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순논단대순사상에 나타나는 조화사상(調和思想)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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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치봉 작성일2019.04.27 조회4,911회 댓글0건본문
합천5 방면 선무 최치봉
Ⅰ. 서론
현대사회는 개인적 인간의 가치가 중요시되어, 인간 중심적이고 가치 실현적인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사조로 언급되는 대표적인 철학은 실존주의(實存主義)01라고 볼 수 있다. 실존에 대한 몇 가지 특징을 정리하면 첫째, 실존이란 인간을 이해하는 하나의 새로운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까지 인간은 “본질은 언제나 실존에 앞선다.”라는 전제로 이해되어왔다. 만물이 있기 위해서는 그 원형으로서의 이데아(Idea)02가 먼저 있어야 하기에 이데아, 즉 본질은 언제나 만물에 앞서 있으며, 인간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존주의자들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말한다. 비유컨대 인간이란 기성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이미 결정되어 있는 방식에 따라 살아가지 않고 스스로가 자신을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둘째, 실존이란 진정한 자기, 본래적 자기라고 할 수 있다. 실존주의자들은 소외와 불안이라고 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개성과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채, 일상에 매몰되어 평균적인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을 비판하면서 그것은 인간의 본래적인 삶의 방식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나서 이들은 일상적이고 평균적인 삶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문제 삼고 거기에 관심을 쏟으면서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스스로 결정해가는 존재(실존)로서의 삶을 회복해야 할 것을 강조한다. 셋째, 유신론적(有神論的) 실존주의자들03에게 있어 실존을 회복하게 만드는 계기는 인간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좌절과 절망’이다. 따라서 이들은 이러한 좌절과 절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실존을 꿈꾸는데, 그것은 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와 달리 무신론적(無神論的) 실존주의자들04에게 있어, 실존을 회복하게 만드는 계기는 죽음에 대한 불안에 반응하여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나, 무(無) 위에 떠있는 자신의 인생을 인식했을 때 느껴지는 구토(嘔吐)05이다. 그리고 그러한 양심의 소리와 구토에 반응함으로써 인간은 일상적이고 퇴락한 삶에서 벗어나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실존적 삶을 살 수 있다.06
현대의 실존주의가 인간의 고독을 파헤침으로써 인류 정신사에 있어 인간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은 높이 평가 받는다. 하지만 개별적 인간존재를 대상으로 사유함으로써 ‘개인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게 되었고 타인과의 만남 속에서 파악되는 본래적인 인간파악의 노선에서 이탈했다는 한계가 노정되고 있다.07 인간의 현실 생활은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실존주의가 회복하고자 하는 진정한 자기, 본래적 자기는 자신과의 교섭만을 통해 발견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자기 자신과의 교섭을 넘어 타인과 소통할 때 중요시되는 것이 바로 지금부터 언급하고자 하는 ‘조화(調和)’의 개념이다. 본 논문에서는 현대사회의 이러한 사상적 한계의 극복에 대한 단초를 한국적 조화사상, 특히 대순사상에 나타난 조화사상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논의에 앞서 한국의 조화사상에 주목한 기존의 연구를 살펴보면, 류승국은 “한국사상은 하늘과 땅을 융화한 인도주의가 그 특색을 이루며, 모순된 두 관계가 화합의 차원으로 가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한국 전통사상의 인본적 특징은 생명을 존중하는 데에 기인하며 이러한 생명존중은 유·불·도의 유입에 있어서 ‘조화’를 추구하게 하였다고 보고 있다.08 이은봉은 “한국사상의 흐름을 커다란 관점에서 본다면 다른 사상들을 배척하지 않고, 그것을 통일·조화·종합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이에 최치원이 유·불·도를 결합하는 원천으로 풍류도를 들었던 것으로 논의하고 있으며, 한국 사상이 그 개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외래사상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살펴볼 때, ‘조화’를 바탕으로 하여 모든 사상을 종합하려는 시도로 나타난다고 밝히고 있다.09 민병소는 한국종교사에 일관해 온 하나의 특색으로서 커다란 물줄기가 있다면, 그것은 곧 관용적 포용주의에서 비롯된 ‘조화’의 이상(理想)이라고 역설하였다.10 배문규는 한국 조화사상의 모태와 단군건국으로부터 시작하여 동학의 민족고유사상·유·불·도 융합에 이르는 발전 상황에 대해 언급하며, 이러한 한국 조화사상이 현실의 이념적 갈등, 세대간 갈등, 가치간 갈등, 지역간 갈등의 해결에 대한 중요한 사상이 될 수 있음을 논하고 있다.11 김탁은 동학과 증산교는 유·불·도를 합친 사상이 아니라, 고유사상을 토대로 유·불·도의 내용을 주체적으로 수용한 사상이라고 밝히며, 새로운 사상이 아닌 기존의 고유한 전통을 새롭게 부각시킨 사상으로 보고 있다.12 기존의 연구들을 살펴 볼 때, 비록 “한국철학은 이것이다.”라는 체계적인 정립은 이루어지지 못한 실정이지만, 한국 고유사상의 근간을 ‘조화’로 보려는 통념(通念)은 허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학계의 이러한 통념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조화사상과 대순사상에 대한 관련연구는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또한 인존의 개념을 조화적 관점으로 하여 고유사상과 연계한 연구는 미미한 실정이다.13 대순사상의 대부분은 조화(調和)보다는 조화(調化)에 연구의 초점을 두고 있다. 조화(調和)의 의미를 살펴보면 ‘화(和)’는 사전적으로 ‘서로 뜻이 맞아 사이좋은 상태’를 뜻하는 ‘어울림’을 말하고, 화(化)는 ‘기존의 모양이 바뀌어 고쳐지다’의 ‘변화됨’을 뜻한다. 어울림의 조화(調和)는 기존의 가치가 없어지고 새로운 것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시루떡을 쪄내듯이 그 각자의 성질은 그대로 두면서도 각각이 서로 잘 어울려 상생(相生)한다는 뜻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포도당(C6H12O6)은 탄소, 수소, 산소가 각각의 비율과 그 특정한 분자구조에 의한 적절한 조화를 이룸으로 인해 각각의 분자들은 포도당으로 화(化)한다. 탄소, 수소, 산소 중 어느 한 분자가 무수히 많이 있어도 그 각각이 적절한 비율로 조화(調和)를 이루지 못하면 포도당이라는 화합물이 생성될 수 없듯이 모든 ‘화(化)’는 그 근본에 ‘화(和)’를 바탕에 두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조화(造化) 전에 어울림이 있고 어울림이 되지 않은 조화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민족종교로14서 대순진리회의 상생사상과 인존에 대한 개념은 그 근저에서 한국고유의 조화(調和)와 화합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민족적 고유사상의 연구는 천도교나 원불교에서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철학이나 민족의 역사 속에 이어져 내려오는 사상성이 체계화되고 널리 연구되어야 함은 언급할 필요도 없이 중요한 작업일 것이다. 또한 한국 문화의 세계화에 있어 문화적 사상의 바탕을 이루는 민족종교 역시 반드시 언급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대순진리회가 진정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민족종단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대순사상의 관점으로 통하는 한국적 고유사상의 학문적 체계를 갖춘 연구가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이에 본 논문은 한국적 사상의 근저라 할 수 있는 ‘조화(調和)’의 사상에 주목하고, 대순사상의 이상적 인간관인 인존(人尊)에서의 조화적인 측면을 밝힘과 동시에 그 가치를 논의하고자 한다. 논문을 전개함에 있어 우선 한국사상의 ‘조화’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한국적 조화사상인 단군고기에서의 하늘과 땅의 조화, 그리고 최치원의 풍류도(風流道)에서 볼 수 있는 유불도의 조화에 이어 후대에 이어지는 원효의 일심사상을 통한 화쟁(和諍)의 조화논리, 지눌의 정혜쌍수(定慧雙修)를 통한 선교(禪敎)조화, 율곡의 리기지묘(理氣之妙)에 의한 리기(理氣)의 조화들을 말한다. 또한 한국적 조화사상을 바탕에 두고 인본주의적인 측면이 강화된 근대 신종교로서 동학에 대한 언급과, 대순사상에서 인존의 조화성과 상생·평화사상이 지니는 조화적 측면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Ⅱ. 한국사상의 조화(調和)
1. 조화(調和)사상의 한국적 원류
한 문화, 한 언어권을 형성하며 하나의 역사를 하는 경우에도 거기에는 분명 그러한 복합문화적·역사적 유산을 하나로 묶어주는 지속성이, 그리고 그 지속성을 지탱해주는 사유구조의 공통성이 있을 것이다.15 그렇다면 한국 사상의 특색은 무엇인가? 한국 사상의 흐름을 커다란 관점에서 본다면 다른 사상 형태들을 배척하지 않고 그것을 통일·조화·종합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16 이러한 조화사상은 한국의 식생활, 문화, 종교, 철학, 생활양식 등 전반에 걸쳐 나타나며 현대뿐만 아니라 과거의 역사적인 기록, 민담, 신화, 그리고 한국의 무교, 유교, 불교 등의 각 사상에도 나타나는 한국을 언급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조화사상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그리고 언제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문자로 기록된 우리 신화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비중 있는 신화인 단군신화에서도 조화사상이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庶子)인 환웅(桓雄)이 계시어, 천하(天下)에 자주 뜻을 두고 인간 세상(人間世上)을 탐내어 구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 태백산(三危太伯山)을 내려다보니, 인간 세계를 널리 이롭게 할만 했다.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내려가서 세상을 다스리게 했다. 환웅(桓雄)은 그 무리 삼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꼭대기의 신단수(神壇樹) 밑에 내려와서 이곳을 신시(神市)라 불렀다. 이 분을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한다. 그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을 주관하고, 인간의 삼백예순 가지나 되는 일을 주관하여, 인간 세계를 다스려 교화하였다. 이 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았는데, 늘 신웅(神雄, 환웅)에게 사람 되기를 빌었다. 때마침 신(神, 환웅)이 신령한 쑥 한 심지[炷]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했다.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 날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 곰과 범은 이것을 받아서 먹었다. 곰은 기(忌)한 지 삼칠일(三七日) 만에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능히 기하지 못했으므로 사람이 되지 못했다. 여자가 된 곰은 그와 혼인할 상대가 없었으므로, 항상 단수(壇樹) 밑에서 아이 배기를 축원했다. 환웅(桓雄)은 이에 임시로 변하여 그와 결혼해 주었더니, 그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이름을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 하였다. 단군은 요(堯) 임금이 왕위에 오른 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平壤城)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朝鮮)이라 불렀다. 또 다시 도읍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에 옮겼다. 그 곳을 또는 궁홀산(弓忽山)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 한다. 그는 일천 오백 년 동안 여기서 나라를 다스렸다. 주(周)의 무왕(武王)이 왕위에 오른 기묘년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며, 단군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기었다가 후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 산신(山神)이 되었는데, 그 때 나이가 1908세였다.17
단군신화는 환인의 아들인 환웅이 인간세상에 내려가기를 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환웅은 본래 하늘나라에 있었고 또 남성이니 양(陽)이다. 그 양과 지상의 웅녀인 음(陰)이 합쳐서 인간 단군을 낳았다.18 여기서 인물들의 상징성은 바로 하늘의 양과 땅의 음인 양극적인 요소를 나타내며, 이에 단군은 이런 양극단적 요소의 조화로 인해 새로 융합된 상징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곧 하늘과 땅이라는 양대 질서를 화합하고 포괄하는 것이 바로 단군이다. 나아가 환웅이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올 때 함께 온 풍백, 우사, 운사 등의 신들이 지상에서 일을 행함으로 천상계의 질서와 지상의 질서가 조화를 이루게 됨을 알 수 있다. 하늘에 있던 신이 지상으로 내려온다는 신화의 구조는 ‘천신강림 사상’을 나타내는 것이고, 이렇게 지상에 내려온 환웅이 단군을 낳게 됨은 곧 신이 인간을 낳음이며, 환웅의 신성이 단군의 인간성 안에 내재됨을 뜻한다. 이것은 초월적 신성의 내재화로 ‘내적 초월주의’라 할 수 있다.19
단군신화의 단군의 존재는 구조적으로 보았을 때 삼재(三才)의 천(天)과 지(地)의 조화와 중간자적인 역할은 인(人)이 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신(神)의 궁극적인 요소가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음은 인간의 마음이 초월적 신성을 포함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결국 단군신화는 삼재사상에 비추어 보았을 때 환인이 천이며, 웅녀는 지이고, 단군은 인으로 각자의 고유한 가치와 목적을 지니면서도 단군에게로 조화적인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환웅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길을 택해서 인간중심의 원리를 말하는 것은 어느 개인이나 임금, 당파나 소속을 초월하여 통일·조화된 전 인류를 주체와 목적으로 한다. 그러므로 홍익인간의 인간중심은 전민주의(全民主義)나 중민주의(衆民主義)라 할 수 있다.20 이런 조화의 전민주의는 후에 신라의 화백(和白)회의에서도 나타나는데 화백이란 일동(一同)이 화합(和合)하여 평의건백(平議建白)한다는 뜻21으로, 이 역시 조화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위에 언급한 단군신화 외에도 고대의 조화사상을 잘 보여주는 것은 풍류도(風流道)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고유한 도, 곧 민족적 영성을 풍류라 했다. 이는 진흥왕이 예로부터 있었던 영성을 ‘풍월도’라고 한데 대해 화랑제도를 통해 승화된 형태로 나타난 영성을 최치원이 풍류도라고 한 것이다.22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玄妙之道)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 그 풍류도를 설치한 근원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실로 이는 삼교(三敎: 儒, 彿, 道)를 포함하고 있고, 모든 생명체와 접촉하여 그것들을 감화한다. 또한 집에 들어가면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밖에 나아가면 나라에 충성하는 이것은 공자의 가르침이요, 무위로 일하고 행동하면서 말만 앞세우지 않음은 노자의 가르침이요, 모든 악행을 짓지 않고 모든 선행을 받드니 이것은 석가세존의 교화다.23
한국 사상이 그 개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외래 사상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살펴볼 때 모든 사상을 종합하려는 시도로 나타났다는 점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 종합의 원동력은 전통 사상을 매개로 했을 때 가능했다.24 위에서 “삼교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기존에 한국사상의 풍류가 삼교보다 높은 차원에서 외래 사상인 유, 불, 도를 조화하고 통합할 수 있다는 뜻이며, 풍류 자체가 사상적으로 개방적이고 조화적인 면을 내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서로 대립되거나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들을 잘 융합시켜 새로운 하나의 형태로 만들어 가는 주체적인 의식을 조화사상의 특징으로 볼 때 풍류도는 서로 대립되는 유, 불, 도를 통합 할 수 있는 조화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25 이러한 풍류사상의 조화적 측면은 후대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미쳐 유, 불, 도의 가르침을 하나로 조화시키려는 노력인 삼교회통 사상으로 확장되어 나타난다.
2. 불교적 화쟁(和諍), 쌍수(雙修)
1) 원효의 조화사상
한국의 불교는 삼국시대에 전파된 이후로 끊임없이 한국적인 독특한 색체를 가진 불교로 거듭 발전을 거치며 인도, 중국과는 다른 독특한 불교적 관점을 견지해 왔다. 한국 불교의 학자 중 가장 중심이 될 수 있는 인물은 신라후기의 원효(元曉, 617-686)이다. 의상대사와의 해골 물에 얽힌 유명한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원효는 그 불교적 진리를 다른 어디서도 아닌 마음에서 찾았으며, 그의 활동무대는 전적으로 한국에 국한되어 한국적인 성격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
당시 신라의 시대적 배경은 중국의 다양한 교파가 소개, 연구되었으며 다들 자기들의 이론만이 부처의 진정한 뜻이라고 고집하고 논쟁하였다. 비록 본격적인 종파가 형성된 시기는 아니지만 쏟아져 들어오는 불교 이론들 사이의 논쟁을 화해시키고 이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한 화쟁(和諍)이 요구되었다.26 여러 종파로 나눠진 무수한 진리를 조화하기 위해 원효는 그의 저서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펼칠 때에는 무량무변(無量無邊)한 뜻(義)이 그 대종(大宗)이 되고 합칠 때에는 이문일심(二門一心)이라는 법이 그 요체(要諦)로 되어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이문(二門) 속에 무량한 것이 다 포용되고도 조금도 혼란됨이 없으며 무변한 뜻이 일심(一心)과 하나 되어 혼연히 융합해 버린다. 이렇게 때문에, 개(開)와 합(合)은 서로 자존하고 정립과 논파는 서로 걸림이 없는 것이다.27
펼침은 종(宗)이고 여럿 가운데서 하나의 발전을 의미하는 반면, 합침은 요(要)이고 많은 것을 하나로 통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진리가 개(開)하면 종이라 하고 합(合)하면 요라 한다. 원효는 모든 것의 원천을 일심(一心)에 둔다. 일심이란 각자의 마음 깊숙한 내면의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하나의 마음이다. 사람 각각의 망념을 벗어난 본질인 일심의 상태에서는 모든 법이 평등하고 변이가 없고 파괴가 없으므로, 일심은 모든 것의 시작점이자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궁극적인 것이되는 것이다. 이렇듯 일심은 원효가 자신의 저술로 밝힌 화쟁의 근거이다. 그는 중생의 육근(六根)이 모두 일심에서부터 일어나며 다시 육경(六境)에 흩어진 것을 총섭하여 그 본래의 일심의 근원에 돌아가는 귀명(歸命)을 강조하였다.28 기신론은 일심, 이문(二門: 심진여문(心眞如門), 심생멸문(心生滅門)), 삼대(三大: 체대(體大), 상대(相大), 용대(用大)) 등의 내용을 다루는데 기신론의 주석서인 원효의 『기신론별기(起信論別記)』에서 대승불교의 양대조류인 중관학파와 유식학파, 두 가지 대립적인 견해는 화쟁으로 잘 조화되고 있다. 결국 원효의 화쟁사상의 의미는 평화·조화·화합·일승(一乘)·무쟁(無諍) 등을 의미하며, 시(是)와 비(非)의 지양이요, 중생과 부처의 일여(一如)요, 절대와 상대의 조화이며, 모순에 대한 극복이요, 분열에 대한 통일이다.29
어떠한 사상에 논란의 여지가 있고 반대 의견이 존재하고 그 사상을 벗어난 다른 논거의 주장이 가능하다면 그 사상은 완전하지 못한 것이며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전체를 아우르지 못하는 사상일 것이다. 이러한 불완전성을 가진 부분 부분의 사상들을 어떠한 하나의 원리로 엮을 수 있다면 필시 그것은 부분을 설명한 한 가지 사상보다 한 차원 더 높은 사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서 풍류도에서 살펴보았듯이 최치원은 외래사상보다 더 높은 차원의 기존의 한국사상이 있음을 역설하고 한국의 풍류도가 삼교를 포함하고 있다고 밝힘과 동시에 삼교를 조화하고 포함시킴으로 인하여 포괄적이고 궁극적인 의미로 종합하였는데, 원효의 화쟁사상 역시 신라말기의 중관학파30와 유식학파31의 사상적 차이를 더 높은 차원의 일심으로 묶어 조화를 추구했다는 것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결국 원효의 화쟁사상도 조화를 바탕으로 서로 대립되는 유식과 중관사상을 더 높은 차원에서 조화시킴으로써 사상적 화해와 회통을 이루었다고 하겠다.
2) 지눌의 조화사상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의 대립적 양상은 고려초기부터 이미 이어져 왔었는데, 이는 단순히 교리상의 문제에서만이 아니라 당시 정치세력의 분열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전개되었다.32 지눌(知訥, 1158-1210)이 승과에 급제한 때(1182년)는 교종과 선종의 대립이 극심하였으며 무신난으로 인해 정변이 이어지고 사회적인 혼란 또한 걷잡지 못하는 때였다. 이 와중에 수행의 길을 걷기 시작한 지눌로서는 교선의 분쟁을 어떻게 해결할지 늘 고민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고민에 대한 답으로 그는 정혜쌍수(定慧雙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를 바르게 인식하고 수행할 것을 주장하였다. 지눌은 마음을 닦는 것이 “삼계를 윤회하는 중생이 고통 속에서 마음이 곧 부처(佛卽是心)이며, 모든 사람들 마음 가운데 부처의 마음이 있음을 아는 것”33임을 승려조자 알지 못함을 비판하며 그의 사상을 역설하였다.
정혜쌍수의 정(定)과 혜(慧)는 불교의 공부순서인 삼학(三學)34에 속하며 정은 마음을 한곳으로 집중하는 선정수행을 말하고, 혜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명석하게 판단하여 일체의 분별 작용을 없애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정을 선종, 혜를 교종에 대비하여 선교일치 사상으로 이 두 사상의 조화를 꾀하는 것이 지눌의 특색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정혜쌍수는 의천의 교관겸수설(敎觀兼修設)이 교종으로써 선종을 융합하고자 한 데 반하여, 선종으로써 교종을 융섭하고자 한 것이다. 한국에 선종이 전파된 이후 선종과 교종이 양립하여 계승되면서 끊임없이 선과 교를 융합하고 회통하려는 시도가 있어왔으며, 지눌의 이러한 선교융합의 노력은 곧 이론과 실천의 통합 노력이라고도 볼 수 있다.35
정혜쌍수의 선정과 지혜를 동시에 닦자는 것은 돈오(頓悟)라는 이론에 입각한 실천수행이다. 돈오는 참마음을 단번에 깨닫는다는 것으로 『수심결(修心訣)』에 “제불(諸佛)과 더불어 털끝만치도 다름이 없는 것을 알았으므로 돈오라 한다.”라고 밝혔으니, 즉 부처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돈오했다고 해서 해탈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익혀온 악습을 점진적인 수행으로 제거해야 하는데 이 과정을 점수(漸修)라 한다. 이 점수에 입각한 정혜쌍수의 방법에는 삼문(三門)이라는 세 단계 방법이 존재하는데 첫째는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으로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는 것이고, 두 번째는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으로 자신이 본래 부처인 것을 깨닫는 것이고, 세 번째는 경절문(徑截門)으로 해탈을 통한 정과 혜를 모두 떨쳐버린 선의 최종단계라 할 수 있다. 지눌은 불교의 수행이 궁극적으로 얻어야 할 것은 인간의 본성임을 확인하였다. 즉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는 것으로서 자심이 불심이며 자성이 법성임을 깨달아 마음 밖에 부처가 없고 성품밖에 진리가 없음을 밝혀서 그 본연한 심성의 진리를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혹한 중생으로 하여금 끝없이 자신의 마음을 반조(返照)케 하여 청정한 본성의 체를 회복할 것을 강조하였다.36 교종과 선종은 자신의 마음이 본래 부처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근본적 목표라는 것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지눌은 일심에 따라 부처와 중생뿐 아니라, 불교 내의 여러 교리들 역시 결국 하나라는 것을 주장하였는데, 결국 이는 원효와 마찬가지로 일심에 입각한 회통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37
3. 유교적 리기지묘(理氣之妙)
한국 성리학의 논의함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두 인물을 꼽자면 바로 퇴계(退溪 李滉, 1501-1570)와 율곡(栗谷 李珥 , 1536-1584)이며 이들은 16세기 조선의 성리학을 꽃피운 인물이다. 성리학은 하늘의 이치와 사람의 심성(心性)이 일치한다고 하는 천인합일의 명제 아래, 우주 자연의 생성과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적 바탕으로 리기론(理氣論)을 발달시켰다. 다시 이를 근거로 하여 인간 심성의 발생 과정과 그 작용을 탐구함으로써 인간의 도덕적 실천의 철학적 근거를 해명하고자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사단칠정(四端七情)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부각되었다. 사단은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으로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씨 즉 선천적이며 도덕적 능력을 말하며, 칠정은 기쁨, 노여움, 슬픔, 두려움, 사랑, 미움, 욕망의 인간의 본성이 사물을 접하면서 표현되는 인간의 자연적인 감정을 말한다. 사단과 칠정은 각각 윤리적 범주와 인성론의 다른 범주였으나 성리학에서 도덕적, 비도덕적의 대비되는 개념으로 언급되기 시작했다.
퇴계의 리기호발설은 “사단은 리의 발이고 칠정은 기의 발(四端發於理 七情發於氣)”이라 정의함으로써 사단과 칠정을 각각 리와 기의 다른 범주로 분속하였다. 그리고 사단은 리가 발현하여 나타난 정으로 순선(純善)이고, 칠정은 기가 발동하여 나타난 정으로 유선악(有善惡)이라고 하여, 순선한 리의 순수성을 높이는 동시에 인간 본연성을 확보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리기호발을 둘러싸고 이황과 기대승 사이의 14년간의 사칠논변이 전개되었는데, 이를 시발점으로 하여 조선 중엽 300여년 간에 걸쳐 성리학의 인성론이 한국 유학의 학문적 주요 논점이 되었다.
율곡의 사상적 배경은 리철학과 기철학이 양립되는 길목에 있었다. 그는 리는 무위무형(無爲無形)이므로 유위유형(有爲有形)한 기가 발용(發用)함에 있어 반드시 리가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리가 어디까지나 발용의 근거이지, 발용 자체는 아니기 때문에 리기는 상호보완의 관계임을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리와 기가 서로 구별되면서도 분리되지 않는 관계임을 리기지묘(理氣之妙)를 통해 언명하였다.38 결국 리기론에 있어 퇴계는 율곡에 앞서 리 중심의 성리학을 주장하였지만, 이에 반하여 율곡은 리와 기를 동시에 강조하며 리와 기의 조화를 추구하였고 볼 수 있다.
리는 무형이고 기는 유형이며, 리는 무위이고 기는 유위이다. 무형이고 무위로서 유형과 유위의 주(主)가 된 것은 리(理)요, 유형이고 유형으로서 무형과 무위의 기(器)가 된 것은 기(氣)이다.39
리는 무형이고 기는 유형이므로 리는 통하고 기는 국한된다.(理通氣局).40
리는 비록 하나이나 이미 기에 탔으므로 그 나눔이 만가지로 다르다.41
여기서 율곡은 리는 보편적인 하나이고, 기는 개체에 따라 국한되므로 각각의 차이성을 가지게 됨을 밝히고 있으며, 율곡에게 리는 철저하게 이치이고 원리일 뿐 구체적인 모습도 적극적인 활동성도 갖지 않으며, 활동적으로 움직이고 구체적인 만물을 형성하는 것은 기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리는 기를 떠나서는 나타날 수 없고, 기 역시 리가 없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율곡의 철학 사상은 경험적 실재성과 관념적 합리성이 이원화하여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양자가 일원적으로 통일·조화되어 있다는 데에 그 근본적 특징과 의의가 있는 것이다.42 리기개념은 가치적으로 얼마든지 변용 가능하다. 즉 이상과 현실, 이념과 사실, 정신과 물질, 도덕과 경제, 보수와 진보 등 다양한 가치적 적용이 가능하다. 원효의 화쟁사상, 지눌의 정혜쌍수, 율곡의 리통기국은 어느 한 가치에 집착하거나 편견에 사로잡히지 말고 양 가치의 상보성을 인식하면서 아울러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고의 개방성을 의미하는 동시에 열린 마음가짐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념적 정신적 측면과 현실적 물질적 측면, 또는 의리와 공리가 괴리하지 않고 보다 높은 차원에서 조화하는 데 한국 조화 사상의 참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43
4. 동학의 천(天)·인(人)관계
동학(東學)은 1860년 수운(水雲 崔濟愚, 1824-1864)이 신비체험을 겪으면서 시작된 종교로 그 당시 한국은 동아시아 근대화의 혼란기에 있었다. 19세기 내외적으로 각기 서로의 이념과 사상이 충돌하였고, 정치하는 이들의 부패와 억압에 의해 갈수록 민중의 현실이 참담해지고 그 불만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였다. 또한 조선말 양반 사회의 모순과 파탄 속에서 주자학이나 불교 등의 전통사상은 그 영향이 쇠퇴하였고, 천주교가 사회 내적으로 그 세력을 확장하는 시점이었다. 서양세력의 중국침략소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동안의 사회를 지탱하던 가치나 사상에 위기를 절감하게 하였다.
수운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 서양의 힘이 서학(西學)에 있다고 판단하였고, 이러한 서학에 대항하기 위해서 한국의 기존의 사상이 아닌 새로운 사상, 즉 동학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인식을 배경으로 하여 구도의 길에 올랐던 수운은 1860년 용담정에서 절대적 실재와 만나게 되는 결정적인 종교체험을 하게 된다. 당시의 체험에 대해서는 마음이 섬뜩해지고 몸이 몹시 떨렸으며, 세상 사람들이 이르는 상제를 만날 수 있었고, 선약인 영부와 한울님을 위하는 주문을 받았다고 전한다. 또한 내 마음(한울님 마음)과 네 마음(수운 마음)이 하나가 되었으며(吾心卽汝心), 여몽여각(如夢如覺)의 상태에서 새로운 의미의 세계가 환히 열렸고, 피할 수 없는 사명감이 일어났다고 한다.44
수운이 생각하는 한울님(天主)은 인격적이고 유일하신 분이라는 점에서는 다른 종교의 신 관념과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시천주(侍天主)의 관념과 노이무공(勞而無功)의 신 관념은 기존 종교와는 구분되어지는 주목할 만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천주를 모신다는 개념은 종교체험 뒤인 1861년 수운이 지은 주문 중에 ‘시천주(侍天主)’45로 나타나는데, 이는 천주를 모신다는 뜻으로 결국 모시게 되는 장소는 내 몸, 내 마음을 말한다. 모든 사람에게 천주가 깃든다는 개념은 사람의 가치를 높임과 동시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의미도 내포하게 된다. 시천주의 논리에 비추어 보면, 모든 사람을 하늘과 같이 섬겨야 하고 개개인의 인간을 높고 낮음이 없는 평등한 시선으로 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된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상제라 한다.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 (나타난) 그 연유를 물어보았더니 이르기를 나도 공이 없어 너를 세상에 내어 이 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려하니 의심치 말고 의심치 말라.46
“나도 공이 없다”는 노이무공의 말로 비추어 볼 때 기존의 절대적이고 모든 것을 주관하는 절대신의 관념과는 다른, 다소 인격적이며 사람을 통해서 공을 이루는, 인간과 상보적인 성격의 신의 모습을 나타낸다.
무위이화(無爲而化)는 그 마음을 지키고 그 기운을 바르게 하고 한울님 성품에 따르고 한울님의 가르침을 따르면, 스스로 그러하게 되어지는 것이다.47
시천주의 단계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위의 무위이화의 설명에서 보듯이 개인 스스로가 마음을 지키고 기운을 바르게 한 뒤, 실천적인 따름이 있어야 함을 말한다. 위와 같은 평등과 실천적 성격의 이론적 바탕은 2대 교주 해월에게서 정립되어 체계화된다. 양천주(養天主)는 자신 안에 모셔져 있는 천주를 기른다는 뜻으로, 천주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에 자리하게 한 뒤 그 천주의 마음자리를 점점 더 크게 자라게 한다는 의미이다. “나는 어릴 적에 옛날 성인은 반드시 사람 이상의 무엇을 가졌으리라 생각하였더니 내 대신사(大神師)를 좇아 마음을 배운 후부터는 성인도 별 사람이 아니라, 오직 마음을 정함에 있는 것을 알았노라. 마음을 정하면 하느님을 양(養) 할 것이요. 하느님을 양하면 하느님과 사람이 둘이 아님을 알지니라”라는 말이 보이는데, 여기서 보이는 양천주(養天主)의 양은 시천주(侍天主)의 시(侍)의 확대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48
해월의 양천주 사상 외 인간과 신의 관계를 재조명하게 하는 향아설위(向我設位)법은 제사를 조상이 아닌 나를 향해 차려놓고 지내는 법이다. 조상의 영이나 자손의 영이 모두 한울님인지라 서로 상통할 수 있으니 굳이 멀리 떨어져 있는 조상의 영에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미래로 뻗는 살아 있는 자손의 영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훨씬 선진적이라고 본 것이다. 이른바 신인합일(神人合一)의 제사법이다.49 동학의 모시고(侍天主), 기르는(養天主) 사상은 3대 교주인 의암에 이르러 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 계승된다. 이는 동학의 천인관계에서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본주의적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본성, 신성을 깨닫고 그것을 실현하는 삶은 이 지상에서 가능하며, 따라서 이 지상에서 신국(神國)을 펼 수 있다고 본 것이다.50 궁극적 실재를 밖에서 쫓고 있는 서교와는 다르게 동양은 한울님을 언급하면서 그 한울님을 내재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인간이 내재된 초월성을 깨닫고, 깨달음에 따른 무위이화적인 행위를 따름으로 인해 지상천국, 동학의 이상적 세계인 후천이 도래되는 것이다. 이러한 동학사상은 기존에 있던 삼교와 서교의 요소까지 포함한 아주 포괄적인 사상이다. 한국 특유의 포용 및 조화적인 측면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으며, 이런 사상의 뒤섞임 중에서도, 특히 신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인본주의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다. 동학에 나타나는 조화와 인본주의적 사상은 후에 한국의 신종교의 주요한 맥이 되어 나타나게 되는데, 이를 대순사상의 인존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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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실존주의는 20세기 전반(前半)에 합리주의와 실증주의 사상에 대한 반동으로서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철학 사상으로, 이는 “실존이 본질을 앞선다.”로 정리 할 수 있다. 아서 골드워그, 『이즘과 올로지』, 이경아 옮김 (서울: 랜덤하우스, 2009), p.163.
02 이데아론에 따르면 물질적 사물 세계의 저편에 그것의 본질을 이루는 이데아 세계가 존재하는 반면, 현실적, 감각적으로 지각될 수 있는 물질적 사물들은 관념적인 절대적 본질을 불완전하게 모방한 것에 불과하다. 한국 철학사상연구회 편, 『철학대사전』 (서울: 동녘, 1997), p.540.
03 키에르케고르(S. A. Kierkegaard, 1813-1855), 야스퍼스(K. Jaspers, 1883-1969)
04 니체(F. W. Nietzsche, 1844-1900), 하이데거(M. Heidegger, 1889-1976), 사르트르(J. P. Sartre, 1905-1980)
05 사르트르의 최초의 소설 표제임과 동시에 그의 전기 철학의 기본 개념 중 하나이기도 한 이 말은 대자(對自)가 자기 자신을 포함한 사물의 ‘우연성’을 ‘비정립적으로’ 포착할 때의 ‘전신감각적인 기분’을 의미한다.
06 이상일, 『마틴 부버의 실존에 관한 연구』 (건국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4), pp.12-37 참조.
07 남정길, 『마르틴부버』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7), p.94 참조.
08 류승국, 『한국사상의 연원과 역사적 전망』 (서울: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08), pp.586-591 참조.
09 이은봉, 『종교 세계의 초대』 (서울: 벽호, 1997), pp.253-258 참조.
10 민병소, 『한국종교사에 나타난 관용적 포용주의에 대한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0), p.82.
11 배문규, 『한국 사상사에 나타난 조화와 그 의미』 (경상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6) 참조.
12 김탁, 『한국종교사에서의 동학과 증산교의 만남』 (서울: 한누리미디어, 2000), pp.144-150 참조.
13 대순사상의 대부분은 조화(調和) 보다는 조화(調化) 개념에 연구에 초점이 있다.
14 『대순지침』, p.25, “본도는 민족종교이니 민족주체성 계도에 앞장서야 한다.”
15 한상우, 『우리 것으로 철학하기』, (서울: 현암사, 2003), p.14.
16 이은봉, 앞의 책, p.254.
17 『三國遺事』, 『紀異』 第一 古朝鮮.
18 이항녕, 『현대문명과 대순사상』 (경기포천: 도서출판 일심, 2004), p.465.
19 한자경, 『한국철학의 맥』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08), p.27.
20 김승동, 『韓國哲學史』 (부산: 부산대학교 출판부, 1999), p.43.
21 같은 책, p.44.
22 유동식,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 (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7), p.55.
23 『三國史記』, 卷 4 新羅本紀 第 4 眞興王 37年.
24 이은봉, 앞의 책, p.258.
25 배문규, 앞의 논문, p.8.
26 최유진, 『원효사상연구 : 화쟁을 중심으로』 (경남: 경남대학교출판부, 1998), p.17.
27 오법안, 『元曉의 和諍思想硏究』 (서울: 홍법원, 1989), p.21.
28 『大乘起信論疏記會本』, 卷1 (이하 『韓國佛敎全書』 1책 참조) p.735, “所以者 衆生六根 從一心起 而背自原 馳散亡塵 今擧命總攝六情 還歸其本一心之原 故曰歸命 所歸一心 卽是三寶故”
29 김현남, 『元曉和諍思想의 現代的 意義』, 『한국종교』 16 (1991), p.328.
30 다카쿠스 준지로, 『불교 철학의 정수』, 정승석 옮김 (서울: 대원정사, 1990), p.19 참조, “150-250년경 나가르주나(龍樹)에 의해 제창된 종파로 종합적인 부정을 통해 진리에 도달한다고 주장한다. 즉 부정의 부정을 통해서만 나타낼 수 있는 최고의 진리 곧 중도에 도달하고자 노력한다.”
31 같은 책, p.19 참조, “320-400년경 바수반두(世親)에 의해 제창된 종파로 관념의 작용만이 실재한다고 주장한다.”
32 변태섭, 『韓國史通論』 (서울: 삼영사, 2006), p.216.
33 『修心訣』 第一節, “三界熱惱 猶如火宅 其忍淹留 甘受長苦, 欲免輪廻 莫若求佛, 若欲求佛 佛卽是心 心何遠 覓 不離身中.”
34 불교 수행자가 닦아야 할 기본적인 세 가지 공부방법으로 계학(戒學)ㆍ정학(定學)ㆍ혜학(慧學)이 있다.
35 한자경, 앞의 책, p.100.
36 이경원, 『한국의 종교사상』 (서울: 문사철, 2010), p.109.
37 한자경, 앞의 책, p.116 참조.
38 황의동, 『율곡사상의 체계적 이해1』 (서울: 서광사, 2001), pp.35-62 참조.
39 『栗谷全書』, 卷10 書2, 25-26, 『答成浩原』, 제6서, “理無形也, 氣有形也. 理無爲也, 氣有爲也. 無形無爲, 而爲有形有爲之主者, 理也, 有形有爲, 而爲無形無爲之器者, 氣也.”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국역 율곡전서』, 권3, p.81.)
40 같은 책, 卷10, 書2, 26, 『答成浩原』, 제6서. “理無形而氣有形故, 理通而氣局” (같은 책, 권3, p.81.)
41 같은 책, 卷10, 書2, 2, 『答成浩原』, 제2서. “理雖一而旣乘於氣, 則氣分萬殊” (같은 책, 권3, p.53.)
42 류승국, 앞의 책, p.311.
43 이동준, 『16세기 한국 성리학파의 역사 의식에 관한 연구』 (성균관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1975), p.211.
44 표영삼, 『동학(1) -수운의 삶과 생각-』 (서울: 통나무, 2004), p.97.
45 『東經大全』, 『論學文』, “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46 같은 책, 『布德文』, “世人謂我上帝 汝不知上帝耶 問其所然 曰余亦无功 故生汝世問 敎人此法 勿疑勿疑”
47 같은 책, 『論學文』, “曰吾道無爲而化矣 守其心正其氣 率其性受其敎 化出於自然之中也”
48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한국문화사대계. 12, 종교ㆍ철학사(하)』, (서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1), p.756.
49 최준식,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2』 (서울: 사계절출판사, 2006), p.331.
50 한자경, 위의 책,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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