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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回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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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경원 작성일2017.02.16 조회3,8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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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산방면 교정 강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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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시간의 기억들. 하지만 저에게는 소중한 경험, 초등학교 4학년 어머니를 따라 입도한 저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실업계 고등학교에 입학 원서를 접수하고 시험을 치룬 당시만 해도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였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과정을 장학금으로 무사히 졸업했을 때부터 도의 싹은 시나브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운이 억세게 좋은 놈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면 상제님의 덕화였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도를 깨닫기 위한 저의 시련은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졸업 후 직장 생활에 여념이 없던 21살 때 군 입대를 불과 몇 개월 앞두고 별다른 증상도 없이 허리가 조금씩 아프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걷기도 힘든 지경에 이르러서야 병원에 가서 진찰해 보니 허리디스크였던 것입니다. 형편상 수술은 엄두도 낼 수 없었고 민간요법과 병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주는 통증 완화 주사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 저에게 있어 하루하루는 밥도 먹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포천수도장에서 특수 수련 공부가 있으니 한번 갔다 오면 디스크가 나아질 수 있을 거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저는 포천수도장 특수 수련실에서 4박 5일 과정의 시료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계절은 여름의 절정으로 다다르고 있었고 공부방에서 땀은 비 오듯 흐르는데 오직 ‘이 참을 수 없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세요.’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모시는데 저 멀리서 앰뷸런스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불덩어리 같은 것이 저의 몸을 덮치는 순간, 온 몸이 갑자기 뜨거워지면서 통증과 열기로 인해 참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조금씩 치료가 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4박 5일의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예전과 같은 아픔이 산뜻하게 사라졌고, 어머니께 공부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더니 기쁨을 감추지 못하시며 무사히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안도감 때문인지 한층 밝아진 얼굴로 저를 안아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군 입대도 면제 받을 수 있었고, 무사히 직장 생활도 성실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군대를 가거나 해서 직장을 못나가게 되면 생활고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시간은 물같이 흘러 26살이라는 조금은 늦은 나이에 학업에 대한 미련을 접을 수 없어 야간 대학에 입학을 하였고 그야말로 주경야독으로 앞뒤 돌아볼 겨를도 없이 3년의 시간을 달려왔을 때쯤 IMF가 터졌고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저는 휴식과 더불어 새로운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1년만 더 공부하면 졸업할 대학도, 나름대로 성실함으로 인정받았던 직장도 잠시 접어두기로 결정하고 좀 더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께서 “회관에 종사원 자리가 비었는데 딱히 하는 일이 없으면 일해 보지 않으련?” 하고 웃으시는 겁니다. 어머니께선 몇 번 그런 말씀을 하셨지만 번번이 거절했습니다. 시료 공부로 디스크가 완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는 아직 멀리 있는 신기루 같은 것이었고, 학업 때문에 어머니의 그런 말씀이 머릿속에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그 때는 나도 모르게 별다른 거부감 없이 순순히 그 말씀에 따라서 회관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회관청소하고, 기도 모시고, 낮에는 방면차 운행 나가고 밤에는 축시기도 모시고, 그렇지만 아직까지 도가 가슴깊이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시간이 한 달쯤 흘렀을까 아버지께서도 취직이 되어 조금씩이나마 형편이 나아지고 있을 때쯤 집에서 증조부 제사를 모시는데 마지막에 지방을 태우는 순간 그 재가 천정에 올라가서 한참 동안 내려오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 궁금해서 아버지께 여쭙자 평소보다 훨씬 밝아지신 얼굴로 “오늘은 조상 신명이 응감을 잘 하시는가 보다.”라고 하시는 겁니다. 다음날 그 일을 방면 선감께 말씀드렸더니, “강외수가 도문(道門)에 들어와서 수도를 잘 하니까 조상 신명이 좋아서 춤을 추시는 거란다.”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제야 저는 이제까지 믿지 않았던 보이지 않는 신명을 인정하게 되었고, 지난 시간들이 영화 필름이 돌아가듯 스치면서 저를 둘러싼 고통과 힘든 날들이 ‘조상 선령신들이 그 자손을 척신의 손에서 빼내어 덜미를 쳐 수도할 수 있도록 해 주시는 일련의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그전에는 귀에 들어오지 않던 교화가 땅에 물이 스미듯 조금씩 저의 몸에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방면 선감께서는 고희를 바라보시는 연세에도 자식 같은 저에게 “모든 일이 욕속부달이라. 사람 기르기가 누에 기르기와 같으니 잘 되고 못되는 것은 다 인공에 있느니라.”는 『전경』의 말씀처럼 자모지정으로 도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또 말씀 한마디도 함부로 하시는 법이 없이 항상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으로 길러주셨습니다.

뜨거운 여름, 지친 몸을 끌고 선감 댁을 찾아가면 얼음 띄운 냉커피로 더위를 식혀주셨고, 추운 겨울에는 따끈따끈한 고구마에 우유를 내어 놓으시며 추위를 녹여주시던 분. 하지만 이제는 저의 곁에 계시지 않는 분! 보고 싶습니다. 이런 그리움의 시간도 세월이 지나면 잊혀지겠죠. 그래도 한 번씩 세월의 무게에 닳아 힘이 없어진 굵은 목소리가 듣고 싶어집니다.

 

<대순회보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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