하의 운세를 살피시다가 신축(1901)년부터 천지공사를 시작하셨던 것이다.

   『전경』은 강성상제를 인세에 강세하기 전에도, 인세에 계실 때에도, 화천 하신 후에도 ‘혼란에 빠진 천지를 바로 잡을 유일한 분’, 즉 삼계대권을 주재할 권능을 항상 가지고 있는 분으로 나타내고 있다. 즉 『증산천사공사기』 및 『대순전경』에 나타난 대원사의 공부동기와 비교해볼 때 이러한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내용은 도주께서 신유(1921)년에 대원사에서 100일 공부를 마친 칠월칠석날 “이곳이 바로 상제께서 천지신명을 심판한 곳이니라.”라고 하신 말씀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전경』은 신축년 초가 삼계대권을 주재할 권능을 갖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삼계대권을 주재할 권능은 당연히 가지고 계셨고, 그 권능을 가지고 선천의 우주 운행을 맡았던 신명과 선천 세상에 관련된 모든 신명을 불러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심판하는 시간을 49일 동안 가졌다는 것이다. 즉 천지신명을 심판하여 그 신명들의 역할과 위치를 새로 조정하면 우주의 질서와 운행이 바뀌게 되므로 당연히 새로운 천지대도가 펼쳐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강성상제께서 음양둔陰陽遁을 시작한 것이며, 또 삼이화三離火를 용사하신 것이다. 이러한 강성상제의 대원사 공부를 통찰한 도전께서는 1974년에 『전경』을 감수監修하시면서 ‘오룡허풍五龍噓風에 천지대도天地大道를 대각大覺’하신 것이 아니라 ‘오룡허풍五龍噓風에 천지대도天地大道를 열었다’고 기록하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강증산이란 분을 어떻게 이해하였느냐’에 따라 그분의 인격과 신격에 대한 견해차는 하늘과 땅만큼 커지는 것이다. 따라서 강성상제를 정확하고 분명하게 이해하는 분이라야 그분의 유지를 받들 수 있으므로 강성상제의 종통을 계승할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강성상제의 종통을 계승하였다고 주장하는 개인이든지 종단이든지 대원사 공부를 단지 ‘천지대도를 대각’하기 위한 공부로만 이해하고 있다면, 또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경전에서 이러한 오류를 인식하고 있지 못한다면 강성상제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기 때문에 종통을 주장할 수가 없다고 생각된다.

 

 

2-2. 『대순전경』 3판 이후에 간행된 경전에 나타난 대원사 공부가 주는 의미

 

이 단락에서는 『대순전경』 3판(1947) 이후에 간행된 타 종단의 경전과 문헌에 나타난 대원사 공부를 통하여 종통에 대한 경위涇渭를 알아보고자 한다. 3판 이후에 나온 강성상제에 관한 경전과 문헌은 이상호가 저술 및 간행한 『증산천사공사기』 및 『대순전경』을 많이 참조하였으리라고 생각되어진다. 특히 대원사 공부에 대한 것은 독자적으로 자료를 얻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되므로 그 영향이 클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째든 3판(1947) 이후에 간행된 경전과 문헌들에서 대원사 공부를 이상호와 동일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이해의 차원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만약에 다른 경전과 문헌에서 대원사에 대한 공부를 『대순전경』과 동일하게 이해하고 있다면 그 경전을 저술한 자나 그 경전을 가지고 종단을 운영하는 책임자는 강성상제의 종통을 이었다고 주장하기가 어렵다고 생각된다.

   먼저 『대순전경』 3판(1947) 이후에 강성상제의 일대기를 기록한 경전을 살펴보면 태극도 교화부에서 편찬한 『선도진경宣道眞經』(1965)·저자는 김낙원金洛元이고, 용화교향도회에서 발행한 『용화전경龍華典經』(1972)·대순진리회 교무부에서 발행한 『전경典經』(1974)·편저인은 이효진李孝鎭이고 이강호가 발행한 『대성경집大聖經集』(1986)·정영규가 찬술하고 강석환이 발행한 『천지개벽경天地開闢經』(1987)·태극도 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진경眞經』(1989)·나종우가 소장하였다는 『성화진경聖化眞經』(?)·이춘풍이 엮은 『천지공사실록동곡비서天地公事實錄銅谷秘書』(1990)·편술자는 이중성李重盛이고 대도연수원 부설 용봉출판에서 발행한 『천지개벽경天地開闢經』(1992)·증산도 도전편찬위원회에 의해 편찬된 『도전道典』(1992)·편저인은 임일송이고, 구본수에 의해 간행된 『천지만법전天地萬法典』(1993)이 있다.

   증산교단에서 발행한 다른 경전과 문헌을 살펴보면 선도교에서 간행한 『고부인신정기高夫人神政記』(1963)·증산법종교에서 간행한 『중화경中和經』(1955), 『화은당실기華恩堂實記』(1960)·삼덕교에서 간행한 『남송선생실기南松先生實記』(1948), 『생화정경生化正經』(1954), 『삼덕교사三德敎史』(1973)·순천도에서 간행한 『초학교본初學敎本』(1969), 『순천도연혁사順天道沿革史』(1973)등이 있다.

이들은 자기 교단의 창시자들의 행적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거나 독자적인 교리에 대한 경전들이다. 물론 강성상제께서 하신 대원사 공부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리고 『천지만법전』(1993)은 개인인 임일송이 1993년 12월 31일에 저술 및 간행한 것으로, 신축(1901)년 겨울부터 시작하여 기유(1909)년까지 9년간의 천지공사 행적을 편년체로 기록한 경전이다. 그래서 신축년 겨울 이전인 신축년 봄에 전주 모악산 대원사에서의 공부에 대한 기록은 없다. 강성상제께서 하신 대원사 공부의 기록이 있는 경전 중에 태극도에서 간행한 『선도진경宣道眞經』 초판(1965)은 『대순전경』 3판(1947) 이후 처음으로 등장한 경전이다.

   그러면 대원사 공부에 대해서 기록을 전하는 경전을 살펴보면 크게 두 분류로 나누어짐을 알 수 있다. 그 첫째는 이상호가 저술 및 간행한 『대순전경』(1947)의 내용을 중심으로 한 경전이고, 둘째는 김낙원이 간행한 『용화전경』(1972)의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경전이다.

   첫째 『대순전경』의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경전으로는 『대성경집』(1986), 『성화진경』을 포함한 『동곡비서』(1990)·『천지개벽경』(이중성, 1992.1)이 있고, 둘째 『용화전경』의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경전으로는 『천지개벽경』(정영규, 1987)·『도전』(1992.11)이 있다.

   이 중 『대성경집』은 종통의 정당성을 보이기 위한 경전이라기보다는 이효진이 ‘증산대학교甑山大學校’을 설립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순전경』의 보정補正 작업을 한 것이다. 또 『성화진경』을 포함한 『동곡비서』도 역시 종통을 보이기 위하여 간행된 경전이 아니라 ‘증산도’를 공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게 하려고 간행한 것이다. 그리고 『천지개벽경』(1992)은 원래 병술(1946)년 4월 이중성李重盛이 한문체漢文體로 기록한 경전이었다. 이 경전의 성격은 이효진李孝鎭이 주해註解를 하고 박경자가 발행한 『증산상제甑山上帝 천지개벽경天地開闢經 주해註解』(1998)의 원저 서문序文에 잘 나타난다. 원저 서문에서 “내 또한 대덕군자大德君子가 세상에 나타나기를 갈망하였으나 언제 나올지를 알 수 없어서”라는 내용을 볼 때 ‘강성상제로부터 이중성에게 도맥이 이어졌다’는 것을 밝히기 위한 경전은 아닌 것이다. 이 경전을 저술한 이유에 대해 원저 서문에서는 “나의 자손들의 장래를 위한 도리로서 무관심할 수 없어서”라고 그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경전 저술 방법은 ‘소문을 듣거나 여러 사람으로부터 들은 말을 참고’하여 기록하였다고 하고, 또 “나의 자손된 자는 이 글을 함부로 세상에 공개해서는 안 되며 또한 이 글의 내용을 전적으로 믿어서도 안 되느니라. 다만 참고 …”라고 한 말에서 이중성은 이 경전에 대해 절대성을 부여하지도 않았다. 또 이중성은 포교활동을 안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이중성이 원저 서문에 병술(1946)년을 포교 87년으로 기록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포교 87년을 역으로 계산하면 경신(1860)년이 된다. 이해는 바로 수운 최제우가 상제로부터 제세대도濟世大道를 계시 받은 해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상제의 포교는 최제우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중성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천지개벽경』(1946)의 구성과 내용에 대한 것은 연구서 역자譯者 서문에 “『천지개벽경』 원본을 깊이 연구해보니 『대순전경』 초판(1929)에 기록된 내용을 참고 하면서 동서同書에 수록되지 않은 공사규범을 합하여 원고를 작성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고 이효진은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효진은 역자 서문에서, 『천지개벽경』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다가 1986년에 처음으로 나왔다고 말한다. 또 역자 서문에 “후일에 대성군자大聖君子가 나와서 보다 훌륭한 연구서가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다.”라고 이효진이 기록한 것은 연구서 원저 서문에 “천운이 순환하여 앞으로 난법 운세가 끝을 맺고 진법 운세가 열리게 되면 성덕군자盛德君子가 세상에 나와서 정필正筆과 정론正論으로써 진법을 밝혀서 상제님의 잘못 전해진 대도덕을 바로 잡으리 …”라고 이중성이 기록한 것과 견해를 같이 하고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이중성이 편술한 『천지개벽경』(1946)과 같은 내용을 담고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된 『천지개벽경』(1992), 『대성경집』(1986), 이효진이 연구하고 발행한 『천지개벽경天地開闢經 연구硏究』(1996), 『증산상제 천지개벽경 주해』(1998)는 저자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특정인의 종통을 밝히기 위한 경전과 연구서는 아닌 것이다.

   어쨌든 종통과 관련이 없는 경전과 연구서이지만 타 종단에서 이 경전의 내용을 인용할 수 있으므로 강성상제께서 대원사에서 하신 ①공부동기, ⑤공부내용, ⑥공부결과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①대원사 공부동기를 살펴보면 『대성경집』 76쪽에는 기록이 없다. 『성화진경』 6-7쪽에는 ‘비로소 모든 일을 자유자재로 할 권능을 엇지안코는 뜻을 일루지 할 쭐 깨다르시고’로 기록되어 있고, 『동곡비서』 23쪽에 ‘비로소 모든 일을 자유자재로 행할 권능을 얻지 아니하고는 뜻을 이루지 못할줄 깨달으시고’로 기록되어 있고, 『천지개벽경』(1992) 28쪽에 ‘曰方今天下之勢왈방금천하지세 匡救天下也광구천하야에 天地大德천지대덕이라도 不有造化之權能불유조화지권능이면 不可爲也불가위야니라.’고 기록되어 있고, 『천지개벽경 주해』 28쪽에 ‘지금 天下大勢천하대세를 살펴보건대 天下천하를 匡救광구하려면 天地천지의 大德대덕을 가졌드라도 造化조화의 권능을 갖지 않으면 불가능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이효진이 『대성경집』을 저술하면서 『대순전경』에 기록된 공부동기를 의도를 가지고 뺐는지는 모르지만 뒤에 나온 연구서에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서는 단지 실수로 누락된 것으로 생각된다. 살펴본 공부동기에서 『천지개벽경』은 그 표현을 한문체로 하였을 뿐이지 『대순전경』 초판의 내용과 동일함을 알 수 있다.

   ⑤대원사 공부내용을 살펴보면 『대성경집』 76쪽에 ‘貪탐·淫음·嗔진·癡치 四種사종 大魔대마를 屈服굴복시키시다.’로 기록되어 있다. 『성화진경』과 『동곡비서』는 단지 ‘도를 닦으시니라’만 기록하고 있고, 『천지개벽경』(1992) 28쪽에 ‘降諸魔항제마하시고’로 기록되어 있고, 『천지개벽경 주해』 28쪽에 ‘貪탐·淫음·嗔진·癡치 四種사종 大魔대마가 上帝상제앞에 와서 항복하니’로 기록되어 있다.

   살펴본 공부내용에서 『천지개벽경』(1992)은 좀 더 포괄적인 마로 표현하였지만 『대순전경』의 내용과 동일하다. 그리고 『성화진경』과 『동곡비서』의 공부내용은 『증산천사공사기』의 내용과 동일하게 기록하고 있다.

   ⑥대원사 공부결과를 살펴보면 『대성경집』 76쪽에 ‘五龍喚風時오룡환풍시에 天地大道천지대도를 體得貫通체득관통하시고’로 기록하고 있다. 『성화진경』 6~7쪽에는 ‘무상대도를 증득하시고’로, 『동곡비서』 23쪽에는 ‘드디어 무상대도無常大道를 증득하시고’로, 『천지개벽경』(1992) 29쪽에는 ‘開天地大神門개천지대신문하시니라’로, 『천지개벽경 주해』 28쪽에는 ‘天地大神門천지대신문을 여시고’로 기록하고 있다.

   살펴본 공부결과에서 『대성경집』, 『성화진경』, 『동곡비서』의 공부결과는 『대순전경』의 공부결과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그리고 『천지개벽경』에서 ‘天地大神門천지대신문을 여시고’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지만 어째든 살펴본 모든 경전은 삼계대권을 주재할 권능을 갖지 못한 강증산께서 삼계대권을 주재할 권능을 갖기 위한 공부가 대원사 공부라는 것에 이해를 같이 하고 있다. 즉 『대순전경』과 똑같이 강증산의 인격과 신격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둘째 영역에 있는 『용화전경』, 『천지개벽경』(1987), 『도전』은 대원사 공부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용화전경』에 나타난 대원사 공부를 살펴보면 그 기록의 양과 공부장소, 공부기간, 공부방법 등이 『대순전경』과 매우 다름을 알 수 있다. 『대순전경』의 대원사 공부의 기록은 4~5줄에 불과하지만 『용화전경』은 7쪽, 『천지개벽경』(1987)은 2쪽, 『도전』은 8쪽의 내용을 담고 있다. ②공부장소를 살펴보면 『대순전경』 초판에서 뺀 칠성각이란 장소가 『용화전경』과 『도전』에는 다시 기록되어 있다.

   ③공부기간을 살펴보면 『전경』과 『대순전경』은 강성상제께서 봄부터 7월 5일까지 모악산 대원사에 계신 것으로 되어 있지만 『용화전경』, 『천지개벽경』(1987), 『도전』은 신축년 6월 초부터 6월 16일까지는 시루산에서 14일간 공부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모악산 대원사공부는 6월 16일부터 7월 7일까지 21일간 공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④공부방법을 살펴보면 위에서 살펴본 대다수 경전은 강성상제께서 외부인의 출입 및 접촉을 일체 금하고 공부하신 것으로 나타나지만 『용화전경』과 『도전』은 여러 가지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용화전경』의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경전은 대원사의 공부 외적인 면부터 『대순전경』의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경전과 상당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천지개벽경』(1987)은 찬술 정영규, 발행 강석환, 발행처는 원불교출판사로 되어 있는 것을 볼 때 특정 종단의 종통을 주장하기 위한 경전은 아닌 것으로 생각되며 대원사 공부 내용을 살펴보면 공부 기간만 모호하게 기록하고 있을 뿐 다른 내용의 기록은 없다. 증산도에서 발행한 『도전』(1992.11)에서 나타난 대원사 공부 기록을 분석하여 보면 『용화전경』의 대원사 공부 내용을 그대로 다 인용하고 있다. 즉 내용은 『용화전경』의 흐름을 그대로 따르고, 그 흐름에 살을 붙이는 것은 『증산천사공사기』(1926)·『대순전경』 3판(1947)·『선도진경』(1965)·『동곡비서』(1990)·『천지개벽경』(1992.1)의 일부 내용을 인용하였고, 그 외 내용은 증산도 도전편찬위원회에서 단장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살펴본 3개의 경전은 사실관계부터 다르니 『대순전경』쪽과 『용화전경』쪽 중 어느 한쪽은 거짓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사실관계를 가지고 진가를 구분하는 논의는 하지 않고 단지 3개의 경전에서 강성상제의 인격과 신격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①대원사 공부동기를 살펴보면 『용화전경』 25쪽에 ‘三界大道主權工夫삼계대도주권공부를 하실새’로 기록하고 있다. 『천지개벽경』(1987)은 공부동기에 관한 내용이 없고, 『도전』 86쪽에 ‘「이제 천하의 대세가 종전의 알며 행한 모든 법술로는 세상을 건질 수 없다」고 생각하시고 「비로서 모든 일을 자유자재로 할 조화권능이 아니고서는 광구천하의 뜻을 이루지 못할 줄을 깨달으시고」’로 기록하고 있다.

   ⑤대원사 공부내용을 살펴보면 『용화진경』은 21일 동안 다양한 사건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찾아보고 싶은 것은 『대순전경』과 같이 ‘사종마를 극복’하는 내용인데 『용화전경』에는 없다. 『천지개벽경』(1987)은 공부내용에 관한 기록이 없고 『도전』 86~93쪽에 보면 수많은 사건의 공부 내용이 나온다. 『도전』 92쪽에 ‘탐음진치(貪淫瞋癡)를 비롯한 마(魔)를 굴복시키시고’란 공부내용이 끝으로 기록되어 있다.

   ⑥대원사 공부결과를 살펴보면 『용화전경』 30쪽에 ‘陰七月七日음칠월칠일에 三界삼계의 大道대도 主權주권을 掌握장악하심으로서 宇宙우주의 權能권능을 任意用之임의용지하신지라’, 32쪽에 ‘陰七月七日음칠월칠일 得道득도하신 後후’란 기록이 있다. 『천지개벽경』(1987)에는 기록이 없다. 『도전』 92쪽에 ‘무상의 대도로 천지대신문(天地大神門)을 여시니라. 이로부터 삼계대권(三界大權)을 주재(主宰)하시고 우주의 조화 권능을 뜻대로 행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모든 경전은 그 표현에 있어서 약간의 차를 보이지만 근본적인 시각은 똑같다. 즉 삼계대권을 주재할 권능을 갖지 못한 강증산께서 삼계대권을 주재할 권능을 갖기 위한 공부가 대원사 공부라는 것에 이해를 똑같이 하고 있다. 즉 『대순전경』과 똑같이 강증산의 인격과 신격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단락에서 살펴본 어느 경전도 강성상제를 우주의 최고 신격을 가진 인간 ‘하느님’로서의 인격을 나타내지는 못하였다. 그러므로 강성상제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였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3. 맺음말

 

도주께서는 어느 누구도 하지 않았던 종교적인 행보를 대원사 공부를 통하여 보이고 있다. 강성상제께서 천지공사를 시작하셨던 대원사에서 무오(1918)년에 3개월, 신유(1921)년에 100일 공부를 통하여 강성상제의 대순하신 진리를 답습하셨다. 그리고 도주께서 신유(1921)년에 대원사에서 100일 공부를 마친 칠월칠석날 “이곳이 바로 상제께서 천지신명을 심판한 곳이니라.”고 말씀하시므로 강성상제姜聖上帝께서 하신 대원사 공부에 대한 정의定義를 내리셨다. 이는 대원사 공부에 대한 기록만 갖고 분석하면 대원사 공부에 대한 처음이자 마지막 정의인 것이다.

   이렇게 도주께서 밝히신 정의는 강성상제만이 ‘천지의 혼란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는 사실 즉 ‘천지신명을 심판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분’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도주께서 밝히신 정의를 그대로 계승하여 도전께서는 강성상제께서 대원사의 49일 공부를 통하여 기존의 우주 질서를 맡고 있는 ‘선천의 도’에서 새로운 ‘오룡허풍에 천지대도를 열었다’고 정의를 하시었다. 이는 강성상제께서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우주의 최고 신격으로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만사를 임의용지하시는 권능 즉 하느님의 자리에서 이탈한 적이 없었음을 도전께서 『전경』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종통宗統과 연원淵源을 계승하신 분이 아니시라면 그 어느 누구도 밝힐 수 없는 진리인 것이다.

   강증산·조정산·박우당으로 이어지는 종통의 천부성을 보여줄 수 있는 여러 사실들 중의 하나는, 도주께서 신유(1921)년에 대원사의 공부를 정의한 후 간행된 『증산천사공사기』(1926)를 비롯하여 어떤 경전과 문헌도 강성상제의 대원사 공부가 ‘천지대도를 대각하여 삼계대권을 주재할 권능을 얻기 위한 공부’라는 이해에서 벗어나 『전경』과 같은 견해를 보이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즉 도주님와 도전님의 강성상제에 대한 이해는 타 종단의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한 유일한 견해인 것이다.

   이러한 강성상제의 인격에 대한 견해차는 곧 신격의 이해에서 큰 차이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즉 대순진리회를 제외한 대다수의 종단은 강성상제께서 신명계의 ‘옥황상제玉皇上帝’로 이 땅에 강세하셔서 천지공사를 보신 후 화천하여 ‘옥황상제’로서 천하의 일을 주재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대순진리회에서는 원시 신성·불·보살이 하소연한 분은 ‘옥황상제’가 아닌 ‘구천대원조화주신九天大元造化主神’이란 신격을 가지신 분이란 것을 도주 옥황상제께서 처음으로 밝히셨다.40 그리고 도주께서 구천대원조화주신이 이 땅에 강세하셔서 천지공사를 보신 후 화천하여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상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上帝’로서의 신격으로 삼계를 주재하시는 것으로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강증산에 대한 인격적 신앙은 같을 수 있지만 강성상제에 대한 이해가 다르면 신격을 신앙하는 것이 달라지므로 도를 믿는 진리와 이치, 즉 법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통이 아니면 법이 없으므로 성공할 수가 없는 것이니 종통은 곧 도의 생명인 것이다.

《대순회보》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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