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의 성지(聖地), 바라나시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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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수 작성일2019.02.22 조회2,259회 댓글0건본문
연구위원 김성수
7월 5일 오전 10시 자이나교 사원이 있는 카주라호를 출발하여 동쪽으로 약 314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가장 인도답다는 도시 ‘바라나시(Varanasi)’로 이동하였다. 도중에 주(州)의 경계선을 지나게 되었는데, 긴 막대기 끝에 돌을 매달고 다른 쪽엔 밧줄을 매달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지나가는 차량으로부터 통행세를 징수하고 있는 소박한 톨게이트가 눈에 들어왔다. 얼핏 보면 개인이 무단으로 길을 막고 돈을 뜯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운전자들 모두가 차에서 내려 징수원에게 돈을 내고 영수증까지 받는걸 보니 정부에서 운영하는 것이 분명한 듯했다.
인도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이 기차라서 그런지 이처럼 지방도로가 지나는 한적한 곳에 사는 어린애들은 버스가 멈추자 좀처럼 볼 수 없는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삽시간에 몰려들었다. 잠시 쉬기로 결정한 일행은 모두 내려 톨게이트에 딸린 화장실도 사용하고, 징수원으로부터 짜이01도 한잔씩 대접을 받았다. 어딜 가나 시골 인심은 후한 모양이다.
마침 근처에 있던 힌두교의 구루(Guru:종교 지도자)도 자리를 함께 하게 되어, 일행 중의 인도인을 통역 삼아 몇 마디 나눠보았다. 이방인들을 대하는 태도가 다소 고압적이던 그는 원숭이 신(神)인 하누만(Hanumn)을 모신다고 하였으며 자신의 일에 대해 몹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우리 일행과 같이 있는 것이 어색했는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가버렸다. 다음날 갠지스 강변에서도 이날 만났던 사람과 같은 옷차림(상의는 안 입고 하의는 치마 같은 천을 두름)을 한 구루들을 보았는데 모두들 배가 많이 나온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힌두교는 인도인구(11억)의 83%가 믿고 있는 종교인데 이웃국가인 네팔과 파키스탄 등지의 힌두교도들까지 합치면 세계인구의 1/6이상을 신도로 확보하고 있는 거대 종교이다. 하지만 규모에 비해서는 외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힌두교에 포교(布敎)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인 듯하다. 힌두교도의 부모에게서 출생했다는 사실에 의해서만 힌두교의 구성원이 된다는 점에서 엄격한 출생 종교인 힌두교는 다른 종교에서 볼 수 있는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포용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힌두교도들은 좀처럼 개종(改宗)을 하는 경우가 없고, 결과적으로 서구 종교가 인도 사회에 침투하지 못하는 구조가 형성되어 왔다.
좀 더 부연하자면 이러한 현상의 이면(裏面)에는 카스트라고 하는 힌두교만의 독특한 신분제도가 있다. 고대 베다시대의 바르나(Varna)02에서 유래한 이 제도는 헌법의 제정으로도 없애지 못하고 있는 인도만의 독특한 그 무엇이라고 한다.
일행 중에 산토쉬(Santosh)라는 인도인이 있었는데 인도 최고의 명문인 델리대학을 나와서 한국학 중앙연구원에 유학중인 사람이었다. 그에게 카스트를 물었더니 평민계급인 ‘바이샤’라고 하면서 요즘은 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다른 카스트 사람과도 결혼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노 프라블럼(문제없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러던 그가 인도인 버스운전기사도 불러 함께 식사를 하자 하니, 고용주와 운전기사가 한자리에서 식사를 하는 것은 인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정색을 하여 매우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
잠깐 본 인도의 모습에서 카스트 제도의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힌두교가 인도 밖으로 널리 확산되지 못했던 이유가 인도인이면 누구나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카스트란 개념이 외국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니, 카스트 제도가 힌두교를 특징짓는 중요한 요인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힌두교의 구루를 자처하던 배나온 사람이 보여 주었던 고압적인 자세와 우리 일행을 피해 금방 자리를 떠난 이유도 알고 보니 모두 카스트 제도에서 연유한 행동이었다. 전통적으로 인도사회는 제사의식을 집전하고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사제계급을 상위의 카스트로 인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외국인은 최하위 카스트에도 끼지 못하는 불가촉(不可觸)인으로 분류된다고 하니 그로서는 우리 일행이 기피대상이었던 모양이다.
▲ 미간에 신(神)에 대한 귀의(歸依)를 상징하는 장식물을 부착한 힌두 여성들
한편 힌두교는 특정한 창시자도 없고 특정한 유일(唯一)의 경전도 없으며 체계화된 교리나 의식체계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면에서 보면 종교라기보다는 인도인들의 공통된 생활양식 또는 가치체계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되풀이되는 인도인들의 일상생활 자체가 신을 모시고 신과 함께 하는 종교행위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마다 각자가 모시는 신을 향하여 일정한 의식을 치른 후에야 하루일과를 시작하는데 대개의 사람들(특히 여성들)이 이때 그들의 미간(眉間)에 신(神)에 대한 귀의(歸依)의 상징으로 주황색 물감을 찍는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여성들은 아예 주황색깔의 보석을 미간에 붙이고 다니는데, 우리가 인도 여성의 상징으로 알고 있는 미간의 장식물은 바로 이런 종교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힌두교도들은 3억이 넘는 신을 모신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각자 다른 신을 모실 수가 있으며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신을 모시기도 하는데 그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수많은 신들의 배후에 ‘최고신’의 개념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절대 유일자의 모습이나 성격 등을 구체적으로 나타낼 수는 없으며 어떠한 언어적 표현도 초월하는 존재이다. 모든 신들은 이 절대 유일자의 무한한 기능, 즉 활동의 다른 국면을 대표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즉 우주창조는 브라흐마 신이, 그 유지는 비슈누 신이, 창조를 위한 파괴는 시바 신이 담당하는 식이다. ‘진실은 오직 하나이다. 다만 현자(賢者)들이 그것을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를 따름이다.’라는 베다(veda)의 가르침은 이러한 힌두교의 사상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 오토릭샤의 운전석에 모셔진 힌두교의 신들(안 붙여진 차량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힌두교의 신들에 대해 좀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브라흐마(Brahm)는 한자로 범(梵) 또는 범천(梵天)이라고 불리는 신으로서 대우주를 창조한 최고 신격이지만, 창조의 과업을 완수한 뒤에는 더 이상 지상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신을 받드는 사원은 거의 없을 정도이다. 현세의 이익에 민감한 인도인들의 단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비슈누(Vishunu)는 우주의 ‘유지자’ 또는 ‘보존자’인데 항상 자애로우며 진리를 수호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실현시키는 존재이다. 비슈누는 필요할 때마다 여러 가지의 화신(化身:Avatara)으로 이 세상에 나타난다. 우리가 인터넷 상에서 자신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아바타’라는 개념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 비슈누의 화신 중에는 ‘라마’라는 신이 있는데 이 신의 충직한 심복이 바로 앞부분에 나왔던 구루가 모시는 원숭이 신 하누만이다. 후에 『서유기』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 하누만은 주로 어려운 일을 앞두고 힘이 필요할 때 기원하는 신격(神格)이라고 한다. 이러한 배경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자칫 힌두교는 동물을 숭배하는 미개한 종교라고 오해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 매일 아침 찾아오는 신도들의 이마에 점을 찍어주며 축복을 해주는 힌두교의 사제. 뒤에 보이는 큰 돌기둥이 링가이다.
시바(Shiva)는 파괴와 죽음을 관장하는 신인데 우리가 주로 다닌 북인도 지역에서는 이 신(神)의 인기가 압도적이었다. 시바가 우주의 파괴를 관장한다고 하지만 파괴는 다시 창조로 이어진다는 힌두의 윤회 관념 때문에 생산(生産)·생식(生殖)·재생(再生)의 신이기도 하며, 선을 구하고 악을 멸하며 병을 치료해 주는 대자대비한 길상신(吉祥神)으로도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시바 신은 포스터의 형태로 일반 가정집 벽면이나 자동차 내부 등에 붙여져 예배의 대상이 되기도 하나, 대개의 경우 시바사원에 모셔져 있는 것처럼 남성 성기를 의미하는 링가(Linga)03의 형상을 하고 있다. 신도들은 이 링가에 갠지스 강으로부터 떠온 성수(聖水)를 붓거나 꽃잎을 붙이기도 하며 기도를 한다. 한편 시바의 아내 파르바티(Prvati)와 아들 가네샤(Ganesha)는 각각 독립적으로 신봉되기도 하는데, 특히 사람의 몸체에 코끼리의 얼굴을 하고 있는 가네샤는 번영과 행운의 신으로서 사람들에게 부(富)를 가져다 준다는 점에서 인기가 아주 많다.
얼마간 인도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이 저마다 각양각색의 신을 정성스럽게 모시는 광경을 보고, ‘아! 인도도 신명접대로 치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워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그것은 자신들의 목적을 얻어내기 위한 접대일 뿐 상제님께서 조선에 대해 언급하신 것처럼 ‘대접(待接)’04은 아니었다. 대접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마땅한 예(禮)로써 대함’이라고 나와 있다. 카주라호에서 방문한 힌두사원에 있는 가네샤 상(像)은 여러 신도들이 물을 머리에서부터 흘려 붓고 각종의 꽃잎을 눌러 붙인 결과, 그것을 도대체 성스러운 신상(神像)이라고 해야 할 지 우스꽝스러운 돌덩어리라고 해야 할 지, 참 쳐다보는 입장에서도 난감한 그런 모습이 되어 있었다.(사진 참조)
경배의 대상이면 그 대상답게 적절한 예를 갖추어 대했다면 결코 그런 모습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인간의 종교 행위에 있어 기복(祈福)이란 요소가 차지하는 부분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이익을 구하기에 앞서 상대를 먼저 배려한다는 측면에서 생각해 볼 때, 대상(對象)이 된 신명이 느끼는 바가 인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버스는 밤늦게 바라나시(Varanasi)에 도착하였다. 건물과 거리는 매우 낙후되었고 잘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 드는 도시였다. 12세기 이슬람의 침략으로 수많은 힌두 사원이 파괴되고 학자들이 학살되어 본래의 면모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사실 바라나시는 기원전 600년경 당시 인도 사회의 지배적인 종교였던 바라문교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신흥 사상가들이 몰려들어 학문의 꽃을 피우던 곳이었다. 이런 과거의 전통 때문에 현재에도 바라나시는 인도 제일의 교육도시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05 그런데 이러한 사실보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바라나시는 힌두교도들에게 있어 누구나 일생 동안 한 번쯤 방문하기를 원하고 가능하다면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기를 소망하는 성지(聖地)라는 것이다.
▲ 바라나시 갠지스 강변의 모습[이런 가트(계단)가 4km에 걸쳐 늘어서 있다]
▲ 갠지스 강변 마니까르니까 가트(화장터)에서 연기가 흩날리고 있다. 화장터에서 관람은 허용되지만 사진을 찍다가는 유족들로부터 봉변을 당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함
▲ 신성한 강물인 강가(Gang)에 몸을 담그고 기도하는 힌두교도
▲ 성수(聖水)를 떠 오기 위해 갠지스 강으로 향하는 주황색 옷차림의 힌두교도들
바라나시가 이렇게 힌두교의 주요성지가 된 이유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갠지스 강에 있다. 이 강은 인도어로는 강가(Gang)06라고 불리는데, 본래 천계(天界)에 있던 강이었다고 한다. 지상의 가뭄을 해결하기 위해 성자 바기라타(Bhagiratha)는 고행(苦行)의 힘으로써 신들을 만족시킨 결과 천계(天界)에 흐르고 있던 강을 지상으로 끌어내려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만일 강을 지상에 그대로 떨어뜨리게 되면 큰 홍수가 나서 대지는 파멸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시바 신이 개입하여 그 물의 힘을 머리로 받아 분산시켰고, 물줄기는 그의 엉클어진 머리칼을 따라 일곱 갈래로 나뉘어 지상에 흘러내리게 되었는데 그 중의 한 갈래가 갠지스 강이 되었다고 한다.
힌두교도들에게 갠지스 강은 만물을 낳아 주는 어머니이자 모든 것을 정화(淨化)시켜 주는 존재로 이 강에 목욕재계를 하면 모든 죄가 씻어지고 화장한 뼛가루를 여기에 뿌리면 극락으로 가게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일주일 후 시작된 힌두교의 페스티발 기간 중에, 주황색 옷을 입은 힌두교도들이 괴나리봇짐 같은 막대 끝에 작은 금속 물병을 매달고 맨발로 도로변을 행진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수십 km 이상 떨어져 있는 갠지스 강을 방문하여 그 성수(聖水)를 떠다가 자기 동네에 있는 힌두 사원의 신상(神像)에 바치거나 또는 목욕할 때 한 방울씩 그 물을 떨어뜨려 정화의식을 행한다고 한다.
<대순회보 69호>
01 인도인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차로서 우유에 각종 향신료와 홍차를 넣어 끓인다. 영국인들이 즐기는 밀크 티의 원조이다.
02 빛깔을 의미하는 단어. 고대 인도에서는 집단을 ‘빛깔’로 구별하였는데 승려계급(브라만)은 백색, 무사계급(크샤트리아)은 적색, 평민계급(바이샤)은 황색, 노예나 천민계급(수드라)은 흑색으로 표시하였다.
03 시바사원에서 가장 신성한 신상(神像)은 형상이 조각되어 있지 않은 이 원통형의 링가이다. 링가의 재질은 돌이며, 간혹 구리나 수정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
04 조선과 같이 신명을 잘 대접하는 곳이 이 세상에 없도다. 신명들이 그 은혜를 갚고자 제각기 소원에 따라 부족함 없이 받들어 줄 것이므로 도인들은 천하사에만 아무 거리낌 없이 종사하게 되리라.(교법 3장 22절)
05 바라나시에는 힌두의 전통학문을 계승해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브라만 학자들이 셀 수 없이 많이 있으며 지금도 고대의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기 위해 각지에서 찾아오고 있다. 그리고 베나레스힌두대학교(1917년 건립)와 같이 규모가 크고 중요한 3개의 대학교와 12개가 넘는 단과대학과 고등학교들이 있다.
06 여신(女神)의 이름. 시바의 부인 파르바티의 여동생이라고 한다. 힌두교도들에게 있어 갠지스 강은 자체가 신(神)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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