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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찾아온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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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설 작성일2020.12.17 조회4,6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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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10 방면 선무 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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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은 왜 이럴까? 답이 없다, 답이 없어.” 

  제가 입도하기 전 학창시절부터 입에 달고 살았던 말입니다. 앞으로 봐도 옆으로 봐도 거꾸로 봐도 어떻게 해야 집안이 좋아질지 답이 안 나왔던 우리 가족이 제가 도를 닦으면서 많이 변화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의 겁액을 실감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겁액인지 모르고 체념하면서 살았습니다.

 

가족의 겁액 

  우리 가족은 어머니, 아버지, 저 그리고 여동생입니다. 어머니는 제 여동생을 임신하셨을 때 집안에 강도가 들어 목숨이 위험할 뻔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강도는 돈만 훔쳐서 달아났지만, 어머니는 정신적 충격을 많이 입으셨습니다. 게다가 여동생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어머니가 동생을 업고 가다가 교통사고도 났습니다. 어머니는 우울증으로 늘 힘들어하셨는데 정신적 지주이셨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충격으로 우울증이 더 심해졌습니다.

  제가 학생 때 어머니는 항상 누워계시면서 살 희망이 없고 의욕도 안 난다며 우셨습니다. “엄마 먼저 하늘나라에 가야겠다. 너희들 크는 거 보고 죽어야 하는데 엄마 먼저 가서 미안해. 너희끼리 잘살아야 해.” 어머니가 매번 하시던 말씀입니다. 여동생과 저는 엄마 옆에 붙어서 가지 말라고 울었습니다. 어머니는 굉장히 나약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동생은 태어나기 전의 강도 사건과 갓난아기 때 교통사고 때문인지 어린 시절에 매우 불안해했고 산만하여 수업시간에 돌아다니고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이상 행동을 자주 보였습니다. 학교에서 심리 검사 결과 자살 위험이 크다며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집에서는 컴퓨터 하느라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공부도 손을 놓고 학교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스무 살 때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할머니와 고모들의 생계를 홀로 책임지게 되셨습니다. 집안의 빚도 떠안아 아버지는 그 빚을 갚느라 20대에는 일만 하셨는데, 젊은 나이에 일하면서 사기도 많이 당하고 세상에는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불신이 생겼습니다. 게다가 친척들은 돈이 없어도 즐기기 위해 펑펑 쓰느라 현실을 보지 못하고 빚을 지고 살았습니다. 나중엔 사채를 쓰고 파산하고 사촌은 병으로 죽는 등 최악의 상황까지 갔습니다.

  아버지는 자영업을 하다가 운수업으로 전업하셨는데 녹내장 때문에 시력이 나빠져 사실상 운전을 하는 것이 어렵게 되셨습니다. 아버지는 모든 일에 신경을 쓰는 편이라 힘들어하셨고 스트레스로 협심증까지 생겼습니다. 아버지는 시력이 나빠지다 보니 운전하다 사고도 자주 나서 몸이 더 안 좋아지고 가족들도 하나둘 아프기 시작하여 병원비가 계속 들었습니다.

 

체념의 나날 

  모진 풍파를 겪으며 아버지는 저희에게 믿을 사람은 가족밖에 없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이 많으니 사람들을 만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제게 아르바이트를 못 하게 하고 한 시간에 한 번씩 전화해서 뭐 하는지 물어보고 영상통화로 확인하는 등 엄격하게 하셨습니다. 오직 가족들과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새장 속 새처럼 지냈습니다. 저는 모든 일을 아버지와 상의했고 아버지가 다 해결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계획대로 일이 되지 않거나 주변이 따라주지 않으면 심하게 화를 내니 분위기가 험악해지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 대한 애정이 정말 지극하신 분인데 아버지 방식대로 저희를 키우셨습니다. 가족들끼리 시간을 같이 보낼 때 가족들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은 채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일방적으로 이끄셨습니다. 어머니가 우울증 때문에 힘들어하셔도 개의치 않고 가족 여행은 무조건 다 같이 가야 한다며 어머니를 강제로 끌고 가셨습니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 주도 아래 지냈고 불평불만은 쌓였지만, 아버지의 권위에 눌려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학창시절부터 또래 친구들보다 금방 지쳤습니다. 항상 온몸에 원인 모를 근육통을 달고 살아서 나이에 맞지 않게 허약한 애늙은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혈액순환도 잘 안되어 몸이 차가웠고 발목도 자주 삐어 깁스도 자주 했습니다.

  집안 사정으로 대학에 못 가고 회사에 다녔습니다. 해외 공장에 옷을 보내어 완성해서 마트에 납품하는 일이라 동시에 여러 가지 공정을 확인하고 납품일을 반드시 맞춰야 했습니다.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못 하는 저에겐 버거웠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일을 가르쳐주던 사수까지 퇴사해서 제가 그 일을 하니 더욱 힘들었습니다. 주어진 일을 끝내려면 매일 야근을 하고 토요일까지 출근해야지만 일을 겨우 마칠 수 있었습니다.

  퇴근한 후에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동생 공부도 봐주고 놀아줘야 해서 쉴 틈이 없었습니다.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서 밖을 어슬렁거리다가 집에 들어가곤 했습니다. 또래 친구들은 주말마다 밤새며 놀았지만 저는 체력도 약하고 피곤이 늘 가시지를 않아서 놀지도 못하고 일요일에 시간이 날 때는 종일 잠만 잤습니다.

 

도와의 만남 

  그렇게 힘든 나날을 보낼 때 선각을 만나 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입도하고 나서 저희 집안 이야기를 선각분께 얘기했을 때 “그건 집안의 겁액인 것 같은데 풀어나가면 좋아질 겁니다.”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집안이 좋아졌으면 하고 입도식을 했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포덕소에 왔습니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바로 포덕소에 와서 기도를 모셨습니다. 기도를 모시면서 머리가 너무나 맑아졌습니다. 이렇게 맑고 편안해지는 것은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선각분들이 항상 반갑게 맞아주고 제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셔서 좋았습니다. 또 저는 매사에 너무 소극적이라 성격을 바꾸고 싶었는데 수도를 하면 성격도 고칠 수 있다는 말에 관심이 더 생겼습니다. 평일에는 퇴근하고 기도를 꾸준히 모시고 주말에는 교화를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회사에 사수가 없으니 제 일 처리가 미흡했습니다. 한번은 마트 납품일을 못 맞춰 회사에 손실을 입히고 말았습니다. 난감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그때 선사께서 “박내수요, 지금은 회사 다닐 때가 아닌 것 같아요. 이참에 당분간 일을 쉬고 수도에만 전념해보는 건 어때요?”라고 하셨습니다. 제 생각에도 회사에서 더 사고를 칠 것 같기도 하고 몸이 너무 힘들어 회사생활을 버틸 수 없어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수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도를 시작한 초반엔 정말 행복하고 좋았습니다. 도에서 하는 작업이나 행사들이 정말 좋아서 제가 갈 수 있는 곳은 무조건 참여하여 기운을 모셨습니다. 그런데 기운을 모실수록 점점 몸과 마음이 힘들어졌습니다. 방면에서 성을 모시거나 기운이 많은 날에는 어김없이 온몸에 근육통과 떨림으로 바닥과 하나가 되어야 했습니다. 도장이나 회관에 가면 남들은 하나 같이 다 마음이 편해진다고 하는데 저는 우울하고 축축 쳐졌습니다. 게다가 도장과 회관에서 먹는 밥은 맛이 느껴지지 않았고 식판에 담겨있는 음식만 봐도 속이 안 좋아지기도 했습니다.

  그때 선사께서 “포덕을 해서 선무 임명을 모시면 지금보다 기운 감당을 더 잘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하셨습니다. 좋아지는 건 꼭 하고 싶은 마음에 포덕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소심한 성격에 포덕이 정말 힘들었지만, 상제님의 도를 전해서 다른 사람을 잘되게 하는 일이니 집안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포덕했습니다.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선무 임명을 모셨습니다. 정말 내수 때보다 기운 감당을 더 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몸으로 고통이 덜 밀려왔고 도장이나 회관에 가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밥도 정말 맛있어졌습니다.

  도에서 기운을 모시면 정신이 맑아지거나 반대로 힘들어지는 것을 몸으로 겪다 보니 인간의 겁액이 많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도에서 무언가 하려고 하면 처음에는 하기 싫은 마음이 들거나 힘든 게 오지만 그 고통을 참고 견디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지고, 도 기운이 들어와 몸과 정신이 맑아지니 화복의 이치가 존재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 뒤로 힘든 것이 와도 ‘이걸 버티면 좋은 일이 올 거야’라는 생각으로 수도를 하고 있습니다.

 

수도하면서 드러난 나의 모습 

  수도하다 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저의 허물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입도하기 전부터 항상 다른 사람들이 하자고 하는 대로 따라주었습니다. 남들한테 미움받지 않고 모든 사람이 저를 좋아해 주면 좋겠다는 마음에 겉으로 늘 웃는 척하고 착한 사람처럼 행동하면서 지냈습니다. 제가 남들 도와주는 걸 좋아하고 배려심 깊은 착한 사람인 줄 알았고 학창시절에도 학교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아서 말 잘 듣는 모범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수도를 하면서 그런 제 모습이 깨졌습니다. 남들이 포덕하는 모습을 보면 시기, 질투가 폭발하였고 ‘나도 열심히 했는데 왜 저 사람만 되는 거지?’라며 불만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집안에서 아버지가 하고 싶은 대로 하시는 모습에 제 내면에는 욕구 불만이 많이 쌓인 데다 아버지의 말을 항상 흘려듣던 버릇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선각분들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고 반대로 하려는 심보로 겉으로 표현은 안 하지만 속으로는 반항하고 선각분들을 미워하면서 도에 맞지 않는 마음을 많이 가졌습니다. 선각분들이 저를 위해 마음 써주셔도 제 비위에 맞지 않으면 마음에 안 들어 했고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거나 보살펴달라고 관심을 끌기 위해 제멋대로 가버린다거나 연락 두절로 걱정을 끼치면서 반항을 많이 했습니다.

  학창시절에 기분이 좋지 않으면 아버지께서 차로 드라이브를 하거나 맛있는 걸 사주면서 기분 전환을 시켜주셨습니다. 아버지의 말만 잘 들으면 아버지가 모든 것을 해주다 보니 스스로 감정 조절하는 것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도에서도 선각분들이 제 마음을 불러일으켜 주길 바랐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신경 써주시길 원했습니다. 저는 도에 와서 제 마음의 주인은 저이고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받아들이기 싫었고 저에 관해서 해주신 말씀을 감정적으로 생각하고 ‘선각분들은 나를 미워해’라며 단정 짓고 마음을 닫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거나 다른 상황들이 생기면 받아들이지 못하고 화가 먼저 올라왔고 그 감정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또 사람들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경향으로 다른 사람들의 작은 허물을 봐도 무시하고 나보다 더 잘하고 있는지 못하는 게 무엇인지 비교했습니다.

  선각분의 말씀에 청개구리 심보가 올라오면 ‘왜 꼭 그래야만 하는 거지? 선각분들 말씀대로 안 해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겠어!’라는 마음에 제가 해보고 싶은 대로 다 해본 다음에 최악의 상황까지 가봐야 깨달을 것 같았습니다. 정말 하루도 마음이 평온한 날이 없었습니다. 화가 올라오면 온몸이 아프기도 했고 마음에 들지 않았던 상황들을 되씹으며 저의 허물은 반성하지 않은 채 남 탓을 했습니다. 매일 감정 소비를 했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다 갔습니다.

 

변화하는 나와 가족 

  마음이 분란해도 기운은 꾸준히 모시고, 마음이 잘 나지 않아도 쥐어짜면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붙잡으며 이탈하지 않고 항상 도에 있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제 고집대로 하는 것보다 선각분들 말씀대로 하는 것이 발전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더는 감정 소비하는 것도 지치고 화가 나서 몸이 아픈 상태를 겪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지칠 대로 지친 후에야 세상은 순응하며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변수가 생겨도 화를 내지 않고 그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성격과 도에서 드러나는 제 모습은 너무나도 달랐기에 항상 ‘내가 그럴 리가 없어.’라는 말을 달고 지냈습니다. 제 모습을 외면하고 부정하기만 했는데 그러면 발전이 없고 제자리에만 머무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스스로 ‘그럴 수도 있지! 여기에는 부족한 부분을 수도하러 온 곳인데 고치면 되지!’라고 하면서 제 모습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제 마음과 생각들이 변하기 시작하니 신기하게도 가족들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가족들 의견도 듣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계획대로 안 되면 화만 내셨는데 이제는 가족들의 의견을 듣기 시작하고 아버지의 생각을 주장하지 않고 타협하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일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대화해보니 요즘 사람들이 아버지 세대와 아주 다르다는 걸 알았다면서 제가 관심 있어 하는 분야나 좋아하는 음식도 물어보면서 맞춰주려고 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너무 융통성이 없고 고지식했다며 마음대로 해서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눈도 녹내장으로 곧 실명될 것 같았는데 병이 악화는 아니고 진전 속도가 늦어져서 시력을 유지하고 계십니다. 화 기운이 내려가면서 가슴 답답한 것도 줄어든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항상 하늘나라에 먼저 가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는데 요즘에는 그런 말씀을 안 하고 활기차게 지내십니다. 우울증이 심할 때는 무기력해 집안일도 하기 힘들어하셨는데 요즘에는 집안 분위기가 바뀌려면 엄마가 활기차야 한다면서 도배도 새로 하고 손이 안 닿는 곳도 청소하고 아침마다 저의 도시락을 싸주십니다. 최근에는 일도 시작하셨습니다.

  여동생은 인간관계를 단절하고 혼자 방에 틀어박혀서 컴퓨터만 하고 가족들과도 소통을 안 했는데 요즘에는 말수도 많아지고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이 인생을 놓고 살았는데 이제는 삶의 목표가 생겼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모든 가족이 동생은 건강하게 지내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다른 부분은 절대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공부를 시작하더니 4년제 대학 원하는 과에 합격하여서 가족에게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우리 가족 중에서 제가 그나마 제일 밝고 활발한데, 모두 힘들다 보니 가족들은 저한테 의지하려고 했고 힘든 일들을 다 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의지하고 정서적으로도 의지했는데 저는 늘 ‘너는 우리 집 기둥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으며 지냈고 가족들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바닥에 주저앉아 신세 한탄만 하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제가 수도를 하자 가족들 각자 의지를 세우며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려고 하고 경제적으로도 오히려 좋아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입도하기 전 아무리 봐도 집안의 문제를 풀 방법이 없어 답답하기만 했는데 요즘에는 정말 숨이 쉬어지는 것 같습니다. 도를 알게 되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입도 초반에는 수도하면서 자신의 겁액을 풀다 보면 가족들도 연결되어 있기에 가족들도 변한다고 했던 말을 믿지 못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됩니다.

  살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은 생각해보지 않았고 조상님이나 기운, 신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했습니다. ‘그런게 어디 있어’라며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수도를 하다 보니 경험을 통해 음적인 부분이 존재한다는 게 믿어집니다.이 모든 게 상제님의 덕화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게끔 포기하지 않고 도에서 하나라도 깨우쳐주려고 이끌어주셨던 선각 분들과 저를 도와주시는 조상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만 수도를 했는데도 이렇게 달라지는 걸 보니 가족들이 입도해서 각자 수도를 하면 얼마나 더 좋아질지 상상이 잘 안 됩니다. 아직 가족들을 입도시키진 못했지만, 상제님께서 가까이 계심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수도를 열심히 해서 언젠가는 가족들도 입도시켜서 함께 수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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