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합덕(陰陽合德) : 상생의 인간관계 관점으로 본 음양합덕
페이지 정보
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2.10 조회3,131회 댓글0건본문
‘음(陰)’과 ‘양(陽)’은 우주만물의 근본으로서, 본래 ‘태양이 구름에 가려짐[음(侌)]’과 ‘태양의 빛남[양(昜)]’을 의미하였으나, 여기에 산을 뜻하는 ‘ (언덕 부)’가 첨가되어 양(陽)은 ‘산측(山側)의 햇빛이 비추어지는 곳’, 음(陰)은 ‘햇빛이 비치는 반대편 산측의 그늘진 곳’의 의미를 뜻하게 되었다.
우주 만물은 모두 이 음양(陰陽)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하늘은 양이며 땅은 음이고, 해는 양이며 달은 음이고, 인간은 양이며 신은 음이고, 몸은 양이며 마음은 음이고, 남자는 양이며 여자는 음이고, 수컷은 양이며 암컷은 음이고, 왼쪽은 음이며 오른쪽은 양이고, 안[內]은 음이며 밖[外]은 양이고, 뒤[後]는 음이며 앞[前]은 양이고, 숨어 있는 것[隱]은 음이며 나타난 것[現]은 양이다. 이렇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느 것 하나도 음양 아닌 것이 없다.
음양은 서로 상반된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음과 양이 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상대가 있으므로 내가 존재하는 상관관계 속에 있다. 다시 말해서 음양은 양이 존재함으로써 음이 존재하고 음이 존재함으로써 양이 존재하는 상호의존적인 관계이다. 인간사회도 이러한 음양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회는 나 혼자가 아닌 다수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활동하는 곳이다. 각기 다른 환경과 성격과 체질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고 서로를 의지하며 서로 단점을 보완하려고 할 때, 상생의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 또 어느 한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을 함께 함으로써 목적한 일도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상대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할 때, 상대로부터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존중받을 수 있다. 이렇게 인간사회는 상대가 존재함으로써 자기가 존재하고,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이다.
음양합덕(陰陽合德)은 이러한 음양의 조화가 더욱 더 완벽하게 이루어져 하나의 완전무결한 상태가 되는 것으로 ‘음양이 합해져 덕(德)을 이룬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덕은 선덕(善德)으로서 인간을 이롭게 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곧 상생(相生)이라는 덕을 무한히 창조해서 발생시킴으로써 인간은 무한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음양합덕으로 나타나는 결과는 상생(相生)의 실현인 것이다.
음양합덕이 된 세계는 오직 상생이 지배하므로 자연 또한 인간에게 이로운 무한한 덕을 베풀어 주게 된다. 선천의 변화가 심했던 기후가 후천에는 항시 고르기 때문에, 무더위나 추위로 고통 받는 일이 없이 항상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인간에게 가장 쾌적한 기후가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홍수나 가뭄이 없이 햇살이 필요한 곳에는 햇살이, 비가 필요한 곳에는 비가 꼭 필요한 만큼 내릴 것이다. 이로써 땅에서는 하늘의 도움을 받아 농사를 짓는 데도 힘이 들지 않고 항상 곡식과 과일을 풍성하게 수확할 수 있다.
이 세계는 무한히 풍요롭기 때문에 사람 사이에 대립과 갈등이 없어지고, 정치하는 사람들도 위무와 형벌이 아닌 상생의 조화로써 다스리기 때문에, 어떤 원울과 번뇌도 없게 된다. 또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불로불사(不老不死)하고 수화풍(水火風)의 삼재(三災)와 같은 자연의 해악이 없어 상서가 무르녹는 지상선경(地上仙境)이 펼쳐질 것이다.
음양합덕이 이룩된 세계는 선천의 상극적 현실과는 전혀 다르다. 상극세계에 선악(善惡)이 공존했다면 상생의 후천세계는 완전한 선(善)만이 존재하는 세계이다. 후천(後天)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지금은 선악이 공존하지만 선을 향해 부단히 질주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아직도 인간의 탐욕과 깨달음의 부족으로 인간사이의 부조화, 이를테면 남녀 불평등, 노사(勞使)의 갈등, 동·서양의 문화적 대립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근본적으로 극복하여 음양합덕이 이룩된 상생의 세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상호 존중의 정신이 바탕이 된 상생적 경쟁과 상생적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상생적 경쟁이란 상대와의 경쟁을 통해 자신과 상대가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공유하여 서로가 목표한 결과를 창출해 내는 것을 말한다. 인간사회에서 인간 상호간의 경쟁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논리에 따른 경쟁은 필연적으로 원한과 갈등을 낳게 되어 있다. 선의(善意)의 경쟁이라고 말하듯이, 경쟁은 서로의 발전과 전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상대야 어떻게 되든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사고는 위험천만하다. 우리의 도(道)는 남을 잘 되게 하는 도(道)이다. 남을 잘 되게 배려하여 남만 잘 되고 나는 잘못된다면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도는 남을 잘 되게 하면 반드시 나도 잘 된다는 필연적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상생적 협력이란 상생적 경쟁에서 말한 것처럼 상호간에 발전을 공유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법에 위배되거나 인간의 도리에 어긋난 일에 대한 협력관계는 상호공멸을 초래한다. 서로에게 이롭고 공명정대한 일을 위해 협력할 때만이 상생의 관계는 성립될 수 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은 서로를 의지하고 서로 협력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상생적 협력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상대로부터 보완하고, 상대의 부족한 점을 자신이 채워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음양이 서로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항상 대립하여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상극적(相克的) 상황이 지속되어 인간은 영원히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음과 양이 서로 극단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서로 대립하고 적대시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대립하면서도 서로를 필요로 하고 협력하여 서로를 유익한 관계로 발전시켜나갈 때, 개인의 행복과 인류의 평화가 다가올 것이다. 여기에 음양합덕의 사상적 의의가 있는 것이다.
《대순회보》 65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