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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로 찾은 나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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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미영 작성일2020.07.18 조회3,3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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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1 방면 선무 이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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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대학생 때 입도하여 수도에 전념하다가 대학 졸업 후 집안 사정이 어려워 직장을 다녔습니다. 직장인이라 주말에만 치성을 참석할 수 있었고 수강과 연수 참석은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도의 일을 할 때면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마음이 잘 통하는 후각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포덕을 하고 싶은데 사람들한테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서 지쳐있었습니다. 특히 남자들한테 입은 상처는 회복이 힘들었습니다. ‘내가 전생에 남자들한테 상처를 이렇게 많이 줬나?’ 그런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축시기도 모시며 정성을 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땐 낮 1시까지 출근하는 직업이었기에 기도 모시는 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기도를 모실 때면 상제님께 ‘함께 수도할 후각 만나게 해주세요’라고 간절히 심고를 드렸습니다.

  당시 온라인게임을 즐기던 저는 오프라인 모임을 추진했고 각 지역에 있는 사람들과 직접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눈에 띈 사람은 대전에서 온 오빠와 서울에 사는 동갑 친구였는데, 온라인에서 한 팀으로 게임을 많이 했기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두 사람에게 도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대전에 사는 오빠는 거리가 멀어 통화를 주로 했고 2번째 만나는 날 포덕소에 같이 오게 되었는데 오히려 저에게 수도하지 말라고 설득했습니다.

  그 뒤로 시간이 흘러 12월 말쯤 비 오는 날, 날씨 탓인지 적적한 마음에 대화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영등포로 이사 온 지 1년밖에 안 되었기에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불현듯 그 동갑 친구가 생각이 나서 전화했습니다. 그런데 감기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몸살감기에 걸려서 만나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같은 서울이었지만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많이 아픈가 보네, 푹 쉬고 빨리 회복해.”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퇴근하려고 하는데 그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힘없고 아쉬워하는 제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짠해서 오겠다는 겁니다. 집 근처까지 와준 친구랑 한잔하게 되었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와준 친구가 고마웠습니다. 우린 온라인상에서 대화를 많이 했기 때문에 2번째 만남이어도 낯설지 않았고 서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어나갔습니다. 밖에 비가 오고 상당히 추워서 어묵탕에 소주 한잔 마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대화 중에 그 친구가 제 종교에 관해 물었습니다. 저는 대순진리회라고 대답했고 어떤 곳이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그 친구가 관심을 보이는 게 느껴졌고 ‘상제님, 이 사람이 도를 잘 알아들을 수 있게 해주세요’하고 심고를 드렸습니다. 그러더니 포덕소에 한번 가보자는 말에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입도를 권유했지만, 치성은 할 생각이 없다면서 어떤 종교를 믿는지 궁금해서 와봤다고 했습니다. 제가 정성이 부족한가보다는 생각과 함께 왠지 정성을 더 들이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뒤로 우리는 자주 만났고 친구는 제 직장까지 와서 저와 함께 한 시간 거리를 전철을 타고 포덕소에 갔습니다. 저는 전철 안에서 도담 자료를 읽어주었고 친구는 포덕소에 저를 데려다주고 근처에서 기다렸습니다. 제가 교화를 듣고 나오면 한 시간 걸리는 우리 집까지 같이 왔다가 다시 한 시간이 걸리는 자기 집으로 갔습니다. 당시 그 친구는 저를 본다는 의지로 그렇게 힘들게 다녔는데 어찌 보면 조상님께서 자손을 밀어주신 게 아닐까 합니다.

  그렇게 하기를 한 달이 지났을 무렵 포덕소 근처에 도착했을 때 방면 선사께 전화가 왔습니다. 좋은 음식이 있다고 얼른 오라는 겁니다, 친구도 같이. 사람을 좋아했던 친구는 오케이 했고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포덕소 식구들과 식사를 하면서 친해지게 되었는데 그 뒤로 매일 포덕소에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입도치성 얘기가 나왔고 입도하게 되었습니다. 2개월 가까이 들인 노력이 결과로 이뤄지는 순간, ‘정성이면 안 되는 일이 없구나.’ 깨달았습니다. 이후 친구는 저의 후각이자 남친으로 같이 수도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러다 집안에 사정에 생겨 제가 어린 조카를 돌보게 되었습니다. 2년 가까이 조카를 데리고 다니면서 데이트도 하고 포덕소도 가고 도장도 갔지만, 조카를 데리고 수도를 하는 게 쉽지가 않았습니다. 남친과 저는 조카를 더 잘 돌보기 위해 결혼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10월 10일, 결혼 날짜도 너무 좋고 사귄 지 천 일되는 날이라 우리는 상제님께서 맺어준 천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천 일 동안 거의 매일 만났고 안 만난 날은 손가락으로 셀 정도였습니다. 한편 저의 소원이 이뤄지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포덕소에서 먼 곳에 살았기에 ‘근처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 했었는데 그게 현실로 이루어진 날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포덕소 가까이에서 수도를 할 수 있었고 도에 더 가까이 온 것 같아 좋았습니다.

  후각은 선각의 거울이라고 하는 것을 남편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똑같은 장단점이 있는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제가 정성 들일 때 ‘마음이 잘 통하는 후각 만나게 해달라’ 했는데 정말 생각하는 것도 같고 성격도 똑같고 비슷한 업보가 있기에 서로를 보면서 고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남편에게 들은 얘기인데 대전에 사는 오빠가 제가 믿는 종교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많이 했는데 본인은 개의치 않았답니다. ‘도 만날 인연은 정말 다 정해져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신혼 3년간 하지 못했던 일들을 이것저것 해 보고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첫아들을 낳았습니다. 둘째를 계획하기 전에 남편에게 아이를 낳으면 연수를 못 가니 꼭 다녀오고 싶다고 해서 다녀왔습니다. 연수 내내 저는 졸지 않고 교화를 들었고 연수에서 돌아오고 입덧을 시작했습니다. 연수에서 좋은 기운을 받은 아이구나 싶어 기뻤습니다. 게다가 한 명인 줄 알았는데, 분명 점이 하나 보였는데…, 두 번째 병원에 가서 쌍둥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작게 태어난 막내는 인큐베이터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큰 문제는 없다고 하지만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막내 덕분에 보험금과 병원비 국가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막내가 인큐베이터에 있는 동안 제가 한 아이만 돌보면 되니 조리가 수월했던 점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막내에게 고마워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육아로 직장을 그만두니 소득은 줄었지만 5인 가족이라 여러 가지 혜택을 받았습니다. 아이가 하나라면 받지 못했을 혜택들이 너무 많아서 쌍둥이를 주신 게 정말 감사했습니다. 또 제가 도의 일을 할 때도 둘이 알아서 놀아주니 좋았습니다.

  쌍둥이들 출산 후 6개월 정도 지나서 일주일에 두 번만 수업해 달라는 제의를 받고 학교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목요일 2시간, 금요일 4시간 총 6시간 근무인데 급여는 제가 5일제로 근무했던 월급 정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제 업보가 풀린 건지, 복덩이들이 태어나서 그랬는지….

  제게는 도의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남편이자 후각이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남편을 만날 수 있게 해주셔서 상제님께, 조상님께, 선각분들께 감사드리고 우리 멋진 남편에게도 감사합니다. 좋은 인연을 만나게 해주시고 수도를 잘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주신 상제님의 덕화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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