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남거삼천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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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1.03 조회3,923회 댓글0건본문
어느 날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너희들은 손에 살릴 생 자를 쥐고 다니니
득의지추(得意之秋)가 아니냐 마음을 게을리 말지어다.
삼천(三遷)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고 이르셨도다.
(예시 87절)
“너희들은 손에 살릴 생 자를 쥐고 다니니
득의지추(得意之秋)가 아니냐 마음을 게을리 말지어다.
삼천(三遷)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고 이르셨도다.
(예시 87절)
▲ 여주본부도장 (상제님 화천치성, 2016. 7. 26.)
‘삼천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는 상제님의 말씀은 대순진리회 종통의 중요한 핵심을 이룬다. 여기서 삼천의 의미는 숫자 3이 가지는 상징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예로부터 3은 우주의 질서 또는 최고신과 연관 지어 사용돼왔는데,01 이것은 3이 가지고 있는 안정, 완성, 통일, 조화의 상징을 이용한 것이다. 숫자 1은 양수로 남성이며 하늘을 의미한다. 숫자 2는 음수로 여성이며 땅을 의미한다. 1과 2는 아직 안정적이지 못하다. 1과 2가 만나 3이 되면서 1과 2가 가진 대립과 상극이 완화되어 안정된다. 이러한 3이 가지는 안정성은 세 발의 삼각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삼각대는 다리의 길이가 서로 달라도 안정을 취하지만, 다리가 네 개가 되면 오히려 서로의 길이가 같아야 안정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솥[鼎]은 다리가 세 개 있어 안정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3이 가지는 안정과 완성의 상징성은 ‘삼천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라고 하신 상제님의 말씀에도 적용되고 있다.
삼천의 의미는 『열녀전』에 나오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고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옛날 맹자의 어머니가 묘지 근처에 살았더니, 맹자가 자라면서 장사(葬事) 지내는 것을 흉내 내면서 놀았다. 그래서 맹자의 어머니가 시전(市廛) 근처로 집을 옮겼더니, 이번에는 맹자가 물건 파는 흉내를 내며 놀았다. 다시 맹자의 어머니는 글방이 있는 곳으로 이사하였고, 맹자가 글 읽는 것을 따라 함으로 비로소 안심하고 안거(安居)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후에 자식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한 맹모의 정성과 주변의 환경이 교육에 중요하다는 교훈으로 알려지게 된다. 여기서 천(遷)은 ‘옮기다’는 의미로 변화를 내포한다. 이러한 천이 가지는 변화가 자칫 옮기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천을 옮기는 과정으로 본다면 맹모는 공동묘지에서 시장으로, 시장에서 글방으로 옮겼으므로 정확히 말해 이천(二遷)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왜 삼천이라고 했을까? 맹모삼천지교에서 삼천은 변하는 과정이 아니라 장소적인 의미로 파악해야 한다. 맹모의 삼천은 처음 공동묘지에서 시장으로, 시장에서 글방으로 옮긴 것을 말한다. 따라서 삼천의 세 번을 옮겼다는 의미는 ‘옮겨 산 집이 세 곳이었다’는 의미이다. 즉 삼천은 공동묘지, 시장, 글방을 말하므로, 삼천은 세 번의 이동 과정이 아닌 세 곳의 장소적인 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삼천의 의미는 『주역(周易)』에서 삼변(三變)의 의미를 통해서도 유추할 수 있다. 여기서도 숫자 3이 가지는 완성의 상징이 사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수 2에서 3으로의 발전에는 큰 의미가 있는데, 나와 타인 외에 제삼자의 존재를 생각하고, 나아가 제삼자를 독립한 하나로 간주한 것은 커다란 비약이다.02 노자의 생성론에서도 “하나가 둘을 낳고, 둘이 셋을 낳고, 셋이 만물을 낳는다03고 한 것도 역시 3의 중요성을 의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04 이러한 3의 쓰임으로 역이 두 가지의 부호인 음, 양이 삼변하여 팔괘(八卦)를 구성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괘는 3획이 되어야 비로소 성립되며, 여기서 비로소 괘로서의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이때의 삼변도 음양, 사상, 팔괘로의 삼변이다.
삼천의 의미는 『열녀전』에 나오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고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옛날 맹자의 어머니가 묘지 근처에 살았더니, 맹자가 자라면서 장사(葬事) 지내는 것을 흉내 내면서 놀았다. 그래서 맹자의 어머니가 시전(市廛) 근처로 집을 옮겼더니, 이번에는 맹자가 물건 파는 흉내를 내며 놀았다. 다시 맹자의 어머니는 글방이 있는 곳으로 이사하였고, 맹자가 글 읽는 것을 따라 함으로 비로소 안심하고 안거(安居)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후에 자식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한 맹모의 정성과 주변의 환경이 교육에 중요하다는 교훈으로 알려지게 된다. 여기서 천(遷)은 ‘옮기다’는 의미로 변화를 내포한다. 이러한 천이 가지는 변화가 자칫 옮기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천을 옮기는 과정으로 본다면 맹모는 공동묘지에서 시장으로, 시장에서 글방으로 옮겼으므로 정확히 말해 이천(二遷)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왜 삼천이라고 했을까? 맹모삼천지교에서 삼천은 변하는 과정이 아니라 장소적인 의미로 파악해야 한다. 맹모의 삼천은 처음 공동묘지에서 시장으로, 시장에서 글방으로 옮긴 것을 말한다. 따라서 삼천의 세 번을 옮겼다는 의미는 ‘옮겨 산 집이 세 곳이었다’는 의미이다. 즉 삼천은 공동묘지, 시장, 글방을 말하므로, 삼천은 세 번의 이동 과정이 아닌 세 곳의 장소적인 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삼천의 의미는 『주역(周易)』에서 삼변(三變)의 의미를 통해서도 유추할 수 있다. 여기서도 숫자 3이 가지는 완성의 상징이 사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수 2에서 3으로의 발전에는 큰 의미가 있는데, 나와 타인 외에 제삼자의 존재를 생각하고, 나아가 제삼자를 독립한 하나로 간주한 것은 커다란 비약이다.02 노자의 생성론에서도 “하나가 둘을 낳고, 둘이 셋을 낳고, 셋이 만물을 낳는다03고 한 것도 역시 3의 중요성을 의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04 이러한 3의 쓰임으로 역이 두 가지의 부호인 음, 양이 삼변하여 팔괘(八卦)를 구성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괘는 3획이 되어야 비로소 성립되며, 여기서 비로소 괘로서의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이때의 삼변도 음양, 사상, 팔괘로의 삼변이다.
▲ 여주본부도장 (입추치성, 2017. 8. 7)
3의 이러한 상징은 역의 성립에 관한 전설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역의 진리는 깊다. 사람은 세 성인을 거치고, 시대는 삼대를 거쳤다(易道深, 人更三聖, 世歷三古)”라는 말이 있다. 역은 세 성인의 손을 통해 완성되었기 때문에 그만큼 깊은 뜻이 있다는 의미이며, 여기서 세 성인은 바로 복희(伏羲), 주 문왕(文王), 공자(孔子)를 말한다.05 역의 성립도 세 번의 변화가 세 성인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삼천의 변화나 삼변의 변화는 모두 3이 가지는 안정과 완전의 상징과 관련된 것을 볼 수 있다.
삼천이 옮겨진다는 삼변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도 그것은 과정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즉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삼천은 상제님에서 도주님으로의 일천(一遷), 도주님에서 도전님으로의 이천(二遷), 도전님에서 누군가로의 삼천(三遷)의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상제님이 일천, 도주님이 이천, 도전님이 삼천이라는 의미이며, 세 분으로 종통이 ‘완성’됨을 말씀하신 것이다. 즉 삼천은 상제님, 도주님, 도전님 이외에 더 이상의 종통계승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전님께서는 종통이 중요함을 훈시를 통해 다음과 같이 강조하셨다.
삼천이 옮겨진다는 삼변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도 그것은 과정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즉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삼천은 상제님에서 도주님으로의 일천(一遷), 도주님에서 도전님으로의 이천(二遷), 도전님에서 누군가로의 삼천(三遷)의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상제님이 일천, 도주님이 이천, 도전님이 삼천이라는 의미이며, 세 분으로 종통이 ‘완성’됨을 말씀하신 것이다. 즉 삼천은 상제님, 도주님, 도전님 이외에 더 이상의 종통계승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전님께서는 종통이 중요함을 훈시를 통해 다음과 같이 강조하셨다.
“종통이란 도의 생명이며 진리인 것입니다. 종통이 바르지 못하면, 법이 있을 수 없고 경위가 바로 설 수 없으며, 그러므로 그 속에서는 생명이 움틀 수 없으며 만물만상을 이루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도(道)란 신성, 불, 보살의 하소연에 의해 상제님께서 삼계대권을 가지시고 천하를 대순하시다가 사람의 몸을 빌어 이 세상에 오셔서 진멸에 빠진 인간과 신명을 구하시려고 천지공사를 행하셨으며, 그 행하신 바를 계시로 도주님께 전하신 진리를 믿는 것입니다. 『전경』에도 상제님께서 홀로 이룩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도의 연원(淵源)은 구천상제님의 계시[봉서]를 받으셔서 종통을 세우신 도주님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이 연원은 바꿀 수도 고칠 수도 없는 것입니다.”06
대순진리회의 종통은 상제님에서 도주님으로, 또 도주님에서 도전님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결국 “삼천(三遷)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리라”07라는 상제님 말씀은 대순진리회의 종통을 통해서만이 일을 이룰 수 있는 수도의 체계가 완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여주본부도장 (입추치성, 2017. 8. 7)
삼천이 가지는 의미는 도전님께서 화천하시면서 더 이상의 종통을 계승하지 않으므로 명확해졌다. 그러므로 도전님 화천 이전에 상제님을 따랐던 종도들도, 도주님을 따랐던 수도인들도, 도전님을 따랐던 수도인들도 삼천의 의미를 정확히 알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일까, 상제님을 따르던 종도들은 당대에 상제님께서 도통을 베풀어 줄 것이라고 믿었다. 일부 종도는 상제님께 하루빨리 도통을 베풀어 주실 것을 청하기도 하였고,08 일부 종도는 개벽공사가 속히 결정되지 않는 것을 불평하여 자살소동을 벌이기도 하였다.09 이러한 종도들의 재촉에 상제께서는 개벽이란 쉽지만, 이것을 때가 이르기 전에 쓰면 재해만 끼칠 뿐이니 믿고 기다리란 말씀10으로 대신하셨다. 그래서 상제님의 화천은 종도들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온 듯하다. 상제님의 화천을 목도한 종도들이 “상제의 돌아가심이 어찌 이렇게 허무하리오”11라며 한 탄식은 당시 종도들이 느꼈던 절망감이었으리라.
상제님 화천 후 종통계승은 상제님을 직접 따랐던 친자 종도가 아닌 도주님에게 천부적 계시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도주님은 종통계승자로서 도의 법을 세우고, 종지·신조·목적을 정하셨다. 도주님을 따랐던 수도인들 역시 도주님 당대에 도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도주님께서 화천하시기 직전 유명(遺命)으로 도전님에게 종통을 전수하셨다. 하지만 태극도 도인들은 삼천이라야 일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여 도전님을 따르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유명으로 종통을 계승하신 도전님에 의하여 대순진리회가 창설되고 도장이 완공되었으며 시학, 시법 공부 및 수강과 연수가 진행되었다. 도전님의 영도 아래에서도 많은 수도인은 도전님 당대에 도통이 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도전님께서는 1995년 더 이상 누군가에게 종통계승을 하지 않고 모습을 감추셨다. 도전님께서 모습을 감추시고 나서 삼천이 가지는 완성의 의미가 상제님, 도주님, 도전님 세 분이었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이것은 삼천으로 대순진리회의 종통이 완성되고, 그 정립된 종통을 통하여 수도인들이 성공해 갈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삼천이라는 의미는 이제 더 이상의 종통계승자가 없다는 것이다. 즉 대순진리회의 수도체계는 상제님, 도주님, 도전님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따라서 누군가가 종통계승을 주장하는 것은 상제님, 도주님, 도전님을 통해 완성된 신도를 인위적으로 손상시키는 것이다. 물론 도주님으로부터 종통을 계승한 도전님께서는 도전의 유고 시 종무원장·중앙종의회 의장 순으로 그 직무를 대리할 것을 『도헌(道憲)』에 명시하셨다. 그러나 대리는 대표와 다르다. 『도헌』 제17조에는 “도전은 조정산 도주의 유명으로 종통을 계승하여 본회를 대표하고 영도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여기서 도전은 종통계승자로서 대순진리회를 영도하고 대표한다. 즉 대순진리회의 모든 책임과 권한을 대표한다. 이에 비해 대리는 그 책임과 권한이 제한된다. 대리는 남을 대신하여 일을 처리하는 것 또는 그런 사람을 말한다. 즉 남을 대신하고 있으므로 모든 전권이 부여될 수 없으며 그 일을 부과한 사람에 의해 그 권한이 한정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도헌』에서도 대리의 권한을 직무에 한하여 부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직무 대리자는 대순진리회가 잘 운영되어 갈 수 있도록 직무를 대리해야 하는 자로 종통계승자가 될 수 없다.
▲ 여주본부도장 (입추치성, 2017. 8. 7)
그러면 도전님의 화천으로 우리의 일은 완성된 것일까? 이것은 일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상제님의 뜻은 종통에 의하여 수도체계로 완성되었다. 하지만 현재 상제님의 뜻이 완전히 구현되어 펼쳐지지는 않았다. ‘삼천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라는 상제님의 말씀은, 완성된 수도체계를 통하여 아직 우리에게 진행 중이다. 여기서 삼천은 일이 이루어지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즉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삼천인 종통이 필요하다. 하지만 삼천을 통해 수도체계가 완성되었다 할지라도, 우리가 그 법방에 따른 수도를 하지 않는다면 수도인 각자에게 성공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완성된 수도체계를 통한 수도인의 노력은 반드시 요구된다. 삼천이라야 일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는 종통을 통해 확립된 수도체계를 바탕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는 수도가 뒤따를 때 도인들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처럼 종통에 대한 확고한 명시가 없었다면, 대순진리회는 종통계승 문제로 수도인들이 수도에 전념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삼천이라야 일이 이루어진다는 상제님의 말씀은 확고한 종통의 확립을 통해서 혼란의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고, 수도인들에게 이미 확립된 수도법방에 따라 포덕사업에 전념할 때 득의지추(得意之秋)하는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명시(明示)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삼천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는 상제님의 말씀은 더 이상의 종통계승자가 없다는 사실을 수도인들이 자각함으로써, 난법난도자에 현혹되어 대순진리회의 법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어야 하며, 연원의 이치를 통하여 신도로써 짜여진 대순진리회의 수도법방을 인위적으로 바꾸지 말고 수도에 전념해야 성공할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수도인들은 언제나 도전님께서 옆에 계신다는 두려운 마음으로 주어진 수도법방에 따라 수도에 전념할 때 원하는 성공을 이룰 수 있을 명심하여야 한다.
<대순회보 198호>
01 숫자 3의 의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대순회보》 189호 중, 돋보기 ‘숫자 3, 그리고 연원과 종통’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02 카나야 오사무, 『주역의 세계』, 김상래 옮김 (서울: 한울, 2010), p.87 참조.
03 『도덕경』,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04 카나야 오사무, 앞의 책, p.87.
05 카나야 오사무, 앞의 책, p.87.
06 《대순회보》 5호, 「도전님 훈시」.
07 예시 87절.
08 교운 1장 33절 참조.
09 행록 4장 55, 56절 참조.
10 공사 2장 27절 참조.
11 행록 5장 35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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