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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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양규 작성일2018.12.21 조회3,142회 댓글0건본문
안양규 교수
I. 역사적인 붓다의 일생
역사적인 관점에서 붓다(B.C.E. 624-544)의 전기를 간략히 살펴보자. 고타마(Gotama) 싯닷타(Siddhattha)01가 주민등록상의 고유명사라고 한다면 붓다(Buddha)라는 말은 존칭어이다. 붓다가 되기 전 그의 성씨는 고타마이고 이름은 싯닷타였다. 싯닷타의 의미는 소원을 성취한다는 뜻이다. 고타마 싯닷타의 직계 가족을 잠깐 살펴보자. 그는 현재 인도 국경과 네팔에 걸쳐 자리잡고 있었다는 카필라밧투(Kapilavatthu) 왕국의 부왕 숫도다나(Suddhodana)와 어머니 마야(Maya)와의 사이에서 왕자로 태어났다. 어머니 마야 부인은 왕자를 낳은 지 7일 뒤에 세상을 떠났고, 그 뒤 그녀를 대신해 그의 여동생인 마하파자파티(Mahapajapati)가 태자를 양육했다. 왕자의 이복동생으로 난다(Nanda)가 있다. 29세에 출가하기 전 아내 야소다라(Yasodhara)와의 사이에 외아들 라훌라(Rahula)가 있었다. 붓다는 역사적으로 실존했었던 인물이며 부모형제가 있었고 아내도 아들도 있었던 것이다. 35세에 정각을 성취하고 그 후 45년간 수많은 사람에게 가르침을 베풀고 80세에 입멸하였다.
불교의 역사상 많은 붓다가 존재한다. 과거에도 붓다가 있었고 미래에도 붓다가 나올 것이다. 붓다는 한 분이 아니라 많은 붓다가 신앙의 대상으로 되어 왔다. 그러므로 역사적 존재인 불교의 개조(開祖)를 다른 제불(諸佛)과 구별하기 위하여 “석가모니 붓다”라고 이름하기도 한다. 그는 석가족(Sakya) 출신이었으므로 ‘석가족 출신의 성자’란 뜻으로 석가모니(釋迦牟尼)라고 불린다. 석가세존(釋迦世尊)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을 줄여서 석존(釋尊) 또는 세존(世尊)이라고 한다.
붓다라는 말은 원래 고유명사가 아니고 보통명사이다. 붓다는 동사 어근 Budh(깨어나다)에서 유래한 명사이며 자각(自覺)한 사람을 의미한다. 그래서 영어로는 대개 the Awakened One (깨어난 자)로 번역한다. 일차적 의미는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뜬 사람이라는 말이지만 종교적으로는 무명(無明)의 잠에서 깨어난 자라는 존칭이다. 따라서 무지의 상태에서 실상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기만 하면 누구나 붓다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다. 불타(佛陀)란 한역어는 붓다(Buddha)의 음역이고 의역어로는 각자(覺者: 깨어있는 사람)이다. 우리나라에선 불타가 부처라고 음사되었고 여기에 존칭 접미사 ‘님’ 자를 붙여 일반적으로 부처님이라고 부른다.
고타마 싯닷타가 무지의 잠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길을 가고 있었다. 도중에 어떤 사람이 고타마 싯닷타가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알고 물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신입니까?”
붓다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당신은 사람입니까?”
붓다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붓다의 대답을 듣고 당황해 하는 질문자에게 붓다는 말했다. “나는 무지의 잠에서 깨어난 자〔붓다〕이다”.
II. 탄생과 성장
1. 왕자의 탄생과 예언
태자의 부왕인 숫도다나는 나이 마흔이 되도록 한 명의 아이도 얻지 못하였다. 어느 날 밤 마야 부인은 황금으로 장식한 여섯 어금니를 가진 코끼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가는 꿈을 꾸었다. 숫도다나왕은 거룩한 태자를 낳을 꿈이라는 해몽을 듣고 기뻐하였다. 마야 부인은 임신하여 출산일이 다가오자, 룸비니(Rumbini) 동산에 이르렀다. 온갖 꽃으로 만발한 청화한 봄 날 마야 부인은 심신이 매우 유쾌함을 느끼며 오른손으로 무우수(無憂樹) 가지를 잡고 있었을 때, 태자는 자연스레 탄생하였다.
태자는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발자국씩 걸어가서 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외쳤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 나 하나 홀로 존귀하네. 모든 중생은 모두 괴로워하고 있다. 내가 저들을 편안하게 하리라.”
태자를 본 아시타(Asita) 선인은 태자의 미래를 예언하였다. “이 왕자는 서른두 가지 대장부의 형상과 여든 가지 미묘한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이 세속에 있으면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어 온 천하를 통치할 것이며, 세속을 떠나 도를 닦으면 반드시 큰 도를 깨달아 붓다가 되어 널리 중생을 구제할 것입니다. 그런데 태자는 반드시 집을 떠나 붓다가 될 것입니다.”
태자가 난 지 이레 만에 어머니 마야 부인은 세상을 떠났다. 마야 부인의 누이인 마하파자파티(Mahapajapati) 부인에 의해 태자는 양육되었다.
2. 태자의 유년 시절
태자는 매우 총명하고 인자하였다. 일곱 살에 여러 경전을 배워 모두 통달하고, 활쏘기, 말타기 등 무술도 모두 통달했다. 이렇게 학문과 무술에 정통하고 또 자애로운 성품을 보여주었다. 태자가 십여 세 되었을 때 태자의 사촌인 데바닷타(Devadatta)가 공중에 날아가는 새를 쏘아 맞혀 새가 태자의 동산에 떨어지게 되었다. 태자는 새의 생명을 가엾게 여겨 곧 그 화살을 뽑고 약을 발라 싸매 주고, 돌봐 주었다.
농사철에 태자는 부왕을 따라 들에 나가 백성들의 밭 가는 광경을 구경하였다. 농부들이 소를 몰고, 소를 채찍질하면서 밭을 갈아엎을 때, 쟁기 날에 찢기어 다치고 끊어진 벌레들을 새가 재빨리 날아들어 쪼아 먹는 것을 보고 태자는 홀로 나무 밑에 고요히 앉아 생각하였다. “모든 생명들은 행복하게 살기 바라는데, 국왕은 백성을 부려먹고, 농사짓는 백성은 소를 부려먹고, 벌레는 쟁기에 찢기고 또 날래고 힘 쎈 날짐승들에게 쪼아 먹히고 만다. 차마 볼 수 없는 생사 고통이다.”
정반왕은 태자가 세상의 즐거움에 뜻이 없고 깊이 명상에 잠기기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 장차 출가하지 않을까 염려했다. 부왕은 태자를 위하여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며, 봄·가을철엔 차지도 덥지도 않은 세 가지 별장(三時殿)을 지어 철따라 거처하게 하고, 수많은 어여쁜 소녀를 뽑아 모시게 하고, 노래와 춤과 음악으로 즐겁게 하였다. 그러나 태자는 향락에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태자의 나이 십칠 세(혹은 십구 세)되는 해에 이웃 나라의 야소다라(Yasodhara) 공주를 선택하여 태자비로 맞이하였다. 그러나 태자는 홀로 앉아 명상에 잠기곤 하였다.
III. 출가와 정각
1. 사문유관: 노병사 그리고 출가자를 만나다.
태자가 성 밖으로 나가 유람하고 싶어 하였다. 태자는 곧 보배 수레를 타고 동문으로 나가 동산으로 향했다. 그 때 도중에서 한 노인을 보았다. 머리는 희고 이는 빠지고 얼굴은 주름지고 허리는 꼬부라져 지팡이를 짚고 힘없는 걸음으로 숨을 헐떡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태자가 시자(侍者)를 돌아보고 물었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저 사람은 늙은 사람입니다.’
태자는 또 물었다.
‘어떤 것을 늙었다고 하는가?’
‘늙었다는 것은 수명이 거의 다 되어 앞으로 살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늙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태자는 또 물었다.
‘나도 앞으로 저렇게 될 것이며 저런 재앙을 면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한 번 나면 반드시 늙는 법입니다. 거기에는 귀천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자 태자는 마음이 매우 우울해져 곧 마부에게 수레를 돌려 궁중으로 돌아가자고 명령하였다. 태자는 조용히 깊은 사색을 하였다. ‘이 늙음의 괴로움은 내게도 반드시 있을 것이다.’
부왕은 시자로 부터 태자가 길에서 노인을 만나고 수심에 잠겨 있다는 말을 듣고 오욕(五欲)의 향락으로 그 마음을 즐겁게 하여 출가하지 못하게 하였다.
시간이 다소 지난 뒤 태자는 다시 마부에게 명령하여 수레를 장식해서 남문으로 나갔다가 도중에 한 병자를 만났다. 그는 몹시 쇠약한 몸에 배가 부었고 얼굴에는 검버섯이 피었는데 혼자 더러운 오물더미 위에 누워 있었으나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었으며, 심한 고통으로 못내 고통스러워하며 말도 하지 못했다. 태자는 마음이 우울해져 곧 마부에게 명령하여 수레를 돌려 궁중으로 돌아갔다. 태자는 조용히 깊은 사색에 잠기었다. ‘이 병의 괴로움은 내게도 반드시 있을 것이다.’
또 그 뒤 어느 날 태자는 마부에게 명령하여 수레를 타고 서문으로 나갔다가 한 죽은 사람을 보았다. 울긋불긋한 비단 깃발이 앞뒤에서 인도하고 친척들은 슬피 울부짖으며 상여를 따라 성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태자는 마음이 서글퍼져 곧 마부에게 명령하여 수레를 돌려 궁중으로 돌아갔다. 태자는 잠자코 깊은 사색에 잠겨 있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죽음의 고통은 나에게도 반드시 있을 것이다.’
또 어느 날 태자는 마부에게 명령하여 수레를 타고 북문으로 나갔다가 도중에서 한 사문(沙門)을 만났다. 그 사문은 법의(法衣)를 입고 발우를 들고 오직 땅만 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태자가 곧 마부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저 사람은 사문입니다.’
‘어떤 사람을 사문이라 하는가?’
‘사문이란 모든 은혜와 사랑을 끊고 집을 떠나 도를 닦는 사람입니다. 그는 모든 감각 기관을 잘 제어하여 바깥 욕망에 물들지 않고 자비스런 마음으로 어떤 생명도 해치지 않습니다. 괴로움을 당해도 슬퍼하지 않고 즐거움을 만나도 기뻐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잘 참는 것이 마치 대지(大地)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문이라 합니다.’
그때 태자는 말했다. “훌륭하구나, 이 도(道)야말로 바르고 참되어 영원히 번뇌를 여의고, 미묘하고 맑고 비었으니 오직 이것만이 참으로 기뻐할 만한 것이로다.”
태자는 늙고 병든 사람을 보고 이 세상의 고뇌(苦惱)를 알았으며, 또 죽은 사람을 보고 세상에 대한 집착이 없어졌다. 그리고 사문을 보자 확연히 출가할 결심을 하게 된다. 태자는 타인의 늙음, 병듦, 죽음을 보고 자신의 문제로 예상하며 진정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였다. 언제든지 목숨이 끊겨 죽을 수 있었으므로 무의미하게 살 수 없다는 것이다.
2. 태자의 출가
노병사(老病死)의 실상을 목격하고 번민하던 태자는 사문을 만나면서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태자는 부왕의 처소로 나아가 생사의 문제 해결을 위해 출가하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청하였다. “이 모든 세간은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나니 그러므로 원컨대 이 집을 떠나 진정한 해탈을 구하려 합니다.” “부왕이시여, 이 세상에 만나는 자는 반드시 이별하게 됩니다. 아무리 은혜와 사랑이 지중한 부모와 자식 사이라 하더라도 이별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소자는 영원히 이별을 여의는 법을 배우고자 하오니, 부왕은 소자의 뜻을 살피시어 집을 떠나 도 닦는 길을 허락하여 주소서.”
이 말을 들은 정반왕은 눈물을 흘리면서 애원하였다. “태자여, 이 아비를 위하여 나라를 맡아 다스리고 세상에서 할일을 다한 뒤에 집을 떠나 수도해도 좋지 않는가. 어찌하여 이 늙은 아비를 버리고 집을 떠나려 하는가?”
그러나 태자는 굳건하게 대답한다. “부왕님, 이 세상의 오욕락(五欲樂)은 한정이 있고 세속 일은 끝이 없사오며, 무상(無常)의 귀신은 예고가 없고 은혜와 사랑은 마침내 이별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 무엇을 더 믿고 기다리겠습니까? 나고 죽음이 없는 도(道)와 이별이 없는 법(法)을 찾아 닦는 것만이 오직 참된 길입니다. 그 밖에 또 무슨 참됨이 있겠습니까?”
늙음·병듦·죽음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애착하고 있는 대상을 결국 헤어지게 만든다. 눈에 보이는 것 모두 다 무상하니 거기에서 즐거움을 좇는 것은 고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늙음·병듦·죽음은 언제 들이닥칠지 예측할 수가 없지만 결정코 이를 것임은 명백한 일인데도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오욕락을 즐기고 있다.
태자는 병도, 늙음도,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자 출가하기로 결심하였다. “내가 출가한 것은 병듦이 없고, 늙음이 없고, 죽음이 없고, 근심 걱정 번뇌가 없고, 지저분함이 없는 가장 안온한 행복의 삶[涅槃]을 얻기 위해서였다.”
이십구 세 되던 해 늦은 밤 모두 잠들어 있었다. 태자는 조용히 마부를 불러 영리하고 용감한 말을 준비하게 하여, 말을 타고 궁중에서 벗어났다.
3. 출가 수행과 6년 고행
카필라밧투를 떠난 태자는 남쪽으로 갠지스강을 건너 마가다(Magadha) 국의 수도인 라자가하(Rajagaha)를 지나가게 되었다. 마가다국의 빔비사라(Bimbisara) 왕은 높은 누각 위에서 태자를 바라보고, 수레를 몰고 나가 태자를 맞이하여 제안하였다. “내가 이 나라의 반을 나누어 주겠소. 그것이 적다면 이 나라 군사를 내줄 터이니, 다른 나라를 정벌하여 그 땅의 왕 노릇을 하도록 하오. 태자의 요구라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겠소.”
태자는 왕의 호의에 감사하면서도 단호하게 거절한다. “대왕이시여, 대왕의 나라를 저에게 내어 주시겠다는 말씀은 너무나 고맙습니다. 그러나 저는, 내 나라도 버리고 나왔는데 어찌 대왕의 나라를 차지할 것이며, 하물며 군사를 일으켜 다른 나라를 빼앗겠습니까? 저는 이제 나라보다, 재산보다 귀중한 도를 위하여 집을 떠나 온 것입니다. 세속의 오욕락을 구하기 위함은 아닙니다.”
태자는 빔비사라 왕을 작별하고 알라라칼라마(Alarakalama)라는 수행자를 찾았다. 그는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02을 생사에서 벗어난 경지로 이해하고 가르치고 있었다. 태자는 곧 이 선정을 배워 성취하게 되었다. 알라라칼라마는 태자가 비상히 총명하여 그 법을 체득한 것을 알고 최상의 경례를 하며 존숭하였다. “존자와 같은 좋은 동행자를 얻어서 참으로 기쁘오. 내가 얻은 법을 존자가 스스로 얻었고 존자가 얻은 법을 내가 스스로 얻었소. 나와 같이 우리 제자를 지도하여 주시오.” 이때 태자는 생각했다. “이것은 나고 죽음을 벗어나는 최상의 정각과 열반(涅槃)은 아니다.”
태자는 마풋타(Uddakaramaputta)라는 수행자를 찾아갔다. 이 수행자는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03을 성취하고 있었다. 태자는 그로부터 그 선정을 익혀 오래지 않아 체득했다. 태자는 이 비상비비상처정은 아직 번뇌가 다한 것이 아니며, 또한 불사(不死)인 열반을 성취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태자는 선인을 작별하고 마가다국 서쪽으로 네란자라(Neranjara)강 동쪽 근처 숲으로 들어갔다. 태자는 모든 고행자들이 아직 경험하지 못한 고행을 닦기로 결심했다. 태자는 숲 속에 고요히 앉아 선정을 닦되, 하루 쌀 한 숟갈과 참깨 한 숟갈만을 먹으며, 또는 하루 쌀 한 낱, 깨 한 알씩만 먹으며 수행하였다. 옷은 몸을 겨우 가리는 한 벌이며 몸을 씻거나 머리를 깍지도 않았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겨울이나 여름이나 자리를 뜨지 않았다. 이렇게 한 해 두 해를 지나니 살과 피는 다 말라 버리고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손으로 몸의 먼지를 털려면 몸의 털이 말라 떨어지고, 손으로 배를 만지려면 문득 등뼈가 만져지는 것이었다. 나무하는 아이들은 쑥대로 콧구멍도 찔러 보고, 혹은 입과 귓구멍도 찔러 보며, 흙과 먼지를 끼얹기도 하였다. 그러나 태자는 죽은 듯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혀를 입천장에 고이고, 마음을 거두어 한 생각에 매고, 숨 쉬는 것을 세며, 때로는 코와 입을 닫아 호흡의 길을 막으면, 두 귓구멍에서 북치는 소리가 나기도 하며, 또는 온몸에 뜨거운 기운이 가득 차고 겨드랑이에 땀이 흐르기도 했다. 태자는 기력이 다하여, 땅에 쓰러지기도 하였다.
태자가 이렇게 고행을 닦은 지 육 년째 되던 해,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6년간 고행하였지만 생사를 벗어나는 해탈을 성취할 수는 없었다. 이제 이 몸의 힘을 길러서 지혜와 해탈을 성취하여야 하겠다”. 그래서 음식물의 분량을 차츰 늘렸고 차츰 기력을 회복하였다. 우루벨라(Uruvela) 촌장의 딸 수자타(Sujata)는 우유와 꿀에 쌀을 넣어 끓인 유미죽(乳米粥)을 정성을 다해 만들어 태자에게 공양하였다. 얼마 동안 이러한 음식을 받아먹은 태자는 기력도 생기고 또 본래의 신상이 차츰 회복되어 갔다.
4. 항마와 성도
동쪽으로 전정각산(前正覺山)의 서쪽 가야(Gaya)에 이르렀다. 그곳은 매우 정결하고 부드러운 풀이 비단처럼 깔려있고, 그 가운데 핍발라(Pippala) 라는 나무가 솟아 있었다. 태자는 그 나무 밑에 나아가, 어떤 장자가 베어다 준 부드러운 길상초(吉祥草)를 깔고 앉았다. 그리고 스스로 맹세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정각(正覺)을 얻지 못하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때에 죽음의 신인 마왕(Mara)은 싯닷타 태자가 장차 모든 장애물을 정복하고 정각을 성취하여 붓다가 될 징조임을 알았다. 그래서 마왕은 요염한 미녀 셋을 뽑아 태자 앞에 보내어, 미묘한 노래와 춤이며 갖은 애교와 재롱으로 태자를 유혹하였다. 그러나 생사의 뿌리를 기어이 뽑기 위해 금강정(金剛定)에 든 태자는 끝내 흔들리지 않았다.
마왕은 크게 두려워하여, 모든 신하를 부르고, 마군의 군사를 동원하였다. 가지각색의 험악한 형상으로 창· 칼· 활을 사용하며 칼비· 돌바람· 벼락 불을 일으켜, 선정(禪定)에 든 태자를 습격해 왔다. 그러나 태자는 금강정에 든 채 어떤 경계에도 다시 꼼짝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을 미워하지 않고 불쌍히 여기고 감싸 안아 주었다. 이와 같은 대선정(大禪定)과 대자비(大慈悲)로 마군의 무기는 미묘한 꽃으로, 모진 비바람은 향기로운 바람으로 또 상서로운 구름으로 변했다.
태자는 모든 욕심을 여의고 잡념을 떠나서 선정에 들었다. 고요하고 맑은 선정에서 지혜가 열리어, 모든 중생들이 지은 선업과 악업에 따라, 빈부, 귀천 등이 나뉘어지고, 천상· 인간· 아귀· 축생· 지옥 등에 태어나는 과보를 받아 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밤중에는, 태자는 지혜의 눈으로 모든 중생의 나고 죽음의 인연을 관찰하여, 고통의 원인과 그 해경 방안을 발견하였다. 동쪽 하늘에서 샛별이 떠오르는 때, 태자는 활연히 지혜가 열려 정각을 성취하였다. 태자는 이제 붓다(Buddha), 즉 정각자(正覺者)가 되었다.
IV. 설법: 가르침을 베풀다
1. 범천권청
정각을 성취한 붓다는 미묘한 해탈의 즐거움을 받으면서 생각하였다. “내가 고생 끝에 얻은 법은 매우 깊고 알기 어렵다. 저 어둡고 혼탁한 세상에서, 탐욕(貪慾)·진심(瞋心)·우치(愚癡) 등에 덮여 있는 인간들로서야 어떻게 내가 얻은 법을 알 수 있을 것인가. 이제 내가 그들에게 법을 바로 설한다면, 그들은 반드시 미혹하여 믿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요, 도리어 비방함 때문에 장차 악도에 떨어져 모든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며, 미묘하고 심원하기 때문에 탐욕과 암흑으로 뒤덮여 있는 사람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차라리 잠자코 법을 설하지 않고 열반에 드는 것이 옳을 것이다.”
범천왕은 곧 붓다 앞에 나타나 최상의 예경을 드리고, 한쪽 무릎을 땅에 붙인 채 합장하고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지난 세상 오랜 동안, 생사의 바다에서, 나라와 처자와 몸까지 버리시어 수행한 것은 모두 중생을 위함이었습니다. 이제 최상의 도를 이루시고 어찌 잠자코 법을 설하지 않으시려 하십니까? 어리석은 중생이 생사의 바다에서 빠져 나올 기약이 없습니다. 바라건대 부처님은 대비원력(大悲願力)을 저버리지 마시고, 법의 수레바퀴를 굴려주십시오.”
붓다는 범천의 간청을 듣고 세상 사람들을 관찰했다. 사람들은 제각기 다양하여 한결 같지 않았으니 비유하면 연못의 연꽃들과 같았다. 어떤 연은 물 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라고 있고, 또 어떤 연은 수면과 같은 수준까지 자라고 있다. 또 어떤 연은 수면 위로 올라와 더러운 물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연못의 연꽃은 아름답지만 연꽃이 자라는 연못 그 자체는 깨끗하지 않다. 연못은 더러운 이 세상을 비유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는 욕망이 적은 사람, 많은 사람, 가르침을 기꺼이 받으려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머리가 좋은 사람, 머리가 둔한 사람 등 천차만별이다. 붓다는 자신의 설법에 관심을 보이며 열심히 귀를 기울일 자가 있음을 알고 법을 설하기로 결심하였다. “이제 불사(不死)의 문을 열겠노라. 귀 있는 자 들어라.”
2. 초전법륜: 첫 설법
붓다는 이전에 수행 중 만났던 두 선인을 가르치려고 생각하였으나 이미 죽은 것을 알고 육 년 동안 같이 고행하였던 다섯 수행자에게 법을 설하기로 했다. 그때, 다섯 사람은 바라나시의 녹야원이라는 옛 선인들이 수도하던 곳에 머물러 있었다. 붓다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거기를 향해 떠나셨다. 다섯 사람들은 멀리서 걸어오는 부처님을 바라보고 의논하였다. “사문(沙門) 고타마는 고행을 버리고 좋은 음식을 받아먹더니, 다시 도 닦을 마음도 없이 저렇게 돌아다니는구나. 이제 이리로 오더라도 우리는 일어나 맞이하지도 말고 예경도 하지 말자. 그리고 앉을 자리를 찾거나 앉고자 하더라도 자기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두자.” 그러나 붓다가 다섯 사람들 앞에 나타나자, 다섯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즉시 일어나 예배하고 받들어 맞이했다.
붓다는 그들을 향해 말하였다. “그대들은 나에게 아직도 교만한 생각을 갖고 있구나. 나는 이미 끊을 것을 끊고 깨칠 것을 깨치어 나의 할 일을 마쳤다. 너희는 이제부터 사문 고타마라고 부르지 말고 붓다라고 불러라. 나는 정각을 성취하였다. 도는 오직 몸을 괴롭게 함으로써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고행과 쾌락의 두 극단을 벗어난 중도(中道)를 행하는 자만이 도를 얻는 것이다.”
이 법문을 듣고 다섯 사람은 마음이 열리고 법안(法眼)이 깨끗하게 되었다. 이 다섯 사람은 붓다의 제자가 되어 수행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3. 전도선언
붓다는 점차 제자가 늘어나 60명이 되자 법을 널리 알리도록 선언하였다.
“제자들이여, 나는 세상의 모든 번뇌와 업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났다. 제자들이여, 너희들도 세상의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났다. 비구들이여, 길을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세간을 연민하며, 인천(人天)의 이익과 복지와 안락을 위해 떠나라. 둘이 함께 가지 말고, 혼자서 가라. 늘 한결같이 하라. 제자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뜻과 형식을 갖추어 훌륭한 법을 설하라. 오로지 깨끗하고 완전하게 원만히 해서 청정한 수행을 밝히도록 하라. 제자들이여, 나도 또한 가르침을 펴기 위하여 우루벨라로 갈 것이다.”
붓다는 불교의 전법이 자기 자신만의 해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이익과 행복에 있음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방법에 있어서도 합리적이고 이해될 수 있는 언어로 가르치도록 제시하고 있다.
4. 싱사파 숲의 나뭇잎
붓다가 코살라(Kosala)의 수도인 코삼비(Kosambi)에 있는 싱사파(Siṃsapa)라는 숲에 머물고 있었다. 붓다는 나뭇잎 몇 개를 손안에 쥐고 제자에게 물었다. “ 내 손안에 있는 나뭇잎 수와 싱사파 숲의 나뭇잎 수 중 어느 것이 많은가?”
제자들이 당연히 숲의 나뭇잎 수가 많다고 하자 붓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알고 있는 바를 여러분에게 조금밖에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가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 훨씬 많다. 왜 그러한 것들을 말하지 않았는가? 그 이유는 열반에 이르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붓다가 알고 있는 지혜의 양은 숲의 나뭇잎처럼 방대하지만 붓다가 우리에게 가르친 양은 한 움큼의 나뭇잎 수와 같다. 붓다가 알고 있었지만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것들은 직접적으로 우리의 행복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들이다. 붓다의 유일한 관심사는 고통의 해결에 있었다. 바른 지혜에 의하여 우리의 삶의 방식을 변화하여 완전한 행복에 이를 것을 원했던 것이다. 따라서 고통의 해결에 관련이 없는 문제에 대하여서 붓다는 그 답을 알고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5. 독화살을 맞은 사람
말룬키아풋타(Maunkyaputta)라는 수행자가 우주의 기원과 같은 문제에 골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붓다가 확실하게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만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 그는 붓다를 찾아가 붓다가 이런 문제에 관하여 답을 주지 아니한다면 붓다를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붓다는 상념에 젖어 있는 제자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독화살에 맞은 사람의 비유를 말했다.
“말룬키아풋타여! 여기 독화살에 맞은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때 그의 친구들은 그를 위해 급히 의사를 데리고 왔다. 그러나 그는 ‘나를 쏜 자는 누구인가? 나를 쏜 화살은 어떤 활인가? 화살은 어느 쪽에서 날아왔는가? 화살의 재료는 무엇인가?’ 등의 질문이 해결되기까지는 의사가 독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고 고집하고 있었다. 말룬키아풋타여! 그는 그런 것들을 알기 전에 죽지 않겠느냐? 말룬키아풋타여! 세계는 유한인가 무한인가? 정신과 육체는 동일한가 별개인가?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등의 문제에 대답한다고 해서 우리들의 인생고가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들은 현재 여기서 고통을 우선 해결해야 한다.”
6. 흉악한 살인마의 교화.
연쇄살인범 앙굴리말라 (Angulimala)는 99명을 살해한 살인마였다. 그는 코살라국에서는 ‘손가락 목걸이(Angulimala)’라는 별명으로 통하고 있었다. 자신이 죽인 사람의 숫자를 기억하기 쉽도록 시체에서 잘라낸 손가락(Anguli)으로 목걸이(mala)를 만들어 장신구처럼 목에 걸고 다녔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이미 99명의 사람을 죽인 그는 자신의 어머니까지 해치려 했다. 잔인하여 손에 피를 묻히고 살육을 일삼고 있는 앙굴리말라를 향해 붓다는 찾아갔다. 도중에 농부들이 세존께서 흉적 앙굴리말라가 있는 곳을 향해서 걸어가는 것을 보고 만류하였다. “세존이시여, 이 길로 가지 마십시오. 이 길에는 앙굴리말라라는 흉적이 있습니다. 그는 잔인하여 손에 피를 묻히고 살육을 일삼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을 죽여서 손가락뼈로 목걸이를 만들고 있습니다. 수행자여, 이 길을 열 사람, 스무 사람, 서른 사람, 마흔 사람, 쉰 사람이 모이고 모여서 가도, 오히려 그들은 흉적인 앙굴리말라의 손아귀에 놓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만류했음에도 세존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흉적 앙굴리말라는 세존께서 멀리 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칼과 방패를 잡고 활과 화살을 메고 세존을 바싹 쫓아갔다. 앙굴리말라는 온 힘을 다해 달려도 보통 걸음으로 걷고 있는 세존을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앙굴리말라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나는 일찍이 질주하는 말을 따라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온 힘을 다해 달려도 보통 걸음으로 걷고 있는 이 수행자를 따라 잡을 수가 없다.’
그는 멈추어 서서 세존에게 외쳤다. “수행자여, 멈추어라. 수행자여, 멈추어라.”
세존은 대답하였다. “앙굴리말라여, 나는 멈추었다. 너도 멈추어라.”
세존의 대답에 의문이 생긴 앙굴리말라는 물었고 세존은 그 의미를 대답하였다. “나는 언제나 일체의 살아있는 존재에 폭력을 멈추고 있다. 그러나 그대는 살아있는 생명을 해치려 달리고 있지 않느냐?”
7. 붓다를 해치려는 사람
붓다를 대신하여 교단의 우두머리가 되고자 하는 탐욕 때문에 데바닷타(Devadatta)는 부처님을 살해하려 하였다. 여러 번 세존을 살해 하려고 하였지만 실패하였다. 데바닷타는 산을 오르내리는 붓다를 향해 바위를 굴렸다. 바위의 한 조각에 부처님은 발을 심하게 다쳤지만 상처는 완치될 수 있었다. 술을 잔뜩 먹인 코끼리를 붓다에게 달려들도록 하였다. 힘세고 포악한 코끼리는 붓다 앞에서 코를 내리고 귀를 흔들며 두 무릎을 꿇었다. 앞으로 다가간 붓다는 코끼리의 미간을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 자비로운 마음을 길러라.”
세존의 관용에도 불구하고 데바닷타는 자신의 허물을 뉘우치지 않고 도리어 승가의 분열을 조장하였다. 데바닷타가 성문 앞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대지가 갈라지더니 불길이 치솟아 그를 삼켜버렸다. 중죄를 저지른 데바닷타는 참회할 기회도 갖지 못하고 산 채로 지옥에 떨어졌다.
8. 아들을 잃은 어머니
가난한 친정집 탓으로 시집오는 날부터 천대받던 키사고타미(Kisagotami)는 아들을 낳자 가족들의 태도가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아프기 시작하다가 결국 죽게 되었다. 눈물을 흘리며 한 여인이 죽은 아이를 안고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그녀는 강보에 싸인 아이를 내보이며 아이를 살려달라고 사람들에게 애원하였다.
키사고타미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아이를 살려달라고 사람들에게 애원하였다. 이윽고 부처님을 찾아뵙고 아이를 살려달라고 매달렸다.
말없이 키사고타미를 바라보던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한 번도 죽어나간 적이 없는 집을 찾아 그 집에서 겨자씨 한 줌을 얻어 오십시오. 그러면 당신 말대로 해드리겠습니다.”
다시 거리로 달려간 여인은 거리의 첫 번째 집 대문을 두드렸다.
“불쌍한 저를 위해 겨자씨 한 줌만 보시하십시오.”
겨자씨를 주고 돌아서는 주인을 고타미가 불러 말하였다.
“이 집에서 사람이 죽어나간 적은 없겠지요.”
“이 사람아, 사람이 죽어나가지 않은 집이 어디 있겠나. 우리 집만 해도 얼마 전 아버님이 돌아가셨네.”
두 번째 집, 세 번째 집, 네 번째 집을 찾아가 보았지만 사람이 죽어나가지 않은 집은 없었다. 붓다는 키사고타미에게 말씀하셨다. “태어난 중생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반드시 죽는다”. 키사고타미는 생사의 문제를 풀기 위해 붓다의 제자가 되었다.
V. 마지막 여행과 입멸
1. 자기 자신과 법을 섬으로 삼으라
붓다는 마지막 여행을 마치고 80세에 입멸한다. 마지막 우안거 직후 붓다에게 격심한 질병이 발생하였다. 그 질병의 고통은 죽음에 이를 정도로 격심한 것이었다. 붓다는 이 병고를 무사히 극복하였다. 아난다(Ananda)는 붓다의 병고에 무척 놀랐지만, 붓다가 교단에 관해 어떤 유언을 말하지 않고 그냥 입멸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라고 고백한다. 이러한 아난다의 고백에 대하여 붓다는 승단의 존속·유지의 문제를 부정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아난다여! 비구 승단(Saṃgha)이 나로부터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아난다여, 나는 이미 법을 설했다. 무엇인가를 비밀스러운 가르침으로 남겨놓지 않고. 아난다여! 여래는 법에 관하여 몰래 숨겨 두지 않았다. 아난다여, 요컨대, 만약 누군가가 ‘나는 비구 승단을 지도한다’ 거나 ‘승단이 나에게 의지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그로 하여금 승단에 관하여 어떤 말을 하도록 요청하여라. 그러나 여래(如來)는 자신이 승단을 지도한다거나 승단이 자신에게 의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왜 여래가 승단에 관하여 어떤 말을 해야 하겠는가?”
아난다는 붓다의 임박한 죽음을 목격하고 교단의 유지라는 관심사에서 붓다에게 교단의 존속에 관하여 질문을 하지만 붓다는 승단의 유지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개개인의 수행과 자율을 설하고 있다. 붓다는 후계자 지정 대신에 아난다에게 가르친다. “너희들 개개인은 자신을 자신의 섬으로 만들지, 다른 어떤 것도 의지처로 삼지 말라. 너희들 개개인은 법을 자신의 섬으로 만들지, 다른 어떤 것도 의지처로 삼지 말라.”
2. 붓다를 공경하는 법
녹야원에서 첫 설법이래 붓다는 45년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베풀고 80세에 입멸하였다. 붓다는 파바(Pāvā)에서 마지막 공양을 마친 후 히란야바티(Hiraññavati) 강을 건너 말라(Mala)족의 살라 숲에 도착한다. 그는 아난다에게 자신을 위해 두 그루의 살라 나무 사이에 머리가 북쪽으로 가도록 침상을 펴라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 그는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누웠으며, 한 다리를 다른 다리 위에 올려놓는다. “그때 세존은 우협으로 사자와(獅子臥)를 하고 한 발을 다른 한 발에 포갠 채 정념(正念)하고 정지(正智)하고 있었다.”
두 그루 살라 나무의 새하얀 꽃잎이 비처럼 흩날려 부처님의 몸을 덮었다. 천신들이 온갖 아름다운 꽃과 향을 가지고 세존께 공양하였다. 세존은 이러한 공양이 당신을 진정으로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귀중한 꽃과 향을 가지고 여래를 공양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법을 받아들여 법답게 행동하는 것, 이것이 여래를 진정으로 공양하는 것이다.”
3. 붓다의 최후 가르침과 입멸
붓다는 다음과 같은 최후의 가르침을 남긴다. “제자들이여! 이제 나는 너희들에게 말한다. 제행(諸行)은 소멸되기 마련이다. 방일하지 않고(appamādena) 정진하라.” 방일(pamāda)은 어떤 자극에 의해 정신이 마비된 것을 가리키는 말로 특히 만취한 상태를 가리킨다. 자기를 잊고 자제함이 없이 온갖 욕망에 이끌려 가는 것, 그것이 방일이다. 그러므로 불방일이란 그런 상태에 빠지는 일이 없는 자제와 집중과 지속을 그 특징으로 한다. 따라서 불방일은 마음이 깨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붓다는 최후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설하고 나서 여러 선정을 출입한다. 선정에서 나온 직후 붓다는 입멸한다. 붓다의 입멸과정이 정각처럼 선정과 밀접히 연계되어 있다는 것은, 붓다는 마지막 순간까지 늘 “깨어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깨어있는 자”를 의미하는 붓다(Buddha)라는 용어가 역사적인 붓다에게 가장 맞는 호칭일 것이다. 붓다의 탄생을 전하는 문헌에서도 붓다는 탄생할 때 또렷이 깨어있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탄생부터 입멸까지 붓다는 온전하게 깨어 있는 사람(覺者)이었던 것이다.
자애로운 스승으로서의 붓다의 모습은 입멸 직전까지 경전에 잘 나타나 있다. 마지막 여행길에서조차도 붓다는 제자들에게 법을 설하시고, 제자들로 하여금 수행을 하도록 격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80이라는 고령에 긴 여행을 하는 것조차 힘든데 제자들을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가르침을 베풀고 있는 것은 스승으로서의 모습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붓다는 입멸 직전 제자들에게 불법에 관해 의문이 있으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자유롭게 질문하라고 세 번씩이나 요청한다. 초전법륜부터 입멸까지 붓다의 일생은 자애로운 스승의 삶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대순회보> 181호
저자소개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붓다의 입멸에 관한 연구」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도쿄대에서 초기불교의 『대반열반경』과 대승불교의 『대반열반경』을 비교 연구하였다. 현재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초기불교, 부파불교, 불교상담심리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The Buddha’s Last Days』, 『붓다의 입멸에 관한 연구』, 『행복을 가져오는 붓다의 말씀』, 『불교의 생사관과 죽음 교육』, 『현대인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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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싯닷타(Siddhattha)는 팔리어 표기이고 싯다르타(Siddhartha)는 산스크리트어 표기입니다.
02 불교의 세계관에서 물질을 초월한 순수한 선정의 세계에는 네 가지 경지가 있는데, 이를 사무색정(四無色定)이라 한다. 무소유처정은 사무색정(四無色定)의 하나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는 특징을 지닌다. 이 선정(禪定)은 아무 곳에도 얽매이지 않는 무소유의 마음 상태를 보이지만 불교에선 궁극적인 열반은 아니다.
03 비상비비상처정은 사무색정(四無色定) 중 최고의 선정으로 생각이 있지 아니하면서도 동시에 생각이 있지 아니한 것도 아닌 마음의 상태로 특징 지워진다. 붓다 당시에 외도(外道)들은 이 선정을 최고의 경지로 삼았지만 붓다는 이 선정도 열반에 미치지 못한다고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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