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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大巡眞理)로 본 『바가바드 기타』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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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2.04 조회3,6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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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위원 박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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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순진리에는 유ㆍ불ㆍ선을 비롯한 세계의 모든 종교사상의 정수가 담겨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 글에서는 힌두교에서 가르치는 해탈의 세 가지 길을 개괄하면서 힌두교의 3대 경전 중의 하나인 『바가바드 기타』의 가르침이 우리 도에서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바가바드 기타』는 마하트마 간디가 머리맡에 두고 늘 애독하였다고 하고, 우리나라를 ‘동방의 타오르는 등불’이라고 예찬하였던 인도의 시성 타고르, 그리고 미국의 위대한 자연 사상가인 소로우 등이 이 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며, 애플과 아이팟으로 유명한 스티브 잡스 또한 이 책을 통해 힘든 상황을 극복하였다고 합니다. 골프를 소재로 한 영화, ‘베가번스의 전설(윌 스미스 주연)’의 원작 소설도 이 책의 가르침을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가바드 기타』는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대서사시이자 인도 고전문화의 백과사전 격인 『마하바라타』 중 18장으로 구성된 종교문학서로 『베다』, 『우파니샤드』와 더불어 힌두교의 3대 경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베다』는 ‘알다(知)’는 뜻이고 『우파니샤드』는 ‘스승의 발아래 가까이 앉아 비전(秘傳)의 가르침을 받는다.’는 뜻이며, 『바가바드 기타』는 ‘지존자(至尊者), 신의 노래’라는 뜻입니다.
  이 세 경전의 등장 시기는 힌두교의 역사를 구분하는 주요한 지표가 되기도 하는데, 초기 힌두교는 『베다』경전이 자연신, 다신에 대한 찬가와 제의문으로 이루어졌듯이 신과 인간의 이원론(二元論)적인 세계관01에 기초하여 신에 대한 제사와 찬미를 통하여 기복하는 원시종교의 형태를 지녔습니다. 그리고 『베다』의 신들과 제사의례에 대한 관심이 희석되면서 등장한 『우파니샤드』에서는 철학적, 신비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일원론(一元論)적인 세계관02에 기초한 범아일여(梵我一如)사상이 대두되어 힌두교의 사상을 대표하는 기본요소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힌두교의 대표사상 중의 하나인 업과 윤회사상의 단초가 『우피니샤드』에서 보이기 시작합니다.
  후기 힌두교의 대표문헌인 『마하바라타』의 일부인 『바가바드 기타』는 인도를 비롯하여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애독되어 힌두교를 이해하는 핵심 교전으로 논의되기도 합니다.     『바가바드 기타』에서는 범아일여의 사상과 함께 절대자 신이 인격신으로 화신하여 대중을 구원하는 아바타 개념이 더하여져서 대중은 인격신을 존숭하고 신뢰하는 대중적인 신앙형태가 인도 전역에 자리 잡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바가바드 기타』는 몰락한 판두 왕국의 다섯 왕자 가운데 셋째 왕자인 아르주나와 전차 몰이꾼 크리슈나와의 대화 내용입니다. 아르주나가 사촌들과의 전쟁을 앞두고 갑자기 삶과 죽음에 대한 회의에 빠진 채, 전쟁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갈등으로 고민하면서 전차 몰이꾼으로 변장한 신 크리슈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크리슈나는 생사의 문제, 진정한 자아의 존재의 여부, 신의 실체와 신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문제, 영적인 삶과 해탈에 이를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론들까지 친절하게 가르쳐 줍니다.
   『바가바드 기타』는 『우파니샤드』가 제시한 우주의 통일 실재로서의 브라만03과 그 실재의 개별적인 내재적 실재인 아트만04이 동일하다는 일원론적 세계관과 업과 윤회의 사상을 바탕으로 사람의 영혼은 불멸하며 개인의 업에 따라 윤회 전생한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아트만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욕망과 번뇌에 사로잡혀 옳지 못한 악업을 짓고 그 원인으로 윤회하게 되는데 자신의 진정한 자아인 아트만을 깨닫고 집착이 없는 행위를 통하여 선업을 짓고 절대자를 숭신함으로써 해탈의 길을 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힌두교의 해탈에 이르는 세 가지 길 - 지혜의 길, 카르마의 길, 신애(神愛)의 길 - 에서  『우파니샤드』는 명상과 사색을 통한 지혜의 길을 강조하였다면 『바가바드 기타』는 집착 없는 행위를 통한 카르마의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원성(二原性)05이 만연한 세상에서 『우파니샤드』와 『바가바드 기타』에서 제시하는 일원론적인 세계관은 사물의 본질을 바로 알고, 판단을 내려놓고 시비와 갈등을 종식시키는 평화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데 큰 효용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분리의식에 사로잡혀 너와 나를 구분하고 다르다는 것을 불편하게 여겨 시비와 판단을 붙이는 데서 마음의 분란은 식지 않고 사람들 사이의 쟁투는 잠잘 날이 없습니다. 사람과 사물을 판단하여 심판하는 것은 모든 분란의 화근이 됩니다.
  다르다고 비난할 것이 아닙니다. 다른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같은 색만 있다면 우리가 보는 아름다운 명화는 창작될 수 없습니다. 판단을 내려놓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보는 것은 이원성을 극복하는 지름길입니다.
  『전경』에 “악장제거무비초(惡將除去無非草)요, 호취간래총시화(好取看來總是花)”(교법 1장 11절)라 하였습니다. 일단 안 좋게 보아 없애고자 하면 잡초가 아닌 것이 없고, 좋게 보아 취하고자 하면 꽃이 아닌 것이 없는 법입니다. 보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어떻게 갖는가에 따라서 사물에 대한 입장과 태도는 근본적으로 달라집니다. 결국 『바가바드 기타』에서 전쟁터를 신과 인간이 대화하는 장소로 삼은 것도 인간 각자의 내면의 전쟁을 상징하는 것이고 세상을 바꾸는 근본은 세상을 바꾸는 행위가 아닌 자신의 진성(眞性 = 아트만)을 깨달아 세상에 대한 입장과 태도를 바꿈으로써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세계의 평화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점은 우리 도(道)의 목적이 지상천국 건설이고 그 과정으로서 개인적으로는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정신개벽을 이룬다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원성을 극복하고 의식의 통합성을 이루는 구체적인 실천방안으로서 『바가바드 기타』는 집착과 결과에 대한 기대가 없는 행위를 제시하는데, 『전경』에는 “선자사지 악자개지(善者師之 惡者改之)”(행록 3장 44절)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사안에 대하여 상대방에 대한 판단과 심판을 멈추고 그것을 내적으로 관조하여 자신을 성찰하는 덕목으로 삼고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며, 나아가 타인과 상생관계를 유지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금과옥조라 할 수 있습니다.
  선한 것은 스승으로 삼고, 악한 것은 고칩니다. 남들이 잘하는 것은 ‘나도 그를 본받아 그와 같이 잘해야지’ 하고, 남이 잘못하는 것을 보면 자신이 판단하고 심판하여 비난을 일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그러한 점이 없는지를 먼저 살피고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며 고쳐서 배운다면 이원성과 판단의 늪에 빠져 자신의 마음을 전쟁터로 만드는 어리석은 행위는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남의 눈의 티끌은 보면서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우를 너무도 자주 범하는 현대인들에게 ‘선자사지 악자개지’의 가르침은 매우 필요하면서도 적절한 교훈이 될 것입니다.
  명상과 사색의 길을 강조하는 『우파니샤드』에 비하여 『바가바드 기타』는 집착 없는 행위를 통한 영적인 삶을 주창합니다. 『바가바드 기타』 3장 20절에 의하면 “사람이 온전함에 이르는 것이 당연한 행동의 실천에 의한 것이니, 너도 이 세상의 유지를 위해서 스스로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상제님께서도 “글도 일도 않는 자는 사 농 공 상(士農工商)에 벗어난 자이니 쓸데가 없느니라.”(교법 1장 61절)고 하셨습니다.
  힌두교에서 해탈에 이르기 위한 지혜의 길과 행위의 길은 조화롭게 통일되어야 합니다. 『바가바드 기타』는 그것을 아트만을 각성하고 집착이 없는 적절한 행위를 하며 절대자를 끊임없이 숭신하는 것을 통하여 통합하고 있습니다. 또한, 영적인 삶의 네 단계로 학생기ㆍ가장기ㆍ은둔기ㆍ고행기를 설정하고 그중에서도 가정을 가지고 가정의 책임을 다하는 가장기를 가장 중요시하면서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해탈을 얻을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도 수도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가정생활이나 사ㆍ농ㆍ공ㆍ상의 직업을 소홀히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해원상생(解相生)과 보은상생(報恩相生)의 양대 도리를 생활 속에 구현하면서 훈회와 수칙의 생활화와 천지, 부모, 국가사회, 직업,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5대  보은06을 실천하는 것은 개인 수도의 목적과 대순진리회의 목적을 완성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힌두교의 해탈에 이르기 위한 세 가지의 길 또한 우리 도에서는 교리체계와 실천수행의 과정을 통하여 완성적인 형태로 구현되고 있습니다. 『전경』의 가르침과 포덕, 교화, 수도를 통하여 깨달음의 길을 열어가고(지혜의 길), 훈회와 수칙, 그리고 5대 보은의 실천으로 윤리도덕을 숭상하고 인간의 사회적 도리를 다하며(카르마의 길), 현존하는 그 어떤 종단보다 신앙의 대상인 하느님에 대한 성ㆍ경ㆍ신이 지극하다는 것(신애의 길)이 고등종교로서 기성의 종교와 대별되는 종단 대순진리회의 면모입니다.
 『우파니샤드』는 우주의 궁극적 실재로서의 브라만(梵)과 인간존재의 핵이자 인격의 근본 원리로서의 아트만(我)의 동일성을 설파하는데, 이 관계 또한 대순진리회의 신조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대순진리회요람』에서 수도의 삼요체인 성ㆍ경ㆍ신 중의 성(誠)에 대한 해설, “도가 곧 나요, 내가 곧 도라는 경지에서 심령(心靈)을 통일하여 만화도제(萬化度濟)에 이바지할지니…”라는 구절이 그것입니다. 여기서 도(道)가 곧 브라만이고 아(我)가 바로 아트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트만은 인간의 진정한 자아(自我)를 상징하는 용어로 수도를 통하여 진실하고 순결한 인성(人性)의 본질을 회복한 본진(本眞)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가바드 기타』에 의하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나’는 ‘진정한 나’가 아닙니다. 흔히 자신의 육체나 마음을 ‘나’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모든 불행의 근원이 됩니다.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나의 몸, 나의 마음, 나의 영혼…’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몸과 마음, 영혼의 너머에 더 근원적인 ‘나’가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이것이 도즉아 아즉도의 경지에 이른 ‘나’, 아트만이 되는 것입니다. 도주님께서는 “나의 가장 지극한 보배가 바로 심령(吾至寶之心靈)”(교운 2장 41절)이라 하셨습니다. 심(心)과 영(靈)을 통일하여 영통, 도통에 이르는 것이 우리 수도의 목적입니다.
  우리 수도인들이 도즉아(道卽我), 아즉도(我卽道)의 경지에서 군생만물의 제도에 이바지하는 첩경은 다른 데 있지 않고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진법을 올바르게 수행하는 데 있습니다. 상제님의 유지(遺志)와 도주님의 유법(遺法)을 떠나 다른 방식의 수도법방을 따르면서 수도의 목적을 완성하고자 하는 것은 산에서 물고기를 구하고 물에서 범을 잡으려고 하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짓입니다. 
  상제님께서는 “나의 도는 삼천이라야 이루어진다.”(예시 1장 87절) 하시고, 도주님께서는 “나의 지극한 보배는 심령이니 나의 심기를 바르게 하고 나의 의리를 세우고 나의 심령을 구하여 상제님의 임의에 맡기라(正吾之心氣 立吾之義理 求吾之心靈 任上帝之任意).”(교운 2장 41절) 하셨으며, 도전님께서는 만수도인들에게 “도주님의 포유하신 인도에 따르라.”07 하셨습니다. 실로 이 구절(正吾之心氣 立吾之義理 求吾之心靈 任上帝之任意)은 상제님과 도주님, 도전님의 가르침의 정수가 함축적으로 담겨 있는 중요한 성구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대순지침』의 개전의 수도생활에서 “도주님의 포유하신 인도에 따르라, 허물을 고쳐 바른 수도자가 되라, 겁액을 극복하라.” 하신 세 가지 덕목은 현시기 우리의 수도에서 깊이 있게 각인해야 할 수도생활의 지침입니다. 
 
 

참고자료
.『전경』
.『대순지침』
.『대순진리회요람』
. 한국종교연구회, 『세계종교사입문』, 청년사, 1997.
. 박지명 역/ 스리 브야사, 『스리마드 바가바드 기타』, 동문선, 2007.
.  정창영 편역, 『바가바드 기타』, 시공사, 2001.
. 석지현, 『바가바드 기따』, 일지사, 2002.
. 길희성, 『인도철학사』, 민음사, 2001.
. 석지현, 『우파니샤드』, 일지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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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대상을 고찰함에 있어서 서로 대립되는 두 개의 원리나 원인으로써 사물을 설명하려는 태도나 사고방식. 두 개의 원리에는 주관과 객관, 오성(悟性)과 감성, 천지, 음양 등이 있다.
02 우주의 근본 원리는 오직 하나라고 보고, 하나의 원리로써 전체를 설명하려는 태도나 사고방식.
03 브라만(Brahman)은 힌두교에서 우주의 근본적 실재 또는 원리를 가리킨다. 아트만(Atman)이 진정한 자아를 뜻하는 개별적ㆍ인격적 원리인 반면, 브라만은 우주적ㆍ중성적(中性的) 원리이다. 한자로는 ‘범(梵)’으로 음역(音譯)된다.
04 아트만은 힌두교에서 생명으로 숨과 같은 의미로 쓰였으며 아트만의 원래 뜻은 ‘숨 쉰다’는 뜻이다. 숨 쉬는 생명 아트만은 ‘나’를 말한다. 그러나 끊임없이 윤회하는 삶에서 지금의 나는 ‘참된 나’가 아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윤회를 거치는 동안 내가 쌓은 업(業, Karma)에 의한 것이다. ‘참된 나’는 윤회의 과정에서 계속하여 존재하며 없어지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 ‘나라는 생명의 본질’을 뜻한다.
05 세계 전체가 서로 독립된 이질적인 두 개의 근본 원리로 되어 있다고 하는 사고방식으로 사물의 내적 통일성을 보지 못하면 상호 조화보다는 대립과 쟁투로 나아갈 수 있는 경향성이 있는데, 이것을 이원성에 사로잡혀 있다고 표현한다.
06 『대순회보』, 112호, pp.14~19 참조.
07 『대순지침』, p.90.
 
                                                                                                                            《대순회보》 1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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