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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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희동 작성일2018.02.03 조회5,243회 댓글0건본문
관점에 대하여
잠실32 방면 평도인 안희동
저는 수도하기 이전부터 사람 사이에 다른 입장을 보이고 그에 따른 오해가 생기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복잡하고 답답하다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수도를 하면서 조금씩 답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대순회보』 110호에 용에 대한 동서양의 차이에 대한 글은 저에게는 많은 깨달음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대순회보』에서는 용에 대한 시각이 동서양이 서로 다르다고 나와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용을 투쟁의 상대로 보고 이를 타파하고 없애야 하는 존재로 보는 반면, 동양에서는 기후를 관장하고 친근한 존재로 봅니다. 이러한 하나의 대상에 대해 상반된 태도가 나타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유력한 이유로 사상의 차이를 들고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주변 국가들 간의 투쟁과 정복을 일삼기 때문에 용도 정복의 존재로 보는 반면, 동양에서는 농경에 기반을 두고서 용이라는 존재를 농경에 필요한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비단 동서양이라는 거대한 대륙에서 오는 차이뿐만 아니라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도 많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도를 닦으면서 도우들과 생활하면서 그들이 나와는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 있어서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많은 기대 속에서 자라온 탓에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을 때 많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저희 부모님께서도 저에 대해 많은 부분을 기대하는 탓에 저는 사실 조금 내성적이고 소심한 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며, 상대가 한 말에 대해 조금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반면, 저와는 달리 부모님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다소 자유분방한 성장과정을 거친 도우는 저와는 달리 적극적이면서 대담한 편입니다. 서로의 입장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처음부터 이해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입장이나 관점의 차이에 대한 예로 물이 반 정도 있는 것에 대한 반응 차이를 들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사람은 ‘물이 반이나 남았네’라는 반응을 보이는 반면, 부정적인 사람들은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다’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이러한 반응 차이는 성장과정의 차이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성인이 된 이후에 경험의 차이에서도 비롯됩니다. 이러한 성향 차이를 도를 닦으면서 많이 느끼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예가 모든 부분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외수들은 정복 지향적인 성향이 있습니다. 저도 외수인지라 남들에게 지기 싫어하고 사람들에 대해 줄세우기를 잘합니다.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 지에 대해 순위를 매기기도 하고 남들에게 거만한 마음을 갖기도 합니다. 아직 제가 수도를 열심히 못한 것인지는 몰라도 이러한 마음이 저한테만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에 내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공존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에 대해서 편견을 갖거나 남에 대해 우월함을 느끼기보다는 남을 평가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을 반성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도를 닦으면서 포덕을 하지만 같이 도를 닦아가는 내수들을 볼 때면 저도 모르게 ‘이런 게 내수들의 천심이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때로는 선각분들께 화가 나기도 하고 오해가 생기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선각이 너무 싫다”, “선각 때문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선각이 연락을 주면 안 받겠다는 식의 우격다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내수들은 선각자들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바로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에 대해 선각자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반성합니다. 처음에는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도를 닦으면서 저와는 비슷한 사람뿐만 아니라 다소 반대되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현상, 하나의 대상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부정적인 생각이나 견해, 관점들을 바꾸고 상대의 긍정적인 생각을 본받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 나름의 방식을 통해서 남들의 좋은 점을 본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선적으로, 상대의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저 머리로서 이 사람은 나와는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마음에서, 경험에서 깨달은 것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단계는 자기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의 문제를 알고 상대의 긍정적인 관점을 배우려고 할 때 문제점을 알 수 있게 되는 단계입니다.
두 번째로는 자신과 타인의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계속 인식하고 타인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도를 닦으면서 배고픔이 많이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허겁지겁 식사를 하다 보니 음식을 소리 내서 먹는 도우를 발견하곤 합니다. 이 때 어떤 사람은 ‘도인이 왜 이렇게 품위 없이 먹어?’라며 그 사람에게 척을 짓기도 하는 반면 다른 사람은 ‘얼마나 배가 고프길래… 내 음식이라도 조금 주고 싶다’라는 생각을 품습니다. 전자의 생각을 가진 사람이 후자의 마음가짐을 갖기란 어렵지만 그러한 마음을 먹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이 단계입니다. 즉, 자기 자신의 문제를 인식한 것에 더 나아가 이제는 실제로 생각의 전환을 시도하는 단계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마음가짐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실제로 어떠한 상황에 부정적인 생각을 지닌 사람이 바로 긍정적인 마음을 갖기란 어렵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단계는 서로의 관점 차이에 대해서 교류하는 것입니다. 상대의 긍정적인 부분에 대해서 교류를 하다보면 계속해서 자신이 가진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A라는 상황에 B라는 부정적인 마음이 들게 되었고 그래서 C라는 긍정적인 마음을 상대는 어떻게 가졌는지에 대해서 서로 교류하는 단계입니다. 이는 자기가 가진 부정적인 견해를 인식할 때마다 즉시 상대방과 교류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예를 들자면, 자신에 대해 거만하게 반응하는 사람에 대해 자신은 척을 지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선각자이든 도우든 간에 이 상황에 대해 어떠한 마음과 행동을 취해야 하는 지에 대해 묻는 것입니다. 이때 자기 자신이 척을 지으려고 할 때, 이를 인식하고 고치려고 하고, 상대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필요한데, 감정이라는 것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그러한 감정이 들면 바로 바로 고치려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로써 마지막의 단계로 서로가 통하는 단계입니다. 이러한 4단계는 제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본 것입니다. 이 방법이 정말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상대방의 관점의 차이를 인식하고 서로 긍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교류하는 것은 실제 상생의 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서로 간의 믿음이 돈독해질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방법을 조금이나마 실천을 해서 방면의 도인들 간의 통심정의 경지까지 올랐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대순회보 1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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