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 = 세상
페이지 정보
작성자 주소연 작성일2018.12.14 조회5,953회 댓글0건본문
잠실9 방면 선무 주소연
인도의 철학자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자신의 저서 『희망탐색』에서 한 사람은 곧 세상이라고 말한다. 한 사람의 상태가 곧 세상의 상황과 같으므로 세상이 이러이러한 이유에 대한 책임은 바로 나에게 있다는 것이다. 즉 내가 이런 세상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 말은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자아유지(自我由之: 모든 것은 나로부터 말미암는다)와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천지 종용지사(天地從容之事)도 자아유지(自我由之)하고 천지 분란지사(天地紛亂之事)도 자아유지하나니 공명지 정대(孔明之正大)와 자방지 종용(子房之從容)을 본받으라.”(교법 3장 29절)는 말씀은 천지가 순조롭고 어지러움도 모두 나로부터 비롯하니 제갈공명처럼 바르고 큰마음, 또 장자방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안색과 행동이 변하지 않고 천리에 순종하는 태도를 가지라는 뜻이다.
인간이 무엇이길래, 또 나 한 사람이 무엇이길래 그 어마어마한 천지를 내가 좌우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이 지구만 해도 거의 70억 인구가 사는데 왜 나 한 사람이 세상이 될까? ‘나 한 사람만 바르다고, 나 한 사람만 좋은 마음을 가진다고 세상이 달라질까?’, ‘어느 세월에?’라며 의구심을 갖거나 ‘이 수많은 사람 중에 나 한 사람이 잘못한 것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나 하나는 보이지도 않을 거야.’라고 하면서 조금 양심에 거리낄 만한 일도 슬쩍 넘어갈 수 있다. 이렇게 우린 나 하나의 힘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런 힘을 인간에게 부여해 주신 하늘이 있다는 것을 잘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다.
먼저,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인간이 하느님이 창조하신 만물 중 최고라는 뜻이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이 개념을 받아들이고 사는지는 잘 모르겠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길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헤아릴 수 없는 공력을 들이나니라.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선령신들은 六十년 동안 공에 공을 쌓아 쓸 만한 자손 하나를 타 내되 그렇게 공을 들여도 자손 하나를 얻지 못하는 선령신들도 많으니라.”(교법 2장 36절)라고 하셨다. 이렇게 우리들 한 명 한 명은 그냥 태어난 것이 아니라 조상 선령신의 오랜 정성으로 나온 정말로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이다. 하지만 왜 그리 정성을 들여 인간인 자손을 타내신 것일까?
인간이 최고의 창조물인 이유 중 하나는 애초에 인간을 만드신 신의 의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학교를 널리 세워 사람을 가르침은 장차 천하를 크게 문명화하여 삼계의 역사에 붙여 신인(神人)의 해원을 풀려는 것이나 …”(교운 1장 17절)라는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천지가 인간을 타내고 기르신 목적은 삼계 역사에 참여케 하고자 함이며 천하사를 담당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인간에게 마음에 따라 현실을 창조하는 신과 같은 능력이 주어진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이 마음에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것이니”01라는 말씀이나 “천지무일월공각(天地無日月空殼: 천지는 일월이 없으면 빈껍데기이고) 일월무지인허영(日月無知人虛影: 일월은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빈 그림자다)”(예시 21절)의 말씀에서 보듯이 인간은 천지와 일월의 이치를 파악함으로써 비로소 그것의 가치가 드러나게 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우주가 아무리 넓고 크게 있어도 사람이 의식을 가지고 보아야만 그 부분이 현실로 드러나는 것이다. 양자역학 이론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전자나 미립자는 관찰자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양자역학 이론은 우리의 마음에 따라 천지가 종용 또는 분란하다는 상제님 말씀과 우리가 보는 대로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저 철학자의 말이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므로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이 어떤 상태인가는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아기가 보는 세상과 어른이 보는 세상이 다른 것처럼 완성된 인간(천지의 관점에서 잘 성숙한 인간)이 바라보는 세상은 완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수도를 통해 인간 완성을 이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어떤 프리즘에 비유할 수도 있겠다. 우주의 빛을 받아 다시 이것을 다양한 색으로 발산해내는 프리즘. 그 각각의 빛은 원래 빛의 작은 일부지만 그 고유한 빛으로 다른 빛과 조화를 이루어 무지개처럼 찬란한 무늬들을 만들어낸다. 그 프리즘이 최고의 상태일 때 최고로 아름다운 무늬가 나타날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신처럼 현실을 창조하지만 자기 혼자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뒤에 있는 신명, 더 나아가 상제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자신만이 창조할 수 있는 현실을 만들어나간다. 그러므로 인간은 절대 혼자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명의 도움으로 자기만의 사명을 수행할 수 있다. 때로 어떤 일을 할 때 이상하게 일이 안 되고 틀어질 때가 있는데 그것은 신명이 돕지 않기 때문이며, 돕지 않는 이유는 그 길이 내 길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신의 노예라는 뜻이 아니다. 노예가 된다는 것은 내가 원하지 않는데 주인이 원해서 억지로 할 수밖에 없는 상태지만 여기서 자기만의 사명이란 내 뒤의 신명과 상제님의 뜻인 동시에 내가 원해서 선택한 사명이다. 상제님과 신명 또는 조상 선령신과 나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신명은 내가 선택한 사명, 그래서 내가 가장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일상에서 내게 주어진 일을 성·경·신의 자세로 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신명의 인정을 받고, 신인조화가 되어 점점 더 자신의 목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인간이 최고의 창조물이라는 말에 반발하는 사람들도 있다. 금수만도 못한 인간들이 너무도 많아서 차라리 자연에 순종하며 사는 동물이 인간보다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특성, 즉 선과 악을 그 극점까지 보여줄 수 있는 특성이 인간을 다른 창조물보다 특별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자유의지와 선택 때문에 천국과 지옥을 오갈 수 있는 존재, 한때 극악무도했던 사람이 어떤 계기를 통해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하여 위대한 선의 실천가가 될 수 있는 존재, 최악의 어둠의 상황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게 되는 존재, 그래서 그 모든 선과 악의 경험을 통해 무한히 확대되어 진정으로 완전한 균형의 상태, 우주와 일치하는 상태로 완성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존재가 인간일 것이다. 선한 사람들만 있었다면 그 상태에 머무를 뿐 더 배울 것이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대대(對待)의 원리를 통해 배우고 진화하여 새롭게 태어나는 우주의 원리가 음양합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삼계 역사에 가장 효율적인 존재일 수 있는 것은 인간에게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전경』 행록 3장 44절에 나타난 상제의 다음 말씀은 위와 같은 인간의 특성과 역할이 마음에서 비롯됨을 보여준다.
“天用地用人用統在於心(천용지용인용통재어심)
하늘·땅·사람의 덕을 씀이 모두 마음에 달려 있다
心也者鬼神之樞機也門戶也道路也(심야자귀신지추기야문호야도로야)
마음은 귀신이 용사하는 중요기관이고, 집의 문이며, 도로이다
開閉樞機出入門戶往來道路神(개폐추기출입문호왕래도로신)
마음이라는 기관을 여닫고, 대문을 들고 나며, 도로를 오고 가는 신이 있다
或有善或有惡(혹유선혹유악)
그 신은 혹은 선하고 혹은 악하다
善者師之惡者改之(선자사지 악자개지)
선한 것은 스승으로 본받고, 악한 것은 고친다
吾心之樞機門戶道路大於天地(오심지추기문호도로대어천지)
중요기관, 대문, 도로인 내마음은 천지보다 크다”
내 마음은 선악을 담을 수 있고 천지같이 커질 수도 있다. 그러기에 상제님께선 그런 인간에게 늘 “힘쓰라”, 또는 “마음을 잘 가지라”고 말씀하신다. 특히 이제는 “만물이 가을 바람에 따라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성숙도 되는 것과 같이 참된 자는 큰 열매를 얻고 … 거짓된 자는 말라 떨어져 길이 멸망하리라.”(예시 30절)의 말씀처럼 천지가 성공하고 개벽하는 때이고, 인간이 성숙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모든 일을 풀어 각자의 자유의사에 맡기노니 범사에 마음을 바로 하라. …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 되니라. 이제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임하여 마음에 먹줄을 겨누게 하고 사정의 감정을 번갯불에 붙이리라.”(교법 3장 24절)는 말씀에서 보듯이 이제는 내 마음에 따른 모든 행위가 신명에 의해 밝게 드러나고 그 결과에 대해 내가 책임지는 때이다.
이처럼 내 마음에 의해 내가 만든 세상은 내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내 마음이 화평할 때 세상이 화평해지고, 내 마음이 즐거울 때 세상이 즐거워지고, 내 마음이 건강할 때 세상이 건강해진다. 오랜 영겁의 세월을 거치며 내가 만든 상황과 내가 만든 인연, 거기서 비롯되어 드러난 나의 모든 문제는 바로 내 마음으로 풀어 갈 수 있다. 해원상생을 실천하는 한 사람이 우리가 되고, 전체가 될 때 이 세상은 정말로 지상천국 같은 화평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만델라 대통령의 실화를 다룬 영화 《인빅터스(Invictus)》에서 ‘무지개 국가’란 말이 나온다. 새 정부의 대통령으로 취임한 만델라 대통령은 기존 백인 직원들을 그대로 채용하는데 심지어 예전에 자신을 죽이려 했던 전 백인 대통령의 경호팀도 그대로 임용한다. 이에 흑인 경호팀장이 반발하자 만델라 대통령은 “용서와 화해가 여기서 시작하고, 무지개 국가가 여기서 시작한다.”라며 부디 노력해달라고 부탁한다. 빨주노초파남보 여러 색이 모여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드는 것처럼 무지개 국가는 다양한 차이들(다양한 인종과 문화, 생각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고 더 큰 빛을 내는 곳이다.
한 사람이 세상인 곳에서 그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과 절대 같지 않다. 앞에서 말했듯이 음양합덕의 원리에 의해 더 새롭게 커져야 하기 때문이다. 만델라 대통령은 자신의 삶을 통해 사람들에게 어떻게 음양합덕을 하고 어떻게 해원상생을 하는가에 대한 본보기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난 어떤 한 사람이 되어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 난 어떤 프리즘이 되어 어떤 색깔을 낼 것인가? 그래서 어떻게 다른 색들과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무지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실천적 해답은 상제님께서 인간으로서 몸소 보여주신 행적과 도주님의 법방, 도전님의 실천수도의 가르침에 있다고 하겠다. 문득 윤동주의 「서시」와 ‘하워드 더먼’이라는 어느 미국 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는 시 구절처럼 성·경·신의 마음을 갖고, “이 세상에 무엇이 필요한가를 묻지 마라. 이 세상에 필요한 것은 자신을 생동케 한 사람(자기만의 색을 찾아 세상에 밝히는 사람)이 필요하다.”라는 하워드 씨의 말처럼 하늘이 부여한 자기 사명을 찾아내 기쁘게 그 일을 수행하는 한 사람이 내가 되기를 바라본다.
<대순회보> 184호
---------------------------------------
01 『대순진리회요람』, p.1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