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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는 자유를 위한 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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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현철 작성일2019.12.25 조회5,1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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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주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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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추구한다. 자유가 소중하기 때문에, 자유를 위해 격렬히 투쟁하고 죽음도 불사했던 사실들을 역사를 통해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 고된 여정은 과거로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도 세계 곳곳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자유는 인간에게 있어 목숨만큼 고귀하다. 그러나 매사가 그러하듯 넘치는 것보다 모자란 것이 낫다. 사람이 넘치면 오만과 과신과 독단 등 갖가지 병폐를 낳는 것과 마찬가지로 쾌락이 넘치면 타락이 되고 자유가 넘치면 방종이 된다. 자유의 범주를 벗어나 아무 거리낌이 없이 제멋대로 행동하게 되면,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사회의 체계와 질서를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타락의 굴레에 가둬버린다.

 

많은 것을 가졌다고 행복지수가 높은 것은 결코 아니다. 가진 것이 없더라도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진정한 자유와 쾌락을 향유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상제님께서는 인간은 욕망을 채우지 못하면 분통이 터져 큰 병에 걸리기 때문에, 항상 사욕을 버리고 마음을 올바르게 가지라고 말씀하셨다.01 원래 인성(人性)의 본질은 양심이지만 욕망의 노예가 되면 도리에 어긋난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욕망이 일시적인 만족감을  줄진 모르지만, 욕망은 또 다른 욕망을 낳고, 광대한 바다를 집어삼켜도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에, 지나친 욕망은 자유와 쾌락과 행복의 경계를 넘어 방종과 타락과 불행을 초래한다.

 

불나방이 불이 좋아 불을 좇다가 불에 타 죽어가듯이, 인간의 과욕과 지나친 쾌락은 참사를 부른다. 이러한 참사는 절제와 의지의 부족에서 온다고 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의 의무를 망각하는 데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의무에 대한 책임이 투철하면 절제와 의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마련이다.

 

의무라는 말이 나오면 왠지 식상하고 거부감이 들고 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의무는 우리 주변 전반에 걸쳐 있다. 의무는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어 외부로 파급된다. 가정에서는 부모와 자식 간에 서로 지켜야 할 의무가 있고, 부부 사이에도 서로에 대한 의무가 있으며, 사회에서는 사회인으로서의 의무가 있고, 국민의 한 구성원으로서 국가에 대한 의무가 있다. 또 도(道)안에서는 수도인으로서 상제님과 신명과 종단에 대한 의무가 있고, 선각은 선각으로서 후각은 후각으로서의 의무가 있다.

 

스코틀랜드의 작가인 스마일스는 제임슨 부인이라는 사람의 말을 인용하여 “의무감은 정신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하나로 접합시키는 접착제이다. 의무감을 갖고 있지 않으면 정력, 지성, 진실, 행복, 사랑, 선의 자체가 점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정신을 구성하고 있는 기존의 요소들 모두가 무너져 마침내 폐허 한가운데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고, 황폐화된 자신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02라고 하여 의무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계속해서 그는 “양심은 의무를 다할 것을 요구한다. 양심이 규제력과 통제력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현명하고 위대한 지식도 길을 잃고 헤매도록 유혹하는 불빛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양심은 사람들로 하여금 혼자 힘으로 일어서게 만들고, 의지는 사람들이 쓰러지지 않고 계속 서 있을 수 있도록 뒷받침한다. 양심은 정신의 지배자이자 올바른 행동과 사고, 믿음, 생활의 지배자이다. 양심이 지배력을 발휘할 때만 고결하고 올바른 인격을 온전히 발전시킬 수 있다.”03고 말함으로써 의무감은 양심으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하였다.

 

양심의 발로는 투철한 의무감이다. 의무란 인간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며, 의무의 실천은 인간이 인간답게 되고 수도인이 수도인답게 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주지하다시피 수도인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수도(修道)다. 수도란 넓은 의미에서 종단을 수호하고, 종단의 법과 규율을 준수하며, 종단의 발전에 기여하는 개인적·집단적, 정신적·육체적인 활동 일체를 일컫는다.04 신조(信條)에서의 수도는 심신(心身)을 침잠추밀(沈潛推密)하여 대월(對越) 상제(上帝)의 영시(永侍)의 정신(精神)을 단전(丹田)에 연마(鍊磨)하여 영통(靈通)의 통일(統一)을 목적(目的)으로 공경(恭敬)하고 정성(精誠)하는 일념(一念)을 끊임없이 생각(生覺)하고 지성(至誠)으로 소정(所定)의 주문(呪文)을 봉송(奉誦)하는 것다.05

 

또한 「수칙」에 국법을 준수하며 사회도덕을 준행하여 국리민복에 기여하여야 한다고 한 것은 수도인과 종단 모두가 사회와 국가에 대해 지켜야 할 의무를 말한 것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대순진리회에서는 기본사업으로서 포덕·교화·수도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으며, 3대 중요사업으로서 구호자선사업·사회복지사업 ·교육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여 이웃과 사회와 국가의 안녕과 평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또 이 사업을 해외로 확대함으로써 세계포덕의 초석을 다져 나아가고 있다.

 

의무는 모든 것을 단단하게 해주는 속성이 있다. 의무의 실천은 내적으로는 절제와 의지뿐만 아니라 자긍심과 자신감, 외적으로는 협동심과 결속력을 강화해 준다. 또 신앙인에게는 신앙심도 돈독히 해준다. 의무는 양심의 산물이기 때문에, 의무감을 상실하면 인간은 부도덕해지고 절망에 빠지며,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지 판단할 인지력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의무는 방종과 타락을 막아주는 튼튼한 방패이자 희망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의무를 실천할 의지만 있다면 가진 것이 없다고 또는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고 서글퍼하고 한탄할 일만은 아니다. 가진 것이 많아서 자기 멋대로 행동하다가 방종과 타락의 늪에서 허우적대다 자신을 망친 자들을 주변에서 보지 않는가! 가진 것이 없고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 그만큼 가질 것이 많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것이다. 더 이상 갖고 싶은 것이 없고 더 이상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것은 희망이 없다는 반증이다. 희망은 의지를 낳고 절망은 체념과 포기를 낳는다. 따라서 의무를 실천할 의지는 희망으로부터 나온다.

 

상제님께서 “너희들이 믿음을 나에게 주어야 나의 믿음을 받으리라.”(교법 1장 5절)고 말씀하셨듯이, 수도인의 근본적이고 필연적인 의무는 상제님의 진리를 믿고 실천하는 일이다. 주지하다시피 의무에 대한 제시와 강요만 있고 그에 따른 희망이 없다면 누구도 의무를 실천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희망이 수반되지 않는 의무는 무의미하며 이미 의무로서의 생명력이 다한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복을 구하는 자와 삶을 구하는 자는 힘쓸지어다.”(예시 30절)라고 하신 후, “나의 일은 남이 죽을 때 잘살자는 일이요. 남이 잘 살 때에 영화와 복록을 누리자는 일이니라.”(교법 1장 6절)라고 말씀하시어, 의무 실천, 즉 진리에 대한 믿음과 실천에 따른 결과와 보상이 정신적·물질적 풍요와 생노병사(生老病死)로부터의 자유임을 밝혀주심으로써 인류에게 무한한 희망을 주셨다.

 

의무는 하늘이 인간을 속박하는 짊이나 굴레가 아니라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축복이자 신성한 선물이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누리고자 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01 교법 3장 24절 참조.

02 새뮤얼 스마일스, 『인격론』, 정준희 역, 서울: 21세기북스, 2005, p.191. 새뮤얼 스마일스(Samuel Smiles, 1812~1904)는 스코틀랜드 작가, 정치개혁가, 도덕 주의자이다.

03 위의 책, pp. 191-192

04 주현철, 「수도(修道) -신앙심과 인격의 함양-」, 《대순회보》 제 77호(2007. 11.), p.22.

05 『대순진리회요람』, p.1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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