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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의 회복이 갖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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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2.04 조회3,6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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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위원 전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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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현대를 정보화시대, 무한경쟁의 시대라고 말한다. 한시도 쉴 틈 없이 정보들이 산더미처럼 쏟아지고, 사람들은 앞다퉈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그 정보를 습득·활용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또한 치열한 무한경쟁 속에서 인간의 본성을 잊은 채 오직 자신만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인류발전을 위해 정보의 활용과 어느 정도의 경쟁은 불가피하지만, 수많은 정보로 인해 질식당하고 무한경쟁으로 인간성이 황폐화되어 가고 있다. 점점 자신이 사지(死地)로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그것만이 삶의 질을 높이고 성공과 행복을 여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사고에 큰 문제가 있다.
  이것은 마치 꿀벌이 애써 꿀을 찾아 꿀통에 들어가지만 허우적대다가 그 속에 갇혀 죽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모든 것은 이기적이고 지혜롭지 못한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진정한 성공과 행복을 이룰 수 있는가? 인간의 본질을 깨달아 참된 인생의 목적을 향해 가야 한다. 아주 단순한 말인 듯하지만 확고한 믿음과 의지가 없다면 실천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말엔 인생의 심오한 진리가 담겨 있다. 진정한 성공과 행복은 외면적인 정보와 경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인간의 본질을 깨달음으로써 가능하다.
  인간의 본질을 깨닫는다는 것은 곧 양심(良心)을 회복하는 것이다. 마음에는 양심과 사심(私心)이 있다. 양심은 천성(天性) 그대로의 본심(本心)이고 사심은 물욕에 의해 발동하는 욕심이다. 본래 인성(人性)의 본질은 양심이지만 사심에 사로잡혀 도리에 어긋나는 언행(言行)을 하게 된다. 모든 죄악의 근원은 양심을 저버리는 데서 비롯된다. 양심은 곧 정직(正直)과 진실(眞實) 그 자체이다. 그래서 우리 도(道)에서는 모든 죄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정직하고 진실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정직은 죄악을 근절시킬 수 있는 힘이며, 일상적인 성공의 밑바탕이 된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사실이 있다. 여기서는 그 실례 중에서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전쟁의 아버지인 조지 워싱턴(1732~1799년)에 관한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조지의 아버지는 애지중지하던 벚나무가 통째로 찍혀져 나가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버지는 노발대발하며 범인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러자 조지는 아버지 앞에 다가가, “아버지, 죄송해요. 용서해주세요. 아버지가 사주신 도끼가 얼마나 잘 드는지 시험해 보고 싶어서 제가 잘랐습니다.”라고 솔직히 고백하여 용서를 받았다.
  조지 워싱턴은 1775년 대륙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어 독립전쟁 초기에는 유럽에서 가장 강한 영국 정규군 및 독일인 용병과 정면 대결을 벌여 여러 차례 패배한 적이 있다. 그는 이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젊은이의 피를 흘리게 했다. 그러나 조지 워싱턴은 강한 적과 정면충돌하려 했던 처음의 결단이 잘못되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 후 전략을 지구전과 게릴라전으로 바꾸어 결국은 영국의 콘 윌리스가 지휘하는 군을 요크타운에서 포위하여 항복을 받아냈다. 조지 워싱턴은 독립전쟁에 종지부를 찍고 미국의 독립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그가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나아가 대통령이 되었던 성공의 원천은 어려서나 성장하여 높은 지위에 올라갔을 때에도 변치 않던, 잘못을 인정하고 고칠 줄 아는 솔직하고 정직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세상에는 아직도 상극(相克)적인 요소가 많아 부정한 마음과 방법으로도 성공하는 일이 있다. 이러한 성공은 존경이 아닌 경멸을 부르며, 한시적인 성공에 불과할 것이다. 진정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성공은 정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래야 그 성공은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우리 도(道)에서 성공은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인 도통을 성취하는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나를 믿고 마음을 정직히 하는 자는 하늘도 두려워하느니라.”(교법 2장 7절)고 말씀하셨다. 세속적인 성공은 정직하면 가능하지만, 도통은 상제님에 대한 믿음과 정직이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 곧 정직하지만 상제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도통은 불가능하다. 상제님께 대한 믿음과 정직, 이것이 양심이라고 생각한다. 양심은 천성(天性) 그대로의 본심(本心)이다. 천성은 하늘의 품성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천·지·인(天地人) 삼계(三界)의 주재자이시고 절대자이신 상제님을 따르는 것이 곧 천성(天性)인 것이다.
  이러한 마음을 정직하게 한결같이 유지하는 것, 다시 말해서 항상 양심을 간직하는 것이 곧 일심(一心)이다. 상제님께서는 “이제 범사에 성공이 없음은 한 마음을 가진 자가 없는 까닭이라. 한 마음만을 가지면 안 되는 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무슨 일을 대하든지 한 마음을 갖지 못한 것을 한할 것이로다. 안 되리라는 생각을 품지 말라.”(교법 2장 5절)고 하시면서 모든 것을 일심을 가진 자에게는 지체 없이 베풀어주겠으니 나의 말을 잘 믿으라고 말씀하셨다.(교법 2장 2, 4절 참조)
  이렇게 일심은 세속적인 성공과 인간의 궁극적 목표인 도통을 이루게 하는 원천이다. 일심은 대순진리의 수도를 통해 형성되고 굳게 지킬 수 있는데, 그 수도과정으로는 인식, 실천, 생활화의 3단계를 예로 들 수 있다.
 
 
첫째, 인식. 인간은 사물과 사건을 자기 마음에 따라 보고 듣고 느낌으로써 인식하기 때문에, 정확할 수도 있고 왜곡될 수도 있다. 사물과 사건을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서 양심은 필수적이다. 욕심에 눈이 멀면 이성을 잃게 되어 정확한 인식이 불가능하게 된다. 양심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연의 마음으로서 개인적인 물욕에 의한 고정관념이나 편견 등의 사사(私邪)로움이 없어서 모든 사물을 대할 때에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게 한다. 양심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에, 대상의 외면이 아닌 본질을 인식하게 하여 진리를 바르게 깨닫게 함으로써 모든 현상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대순진리의 법리와 도리를 실천하기에 앞서 올바른 인식의 과정은 필수적이다.
 
 
둘째, 실천. 상제님께서 “말은 마음의 외침이요 행실은 마음의 자취로다.”(교법 1장 11절)라고 하셨듯이, 언행은 마음의 표현이며 반영이다. 도전님께서도 “마음이 참되지 못하면 뜻이 참답지 못하고, 뜻이 참되지 못하면 행동이 참답지 못하고, 행동이 참되지 못하면 도통진경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대순지침』, p.76)라고 말씀하시어, 매사에 양심을 갖고 실천할 것을 강조하셨다. 사람은 마음에 있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며 처사하게 된다. 양심을 회복한 마음은 도리에 맞는 언행과 처사로 나타난다. 그러나 삿된 마음은 물질이나 명예, 권력 등에 집착한 사사(私邪)로운 마음으로서 올바른 행실과 실천을 가로막는다.
 
 
셋째, 생활화. 도전님께서는 “나의 말을 바르게 인식하고 실천하여 생활화되도록 하라.”(『대순지침』, p.3)고 말씀하셨다. ‘나의 말’이란 곧 진리를 의미하며, 진리를 올바로 깨닫고 양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바른 인식과 실천과 생활화가 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생활화란 일상화 또는 습관화를 말하며, 완전히 몸에 배어 마치 늘 숨을 쉬듯이 자연스럽다는 의미이다.
  양심이 충분히 회복되면 어제 했다고 안 하게 되는 안일함이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늘 새롭고 즐거운 마음으로 옳은 것을 지켜나가고자 한다. 매일 기도를 모시고 『전경』을 읽고 교화하며 매달 성(誠)을 모시고 포덕을 하는 일상생활 속에서 상제님에 대한 일심을 지켜나가고, 매 순간 새로운 상황에서 새롭게 깨달음을 열고 복을 짓고 덕화를 선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도(道)를 바르게 느끼면 따뜻하고 즐거운 마음을 간직하게 되어 하면 할수록 더 즐겁고 보람을 느끼게 되고, 늘 다른 상황으로 새롭게 다가온다. 수도과정에서 항상 따라오게 되는 어려움을 참고 인내하며 본연의 양심을 지켜나가면 인간의 궁극적인 성공과 행복인 도통을 성취할 수 있다고 본다.
 
                                                                                                             《대순회보》 1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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