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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득심(以聽得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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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1.13 조회3,7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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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위원 이승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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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너무나 변화무쌍해서 현대 첨단과학으로도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게 사람 마음이다. 알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읽고 진정한 교감을 위해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는 옛말에서 상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귀를 기울여 들음으로써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지혜가 담긴 것으로, 줄여서 경청(傾聽)이라 일컫는다. 이를 지난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세 인물인 칭기즈칸(成吉思汗, 1162~1227), 당태종(唐太宗, 599∼649), 세종대왕(世宗大王, 1397∼1450)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지혜를 되새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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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면적의 영토를 정복한 칭기즈칸은 ‘적게 말하고 많이 듣는다. 듣지 않고서는 어떤 것도 결정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실천했던 인물로 부하 장수들에게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런 그가 대업을 이룬 후, “배운 게 없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이름도 쓸 줄 몰랐지만,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며 현명해지는 지혜를 배웠다. 지금의 나를 가르친 것은 내 귀였다.”며 대업 성공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중국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운 시기 중 하나로 ‘정관의 치(貞觀之治)’라는 황금시대를 만들어 냈던 당태종. 그가 황금시대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즉위 무렵, “양쪽 의견을 들으면 밝게 되지만, 한쪽 의견만을 들으면 어둡게 됩니다(兼聽則明 偏聽則暗) 이를 잊지 마시고 매사에 실천해 나가시면 왕께서는 덕치를 구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위징(魏懲)의 직언 때문이라고 한다. 그 이후 태종은 열린 귀의 정치로 위징뿐만 아니라 두여회, 방현령, 장손무기 등과 같은 재상을 얻어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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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을 창제한 애민(愛民)의 군주 세종대왕. 세종은 그 스스로 수준 높은 학문을 갖추었고 왕이 되기 전에 부왕 태종으로부터 ‘일의 대체를 안다’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통찰력이 뛰어난 성군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안에 대해 의견을 구하고 신하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의견을 채택해서 힘을 실어주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내가 인물을 잘 모르니 경들과 의논해서 벼슬을 제수하려 한다.”라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대신들을 수시로 불러서 나라에 도움 되는 절실한 말을 강직하게 말해달라고 주문하면서, 토론하다가 쓸 만한 아이디어가 나오면 곧 해당 관청에 명을 내려 시행하도록 하여 신하들의 신뢰를 두터이 하여 백성을 위한 정치에 온 힘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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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세 인물은 듣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아는 총명한 리더였던 것이다. 특히 ‘청(聽)’이라는 한자를 파자해 보면 그 깊은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곧 귀 이(耳) + 임금 왕(王) + 열 십(十) + 눈 목(目) + 하나 일(一) + 마음 심(心)으로 파자되며, 귀를 임금처럼 생각하고 열 개의 눈으로 하나의 마음을 본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경청은 타인을 이해하고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며 유대감과 우정, 존중의 능력까지 발휘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경청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고,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단어다. 소위 습관성 대꾸를 한다든지, 얼굴을 보지도 않고 대응하거나, 인내심이 부족해 상대의 말을 지겨워한다든지, 같은 상황에서도 편애에 따라 경청한다든지, 지레짐작으로 자신의 틀에 맞춰 판단하려 하고, 자신의 주장만 옳고 상대의 주장을 무시한 채 처결한다든지 하는 경청은 오히려 상대방을 무시하며 비난하는 것이고 공격이 될 수 있다. 가령 어떤 조직의 장이 참석한 직원들에게 “허심탄회하게 여러분의 의견을 말하세요. 어떤 의견이라도 경청하겠습니다.”라고 말문을 열어놓고서는, 정작 한 직원이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말하면 “내 생각은 그것이 아닌데,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라거나, 편애한 직원의 의견에는 “내 뜻을 잘 알고 있어요.”라고 표출하면 어찌 될까⋅ 당연히 이때부터 직원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상사가 이미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결론을 가지고 회의를 진행하고 있음을 알고, 소신껏 의견을 제시해 봐야 묵살될 것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잘못된 경청은 결국 상하 간의 끊임없는 충돌과 서로간의 불신을 불러일으켜 그 조직체계를 와해시켜버리고 만다. 더욱이 아직 상제님의 진리를 접할 기회가 없는 사람은 그렇다 하더라도, 상제님을 믿고 나가는 수도인들이 그런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도전님의 말씀을 살펴보더라도, “내 경위만 옳고 남의 주장을 무시하는 데서 반발을 일으켜 서로 미워하다가 마침내 원한을 품어 척을 맺는 법이다.”(『대순지침』, p.27)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군들도 어렵게 수양하여 얻은 경청의 지혜에 한 걸음 더 다가서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상대에게 다가서는 지름길은 그들에게 혀를 내미는 것이 아니라 귀를 내미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누군가의 이런 말을 되새김하며 갈무리하고자 한다. “듣기를 잃는 순간 우리는 나를 앞세우고 남을 지배하려 한다는 것을.”

 

<대순회보 1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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