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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방면 방계남 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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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2.16 조회2,9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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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살아가면서 몇 번의 좋은 만남을 가지게 된다. 만남의 순간마저 짧다면,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시간과 장소가 더 소중하게 여겨질 것이다. 원로임원과의 만남도 이와 같다. 

  9월 23일, 청명한 오후에 원로임원인 덕산 방면 방계남 선감을 인터뷰하였다. 시종일관 편안한 분위기로 인터뷰에 응해주신 방계남 선감은 1939년 생으로, 1972년 1월 23일 입도하고, 1978년 8월 17일 보정임명을, 1983년 1월 12일 교감 임명, 그리고 2001년 3월 4일 선감 임명을 모셨다.

 

입도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웃에 친하게 지내던 서동임 선감(서구방면)이 1년 동안 만날 때마다 입도하라고 권유했습니다. 당시 남편은 시 건축계열 공무원이었는데 하는 일도 힘든데다가 아침에 나가면 한밤중에 귀가를 했습니다. 하는 일도 잘되어야 할 것 같고 얼굴이라도 봐야 안심이 되니 그에 대한 걱정으로 조상님께 정성을 드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보통 사람들도 점쟁이를 찾아가거나 절에 가서 집안의 복을 비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의탁해서 하기도 하는데, 도에서는 자신이 직접 소원을 빌어서 하소연 할 수 있고, 매일 기도를 모시면서 하루의 평안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되어 입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입도치성 집사를 부전선감께서 봐 주셨습니다. 제가 배례법이 특이하게 생각되어 여쭤보니 상제님께만 드리는 절이라고 설명해 주셨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수도생활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입도 후 부산 대신동 집에서 기도를 모시면서 동래에 있는 부전선감 댁에 매일 찾아가서 교화를 들었습니다.

  하루는 대학교수 부인이 저희 집에 왔다가 제가 기도 모시는 것을 보고는 뭘 하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제가 들어 알고 있는 약간의 도담(道談)으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석가모니는 선천불이고 미륵은 후천불이라는데 그 운을 받아 일을 하면 잘 될 뿐더러, 절을 찾아가기도 멀고 하니 집에서 정성 드리는 것이 좋지 않겠냐며 교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저를 믿고 해보겠다고 해서 그날로 바로 선감 댁으로 찾아가서 날을 잡고 입도치성을 모셨습니다. 치성을 모신 그 사람이 정말 좋아서 그랬는지 동네 미용실 원장한테도 자연스럽게 권하게 되었고 점차 포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부산선감께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교화를 해주시다보니 대부분은 부전선감께 교화를 들었습니다. 교화할 곳도 따로 없어서 대부분은 부전선감 댁에 모여 교화를 들었습니다. 요일별로 수반들 집에서 모이든지, 주일에 맞춰서 가까이 있는 사람을 모아 교화를 했습니다. 많은 도인들이 모일 장소가 없었던 것이 힘들었습니다. 다행히 미장원에 큰 방이 있어 칠판 하나 놓고 부전선감을 모셔서 교화를 들었습니다. 제가 보정임명을 모실 때까지 부전선감께서 마치 농사지을 때 거름 주고 물 주듯 교화를 해주셨기 때문에 저희가 컸기 때문에 그 고마움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당시는 지금의 수도생활과 많이 달랐다고 들었습니다.

  그때는 교통편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골 친척이 입도를 한다고 하면 찾아가서 치성만 모시고 와도 이틀은 걸렸습니다. 입도치성에 올릴 음식은 지금처럼 주과포로만 준비되는 것이 아니라 제사 모시듯이 밥부터 전(煎)까지 모든 것이 갖추어져야 했습니다.

  시간도 새벽 1시에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치성을 마친 뒤 음복하고 기도 모시는 것까지 가르치고 나서 통금 해제 싸이렌이 울려야 집에 돌아왔으니 주변에서 “저 사람 밤새 뭐하고 이제야 집에 들어오냐?” 하는 등 뒤통수에 대고 쑤군거리기 일쑤였습니다.

  회실이나 회관도 없어서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포덕을 하다 보니, 연락하고 가면 막상 집에 없어서 못 만나는 경우도 있고, 방문하고 나오는 뒤에 소금을 뿌리는 사람도 있었죠. 그래도 포덕하는 재미가 있어 열심히 하다 보니 선무임명을 모시게 되었고 집례도 보고 하니 점점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서른셋에 입도해서 젊음을 다해 수도를 했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다만 방면을 많이 키우지 못한 점이 상제님께 부끄럽고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어떻게 수도에 매진하기로 결심하셨습니까?

  선각분 말씀이 형제로 세상에 태어나도 8천겁의 인연이 있다는데 도인들은 도통을 목적으로 만났으니 그 인연이 얼마나 더 소중하겠냐고 말했습니다. 그때 선각의 말씀이라면 “콩을 팥이다.”라고 해도 믿었을 정도였습니다. 인연이 있었던지 포덕이 잘 되다가 생각지도 못했는데 선사 임명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타고 오는 버스에서 내내 그 고마운 마음에 눈물이 나더라구요. 한편으로는 어떻게 해야 이 은혜에 보답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 순간 상제님께서 김형렬을 불러 “네가 나의 사무를 담당하겠느냐?”라는 물음에 “재질이 둔박하와 감당치 못할까 하나이다.”라는 『전경』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내 자신이 이런 모습이 아닌가 싶어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그래서 보은(報恩)한다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하다 보니 포덕이 더 잘되었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수도를 하게 된 겁니다.

 

수도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다른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렵다. 힘들다.’ 느끼기 보다는 ‘이 모든 것들이 도 닦는 과정이니 이것도 못 이겨내고 무슨 수도를 하는거냐, 무슨 도통을 바라겠느냐.’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죠. 저는 수도하면서 힘들다고 느끼는 것은 일이 힘든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하는 사람의 마음이 힘들게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순지침』에 “모든 일에 그 목적을 달성하려는 과정에는 반드시 장애가 있으니 이것을 겁액(劫厄)이라고 한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 말씀은 목적이 없으면 장애가 없고 목적이 있는 사람은 장애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내 자신이 목적을 향해 나아가기 때문에 당연히 느낀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저는 수도를 할 때 연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편이며 자식이며 가정이라는 테두리가 있으면 쉽지는 않지만 그 속에서 수도를 통해 극복할 것도 있습니다. 가족들한테 하고 싶은 만큼 다 못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부분도 다 못하지만 그 속에 닦여지는 부분도 있는 것이죠.

  1978년에 보정 임명을 모시고 중곡도장에 출근을 했었습니다. 그때는 출근기간이 열흘이 넘었습니다. 요즘으로 비교하면 수호를 서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죠. 출근기간 동안 도전님께서 훈시를 해주셨는데, 그 훈시 모신 기운으로 한 달 한 달 포덕 사업을 했었습니다. 아무래도 매달 보름이나 도장에 있다 보니 가정에 소홀한 점도 많았습니다. 가족들한테 잘 해주지 못했던 부분이 많이 미안했습니다. 그나마 남편이 이해해 줬기에 별문제 없었습니다. 남편한테도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수반들을 어떻게 교화하며 이끌어가셨습니까?

  도전님께서는 수반들을 이끌 때는 모자지정(母子之情)으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비인정이면 불가근(非人情不可近)’이라고 선각이 어머니 역할도 하고 친구도 되어 주면서 사람끼리 정이 들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교화만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도에 따라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더라구요.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을 먹여 키우듯이 하나에서 열까지 세심하게 살펴 차근차근 정성을 드려 해나가야 합니다. 입도한 수반 집에 가서 기도를 모셔 주며 정성을 드리다 보면 그 사람이 언젠가는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대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화를 할 때에도 수반들이 어떤 상태인지 잘 살펴야 합니다. 어디가 힘들고 아픈지, 왜 입도를 했는지 잘 살펴 대화를 하고 파악한 뒤 교화를 해야 상대방도 나에 대한 믿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완전히 믿음이 생기고 나면 잘못한 일에 대해 꾸중을 해도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말에 신용이 있게 하기 위해서는 남모르는 정성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포덕을 할 때도 동네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한 올바른 모습을 보여줘야 주변 사람이 믿음이 생겨 도에 따라 올 수 있는 것입니다. 도통을 알고 입도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몸이 아파서, 일이 안 풀려서, 사업이 어려워서, 남한테는 말 못할 답답한 일이 있는데 누가 자신을 믿고 따라 오겠습니까?

  교화에도 절차가 있습니다. 상제님의 진리는 ‘금불문고불문(今不聞古不聞)’의 진리이기 때문에 대학교수든 박사든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도에 들어와서는 백지 상태입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체계적으로 교화를 하다보면 사회에서 아무리 지위가 있는 사람이라도 도에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올 수밖에 없는 거죠. 음식도 씹어야 맛을 알게 되지 그냥 삼켜버리면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습니다. 도에 들어와서도 차근차근 가르치다 보면 도의 맛을 알게 되어 수도에 매진하게 됩니다. 당시에는 이렇게 조금씩 도 기운이 들어가게 교화를 한 후 부전선감께 교화를 듣게 했습니다. 옆에서 서구선감의 도움으로 배워가면서 수반들을 교화해 가면서 그렇게 수도했습니다.

  그리고 가정이 원만하게 완성되어야 사람들도 믿고 따라 올 수 있습니다. 제가 가정을 돌보는데 비록 부족하긴 했지만 가정을 등지고 수도해 본적은 없습니다. 내 가정이 원만하지 못하면 따라올 사람도 없고 포덕도 없습니다. 부부와 부모 자식간에 원망이 쌓이면 무슨 일이 잘 되겠습니까? 그래서 지금도 수도를 하려는 사람에게는 집에 가서 가화부터 하라고 합니다. 가정에서 여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임원이 되면 무엇을 갖추고 수도를 해야 하는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임원이 되면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교감은 교감의 일을, 선감은 선감의 직분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임원도 감정이 있는 사람인지라 늘 좋은 모습만 보여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임원이 되어도 수도에 더욱 더 매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임원들은 수반들이 임원의 좋지 않은 모습을 보더라도 잘 소화해 낼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그 사람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보다는 자신이 그렇게 안해야지 하고 생각하며 수도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는 고사성어에도 있듯이 잘못하는 사람이 있을 때 ‘나는 저렇게 잘못하지 말아야지’ 하고 스스로 그런 마음을 가지면 배울 부분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도전님 말씀 중 가슴에 새기고 있는 말씀이 있으신지요?

  제가 부족할 때는 도전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매달 훈시를 모셔도 항상 같은 말씀만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수도를 통해 제 자신이 바뀌다 보니 말씀을 들을 때마다 저의 깨달음도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제가 수도가 되어 그 말씀이 이해되어 알아졌던 것 같습니다.

  도전님께서는 도인이 임원이 된다는 것은 직업을 갖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전경』에 ‘선천하지직 선천하지업 직자의야 업자통야 성지직 성지업(先天下之職 先天下之業 職者醫也 業者統也 聖之職聖之業)’이란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 일 자체가 의통하는 일이고 성스러운 직업인 것입니다.

  임원이 되어서도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는 도의 일 자체가 직업인 것입니다. 다른 방법으로 체()를 이끌어나가려고 하다보면 오히려 체가 무너져서 낭패를 보는 것이니 반드시 도 안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도인은 도인으로써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수도인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선사 때, 상제님 화천 치성 때 일이 있어 치성 참석을 못 할 뻔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치성참석을 안하고는 안 될 것 같아서 늦게라도 비행기를 타고 가서 치성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집에 돌아와 부엌일을 하다 미끄러져서 허리를 크게 다쳤습니다. 치성참석을 하고 나서 좋지 않은 일을 겪었다면 나쁘게 마음먹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치성을 참석하면서 아마도 뭔가 부족한 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치료를 받으면서 스스로 깊이 반성했습니다.

  이렇듯 수도를 하다보면 자신은 정성을 드렸다고 생각하지만 일의 결과가 좋게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대순진리회요람』에서 ‘정성(精誠)이라는 것은 늘 끊임이 없이 조밀하고 틈과 쉼이 없이 오직 부족함을 두려워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정성을 드렸다는 마음 때문에 더 이상의 정성에 소홀할 수 있습니다. 정성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정성을 지극히 드리는 사람은 여전히 정성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항상 부족한 마음을 잊지 않고 수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다음은 대화의 중요성입니다. 가까운 사람 사이일수록 척이 생기기 쉽습니다. 서로 가깝다보니 작은 서운함에서 척으로 발전해서 감정적으로 대립하게 됩니다. 특히 선·후각 간에는 그런 일이 더 자주 생깁니다. 이 모든 것을 대화로 풀어야 합니다. 대화하지 않고는 되는 일이 없습니다. 꼭 대화로 풀어야 합니다.

 

수호에 대해 한 말씀해 주십시오.

  이 자리를 빌려 지금까지 도장을 수호하고 계신 수습대책위원장 및 수도인 여러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지금 도장에서 공부도 하고 법을 지켜 수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수호는 진법(陳法)이며 진법(眞法)이라고 도전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수호는 도장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도의 법을 참되고 바르게 지켜 나가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해 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내 자신이 상제님의 진리에 따라 갈 수 있는 마음을 계속 지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진심견수복선래(眞心堅守福先來)’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오랜 기간 수호를 서고 있지만 우리 모두 참된 마음으로 지켜나간다면 좋은 결과가 분명히 오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대순회보》 88호, 「도인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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