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잘 되게 하는 1초의 찡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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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다현 작성일2018.06.07 조회5,925회 댓글0건본문
영월4 방면 강다현
문득 나는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 등장하는 사과나무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동화는 사과나무 한 그루와 한 소년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줄거리를 보면, 소년은 매일 같이 나무에 놀러 가 나뭇잎으로 왕관을 만들고, 나무줄기를 타고 놀다가 허기가 지면 사과를 따서 먹고, 피곤하면 나무 그늘 밑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소년이 나이가 들면서 가끔 나무를 찾더라도 나무는 소년을 반갑게 맞아주고, 언제든 소년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그에게 돈이 필요하면 사과 열매를 내어주고, 집과 배가 필요하면 나뭇가지를 선사했다. 세월이 흘러 소년이 노인이 되어 돌아왔을 때, 나무는 더는 줄 수 있는 것이 없어 안타까워하다가도 노인이 피곤해하며 자신에게 기대면 주저 없이 그의 쉼터가 되어주었다.
동화 속에서 사과나무는 한 인간에게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베풀면서 행복감을 느낀다. 자신보다 남을 잘되게 하는 삶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자 상생(相生)을 실천하는 길이다. 나눔을 통해 상생을 실천하는 방법은 많지만, 생활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누구나 손쉽게 상생의 온정을 나누고 남을 잘 되게 하는 방법이 있다. 필자는 그것을 헌혈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까닭은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천할 수 있고, 마음을 나누어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다. 『대순진리회 요람』을 살펴보면, 남을 잘 되게 하는 일은 수도인이라면 누구나 실천해야 할 행동강령인 훈회의 다섯 번째 항목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남을 잘 되게 하는 일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남을 잘 되게 함은 상생대도(相生大道)의 기본원리(基本原理)요 구제창생(救濟蒼生)의 근본이념(根本理念)이라. 남을 위해서는 수고(手苦)를 아끼지 말고, 성사(成事)에는 타인(他人)과의 힘을 합(合)하여야 된다는 정신(精神)을 가져 협동생활(協同生活)에 일치(一致) 협력(協力)이 되게 하라.
남을 잘 되게 하고 그것을 생활화하는 것은 수도에서 매우 중요한 것 중 하나이다. 상생과 구제창생의 이념이 담긴 남을 잘 되게 하는 일. 필자는 헌혈도 상생의 이념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부끄럽지만 지금까지 실천해온 헌혈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생애 첫 헌혈은 2002년 5월 14일이었다. 그 후 16년째 176회에 걸쳐 헌혈을 꾸준히 실천해오고 있다. 헌혈하게 된 계기는 고등학생일 때 학교 근처에 헌혈의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헌혈을 해보고 싶었지만, 선 듯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후 21살 때 어머니께 “헌혈을 하고 싶은데 혼자 무서워 못 갈 것 같아요”라고 부탁을 드렸더니 함께 가주셨다. 어머니 덕분에 용기를 내서 첫 헌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막상 헌혈을 해보니 바늘이 들어가는 1초만 따끔하고 전혀 아프지 않았다. 그 후 헌혈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고, 혼자서 헌혈의 집을 다니게 되었다. 그때 어머니께서 같이 헌혈의 집에 가주지 않으셨다면 이처럼 많은 헌혈을 할 수 없었을 것이고, 남을 살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 첫 헌혈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20살이 된 후 취업을 하였고, 취업 후 주말까지 바쁘게 일하면서도 헌혈은 잊지 않고 주기적으로 실천했다. 잠깐 시간을 내어 1초의 따끔함만 참으면 수혈이 필요한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은 나의 의지를 더 굳건하게 했다. 어쩌면 헌혈이 평범한 봉사일지 모르지만, 도움이 절실한 환자에게는 생사의 길목에서 생명을 되찾게 해주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혈액이 도움이 절실한 사람에게 전해져 그들에게 희망을 선사할 수 있다면 이보다 값진 일이 또 있을까? 마음 한편에 자리한 이 생각이 16년째 제가 헌혈을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이 밖에도 제가 헌혈을 계속하는 또 다른 이유는 헌혈은 하면 할수록 얻어지는 것과 베푸는 행복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점이다.
먼저 헌혈을 통해 얻어지는 것은 첫째, 영광스러운 바늘 자국이다. 초기에는 헌혈을 계속하다 보니 바늘 자국이 생겨서 간호사 선생님께 “바늘 자국이 나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부탁드린 적도 있다. 그런데 10년 넘게 하다 보니 바늘 자국이 오히려 훈장처럼 느껴진다.
둘째, 대한적십자 홈페이지에 보면 명예의 전당이 있다. 우리나라 헌혈 사랑 나눔에 도움을 준 100회 이상 헌혈자들 이름이 이곳에 올라있다. 부끄럽지만 나는 2011년에 이곳에 이름이 오르게 되었다. 그곳에 들어가 보면 수십 년간 헌혈을 통해 사랑을 실천해 온 분들이 많다. 헌혈을 통해 내가 그분들과 함께 그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헌혈을 통해 얻게 된 또 하나의 행복이다.
셋째는 건강이다. 헌혈은 건강한 사람의 특권이기 때문에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헌혈할 때마다 건강을 확인하고, 부모님께서 건강하게 낳아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실제로 삼시 세끼 밥을 잘 챙겨 먹고 헌혈을 하러 가면 ‘헤모글로빈 수치 및 혈압, 맥박, 체온’ 등을 확인하기 때문에 무료로 건강을 진단할 수 있을뿐더러 헌혈을 하고 나면 새로운 피가 생겨나기에 더 건강해진다.
그다음은 나누고 베풀어 느끼는 상생의 온정이다. 우리가 헌혈하게 되면 그 혈액은 도움이 절실한 환자들에게 건네지기 때문에 상생의 온정을 나누고 행복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헌혈 후 받게 되는 헌혈증서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에게 기부까지 할 수 있기에 행복감은 배가 된다. 이와 관련해서 나는 지금까지 헌혈을 통해 모아둔 100장의 헌혈증서를 분당제생병원에 기부하고, 몸이 편찮은 방면 도인과 학과 선배 어머니의 수술에도 사용했다. 혈액을 나누고 느끼는 행복과 헌혈증서를 기부하여 배가 되는 기쁨. 나누고 베풀어 느끼는 행복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헌혈을 하게 되면 감사의 의미로 각종 기념품을 받게 된다. 나는 그 기념품들을 모아두었다가 우산 등의 일부 기념품을 방면 포덕소에 올려 드린 적이 있다. 방면분들뿐만 아니라 헌혈 후 받게 된 기념품[필기구 세트, 손톱깎이 세트, 햄버거 상품권, 우산 등]을 고마운 지인들에게도 나누어 주었고, 가족의 생일에 케이크를 사서 축하해준 적도 있다. 그런가 하면 때로는 기념품 대신 기부권을 받아 어려운 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헌혈은 나도 잘 되고, 남도 잘 되게 하는 방법이 틀림없다.
헌혈의 종류는 크게 전혈과 성분헌혈로 구분된다. 전혈[1년에 5회]은 혈액의 모든 성분(적혈구, 백혈구, 혈장, 혈소판)을 채혈하는 것이고, 성분헌혈[1년에 24회]은 성분 채혈기를 이용하여 혈소판 또는 혈장 등의 필요한 성분만을 분리해 채혈하고, 나머지 성분을 헌혈자에게 되돌려주는 방법이다.
내가 겪은 헌혈 에피소드가 있다. 헌혈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서 간호사 선생님의 권유로 성분헌혈 중 혈장헌혈을 한 적이 있다. 헌혈 도중에 통증이 있었는데, 처음 하는 혈장헌혈이라서 원래 통증이 있는 줄 알았다. 통증이 점점 심해져 간호사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니 혈관에 바늘을 잘못 꽂으셨다고 한다. 그 후 오른쪽 팔 전체가 검붉은 보라색으로 멍이 들었다. 그로 말미암아 한 달 반 동안 멍과 통증으로 고생해야 했다. 보통 그런 실수는 거의 없는데, 간호사분이 경험이 부족한 탓이었다. 그때 가족들은 제 팔을 보고 헌혈을 못 하게 말렸다. 이런저런 상황이 겹치다 보니 머릿속에 헌혈하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은 계속 헌혈을 하고 싶었다. 그 후 10년간 헌혈의 집에 가면 그 간호사분을 매번 뵙는데 그때마다 미안하다며 초코파이를 더 챙겨주신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사과하는 선생님을 보면 내가 미안해질 정도였다. 나중에는 “이젠 그만 사과하셔도 돼요”라고 말씀까지 드렸다. 안 좋은 추억으로 악연이 될 뻔했는데, 10년 넘게 선생님의 진심 어린 사과로 좋은 인연으로 바뀌게 되었다.
나는 2017년 7월 19일 16년간 모은 헌혈증서 100장을 대진대학교를 통해 분당제생병원에 기부하게 되었다. 이 결정은 2013년도에 여러 번의 도전 끝에 32살의 나이로 뒤늦게 대순종학과에 입학하면서 나눔을 실천하자는 의지에서 비롯되었다. 힘들게 입학해서 그런지 학과에 대한 애정이 컸다. 그래서 입학도 기념하고 좋은 일도 할 겸 조혈모세포(골수) 기증을 신청했다. 이는 나중에 나와 골수가 맞는 백혈병 환자가 있다면 골수를 이식해주고 싶어서였다. 문득 4학년 마지막 학기가 끝나갈 때쯤 입학할 때 조혈모세포 기증 신청을 하고 왔듯이 졸업할 때도 기념이 될 만한 좋은 일로 마무리 짓고 싶어 헌혈증 100장을 기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동안 나는 기부할 만한 좋은 곳이 생기면 기부하려고 헌혈증을 모아두었다. 기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 고민하다가 학과 후배인 보정과 차선감께 상의드렸다. 조언해주시기를 “다현 선배가 개인적으로 분당제생병원에 기부하는 것보다 학교를 통해 기부한다면 학교 위상도 높아지고, 대순종학과 학생이 좋은 일을 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알게 되니 그편이 더 낳을 듯하네요”라고 두 분 다 같은 생각으로 말씀해주셨다. 처음에는 왠지 자랑하는 것 같아 내키지는 않았지만, 학교와 학과를 위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기부를 결심했다. 그 후 곧장 대진대학교 학생복지팀에 문의하니 홍보협력팀에 연락해 분당제생병원에 기부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대순진리회 수도인이고, 대진대학교 대순종학과 학생으로 분당제생병원에 기부한다는 것은 뜻깊은 일이다.
나는 그동안 대순종학과에 입학 후 대순장학금으로 많은 혜택을 받아가며 공부했다. 그리고 대학생활을 통해 교수님을 비롯하여 좋은 분들도 많이 알게 되었고, 평생 잊지 못할 경험도 많이 했다. 학회장도 해보고, 중국 유학, 학교에서 시행한 유익한 프로그램 및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학교에서 받은 많은 혜택과 소중한 경험에 대한 보답으로 헌혈증서를 학교를 통해 기부하게 된다면 무엇보다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2017년 7월 19일 분당제생병원에서 헌혈증서 기증식을 하게 되었다. 기증식을 위해 저는 학교 홍보협력팀 직원분과 분당제생병원으로 갔다. 기부식 장소에 도착하니 플래카드에 ‘대진대학교 강다현 학생 헌혈증서 기증식’ 문구가 보였다. 입구에 들어선 순간 제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를 보고 놀랐다. 병원 사회복지사 선생님께서 “강다현 학생을 위해 많은 것을 준비했어요”라고 말씀해주셨다. 게다가 병원 원장 선생님이 직접 감사장을 전달해주셔서 더 놀랐다. 병원장은 제가 쓴 헌혈 동기에 대한 글을 보고 “이런 학생이 있으면 어디든 직접 찾아가려 했다” 고 말씀하시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기증식에서 병원장 선생님은 “물질과 재능기부보다 가장 숭고한 것은 몸을 기증하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이 말을 듣고 내가 해온 헌혈이 아름다운 선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증식 후 나는 대순진리회에 입도한 것과 대순종학과 입학과 졸업, 그리고 기증의 모든 과정이 우연이 아닌 상제님의 덕화라고 생각하니 더 고맙고 감사했다. 대진대학교 홍보협력팀 선생님들은 며칠간 나의 선행을 16개 정도의 신문사를 통해 기사로 홍보해주셨다. 관련된 키워드를 검색해보니 기사가 계속 올라와서 신기했다. 그 외 SNS, 종단, 학교 홈페이지, 분당제생병원 소식지에도 올라오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많은 기사가 올라와서 쑥스러웠다. 나의 선행이 알려지는 것보다 대진대학교와 대순종학과를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는 것이 더 기뻤다. 이것이 큰 포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기사를 보는 사람들이 생소한 내 소속 학과를 보고 “대순종학과? 무슨 학과이지?” 궁금해하면서 좋은 이미지로 기억될 것 같았다.
이번 기부식은 내 인생에서 매우 뜻깊은 자리였다. 기부식을 통해서 나처럼 평범한 학생도 큰 기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또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대진대학교와 분당제생병원 관계자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헌혈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렇게 좋은 헌혈을 나뿐만 아니라 이 글을 보는 많은 사람이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나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아무런 조건 없이 생명을 살리고 남을 잘 되게 하는 헌혈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
<대순회보 2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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