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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빈낙도와 하늘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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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5.30 조회3,8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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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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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께서 말씀하시기를 “부귀한 자는 빈천을 즐기지 않으며 강한 자는 약한 것을 즐기지 않으며 지혜로운 자는 어리석음을 즐기지 않으니 그러므로 빈천하고 병들고 어리석은 자가 곧 나의 사람이니라.” 하셨도다. [교법 1장 24절]

  

  

성현(聖賢)의 말씀에서 우러나는 진리의 향기는 그 깊이가 참으로 오묘해 문장의 색채에 머물게 되면 그 향기를 놓치고 그 뜻으로부터 멀어지기 쉽다. 교법 1장 24절의 ‘빈천하고 병들고 어리석은 자가 곧 나의 사람이라.’는 『전경』구절 또한 그러한 말씀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위의 말씀은 그 표면적인 뜻만을 두고 본다면 흔히 세상의 헐벗고 고통 받고 못 배운 이들에 대한 연민을 떠올리게 된다. 이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정서이고 잘못된 이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깊은 진가(眞價)를 품고 있는 『전경』의 말씀을 음미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그래서 그 말씀의 뜻에 조금 더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다가서보고자 한다.

 

우선, 위 구절 가운데 부귀한 자는 빈천을, 강한 자가 약한 것을, 지혜로운 자가 어리석음을 즐기지 않는다는 부분을 살펴보자. 여기서 ‘부귀하고 강하고 지혜로운 이’는 재물과, 권력 그리고 뛰어난 두뇌라는 사회적 성공의 완벽한 요소를 가진 이들인데 이들은 흔히 사회적 상류층 내지는 지배층의 위치에 있다. 현실로 볼 때 이러한 조건이야말로 성공을 가늠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이며 삶의 영위를 위한 가장 견고한 힘일 것이다. 이것은 현실의 법칙 속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무소불위의 힘과도 같다.

그렇게 스스로 영속할 수 있는 힘이 강해질수록 인간은 세상 위에 우뚝 서고자 하는 자만심으로 만물과 평등한 조화를 이루기보다는 지배의 욕망 가운데 그 조화를 깨뜨리려고 할 것이다. 이때 인간은 점점 신(神)의 품으로부터 그리고 진리의 뜻으로부터 멀어진다. 그렇듯 강권(强權)을 가진 자는 스스로를 신과 같은 존재로 여기기 쉬우며 욕망 속에서 진리의 소박함은 아무런 가치도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세계사를 통해서 또는 오늘날의 사회 속에서도 끊임없이 드러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세상사 가운데서 예로부터는 안빈낙도(安貧樂道)01의 삶을 추구한 이들이 있었다. 안빈낙도는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겨 지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공자가 제자들에게 강조했던 삶의 방식 중의 하나인데, 공자의 제자 중 특히 안회(顔回, 기원전 521~ 기원전 490)가 안빈낙도의 삶을 살았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청렴한 삶을 살았던 안회는 늘 쌀뒤주가 비어있을 정도로 넉넉지 못한 생활 가운데서도 불의를 멀리 하고 성인(聖人)의 도를 즐겼다고 한다.

 

이렇듯 안빈낙도의 삶을 살았던 이들은 사회적 현실의 눈으로 볼 때, 참으로 빈천하고 병들고 어리석은 이들임에 틀림없다. 육신의 배를 허기지게 하고 그 편안함을 돌보지 않으려는 모습과 그러한 삶을 스스로 선택한 이들이 병들고 어리석어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은 육신의 욕망으로부터 도(道)의 순수함을 간직하려는 완벽주의에 가까운 고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안빈낙도의 삶은 단순히 옛 선비의 배부른 여유와 낭만이라고 할 수도 없다. 안빈낙도는 이상적인 삶을 도의 가치 가운데 두고자 한 성현들의 적극적이며 나름의 최적화된 삶의 방식에 대한 선택일 뿐이다. 다시 말해, 참된 의미의 안빈낙도란 겉으로는 헐벗고 우둔하며 현실도피적인 모습으로 보이지만 영혼의 풍요와 진정한 의미의 행복을 추구한 현명함으로부터 기인한 삶의 방식이라는 말이다. 가난과 빈곤 자체를 추구하여 즐기는 것이 아니라 진리 가운데서 영혼의 조화로운 행복을 누리기 위해 그 물질적인 환경을 스스로 절제한 극단의 설계(設計)인 것이다.

 

물질적인 욕망을 절제하고 도를 즐기는 이들의 삶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우주와 상생하고자 하는 이들이다. 인간 사회의 불균형, 자연의 정복과 파괴, 종교적 경건함의 상실은 모두 인간이 욕망을 절제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듯 그것의 절제를 통한 진리의 삶은 자연히 인간 사회의 균형과 자연과 인간의 조화 그리고 절대자를 찾는 경건하고 겸허한 심성으로 발현하는 것이다.

 

“부귀한 자는 빈천을 즐기지 않으며 강한 자는 약한 것을 즐기지 않으며 지혜로운 자는 어리석음을 즐기지 않으니 그러므로 빈천하고 병들고 어리석은 자가 곧 나의 사람이니라.”는 상제님의 말씀을 안빈낙도의 의미에 빗대어 이해해보았다. 물질의 부유함 속에서도 자연과 인간 그리고 절대자와 상생할 수 없는 삶은 진리의 눈으로 볼 때 진정 빈곤한 삶이었고 반면 물질의 풍족을 절제의 미덕으로 양보하고 그 여유의 무한공간 속에서 진리와 동화(同化)되는 영혼의 자유를 누리는 삶은 진정 풍요로운 삶이었다. 그러한 도(道)와의 일체(一體)와 충만 속에서 인간은 이미 스스로 하늘의 사람인 것이다.

 

 

 

01 안빈낙도의 삶은 조선시대의 가사나 시조에서 많이 그려지고 있다. 국문학 사상 최초의 가사인 정극인의 ‘상춘곡(賞春曲)’이 그 대표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이며, 이밖에도 조식, 송순, 한호 등의 시에서도 안빈낙도의 정신이 드러나 있다.

 

 

<대순회보 1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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