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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Q.

    수련 시 유의 사항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Q : 수련 시 유의 사항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A : 수련(修鍊)이란 ‘닦을 수(修)’에 ‘쇠 녹일 련(鍊)’으로 ‘닦고 단련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수련은 ‘대순진리로 심신을 갈고 닦아 도통의 경지에 이르도록 단련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넓게는 인륜도덕과 해원·보은상생의 진리를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수행뿐만 아니라 토성수련도장에서 실시하는 연수 등을 포괄하지만,01 일반적으로는 법좌를 하고 앉아 주문을 송독하며 행하는 수련을 의미합니다.


    질문하신 수련은 주문 송독의 수련으로 보이며, 이것에 대해서는 《대순회보》 204호, 「정심원」 코너에 ‘수련 시 유의 사항’이라는 제목으로 수련 장소, 시간, 방법, 유의 사항 등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는 기존에 설명한 유의 사항을 바탕으로 정정(訂正)해야 할 내용과 미처 소개하지 못했던 사항을 도전님 훈시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기존에 설명했던 유의 사항을 한 번 더 살펴보는 것은 이것이 도전님의 말씀으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련은 봉축(奉祝)의 마음으로 상제님을 영원히 모시는 정신을 단전에 모아 영통의 통일을 목적으로 주문을 봉송하는 것입니다. 즉, 상제님의 뜻에 부합하도록 심성을 단련하고 기질을 연마하는 것이며 주력(呪力)을 쌓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수련은 수도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임의대로 하면 허령(虛靈)에 빠져 광증(狂症)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도전님께서 분부하신 다음과 같은 사항을 준수해야 합니다.

    첫째, 다음의 ‘수련반 필수사항’을 지켜야 합니다. 한 원로 임원의 말에 의하면 도전님께서 이것을 모든 방면에 나눠주라고 하시면서 그대로 지킬 것을 분부하셨다고 합니다.

     


     

    위의 사항을 보면, 수련 도중 몸이 불편하거나 마음이 이상해지면 먼저 심신의 안정을 취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1번 항목에 정신을 모으지 않고 주력을 얻는 데 힘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사항은 도전님께서 훈시를 통해서도 여러 차례 강조하신 바 있는데, “정신을 모아보려는 허심의 마음을 두지 말아야 허(虛)에 잡히지 않을 것이다.”02라고 하셨습니다. 수련은 상제님을 가까이 모시는 정신을 연마하고 주력을 쌓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과 달리 신비한 현상을 경험하려는 등 사적인 의도로 정신을 모으거나 그 결과 환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에 빠져들면 허령이 동하므로 주의해야 합니다.03

    둘째, 수련은 혼자 해서는 안 됩니다. 앞에서 말한 《대순회보》 204호에서는 ‘수련은 집단 또는 개인으로 할 수 있다’라고 하였으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 이 지면을 빌려 정정하겠습니다. 도전님께서 “허령에 빠질까봐 방면에서 혼자 수련을 몇 시간씩 하지 말라고 했던 것이지, 기도를 자주 모시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기도는 괜찮다.”04라고 하신 말씀에서 알 수 있듯 수련은 혼자 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신입 도인이나 주문을 많이 외워보지 않은 사람이 혼자 수련하면 허령이 들기 쉬우므로 임원의 지도와 감독이 필요합니다. 개인이 하다가 허령에 들면 위험하므로 여러 명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수련 시간을 준수해야 합니다. 수련은 한 번에 두 시간 이상을 해서는 안 되며, 하루 총 3시간을 넘지 말아야 합니다. 두 시간을 할 때도 한 시간 하고 10~15분 정도 쉬었다가 다시 해야 합니다.05 주력을 많이 쌓고자 하는 마음이 지나쳐 정해진 시간 이상 수련을 하게 되면 이 또한 허령이 들 수 있습니다. 수련 시간을 준수해야 수련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넷째, 주문을 강하게 송독하지 말고 부드럽게 읽어야 합니다.06 주문을 송독하는 것은 신명과 교감(交感)하고자 정성을 들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성과 악성으로 주문을 송독하면 신명이 응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문은 신명이 응감하도록 부드럽게 봉송해야 합니다. 주성을 느리게 하거나 빠르게 하는 것은 상관없으며 편안한 마음으로 주문을 연습하듯이 하면 됩니다.07

    다섯째,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수련하다 보면 자신의 주성이 타인의 주성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때 자신이 상대보다 낫다는 생각으로 상대를 이기려는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이 또한 허령이 될 수 있으므로 조심하여야 합니다.08 수련이 상제님에 대한 영시의 정신을 연마하기 위한 것임을 염두에 두고 바른 마음으로 임하여 삿된 기운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이상에서 수련 시 유의 사항을 도전님의 훈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수도는 “대월(對越) 상제(上帝)의 영시(永侍)의 정신(精神)을 단전(丹田)에 연마(鍊磨)하여 영통(靈通)의 통일(統一)을 목적”09으로 하는 수행입니다. 영통이 곧 도통이며, 도통은 마음이 유리알과 같이 맑게 닦여져 무욕청정(無慾淸淨)이 되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수도의 일환인 수련은 도전님께서 말씀하신 주의 사항을 준수하면 이러한 도통의 경지에 이르는 데 일조(一助)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허령이 들어 도통을 받기 어렵게 됩니다. 이것을 명심하여 올바른 수련이 되도록 법을 잘 지켜야 하겠습니다.

     

     

     

    01 “연수가 수련을 뜻하니 우리는 수련도장이라고 했다. … 수련을 통해 단결성을 기른다.”[「도전님 훈시」(1989. 7. 26)]; “인륜 도덕을 지키는 것도 자주 닦는다는 것인데, 도인이 얘기할 때는 수련이라 표현한다. 수련하면 맑고 밝아진다”[「도전님 훈시」(1993. 5. 28)]; “수도하고 수련한다고 해서 절하고 주문 읽고, 그런 것만이 아니다. 해원상생이 기본 원리이다. 이것을 닦고 갈고 해나가면 도통한다.”[「도전님 훈시」(1991. 10. 30) ]

    02 「도전님 훈시」(1986. 9. 28).

    03 “방면에서 수련을 할 때는 여러 시간 하지 말고 정신도 모으지 마라. … 입도한 지 얼마 안 되고, 주문 많이 안 읽던 사람이 주문 읽고 그러다 보면 환해지는 현상을 보는 사람이 있는데, 여기에 재미 붙이면 위험하다. 주문할 때 이상한 것이 보이고 그것에 빠져들면 허령이 들고 정신이상이 생긴다. 못 고친다.”[「도전님 훈시」(1992. 11.1)] 참고.

    04 「도전님 훈시」(1992. 4. 9).

    05 “1시간 수련 후 10분이나 15분을 쉬고 계속한다.”[「도전님 훈시」(1987. 10. 5)]; “수련 시간은 하루 3시간 이상해서는 안 된다. 수련은 2시간 이상 연속해서 하지 말고 1시간 하고 쉬었다 하라.”[「도전님 훈시」(1988. 8.9 1)] 참고.

    06 “수련할 때 주문을 강하게 읽지 말고 부드럽게 읽어라.”[「도전님 훈시」(1988. 4. 21)] 참고 .

    07 “고성(高聲)과 악성(惡聲)으로 주문을 읽으면 신명이 응하지 않는다. … 주문은 부드럽고 안정된 마음으로 신명이 춤을 추며 응감하도록 읽어라. 주문이 늦거나 빠른 것은 괜찮다.”[「도전님 훈시」(1988. 7. 26)] 참고 .

    08 “수련을 할 때 … 내가 너보다 낫다 하는 생각이 들어가면 그것이 허령이 된다. 그런 생각은 빨리 바꾸어 항상 남을 이긴다는 생각을 버리고 조심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라.”[「도전님 훈시」(1986. 2. 20)] 참고 .

    09 『대순진리회요람』, p.18.


  • Q.

    옛 성인들이 말씀하신 무자기(無自欺)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Q: 옛 성인들이 말씀하신 무자기(無自欺)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A: 무자기(無自欺)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수칙(守則)의 세 번째가 ‘무자기(無自欺)는 도인(道人)의 옥조(玉條)니, 양심(良心)을 속임과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언행(言行)과 비리괴려(非理乖戾)를 엄금함’이므로, 무자기 즉 스스로 속이지 않는 것이란 구체적으로 첫째 양심을 속이지 않는 것이요, 둘째 사람들을 속이지 않는 것이며, 셋째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중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역시 양심을 속이지 않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대순진리회 요람』에 따르면 마음에는 양심(良心)과 사심(私心) 두 가지가 있는데 양심은 천성 그대로의 본심이요, 사심은 물욕에 의하여 생기는 욕심이라 합니다. ‘양심을 속이는 것’이란 양심을 저버리고 사심에 사로잡히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인간의 모든 죄악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어 결국 사람들을 속이고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심을 버리고 양심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것을 곧 무자기라 합니다. 옛날 성현들 중에서 남송(南宋) 사람 주희[朱熹: 1130~1200, 주자(朱子)] 선생도 ‘무자기(無自欺)’에 대해 언급하신 바가 있습니다. 송나라 시대에 일어난 성리학(性理學)을 집대성시킨 주자는 상제님에 의하여 유교의 종장(宗長)으로 임명을 모신 사람입니다. 주자는 그가 저술한 『대학장구』의 「경일장(經一章)」 각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명명덕어천하(明明德於天下者)라는 것은 천하 사람에게 모두 그 밝은 덕을 밝혀주는 것이다. 마음은 몸을 주재하는 것이다. 성(誠)은 성실함이고 의(意)는 마음이 발(發)하는 바이니, 그 마음이 발하는 바를 성실히 하여 반드시 스스로 만족하고 스스로 속임이 없고자 하는 것이다. 치(致)는 미루어 다함이고 지(知)는 식(識)과 같으니, 나의 지식을 끝까지 추구해서 그 아는 바에 다하지 않음이 없고자 하는 것이다. 격(格)은 이르는 것이고 물(物)은 사(事)와 같으니,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사물의 극처(極處)에 이르지 않음이 없고자 하는 것이다. 이 여덟 가지는 대학의 조목(條目)이다.(明明德於天下者 使天下之人 皆有以明其明德也. 心者 身之所主也. 誠 實也. 意者 心之所發也. 實其心之所發 欲其必自兼 而無自欺也. 致 推極也. 知 猶識也. 推極吾之知識 欲其所知 無不盡也. 格 至也. 物 猶事也. 窮至事物之理 欲其極處 無不到也. 此八者 大學之條目也.)”

     

      이것은 주자가 『대학』을 세밀하게 분석하여 명명덕(明明德 : 밝은 덕을 밝힘), 신민(新民 : 백성을 새롭게 함), 지어지선(止於至善 : 지극한 선(善)에 도달함)을 삼강령(三綱領)이라 이름 짓고 이를 『대학』이 추구하는 목표라고 밝히고, 또한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여덟 항목을 팔조목(八條目)이라 명명하여 이것이 『대학』의 목표인 삼강령을 이루기 위한 실천과정이라고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무자기’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부분을 좀 더 세밀히 살펴보면 ‘마음이 발하는 바를 성실히 하여 반드시 스스로 만족하고 스스로 속임이 없고자 하는 것’입니다.

     

      주자는 수양을 통해 마음을 맑게 가지면 마음의 본체인 허명(虛明)이 드러나게 된다고 하면서 그 상태를 ‘도심(道心)’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에 반해 물욕(物慾) 등의 사사로움에 사로 잡혀서 마음의 본체인 허명(虛明)이 드러나지 못하는 상태를 ‘인심(人心)’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본시 하나이나 도심과 인심이라는 두 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인간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래적 천성(天性)인 본연(本然)의 성품이 있지만 또 제각각 하늘로부터 저마다의 독특한 기질(氣質)도 같이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주자는 대개 이 기질이라는 것이 편중되어 있기 때문에 수양이라고 하는 부단한 노력이 없다면 도심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끊임없는 수양을 통해 기질을 변화시키고 마음의 작용을 도심에 맞추도록 하여 본연의 성품을 드러내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통해 스스로 만족함을 얻게 되고 결국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무자기에 도달한다고 주자는 본 것입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주자도 ‘무자기’와 관련된 설명을 한 바 있으며 크게 보았을 때 대순사상에서 말하는 ‘무자기’와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무자기를 이루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대순사상에서 사람의 마음을 ‘양심’과 ‘사심’으로 구분한 것에 비해 주자는 사람의 마음을 ‘도심’과 ‘인심’으로 구분한 데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인심이 선으로도 악으로도 흐를 수 있기 때문에 도심이 인심을 잘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 주자가 말하는 수양론의 요지라면, 대순사상에서는 사심을 버리고 양심을 회복한다는 것이 수양론의 요지입니다.

     

      도심이 인심을 다스리고 통제하는 행위의 실천을 위해서는 도심과 인심의 상호 관계를 규명하는 또 다른 작업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므로 ‘인심이 도심을 포함하느냐 아니냐’하는 문제로부터 비롯된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 등의 더 많은 복잡한 고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심을 버리고 양심을 회복하는 행위의 실천에는 ‘사심과 양심의 구분’이 ‘인심과 도심’의 구분보다는 훨씬 더 명확하기 때문에 사심과 양심의 관계를 따지는 복잡한 작업이 덜 필요하게 됩니다. 즉 물욕으로부터 비롯된 욕심에 빠지지 않도록 마음을 잘 다스리면서 덕을 닦기를 힘쓴다면 이것이 곧 사심을 버리고 양심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수행자의 입장에서는 주자의 ‘도심-인심’ 설명보다는 대순사상의 ‘양심-사심’ 설명이 이해하기도 쉽고 실생활에의 적용도 보다 쉬운 것입니다. 결국 실제 수양에서는 대순사상의 가르침이 더 현실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 Q.

    월성(月誠)의 의미와 쓰임에 대하여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대순지침』에 “성금은 월 1회인 도인들이 심신합일(心身合一)한 스스로의 정성이니 상하가 관통하는 이치며 복을 받는 근원”이라 하였습니다. 또한 “도인들의 성금은 구호자선사업ㆍ사회복지사업ㆍ제반 교육사업에 유효 적절히 쓰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금의 덕은 국가에 미치고 나아가서는 전 세계 전 인류에게 미치게 될 것이니, 3대 중요사업 촉진에 만전을 기하게 하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대순지침』에 의하면 월성은 월 1회 도인들이 심신합일한 정성의 표현이고 복을 받는 근원이며, 포덕천하ㆍ광구창생하는 종단사업의 신성한 공금(公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월성의 의미를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월성은 천지공사에 쓰입니다. 대순진리회는 종단의 사업으로 3대 기본사업과 3대 중요사업을 연차적 계획으로 매년 실시하여 왔습니다. 특히 3대 중요사업은 구호자선과 사회복지, 교육사업으로 한 사회에서 종교가 담당하는 구제창생의 이념을 실천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천지공사는 선천세상이 상극이 인간과 사물을 지배하여 참혹하게 된 참상을 바로잡기 위하여 상제님께서 삼계대권을 주재하시어 신인의도(神人依導)의 이법으로 삼계공사를 행하심으로써 후천의 무궁한 선경의 운로를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대순하신 진리를 도주님께서 체현하시어 삼계의 진법으로 인간이 완성을 이룰 수 있는 수도법방을 설정하셨고, 도전님께서는 유명으로 종통을 계승하시어 대순진리회의 목적인 지상천국건설의 실현을 위하여 3대 기본사업과 3대 중요사업을 연차적으로 계획ㆍ실행하셨으며, 오늘날에도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월성제도는 이러한 사업의 물질적인 토대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종단의 대진대학교, 분당제생병원, 전국의 7개 고등학교, 현재 진행 중인 여주의 노인복지시설 건립 등은 월성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월성은 3대 중요사업을 중점으로 종단의 연간 예산의 70% 이상을 편성하여 규모 있게 쓰여지는 것입니다. 그 외 30%는 종단 제반 운영을 위해 사용됩니다. 도인 개개인이 모시는 성금의 액수가 비록 적다하더라도 전국의 도인들의 십시일반으로 모아진 성금은 큰 액수가 되고 이것을 종단 차원에서는 3대 중요사업에 사용함으로써 사회에 큰 기여를 하게 됩니다. (『대순회보』 94호 종단소식 참조) 


      둘째, 월성은 도인들 각자의 성경신(誠敬信)의 표상입니다. 지생천명(地生天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천지기운을 타고난 것이며, 생명활동에 필요한 모든 재원은 땅으로부터 부양 받고 그 생명체의 존재이유와 목적[命運]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습니다. 그러니 생과 수명과 복록은 천지의 은혜이니, 우주의 주인이신 상제님께 정성과 공경과 믿음으로써 천지보은(天地報恩)의 대의(大義)를 세워 인간된 도리를 다하는 것이 천지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 됩니다. 상제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성(誠)ㆍ경(敬)ㆍ신(信)으로 그 은혜에 보답하는 대의를 생활화하여 상제님을 늘 가까이 모시는 정신으로 정성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은 사람으로서 행해야 할 첫 번째 도리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구천상제님 주재하의 존재입니다. 인간의 모든 복록 또한 상제님께서 관장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육체를 낳아준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것이 인간의 근본도리이듯이 수명과 복록을 주신 천지의 은혜에 성경신으로 보답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근본도리가 되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전자가 효도(孝道)라면 후자는 인도(人道)입니다. 내 자신이 호흡을 하고 물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살아 존재하는 것이 천지의 은덕으로 가능한 것이므로 천지보본의 대의로 상제님의 은의에 보답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성의 발로입니다. 


      월성은 각 방면에서 모실 때는 수반이 선무에게 모시고 선무는 선사에게, 선사는 선감에게 모시지만 결국 각 방면의 선감들은 한 달에 한 번 도장에 들어와 상제님 전에 성금을 모시므로 만수도인들의 성금은 상제님께 직접 올리는 성금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도인들이 상제님께 직접 올리지 못하므로 체계를 통하여 모시는 것뿐입니다.


      셋째, 월성은 후천복록의 축적이며 복을 받는 근원입니다. 정성은 우리 도의 수도의 3요체 중의 하나입니다. 정성은 호흡과 같아서 호흡이 단 1분이라도 끊기면 살기가 곤란해지듯 진정한 인간의 행동처세에서 정성은 끊임이 없이 조밀하고 틈과 쉼이 없이 오직 부족한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볼 때 정성이라는 것은 “이만하면 됐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여 지극히 정성스럽게 하면서도 늘 부족하지 않을까를 염려하는 지극히 심오한 마음의 경지입니다. 이런 마음의 자세로 수도에 임하여야 진실하고 순결한 인성의 본질을 회복하여 심령(心靈)의 통일을 이루고 도즉아(道卽我), 아즉도(我卽道)의 경지를 정각(正覺)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월성은 이러한 정성의 물질적 표현입니다. 


      복록은 우로와 같아서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법입니다. 지금 당장의 현실생활에서 한 푼의 돈이 아쉬워 돈에 대한 애착이 간다고 하더라도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를 더 생각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열매를 하나 얻으면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하여 먹어버리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훗날을 위해 그것을 땅에 심는 것입니다. 땅에 심은 하나의 열매는 세월이 지나면 수천 수만 배로 불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농사의 이치입니다. 


      나무가 튼튼하게 잘 자라려면 보이지 않는 뿌리에 거름을 주고 물을 주어야 잘 자라듯이 사람이 잘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뿌리인 하늘에 정성을 드려야 합니다. 인간사 공덕 중에 하늘에 공을 들이는 것보다 큰 것이 없습니다. 이른바 천제를 지내는 것은 예부터 한 나라의 종묘와 사직을 유지·발전시켜 나가는 주요한 행사였습니다. 해원시대를 맞이하여 이제는 한 나라의 왕이나 천자만이 천제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도 천제를 드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으니 이것이 다 상제님의 무한무량하신 덕화의 소이(所以)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구천상제님의 주재하의 존재들임을 깊이 자각하고 상제님께 지극한 정성을 올리는 것은 인간존재의 근본도리입니다. 인간은 영육(靈肉)합일의 존재입니다. 육체는 부모에게서 받지만 영은 하느님의 소산이니, 부모님의 은혜와 더불어 상제님의 은혜는 헤아릴 수 없이 큰 것입니다. 이런 은혜에 보답하는 길을 우리 도에서는 월성이라는 제도를 통하여 일부나마 보은의 길을 열어놓은 것입니다. 이러한 점들을 생각할 때 다달이 모시는 월성의 중요성은 실로 막중하다 할 것입니다.
     

  • Q.

    녹명지(錄名紙)에 관해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Q : 녹명지(錄名紙)에 관해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A : 기록할 록(錄), 이름 명(名), 종이 지(紙) 자로 이루어진 녹명지는 ‘이름을 기록하는 종이’를 의미하며, 방면과 도장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방면에서는 입도(入道)치성과 임명을 모실 때 사용하고 있으며, 도장에서는 오로지 시학(侍學)·시법(侍法) 공부에만 사용합니다. 방면과 도장의 녹명지는 규격과 서식이 서로 다르지만, 이름을 기록하는 용도로 쓰인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사실 녹명지는 그동안 ‘錄名紙’ 외에 ‘錄命紙’, ‘祿命紙’, ‘祿銘紙’ 등의 다양한 한자어로 쓰여왔으며, 그 수만큼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이는 녹명지 본연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혼란을 줄 수 있고, 자칫 그 중요성을 경감시킬 우려도 있습니다. 따라서 녹명지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용어표기의 통일성을 위해 정확한 한자를 확인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녹명지의 한자어는 ‘도전님 분부’와 수도부에서 녹명지를 작성하여 내정(內庭)에 올리는 데 사용하는 ‘문서철’에서 각각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도전님 분부와 관련하여 녹명지의 한자어와 쓰임을 살펴보겠습니다. 도전님의 분부를 가까이에서 자주 모신 한 원로 임원에 따르면, 도전님께서 녹명지의 한자가 기록할 록(錄), 이름 명(名)이라 가르쳐주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입도할 때 이 녹명지에 자신의 이름을 기록하여 입도치성의 의례를 거친 후 대순진리회 도인이 됩니다. 이런 이유로 입도인의 이름이 기록된 녹명지는 입도치성에 있어 꼭 필요한 요소가 됩니다. 입도치성 의례 속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녹명지에 여러 가지 의미가 부여되면서 다양한 한자어로 나타난 듯합니다.
      입도치성은 입도인의 첫 정성이며 입도인의 이름을 기록한 녹명지를 올리는 유일한 치성입니다.01  녹명지에는 입도인의 입도 날짜, 성별, 생년 그리고 이름이 기록됩니다. 입도인은 입도치성을 모시는 동안 ‘녹명지 소상(燒上)’이라는 절차에서 자신의 녹명지를 태웁니다.
      도주님 재세 시에 입도 시 녹명지를 올려 상제님께 치성을 드리면 이 치성 의식이 상제님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라 하여 녹명지에 기록한 것은 바꾸지도 고치지도 못한다고 하셨다 합니다.02  요즘 시대에 개명(改名)은 흔한 일이며, 일상생활에서 본명(本名)이 아닌 아명(兒名), 예명(藝名), 별명(別名) 등을 사용하는 예도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녹명지를 올릴 때 그 중요성을 미처 인식하지 못해 아명이나 예명 등을 기록하는 사람이 간혹 있고, 녹명지를 올린 이후에 개명하여 기록했던 이름과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원로 임원이 모신 도전님 분부에 따르면, 도전님께서는 도인이 입도할 때는 그 이름에 의해서 입도하는 것이므로 입도했을 때의 이름이 중요하니 바꾸지 말고 그대로 쓰라고 하셨다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입도치성을 행할 때 입도인에게 녹명지의 바른 한자어와 그 의미 그리고 쓰임 및 중요성에 대해 알려주고 입도인의 정확한 이름을 확인한 후 녹명지에 기재해 입도치성을 모시도록 해야 합니다.
      다음은 수도부에서 사용하는 녹명지의 한자어와 쓰임을 살펴보겠습니다. 녹명지가 사용되고 있는 시학 공부와 시법 공부는 여주본부도장에서만 시행되고 있습니다. 공부를 하기 위해 도장에 오는 수도인들은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해야 하는데, 수도부에서 신분증을 보고 공부자의 정확한 이름을 표기하기 때문입니다. 수도부에서는 이렇게 매일 시학 공부자와 시법 공부자의 이름을 확인하여 녹명지를 여러 장 작성한 후 겉에 ‘錄名紙’라고 씌어있는 문서철에 넣어 내정에 올립니다. 여기서 녹명지의 한자어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도부는 당일 들어온 시학과 시법 공부자들의 녹명지를 밤 10시에 행해지는 공부 드는 봉심(奉審) 전에 올려야 합니다. 도전님께서는 도주님께서 재세 시에 녹명지를 봉심 이전에 올리는 사항에 관해 중요하게 말씀하셨다고 일러주셨습니다.03 녹명지의 작성과 올려지는 것 등이 매일 정해진 시간 안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을 보면 녹명지는 공부 법방에 있어 조금도 잘못되어서는 안 되는 요소입니다. 이렇게 내정에 올려진 녹명지 중 일부는 바로 우리 신앙의 대상이신 구천상제님(九天上帝任)의 진영 앞에 모셔집니다. 녹명지에 이름이 기록되어 상제님의 진영 앞에 모셔지는 것이 오직 공부를 통해서만 가능함을 알 수 있습니다.
      시학 공부를 시작한 도인들은 초강식(初降式), 합강식(合降式), 봉강식(奉降式: 시학 0호반은 봉강식 생략)까지 모두 참여해야 시학 공부를 마친 것으로 봅니다. 이 중 초강식과 합강식을 하는 동안에는 각각 ‘녹명지 소상’의 절차가 있습니다. 이때 바로 상제님 진영 앞에 모셔져 있었던 해당 공부반들의 녹명지가 한 장씩 소상됩니다. 시학 공부 때 올렸던 녹명지가 초강식과 합강식이 행해지는 그 날까지 상제님 진영 앞에 고스란히 모셔져 있는 것이므로, 반드시 자신의 자리에서 시학 공부했던 당사자가 강식까지 모두 참여해야 합니다. 녹명지가 시학 공부 때 상제님 진영 앞에 모셔졌던 것이므로 혹 강식에 불참자가 생기더라도 녹명지의 이름을 바꾸지 않고 강식이 진행됩니다. 강식에 불참하는 일은 녹명지와 관련지어 생각해 볼 때 조밀하게 짜여있는 공부의 법방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강식까지 모두 참여한 사람에 한해 시법 공부를 할 수 있는데, 시법 공부자들도 녹명지에 이름이 기록된다는 사실 역시 녹명지와 공부의 긴밀한 관련성을 짐작하게 합니다. 공부의 소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기에 공부자들은 공부 법방에서의 녹명지의 중요성 또한 잘 인식해야겠습니다. 시학 공부에서 시작하여 초강, 합강, 봉강 그리고 시법을 마치는 순간까지 녹명지에 올라간 자신의 이름에 사명감을 가지고 공부의 법방을 잘 지켜 정성을 다해 끝까지 참여하려는 마음가짐도 지녀야겠습니다.
      지금까지 도전님 분부와 수도부에서 녹명지를 작성하여 내정에 올리는 데 사용하는 문서철을 통해 녹명지의 정확한 한자어를 확인하고 더불어 그 쓰임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통해 녹명지에 대한 올바른 한자어표기를 권장하고, 그 쓰임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포덕·교화·공부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여야겠습니다.

     

     

     


    01 사죄 치성(수도인이 수도를 중도에 멈추었다가 다시 수도를 시작할 때 모시는 치성)을 모실 때는 녹명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임명 모실 때 녹명지를 쓰는 것은 임명이 바뀌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2010년 2월 10일 제164차 수습대책위원회 ‘녹명지를 올리는 원칙에 대한 논의’ 회의록에서 발췌-기획부 보관 자료)
    02 같은 자료 참고.
    03 「도전님 훈시」(1991. 9. 25) 참고. 

  • Q.

    『전경』에 나오는 ‘황건역사’에 관해 설명해주세요

     

     

     

    A : 공사 3장 23절01에 나오는 황건역사에 관한 자료는 매우 소략합니다. 우리 《대순회보》의 『전경』 용어 사전에도 “황색 두건을 쓴 힘이 센 신장(神將)으로 신명계에서 죄를 지은 신명들에게 벌을 주거나 지옥으로 보낼 때 호송을 맡는다”02라고 설명되어 있을 뿐입니다. 사전이나 문학작품인 소설 이외에 다른 문헌에서는 황건역사에 대한 서술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사전에 기록된 황건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소설을 통해 민간에서는 황건역사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황건역사의 황건(黃巾)은 노란색 수건을 의미하고 역사(力士)는 뛰어나게 힘센 사람을 뜻합니다. 황건역사는 금갑역사(金甲力士)라고도 하는데, 금갑(金甲)은 쇠붙이를 써서 만든 갑옷이란 뜻입니다. 이름만으로도 무신(武臣)을 떠오르게 합니다. 도교의 전설에 따르면 황건역사는 법을 보호하며 악마를 물리치는 힘센 신장으로 신계(神界)에서 지위가 높은 신의 일을 돕습니다. 중국에서 황건역사의 형상은 중국 후한(後漢) 말 184년에 황건의 난을 일으킨 황건군의 모습이라 전해집니다.03

     

    황건의 난은 장각(張角, ?~184)이 태평도(太平道)라는 도교적 교단을 조직하여 농민들을 이끌고 태평성세를 이루고자 일으킨 반란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부패한 조정과 천재·질병·기근으로 살기 힘들었던 농민들은 종교에 의지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들이 봉기(蜂起)할 때 노란 수건이나 깃발을 상징으로 삼았기 때문에 황건적(黃巾賊)이라고 합니다.04 노란색은 오행(五行)에서 토(土)에 속합니다. 전국시대 추연(鄒衍)의 오덕종시설(五德終始說)05에서 유래된 광무제(光武帝, 기원전 5~57)의 오행상생설(五行相生說)에 따르면 불이 흙을 생한다는 화생토(火生土)의 논리로 중국 후한은 화(火)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황건군은 화(火) 다음으로 오게 될 토(土)에 해당하는 새로운 세상을 기원한다는 의미로 노란 수건을 사용하였습니다.06

     

    과연 한국과 중국의 소설에 등장하는 황건역사는 어떻게 서술되었을까요? 한국의 소설에서는 『구운몽(九雲夢)』·『홍연전(洪延傳)』·『홍길동전(洪吉童傳)』에 등장하며, 중국의 소설에서는 『봉신연의(封神演義)』·『수호지(水滸誌)』 등에 등장합니다. 각 소설에 등장하는 황건역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구운몽』은 조선 후기 숙종 때 문신인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이 지은 소설입니다. 소설은 주인공 성진(性眞)이 천상계에서 팔선녀를 희롱한 죄로 인간세계에 떨어져 팔선녀를 아내로 삼으며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영화로운 삶을 살다가 결국 인생무상을 느끼고 불문(佛門)에 귀의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황건역사는 육관대사가 죄를 지은 성진을 염라대왕에게 보내려는 장면에서 등장합니다.

     

    “황건역사야, 이 죄인을 이끌고 풍도옥(酆都獄: 지옥의 이름)에 가서 염라대왕께 넘겨주라.”07

    황건역사가 육관대사의 명령에 따라 죄인을 염라대왕에게 데려다주는 역할을 미루어 볼 때 지위가 높은 신의 명령을 수행하는 신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작자 미상의 『홍연전』에는 원귀로부터 주인공을 구하는 신으로 등장합니다. 『홍연전』은 숙종 때 홍규라는 인물이 호식(虎食: 사람이 범에게 잡아먹힘)을 당하지 않기 위해 세 정승의 딸과 결혼을 하여 어려움을 극복하는 내용입니다. 특히 그의 부인 김소저는 도술로 황건역사를 불러 원귀에게서 남편을 구합니다.08

  • Q.

    치성 의례에 대해서 설명해 주세요

        

     

     

    A 의례(儀禮)는 ‘의식예절(儀式禮節)’의 준말이며 의식은 ‘격식과 절차에 의하여 행해지는 행사’입니다. 의례를 풀이하면 ‘격식과 절차를 갖춘 행사의 예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례에는 가정의례, 사회의례, 국민의례, 국제의례, 종교의례 등이 있습니다. 각 종교에서 행하는 종교의례는 수도와 수행에 직접적 관련이 있습니다. 이 의례는 종교적 체험을 가능케 하고 신앙심을 고취하며 수도의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 종단에서 행하는 의례 또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수도(修道) 의례, 치성(致誠) 의례, 월성(月誠) 의례, 타종(打鐘)·타고(打鼓) 의례, 참배(參拜) 의례, 일반행사 의례 등이 있는데 종단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의식들입니다. 그 가운데 치성 의례는 ‘치성을 모실 때 행하는 의식예절’로서 여기서는 치성과 그 의식절차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치성(致誠)은 사전적 의미로 ‘정성을 다함’ 혹은 ‘신(神)·불(佛)에게 정성을 드림’이라는 뜻입니다. 전통적으로 치성은 군주가 백성들을 대표하여 제물(祭物)을 갖추어 하늘에 극진한 정성의 예를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후대로 내려오면서 점차 불공(佛供)을 드리거나 산신(山神)에게 정성을 드리는 일을 뜻하게 된 것입니다.01 종단의 치성은 군주가 하늘의 최고신에게 정성을 올렸던 것처럼 ‘양위 상제님과 천지신명 전에 정성을 다하여 예를 올리는 행사’로 도주님께서 상제님께 올리셨던 치성이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02

     

    치성을 모시는 이유는 단지 개인의 소원성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치성일에 담긴 뜻을 기리고 양위 상제님과 천지신명(天地神明)의 덕화(德化)에 감사드리면서 상제님의 유지(遺志)를 잘 받들어 나갈 수 있도록 축원(祝願)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그 의식에 따른 예법 하나하나에 극진한 정성과 공경을 다하여야 합니다.

     

    종단의 치성 의례는 크게 도장 치성, 회관 치성, 입도치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도장 치성 의례는 종단의 주요 기념일03과 세시(歲時)일04에 영대(靈臺)에서 올리는 치성입니다. 날짜는 음력으로 하며 시간은 축시(丑時)에 거행합니다. 단, 절후 치성은 양력으로 하며 각 절후가 드는 시각에 맞추어 모십니다. 치성 시, 복장은 한복을 착용하고 고무신을 신되 외수는 구두도 가능합니다. 5일 이내에 두 치성이 있을 경우에는 하나의 치성만을 모십니다.

     

    회관 치성은 회관 및 회실에서 올리는 치성으로 회관과 회실의 개관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올리는 치성과 납향(臘享)치성이 있습니다. 납향치성은 1989년 도전님의 분부에 따라 매년 납일[臘日: 동지 이후 세 번째 미일(未日)]에 올리는 치성입니다.

     

    입도치성은 도인이 되기 위한 입회 절차로 입도식 또는 시운치성(侍運致誠)이라고도 하며, 본회의 종지(宗旨)와 도헌(道憲)에 찬동하고 상제님께 영시불망(永侍不忘)할 것을 굳게 맹세하는 의식입니다. 입도치성을 모시는 장소는 입도하는 사람과 방면의 형편에 따라서 자택 혹은 회관이나 회실, 포덕소, 기타 장소에서 거행합니다. 입도인(入道人)의 편의에 따라서 가장 편안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의식을 행할 수 있는 일시를 택합니다. 이때 집사자(執事者)와 집례자(執禮者)는 한복을 입어야 하며 입도인은 한복을 입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부득이한 경우 남자는 양복도 가능합니다. 참례 인원은 입도인과 집사자, 집례자 및 전도인(傳道人) 등이 참석하며 집사자는 영대 참배를 드린 적이 있는 사람에 한해서 합니다. 입도의식은 입도자의 첫 정성이므로 주(酒)·과(果)·포(胞)를 중심으로 본인이 성의껏 전수(奠需)를 올리도록 하되 형편에 따라서는 청수(淸水: 맑은 물) 한 그릇도 무방합니다.

     

    치성 의례는 전통 제의(傳統祭儀)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도주님께서 정립하신 것으로 도전님께서 계승하시어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각각의 치성 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 Q.

    28수 신명들이 인간의 영역을 어떻게 관장해 왔는지 알려주세요.

    Q: 28수 신명들이 인간의 영역을 어떻게 관장해 왔는지 알려주세요.(예: 수명, 복록, 건강 등등)

     

    A: 어두운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제각기 빛을 발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 별들을 단순한 자연현상으로만 보지 않고 ‘천문(天文)’이라는 독특한 영역으로 체계화시켜 왔습니다. 이에 따르면 하늘의 중심에는 태미원(太微垣)·자미원(紫微垣)·천시원(天市垣)이라는 삼원(三垣)이 있고 그 주위를 28수라는 별자리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가장 중심은 자미원으로 그 가운데에는 북극성이 자리하여 만물의 생장소멸을 다스리고, 이의 명령을 받은 북두칠성이 북극성을 돌면서 하루와 1년의 길이를 정하고 음양오행이 고르게 베풀어지도록 돕는다고 믿었습니다.

     

    자미원 밖에서는 하늘의 영역을 28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28수가 각각을 다스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각 별자리의 위치나 모습에 따라 계절이 바뀌고 하늘의 운세도 바뀌며, 지상에서도 그 영향을 받는다고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28수의 각각이 인간 세상에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 내용이 대략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는 조선시대에 이순지[李純之: ?~1465(세조11)] 박사가 쓴 『천문류초(天文類抄)』를 참조한 것입니다.

     

     

    <대순회보 76호>

     

     






     

  • Q.

    예시 74절의 삼한당(三恨堂)에 대해 알려주세요.

    Q: 예시 74절의 삼한당(三恨堂)에 대해 알려주세요.

     


     

    A: 먼저 예시 74절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또 지난 임진왜란 때 일본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성공치 못하고 도리어 세 가지의 한만 맺었으니 소위 삼한당(三恨堂)이니라. 첫째로 저희들이 서울에 들어오지 못함이 1한이요. 둘째는 무고한 인명을 많이 살해되었음이 2한이오. 셋째는 모 심는 법을 가르쳤음이 3한이라. 이제 해원 시대를 당하여 저들이 먼저 서울에 무난히 들어오게 됨으로써 1한이 풀리고, 다음 인명을 많이 살해하지 아니 함으로써 2한이 풀리고, 셋째로는 고한 삼년(枯旱三年)으로 백지 강산(白地江山)이 되어 민무추수(民無秋收)하게 됨으로써 3한이 풀리리라.”

     

    이 구절은 일본이 임진왜란(1592~1598) 당시 우리나라를 복속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침공을 하였으나 성공치 못하고 도리어 3가지의 한(恨)만 맺고 돌아갔는데, 그로부터 3백여 년이 지난 후 한일합방 과정에서 그 한을 모두 풀게 된다는 상제님의 말씀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세 가지의 한(恨)에 대해 하나씩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 사람들이 ‘서울에 들어오지 못해 한이 생겼다’는 내용입니다. 좬선조실록좭에는 임진왜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혀있습니다. “1592년 4월 13일 오후 5시, 일본의 20여 만의 병력은 모두 아홉 개의 부대로 나뉘어 조선으로 밀려들었다. 조선은 불과 20일 만인 5월 2일 수도 한양을 내주고 말았다.” 상제님께서는 분명히 일본 사람들이 서울에 들어오지 못해 한이 생겼다 하셨는데, 역사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군요.

     

    자! 이제 최종적인 판단은 독자 여러분들의 몫으로 돌리며 한 가지 제안을 하겠습니다. 그것은 ‘서울’이 임금님이 살고 있는 도시 즉 ‘도성(都城)’이라는 의미로 이해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상제님 재세시 서울의 명칭이 ‘한성부’였다는 사실만 보아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얘기일 것입니다. 결국 일본 사람들은 당시 임금이 없이 버려져 있던 공간적 의미의 서울에 들어간 것으로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즉 당시에는 한성부가 아니라 선조가 피난 가 있던 의주가 실질적인 서울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얼마 후 명나라 군사들이 조선에 들어왔고 일본은 의주를 눈앞에 두고 다시 후퇴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첫째 한은 1910년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풀리게 됩니다.

     

    둘째는 ‘무고한 인명을 많이 살해하여 한이 생겼다’는 내용입니다. 전쟁에서는 대개 많은 인명손실이 발생하기 마련인데, 일본 사람들은 그렇게 하고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으니 한이 생겼다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여기서 인명 손실이 조선인을 말하는 것인지 일본군을 말하는 것인지가 명확치 않습니다. 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그 손실이란 조선인의 인명을 가리키는 것임을 미리 밝혀두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손실이 일본군을 말하는 것이 아닌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일본이 훗날 조선을 병합하는 과정에서 치렀던 전쟁의 하나인 러일전쟁에서 전사한 일본군이 임진왜란 당시 일본 출전 병력의 2/3에 해당하는 막대한 숫자였기 때문입니다. 인명이 많이 살해되지 않아야 임진왜란 시 인명을 많이 살해했던 한이 풀릴 텐데, 오히려 더 희생되었으니 일단 그 ‘무고한 인명’이란 일본군이 아닌 조선인을 말하는 것이 틀림없는 것이지요.

     

    실제로 임진왜란 때 조선인 희생자는 무려 백만 명 이상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일합방이 될 당시의 조선인 인명피해는 임란 때와 비교해서는 거의 미미한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때 조선은 너무 힘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만한 위치에 있지 못했고 대신 조선을 둘러 싼 열강들끼리 조선을 차지하겠다고 서로 싸웠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의 인명피해가 많았을 뿐, 오히려 당사자인 조선은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에서 비껴갈 수가 있었던 것이죠. 즉 조선인의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일본은 조선을 합병할 수 있게 되어 두 번째의 한도 풀렸던 것입니다.

     

    셋째는 일본이 우리나라에 와서 ‘모 심는 법을 가르쳐 한이 생겼다’는 내용입니다. 이것도 첫째와 마찬가지로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미 임진왜란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모 심는 법(이앙법)이 보급되어 있었고 이에 대한 근거가 여러 문헌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앙법이 전국적으로 보급되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앙법은 이앙시기인 봄에 가뭄이 들지 않아야 한다는…

  • Q.

    효과적인 교화는 어떻게 하나요?

    Q 효과적인 교화는 어떻게 하나요?
     

    A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가르친다는 것의 함의는 세 가지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가르친다는 의미 속에는 지금까지는 현재의식에 없었던 새로운 지식이나 사실을 전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가르친다는 의미에는 보다 높은 차원의 정보를 보다 낮은 차원에 전달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사람들의 내면에 있는 지혜의 보고에 접근하여 그것을 현재의식의 영역에 끌어낸다는 뜻이 있습니다.
      교화는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재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인간의 내면에 기억되어 있는 것을 현재의식의 영역으로 끌어내는 것이 교화의 본질입니다. 그러니 교화자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안에 있는 것을 끌어내는 차원에서 교화의 내용을 준비하고 교화방법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화는 지식으로 덧칠하는 것이 아니라 미몽의 안개를 걷어내어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가 끼어 있는 곳에 아침 해가 떠오르며 새벽안개가 걷히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교화의 전 과정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영어로 교육을 ‘education’이라 하는데, 그 어원은 그리스어 ‘educare’에서 유래하였고, ‘educare’는 ‘e(ex, 밖으로)’와 ‘ducare(끌어내다)’의 합성어로 ‘밖으로 끌어내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같은 어원은 인간이 생득적으로 모든 것을 아는 천품성을 타고났기에 그 잠재적 가능성을 교육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교육이란 학습자의 잠재적 가능성을 밖으로 끌어내어 최대한 발현시킨다는 의미를 지닌 것입니다.
      또 다른 비유를 들어보면, 어두운 길을 가면서 그중에 한 사람이 횃불을 들면 나머지 동행인은 그 불빛에 의지하여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를 잘 찾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두운 길을 가는 자에게 횃불을 쥐여 주어도 마찬가지로 길을 잘 갈 수 있게 하는 방법입니다. 일행 중에 횃불을 드는 자가 교화자이고, 횃불을 쥐여 주는 자가 교화자입니다.
      또 다른 비유를 들어보면, 교화는 풍랑을 만난 부둣가에 등대불이 밝혀져 배가 항로를 잃지 않고 무사히 선착장에 도착하게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상이 교화에 대한 세 가지 측면입니다. 깊이 궁구해볼 일입니다.
      우리가 교화에 대해 말하면서 비유를 들어 설명하듯이 영적인 세계, 고차원적인 정보를 현실세계에, 보다 낮은 차원에 전달하는 효율적인 방식이 우화나 비유법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래로 모든 성현들이 사용했던 교화의 일정한 방편이었습니다. 석가, 공자, 예수가 그러하였고, 상제님께서도 진묵대사와 김봉곡 이야기, 최 풍헌과 류 훈장 이야기와 같은 옛일이나 신선이 된 머슴, 봇돌을 미리 파놓은 농부와 같은 우화를 통하여 가르침을 베푸셨습니다.
      이것이 교화의 일반론이지만 교화의 기법에 대하여 질문하셨으니 몇 가지 제시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말에는 ‘서로 호흡을 맞춘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함께 일할 때 호흡이 맞지 않으면 서로 간의 행위의 주파수가 일치하지 않아 효율적인 일 처리가 가능하지 않습니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도 처음에는 서로 호흡이 맞지 않아 진행속도가 느리지만, 나중에 서로 호흡이 맞으면 일의 속도는 매우 빨라지고 일을 하는 데도 재미가 있어지는 것은 모두 행위의 주파수가 일치하여 조화를 이루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교화를 하는 데 있어서도 우선 먼저 주위를 환기시키고 심호흡을 하게 한 연후에 교화를 한다면 교화의 효과는 크게 늘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교화자가 교화를 듣는 사람들의 사심(私心)에 호소하느냐 양심(良心)에 호소하느냐 하는 문제가 또한 중요합니다. 이것을 생각해보세요. 하나의 달걀이 있을 때 그것을 돌로 보는 사람은 그냥 방치할 것이고, 그것을 먹을 것으로 보는 사람은 깨서 프라이를 해 먹을 것이며, 그것을 알로 보는 사람은 어미 닭이 품게 하여 부화시킬 것입니다. 교화의 대상을 교화자가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서 같은 내용이라도 교화의 효용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같은 물이라도 소가 먹으면 송아지를 먹이는 우유가 되고 뱀이 먹으면 다른 동물을 죽이는 독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교화는 본질에 있어서 교화의 대상을 교화자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가 위대한 스승을 아무 말 없이 가까이 모시고 지내는 과정에 저절로 깨달음이 깊어지는지에 대한 이유입니다. 도전님께서 “상제님의 덕화에 힘입어 마음과 몸을 깨끗하고 맑고 밝게 하라.”01 하셨듯이 도장에 자주 참배 와서 상제님을 가까이서 친견하면 자신도 알게 모르게 심신이 정화되고 깨달음도 깊어지는 것입니다.
      교화의 기법에 대하여 한 가지 더 이야기한다면 교화는 그날 참석한 사람들에게 그들 내면의 진정한 자아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교화자가 심득(心得)하여 다시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도의 대중 교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런 교화가 현실세상에서 일어나는 교화의 최고 수준이자 최고 형태입니다. 보다 높은 차원의 것을 심득하여 낮은 차원에 전달하는 것이 이런 방식입니다. 이것이 교화자가 교화하면서 배우게 되는 이유입니다. 교화하면서 상위의 메시지를 전달하다보니 교화자 자신의 의식이 고차원으로 열리는 것입니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교화의 역설은 이를 두고 이르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가 교화를 듣는 사람들이 교화하는 것이고 교화자가 교화를 듣는 것입니다. 역설은 고차원의 진실입니다.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 진보시켜 준다는 뜻의 교학상장의 출전인 『예기(禮記)』 「학기(學記)」편에 이르기를,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모른다. 이런 까닭으로 옛날에 왕이 된 자는 나라를 세우고 백성들에게 임금 노릇을 함에 교와 학을 우선으로 삼았다. … 비록 좋은 안주가 있더라도 먹지 않으면 그 맛을 알지 못하고, 비록 지극한 도가 있더라도 배우지 않으면 그 좋음을 모른다. 그러므로 배운 연후에 부족함을 알고, 가르친 연후에야 막힘을 알게 된다. 부족함을 안 연후에 스스로 반성할 수 있고, 막힘을 안 연후에 스스로 힘쓸 수 있으니, 그러므로 말하기를, ‘남을 가르치는 일과 스승에게서 배우는 일이 서로 도와서 자기의 학업을 증진시킨다[敎學相長].’고 한다.” 하였습니다. 고산준령의 낙락장송도 깎아야만 동량이 되고 청산에 묻힌 옥도 갈아야만 보배가 되는 법입니다. 상제님께서 공부하지 않고 아는 법은 없다 하셨으니,02 자신을 위해서는 배움에 힘쓰고 남을 위해서는 교화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끝으로 교화의 전 과정에 대한 완전한 지침으로 제시하신 도전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끝맺을까 합니다. 도전님께서 “교화는 신앙심을 높이는 길잡이가 되므로 임기응변하지 말고 진실을 알려 전폭적으로 믿도록 하여야 한다.”03 하시며, “임원들은 수반 도인에 대한 교화를 인정이 넘치고, 신뢰가 감돌아 허세를 부리지 말고, 안색은 화기롭게 편안한 장소에서 안정한 시간을 택하여 부담이 없는 대화로써 신앙심을 높여 진리 도통의 진경에 이르도록 계도하여야 한다.”04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교화의 목적과 수단, 분위기, 태도, 안색, 장소, 시간 등 교화의 전 과정에 대한 지침이 담겨 있습니다.
      수도의 목적이 도통인 것과 같이 우리 도에서 교화의 목적 또한 도통에 있습니다. 이를 도전님께서는 교화는 신앙심을 높여 진리 도통의 진경에 이르도록 계도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런 교화의 목적에 도달토록 하는 교화의 수단은 다름 아닌 부담이 없는 대화입니다. 교화의 분위기는 인정이 넘치고 신뢰가 감도는 분위기를 조성하여야 하고, 태도는 겸손하여 허세를 부리지 말아야 하며, 안색은 온화하여 화기롭게 하여야 하고, 장소는 대화하기 편안한 장소를 택하며, 시간은 바쁘거나 급하지 않은 안정한 시간을 선택하여 교화하여야 합니다. 실로 교화에 대한 도전님의 이 훈시에는 교화의 전 과정에 대한 완벽한 지침이 체현되어 있습니다.
     
     <대순회보 184호>

    01 『대순지침』, p.81.
    02 교운 1장 35절 참조.
    03 『대순지침』, p.45.
    04 상동.
     
     

     

  • Q.

    인간의 두 가지 마음, 양심(良心)과 사심(私心)에 대하여 설명해 주세요.

    『대순진리회요람』에는 양심과 사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일신(一身)의 주(主)이니 사람의 모든 언어 행동은 마음의 표현이다. 그 마음에는 양심(良心), 사심(私心)의 두 가지가 있다. 양심은 천성(天性) 그대로의 본심(本心)이요, 사심은 물욕(物慾)에 의하여 발동하는 욕심(慾心)이다. 원래 인성(人性)의 본질은 양심인데 사심에 사로잡혀 도리(道理)에 어긋나는 언동(言動)을 감행하게 됨이니 사심을 버리고 양심인 천성을 되찾기에 전념하라. 인간의 모든 죄악의 근원은 마음을 속이는 데서 비롯하여 일어나는 것인즉 인성의 본질인 정직과 진실로써 일체의 죄악을 근절하라. 1)

    인류의 역사에서 양심은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사람들은 양심을 중요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양심에 대한 관용어나 속담도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도덕은 변해도 양심은 변하지 않는다.” 하였고, 중국 속담에 “야망을 성취하기 위하여 자기의 양심을 희생시키는 사람은 재를 얻기 위하여 명화(名畵)를 불태우는 사람이다.” 하였으며, 영국 속담에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일거일동을 알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하느님과 양심이다.” 하였고, 독일 속담에 “양심은 매일의 삶에 있어 양념과도 같다.” 하였으며, 프랑스 속담에 “깨끗한 양심처럼 더없이 폭신한 베개는 이 세상에 없다.” 하였습니다.
    세계적인 문호, 정신적 지도자, 철학자들도 양심에 대하여 중요하게 언급하였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육체에 꼭 맞는 옷만을 입지 말고 양심에 꼭 맞는 옷을 입어라.” 하였고, 인도의 간디는 “선인(善人)은 자기의 양심의 명령에 따르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은 양심의 소리가 하느님의 소리라는 것을 터득하기 전에는 불가능하다.” 하였으며,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하늘에는 별이 있고 사람의 속에는 도덕적 의식이 있다.” 하였습니다. 도덕적 의식은 양심을 뜻하는 것이니, 결국 ‘하늘에는 별, 인간에게는 양심’이라는 말입니다. 하늘에는 별이 있어 밤하늘을 아름답게 하듯이 인간의 아름다움은 그의 가슴 속에 양심이 빛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양심이 없다면 금수와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헌법 19조」에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는 성문이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양심은 인류 역사상 사람들이 처세하는 불멸의 불문율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인세에 양심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회에는 금수도(禽獸道)가 판을 치고 약육강식의 장이 될 것입니다.
    『대학(大學)』에 나오는 명명덕(明明德)도 바로 이 양심[明德]을 밝힌다[明]는 의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도(道)의 훈회 1번, ‘마음을 속이지 말라.’에서 그 마음은 바로 양심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인간의 본래 마음은 양심입니다. 마음에는 도심(道心)과 인심(人心)이 있습니다. 도심이 양심이고 인심이 사심입니다. 양심이 본심(本心)이고 사심이 욕심(慾心)입니다.

    인간의 마음을 이야기하면서 신성(神性)의 작용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양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신성의 작용이 양심입니다. 신성이 체(體)라면 양심은 용(用)입니다. 성(性)이 체라면 심(心)이 용입니다. 이것이 심성(心性)의 관계입니다.
    양심은 우리 인간의 본질적인 성품입니다. 성(性)과 심(心)을 너무 분별할 필요가 없습니다. 양심 자리에서는 심과 성의 분별이 없습니다. 그래서 『대순진리회요람』에도 양심을 천성 그대로의 본심이라 한 것입니다. ‘양심(良心)이 곧 천성(天性)’이라는 말입니다. 양심이 인간의 본래 성품이라는 것은 양심이 인간이 쓰는 마음의 본바탕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인간들이 존재합니다. 양심의 지배를 받는 자와 양심을 저버린 자. 양심의 지배를 받는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양심은 신(神)의 직접적인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는 신의 명령에 순복(順服)하는 자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고대의 사람은 인간을 신의 종이라 표현하였는데 인간이 어찌 신의 종이겠습니까. 어떤 아버지도 자신의 자식을 종이라 여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인간을 신의 종으로 여기는 것은 하느님께 허물을 씌우는 것으로 잘못된 신관(神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어느 족속의 인류이건 간에 밉고 고움의 차별 없이 한결같이 다 사랑하십니다. 우리 인류는 상제님의 손(孫)으로 한 동기(同氣) 형제를 이루었으니 서로가 존중하고 사랑하며 화평(和平)하여야 합니다. 2)

    인간이 양심을 간직하고 그 명령에 따르며 양심에 비추어 자신을 성찰하는 것은 인격적 성숙의 표상입니다. 양심은 진리의 규준이며 신의 경종이요 만세(萬世)의 보감(寶鑑)이라, 우리는 양심으로 듣고 양심으로 보며 양심으로 말하고 양심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공자의 사물(四勿) 3)
    이 있지만, 우리는 예의 자리에 양심을 두어 양심이 아니면 보지 말고 양심이 아니면 듣지 말며, 양심이 아니면 말하지 말고 양심이 아니면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흔히 양심의 소리라 합니다. 사람들은 고래로 양심의 소리를 신(神)의 의지를 대변하는 것으로 여겨왔습니다. 양심은 신의 대변자입니다. 양심의 소리를 신의 소리로 알아야 합니다. 고대의 성현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던 내면의 미묘한 소리는 바로 신의 소리이고 이것을 대중이 보편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양심의 소리라 한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양심에 대한 상용구를 연구해보면 양심의 본질과 작용에 대한 단초를 얻을 수 있습니다. ‘양심 불량’이라는 말, ‘양심도 없냐.’는 말, ‘양심에 털이 났다.’는 말,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는 말, ‘양심의 자유’라는 말, 등등의 양심에 관한 상용구를 모아서 분석·분류·종합해보면 어떤 패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양심에 털이 났다.’는 말은 우리나라의 문화에서 나온 말입니다. 자, 생각해보세요. 밭에 잡초가 나면 뽑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몸에 잡초가 나지는 않습니다. 털이 나지요. 그런데 그 털은 나 있을 곳에 나야지 털이 없어야 하는 곳에 털이 있으면 흉한 것입니다. 털이 혀에 나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것은 흉한 것을 넘어 매우 불편할 것입니다. 눈동자에 털이 난다면 그것은 큰일 날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양심은 맑고 깨끗한 인성의 본질인데 여기에 털이 났다는 표현은 흉측하다는 것의 다른 표현입니다. 양심이 없는 언동을 경멸하고 경계하여 이르는 말입니다.
    ‘양심 불량’이라는 것은 양심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 기능이 장애를 일으킨 것입니다. 어둠은 빛의 부재(不在)입니다. 어두운 방에 불을 켜면 어둠이 어디로 도망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방이 밝아집니다. 어둠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니 사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양심의 부재가 사심입니다. 양심이 밝아지면 사심은 일어나지 못합니다. 이것이 도심이 지극하면 사심은 일어나지 못한다는 도전님 말씀의 의미입니다. 4)

    주자(朱子)도 『근사록(近思錄)』에 “사람을 가르쳐 지도할 경우에 그 사람의 양심을 양육해 주면 나쁜 마음은 자연히 소멸한다.” 하였습니다.
    양심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도를 닦는 것이니,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양심을 밝힌다는 뜻입니다. 양심 철학이 상생 철학입니다. 상생은 인간 내면의 양심의 교류입니다. 양심을 빼놓고 상생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서로 사랑하는 것, 자체가 양심의 작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생을 이야기할 때 양심도 같이 말해야 합니다. 양심이 음(陰)이면 상생은 양(陽)입니다. 마음이 음이면 몸은 양이요 삼요체가 음이라면 사강령은 양인 관계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양심이 없는 상생은 상생이 아닙니다. 그러니 상생 못지않게 양심이 중요한 것입니다. 상생 정치, 상생 문화, 상생 사회, 상생 철학, 상생 경제 등과 같이 양심 철학, 양심 문화, 양심 정치, 양심 경제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강조해야 합니다. 우리는 상생과 양심을 동시에 밀고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상생이 힘을 받게 됩니다. 상생만 외치지 말고 양심도 함께 외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양심이 조용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천기 자동으로 해원상생대도(解冤相生大道)의 향기가 사회에 퍼져나가는 소이연(所以然)입니다.
    선천의 인간 삶에 대한 슬픔의 역사는 인간의 사심(ego)이 연출한 것입니다. 이제 바야흐로 양심의 시대가 도래하였습니다. 양심이 진실로 답입니다. 인간사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는 양심에 있습니다. 모든 인간이 양심을 회복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세상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후천 선경입니다. 우리 도인들은 진실로 그 시대를 여는 선구자가 될 것입니다.

    1)『대순진리회요람』, pp.18~19.
    2)『포덕교화기본원리(1)』, p.10 참조.
    3)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는 네 가지 가르침.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말이다.
    4)“사(私)는 인심이요 공(公)은 도심(道心)이니, 도심(道心)이 지극하면 사심(私心)은 일어나지 못하느니라.” (『대순지침』, p.93)
     

  • Q.

    현대사회에서 수도가 꼭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순진리회 수도인들은 인간 완성을 이루고 화평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수도합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도는 종단의 모든 규정을 준수하며 인륜을 바르게 행하고 도덕을 밝혀 나가는 과정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고 도리를 행하는 일이므로 시대와 장소를 불문해야 하지만, 오늘날 특히 수도가 필요한 이유는 현대사회가 지닌 과도기적 특징 때문입니다.

    상제께서 “이후로는 천지가 성공하는 때라. 서신(西神)이 사명하여 만유를 재제하므로 모든 이치를 모아 크게 이루나니 이것이 곧 개벽이니라. 만물이 가을바람에 따라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성숙도 되는 것과 같이 참된 자는 큰 열매를 얻고 그 수명이 길이 창성할 것이오. 거짓된 자는 말라 떨어져 길이 멸망하리라. 그러므로 신의 위엄을 떨쳐 불의를 숙청하기도 하며 혹은 인애를 베풀어 의로운 사람을 돕나니 복을 구하는 자와 삶을 구하는 자는 힘쓸지어다.”라고 말씀하셨도다.(예시 30절)

    위에서 알 수 있듯이 천지의 운은 성공하는 과정에 있는 반면, 인간의 운은 참된 자의 운과 거짓된 자의 운이 있습니다. 의롭고 참된 자는 큰 열매를 얻어 창성할 것이지만, 불의하고 거짓된 자는 멸망하게 됩니다. 즉 개벽을 맞이할 현대인들은 멸망과 성공의 현상이 공존하는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현대사회는 최첨단이라 명명할 정도로 과학문명과 물질문명이 급속도로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하지만 정신문명은 상대적으로 지체되었고 물욕에 빠진 인간은 그 본성을 잃고 인륜과 도덕이 무너졌습니다. 부정부패와 거짓, 사기를 일삼아 인간 불신의 풍조가 만연하고 인륜의 기초인 부부, 부모 자식 간에 폐륜과 폐덕이 난무하며, 사제지간(師弟之間)에 폭행이 자행되는 등 무도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또 감각적이고 쾌락적인 문화에 길들여져 쉽게 자극 받으며 사소한 일에도 폭행과 극단적 범행을 저지르고 심지어는 이유 없는 살인과 방화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 지구 온난화 등으로 인해 각종 신종병과 이상기온이 발생하여 인류는 총체적인 환경재난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게다가 대량살상무기가 개발된 가운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자행될지 모르는 전쟁과 테러는 인류를 전멸의 위기에 몰아넣고 있습니다.
    이렇듯 인도(人道)를 잃고 세상이 참혹하게 된 것에 대해 상제님께서는 “세무충 세무효 세무열 시고 천하개병(世無忠 世無孝 世無烈 是故天下皆病)”이라고 진단하시고 그 원인이 물질에 치우친 문명과 상극으로 인해 세상에 원한이 쌓이고 맺힌 것에 있다고 밝혀주셨습니다. 1)

    이마두가 동양에 와서 지상천국(地上天國)을 건설하려고 하다가 실패하고 사후에 동양의 문명신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감으로써 서양의 문명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그 문명은 천상의 문명으로 하늘이 인간에게 베풀어준 혜택이었으나 인간은 도리어 탐욕과 자만으로 자연을 정복하고 하늘이 부여한 인간의 도리와 질서를 파괴함으로써 신도의 권위를 떨어뜨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또한 상극 세상의 억음존양으로 부정, 불응, 불평등이 생기고 이로 인해 원한이 쌓이고 맺혀서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고 재겁, 병겁, 전쟁이 난무하게 된 것입니다.
    이에 상제님께서는 상극의 참상과 무도병(無道病)으로부터 세상을 바로잡아 구하시고자 대도(大道)를 선포하셨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륜 도덕(人倫道德)과 해원상생(解冤相生)입니다. 인륜 도덕은 인도의 근원입니다. 이것으로써 끊어진 인도를 잇고 바로잡아서 세상을 구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대도를 인간들이 힘써 닦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므로 힘써 닦을 수 있도록, 닦은 바대로 운수를 받을 수 있는 대운 대통(大運大通)을 함께 열어놓으셨습니다. 대운대통은 인간이 완성의 경지인 도통에 이르고 지상천국을 누리는 것으로 천(天)·지(地)·인(人)·신(神)이 모두 성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현대사회는 무도병에서 벗어나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으나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知天下之勢者 有天下之生氣 暗天下之勢者 有天下之死氣(지천하지세자 유천하지생기 암천하지세자 유천하지사기)”(행록 5장 38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천하의 형세를 아는 자는 사는 기운을 지니지만 천하의 형세를 모르는 자는 죽는 기운을 지닌다는 뜻으로 대운 대통으로 가는 천하의 흐름에 맞추어야 함을 시사합니다. 대운 대통의 길은 “내가 도통줄을 대두목에게 보내리라. 도통하는 방법만 일러 주면 되려니와….”(교운 1장 41절)라는 상제님 말씀에서 알 수 있듯, 대두목에게 알려주신 도통 방법으로, 도주님과 도전님께서 마련해주신 수도 법방입니다. 따라서 천하의 흐름에 맞추어, 진멸지경의 세상에서 벗어나 인간완성과 화평한 세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수도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첫째, 인성(人性)의 본질인 양심을 회복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양심(良心)과 사심(私心)이 있는데 양심은 하늘의 성품을 그대로 이어받은 인간의 본심(本心)으로 정직과 진실이 바탕이 됩니다. 사심은 물욕(物慾)에 의해 일어나는 욕심으로 사심이 가득하면 정직과 진실이 가려져 거짓되고 도리에 어긋나는 언행과 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현대사회가 혼란한 이유도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사심이 마음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신명의 수찰이 있다는 것을 알고 무자기(無自欺)로 암실(暗室)에서조차 기심(欺心) 하지 말 것이며 매사에 정직과 진실로써 일체의 죄악을 근절하여야 합니다. 범사에 사심을 버리고 양심을 회복함으로써 인간 본래의 청정한 본질로 환원하였을 때 운수와 도통을 받을 수 있으며, 사회 또한 밝아져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입니다.

    둘째, 인륜을 바르게 행하고 도덕을 밝혀 나가는 데 힘써야 합니다. 인륜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질서입니다. 그러므로 인륜의 토대는 가정과 이웃, 사회, 국가이며 이 속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역할과 도리를 다하고 모든 행동을 예에 맞게 행해야 합니다. 그럴 때 무도병에서 벗어나 인격이 완성되고 가정이 화목하며 사회에 질서가 생기고 세계가 화평해지는 것입니다. 이에 도전님께서도 인륜의 근본인 충효열이 다른 것이 아니라 가정화목과 이웃화합, 세계평화를 이루는 것이며 인륜도덕을 잘 닦는 것에 도통과 해원상생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해원상생은 상극의 참상에서 완성된 세상으로 가기 위한 새로운 윤리입니다. 척이 있으면 운수를 받을 수 없으므로 천지에 가득 차고 넘쳐서 재앙을 일으키는 원을 먼저 풀어야 도통과 평화로운 세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인륜 도덕과 해원상생을 실천하여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면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 질서를 포덕·교화를 통해 널리 알리는 것이 도덕을 밝혀 나가는 것이며 남을 잘 되게 하고 지상천국을 건설하는 길입니다.

    셋째, 수도의 제 규정을 엄수하여야 합니다. 각종 의식 행사에 동참하고 준칙을 따르며 연운(緣運) 체계에 소속되어 수도해야 합니다. 각종 의식 행사에는 수도(공부·수련·기도), 월성(月誠), 치성(致誠), 수강, 연수 등이 있습니다. 이는 도통진경의 세상을 건설하는 진법이므로 잘 지켜야 하며 도전님의 유훈을 정성을 다해 봉행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연운체계를 지켜나가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지만 이를 인내하고 극복하는 가운데 마음이 닦이고 성질이 연마되어 인격완성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현대사회에서 수도가 꼭 필요한 이유와 실천항목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현대사회는 물질문명과 상극에 치우쳐 인간성 상실과 함께, 윤리 도덕의 붕괴와 환경오염으로 존멸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다행히 상제님께서 인간이 본성을 회복하고 인도를 찾아 다시 걸을 수 있도록 천운구인(天運救人)의 시대를 열어놓으셨습니다. 수도를 통해 본성과 인도를 회복하여 진멸지경의 세상에서 벗어나 인간 완성을 이루고 화평한 세상을 건설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인공지능시대의 서막이 열림으로써 한 차원 높은 천상문명을 실감하는 때입니다. 사회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함으로써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고 삶이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긍정적 반응과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는 부정적 반응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물질에 치우친 문명은 인류에게 재앙을 초래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적 교훈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상제님께서 내놓으신 해원상생과 인륜 도덕은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해법입니다. “너희들은 손에 살릴 생 자를 쥐고 다니니 득의지추(得意之秋)가 아니냐 마음을 게을리 말지어다.”(예시 87절)라는 상제님의 말씀을 되새겨 인륜을 바르게 행하고 도덕을 밝혀 나감으로써 자신의 인격을 연마하고 창생을 구제하는 데 성(誠)·경(敬)·신(信)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1) 교운 1장 9절, 공사 1장 3절 참조.
     

  • Q.

    대순진리회의 발전사를 간략하게 적어주세요.

    대순진리회의 발전사는 곧 대순진리회의 연혁(沿革)을 기술하는 것인데, 이는 상제님과 도주님, 도전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중심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대순진리회의 연혁이 대순진리의 연원(淵源)이신 세 분 중심으로 기술되는 것은 종단의 역사 자체가 바로 상제님으로부터 계시(啓示)로 종통이 도주님께 전수되고, 다시 도주님으로부터 유명(遺命)으로 도전님께 종통이 전수되는 천부적 종통계승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전 우주를 총할하시는 절대자이신 구천대원조화주신(九天大元造化主神)으로서 진멸지경(盡滅之境)에 이른 인류와 신명계의 겁액에 대한 청원과 하소연으로 삼계대권(三界大權)을 주재하시고 천하를 대순하시다가 한국 모악산 금산사 3층전 미륵금불에 영(靈)으로 30년간 머무셨습니다. 그곳에 머무시면서 최제우(崔濟愚)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계시하셨으되 그가 유교의 전헌(典憲)을 넘어 대도(大道)의 참 뜻을 밝히지 못하므로 갑자(1864)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시고 신미(1871)년 9월 19일에 직접 인간의 몸을 빌려 인세에 강세하셨습니다. 1)

    상제님께서는 상도(常道)를 잃은 천지도수를 정리하시고 후천의 무궁한 선경(仙境)의 운로를 열어 지상천국을 건설하고 비겁(否劫)에 쌓인 신명과 재겁(災劫)에 빠진 세계창생을 널리 건지시려고 순회주유하시며 하늘과 땅을 뜯어고쳐 신천지(新天地)를 개벽하는 천지공사(天地公事)를 신축(1901)년부터 기유(1909)년까지 9년간에 걸쳐 행하셨습니다.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음양합덕ㆍ신인조화ㆍ해원상생ㆍ도통진경의 대도의 진리로써 신인의도(神人依導)의 이법으로 해원(解冤)을 위주로 하여 보은(報恩)으로 종결하시니 해원상생(解冤相生)ㆍ보은상생(報恩相生)의 양대 도리로 만고에 쌓였던 모든 원울이 풀리고 세상은 상극이 없는 도화낙원(道化樂園)이 이루어지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상제님께서 대순하신 진리인 것입니다. 2)

    상제님께서는 신통자재(神通自在)하시어 구애됨이 없이 허다한 방편으로 40년간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진리를 인세에 선포하셨습니다. 기유(1909)년 4월 28일에 도주님께 천명(天命)을 내리시고 이해 6월 24일에 해탈초신(解脫超神)으로 상계(上界)의 보화천존(普化天尊) 제위에 임어하셔서 삼계(三界)를 통찰(統察)하시고 무한무량한 세계를 관령(管領)하시니 지존(至尊) 지엄(至嚴)하신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상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上帝)이십니다.3)

    상제님의 천지공사를 이어 해원상생 대도를 펼치실 도주님께서는 을미(1895)년 12월 4일에 탄강하셨습니다. 부조전래의 배일사상을 품으신 도주님께서는 한일합방이 결정단계에 있음을 개탄하시고 부친, 숙부 등과 같이 기유(1909)년 4월 28일, 15세 시 만주 봉천으로 향하셨습니다. 도중에 대전역의 기차 안에서 그날 그 시각 종도들을 거느리시고 대전역에 마중 나오신 상제님으로부터 그대는 삼계의 진주(眞主)이니 삼계를 광구하라는 천명(天命)을 받드시고, 망명 중 동지들과 구국운동에 활약하시다가 도력으로 구국제세(求國濟世)할 뜻을 정하시고 입산공부를 하셨습니다. 4)

    입산공부를 하시던 도주님께서는 정사(1917)년 2월 10일, 23세 시에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에 감오득도(感悟得道)하시고 종통계승의 계시(啓示)를 받으셨습니다. 이해 4월에 귀국하신 도주님께서는 전국각지를 편력수도하시다가 을축(1925)년 4월에 전북 구태인 도창현에 도장을 건립하시고 종단 무극도(无極道)를 창도하셨습니다.
    일제의 유사종교단체 해산령으로 종교활동을 일시 중단하신 도주님께서는 을유(1945)년 7월에 조국광복을 맞이하시어 신앙자유의 국시에 따라 종교활동을 부활하셨습니다. 무자(1948)년 9월에 도본부를 경상남도 부산시에 설치하시고, 정유(1957)년 11월에 도인의 각종 수도방법과 의식행사 및 준칙 등을 설법 시행하셨습니다. 5)

    도주님께서는 무술(1958)년 3월 6일에 상제님께서 펼치신 삼계의 대도를 전체 인류가 수도, 신앙할 수 있도록 대도의 진법(眞法)을 50년 공부(工夫)로 종필(終畢)하시고, 유명(遺命)으로 종통을 도전님께 전수하시고 화천(化天)하셨습니다.
    도주님으로부터 유명으로 종통을 계승하시어 해원상생 대도(大道)를 현창하실 도전님께서는 정사(1917)년 11월 30일에 충북 괴산군 장연면 방곡리(忠北槐山郡長延面方谷里)의 죽산박(竹山朴) 씨 문중에서 탄강하시니 성은 박 씨이요 존휘는 한경(漢慶)이시고 자함은 경호(景浩)이시며 존호는 우당(牛堂)이십니다.
    도전님께서는 상제님께서 화천하신 기유(1909)년으로부터 한 갑자(60년) 후인 기유(1969)년 4월에 전반적인 기구를 개편하시고 종단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시고, 포덕ㆍ교화ㆍ수도의 3대 기본사업과 3대 중요사업으로 구호자선사업·사회복지사업·교육사업을 연차적 계획으로 추진케 하시니 도세는 일취월장하였습니다.

    도전님께서 입도하신 병술(1946)년 4월로부터 을해(1995)년 12월 4일까지 50년 동안 대도를 현창하시니, 한때 도인 수는 800만에 이르고 여주본부도장을 포함하여 전국에 5대 도장을 건립하셨고, 대진대학교를 비롯하여 산하에 6개 고등학교를 설립하셨으며, 분당제생병원, 동두천제생병원, 고성제생병원의 건립을 추진하시어 분당제생병원은 현재 개원 중입니다.
    전국 5대 도장의 건립은 기유(1969)년 4월부터 서울시 성동구(현 광진구) 중곡동에 중곡도장을 건립하기 시작하시어 병인(1986)년에는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가야리에 여주본부도장(驪州本部道場)을 건립하셨는데, 당시는 여주도장으로 명명하였으나 계유(1993)년에 본부를 중곡도장에서 여주도장으로 옮겨오심에 따라 여주본부도장이 되었습니다.
    도전님께서 제주도 노형동(老衡洞)에 제주수련도장(濟州修鍊道場)을 건립하셨는데, 기사(1989)년 1월 25일에 기공식을 하시고 5월 27일에 상량식을 거행하신 후 6월 16일에 준공하셨으며, 6월 24일에 상제님의 화천치성 겸 봉안치성을 거행하셨습니다. 임신(1992)년 6월 24일에는 포천수도장을 건립하시고 봉안치성을 올리셨습니다.

    갑술(1994)년 12월 3일에 금강산토성수련도장 기공식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인흥리에서 거행하시고, 이듬해 을해(1995)년 3월 12일에 상량식을 올리셨으며, 그해 12월 13일에 영대봉안치성을 올리셨습니다.
    대학교 공사는 신미(1991)년 2월 29일 오(午)시에 대진대학(大眞大學) 신축 기공식이 경기도 포천군 포천읍 선단리(京畿道抱川郡抱川邑仙壇里)의 대학공사부지 현장에서 거행되었습니다. 이로부터 10개학과 400명 정원으로 신입생을 모집하고, 공사 시작 후 1년도 못되어 임신(1992)년 2월 8일에 학교부지 60~70만 평 규모의 대진대학교를 개교하니 많은 사람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더구나 대학건립공사에는 도(道)의 임원들과 선·교무 이상 교직자들만이 참여하였으며 이들은 오직 도전님의 덕화만을 믿고 공사에 임하여 건축기술자들도 해내기 어려운 큰 공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도전님께서는 경전과 교재 발간에도 힘을 기울이시어 갑인(1974)년 3월 9일에 『전경(典經)』을 발행하셨고, 을묘(1975)년 5월 24일에는 『포덕교화기본원리(布德敎化基本原理)』를 발행하셨습니다. 무오(1978)년 2월 7일에 대순진리회 교무부에서 『채지가』를 발행하였습니다. 그해 12월 23일에는 『증산의 생애와 사상』이 대순진리회 출판부에서 발행되었습니다. 도전님께서는 임술(1982)년 4월에 『대순성적도해요람(大巡聖跡圖解要覽)』을 발간하시면서 각 방면 선무당 1권씩 배부하여 도설(圖說)의 통일을 기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계해(1983)년 6월 16일에 《대순회보》 창간호를 종무원 교무부에서 편집하고 대순진리회 출판부에서 발행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너희는 나의 말을 바르게 인식하고 실천하여 생활화되도록 하라.”고 당부하신 훈시(訓示)의 대지(大志)를 받들어 교무부에서 1980년 1월부터 1984년 3월까지 도인들에게 내리신 분부의 요의(要義)를 정리하여 갑자(1984)년 3월 25일에 『대순지침(大巡指針)』을 발간하였습니다.
    도전님께서는 교무부 산하에 연구기관으로 연구위원회와 연구소를 두셨는데, 임술(1982)년 4월 2일에 서울대 장병길 교수를 소장으로 하여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에 대순종교문화연구소를 개설하시고, 을축(1985)년 7월 30일에는 교무부 내에 연구위원회를 발족하셨습니다.
    도전님께서는 대순진리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시기 위하여 영화제작에도 관심을 기울이셨습니다. 경신(1980)년에 영화감독 김태원에게 명하시어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를 세상에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영화를 제작하도록 분부하셨습니다. 김태원은 감독 강대진, 상제님 역에 전운, 도주님 역에 이순재 등을 섭외하고 영화 제작을 총지휘하여 1980년 12월부터 시나리오를 작성하여 제작기간 4년만인 1984년 11월 17일에 영화 ‘화평의 길’을 아세아극장에서 개봉하여 21일 동안 상영하고, 대구 만경관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상영하였습니다.
    도전님께서는 도인들의 교화육성을 위하여 수강과 연수를 실행하셨습니다. 경신(1980)년 6월 30일에 제1기 수강이 개강되었는데, 24명을 한 반으로 2박 3일간 진행되었습니다. 병인(1986)년 여주본부도장을 지으시고 10월 25일에 여주 수강원에서 수강을 실시하셨습니다. 기사(1989)년 9월 7일부터 제주수련도장에서 120명의 도인을 1개 반으로 하여 5박 6일 일정으로 연수를 시행하셨고, 을해(1995)년부터 금강산토성수련도장에서 5박 6일간 연수가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도주님께서 설정하신 삼계(三界)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진법(眞法)인 시학ㆍ시법공부를 도전님께서 실제로 실행하시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은 도전님께서 도주님의 진법을 계승하신 천부적인 종통의 계승자이심을 증명하는 확고한 증표입니다.
    도전님께서는 갑인(1974)…
  • Q.

    전경의 구성과 내용을 설명해 주세요.

    『전경(典經)』은 대순진리회 신앙의 대상이신 상제님의 행적, 말씀, 가르침을 기록한 성스러운 경전입니다. 『대순지침』에 따르면 “대순진리는 『전경』을 근본으로 하여 참다운 도인이 되도록 교화하여야 한다.” 1) 라고 하여,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흔히 ‘경전(經典)’이라고 하면 단순한 책 이상의 특별한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신앙인들 사이에서 신성시됩니다. 이처럼 경전은 신앙생활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므로 『전경』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합니다.

    신미(1871)년 9월 19일에 인신(人身)으로 강세(降世)하신 상제님께서는 39년간에 걸친 설법(說法)과 설유(說諭)로써 종도들을 깨우치셨으며, 수많은 기행(奇行)과 이적(異蹟)을 보여주셨습니다. 상제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한 기록과 정리는 상제님을 따르던 종도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대해 도전님께서는 우리 대순진리회의 『전경』은 구천상제님의 천하 대순으로 9년간 천지공사하신 공사기(公事記)로서 도주님께서 봉천명(奉天命) 9년 만에 상제님의 계시를 받으시고 회국(回國)하신 후 상제님의 공사에 시종(侍從)하여 온 종도들로부터 수록하셨던 기록에 의하여 성편(成篇)된 것임을 밝혀주셨습니다. 2)

    이처럼 『전경』은 상제님을 따르던 종도들이 수집한 기록들을 토대로 편찬된 것입니다. 구체적인 작업은 1958년 도주님으로부터 종통을 계승하신 도전님께서 기유(1969)년 4월에 전반적인 기구를 개편하시고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시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결과 1974년 4월 1일에 대순진리회 교무부에서 『전경』 초판을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교정과정을 거쳐 2010년에 13판을 발행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전경』의 구성은 행록, 공사, 교운, 교법, 권지, 제생, 예시로 총 7편 17장 837절로 이루어져 있고, 각 편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행록편(行錄篇)
    행록편은 총 5장 223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강세하신 강증산 성사께서 구천상제님으로서 행한 말씀과 행적들을 연대기적인 기록을 엮은 것입니다. 여기에는 상제님의 강세로부터 유년시절, 청년시절, 주유천하(周遊天下)와 천지공사(天地公事), 그리고 화천(化天)에 이르기까지의 행적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인 특징은 유년시절의 기행 이적과 동학, 의병운동, 러일전쟁 등 19세기말 조선사회의 격동기를 이룬 시대적 상황, 종도들과의 만남 그리고 사례별 교화를 두루 다루고 있습니다.

    공사편(公事篇)
    공사편은 총 3장 106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서는 상제님의 대역사에 해당하는 천지공사 9년간의 기록을 다루고 있습니다. 천지공사는 크게 범주별로 천계공사(天界公事), 지계공사(地界公事), 인계공사(人界公事)로 분류될 수 있는데, 이는 모두 천ㆍ지ㆍ인 삼계를 개벽하기 위한 공사입니다. 『전경』에는 이와 같은 공사에 해당하는 내용을 모아서 종도들의 증언과 함께 고루 소개하고 있습니다. 시기별 구분은 명확하지 않으며, 다만 공사에 관한 기록을 전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편과 구분되고 있습니다.

    교운편(敎運篇)
    교운편은 총 2장 132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상제님께서 선포하신 대순진리의 이념을 포함하여 그 가치실현을 위한 종통계승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상제님의 진리는 도주님에 이르러 체계화되고, 이것이 계승되어 오늘날의 대순진리회를 이루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제1장에는 상제님의 진리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전해지는가를 다루고 있으며, 2장에서는 상제님의 종통을 계승한 도주님의 생애와 도전님의 종통계승이 주 내용입니다.

    교법편(敎法篇)
    교법편은 총 3장 173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수도와 신앙생활의 규범이 될 만한 내용을 중심으로 상제님께서 남기신 가르침들을 모아서 전하고 있습니다. 수도인으로서의 마음자세, 실천방법, 믿음의 문제, 대사회적인 문제, 윤리도덕의 문제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교법(敎法)은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설법 또는 설교에 해당합니다. 도덕적 사항과 종교적인 계율에 대한 말씀의 기록이고, 수도생활의 길잡이입니다.

    권지편(權智篇)
    권지편은 총 2장 71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서는 상제님께서 재세(在世) 시에 지녔던 초월적 권능(權能)과 예지(叡智)를 다루고 있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약 40년간 인세에 머무시면서 신통자재(神通自在)로 구애됨이 없이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한 인간의 몸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상제님으로서 행하신 권능과 지혜는 이미 범인(凡人)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의 고난을 해결하고 뭇 소원을 이루어줌으로써 상제님께서 지닌 절대능력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켰습니다. 이로써 상제님에 대한 신앙을 발생시키고 많은 사람이 상제님을 추종하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상제님의 주요 권능으로는 자연의 조화를 마음대로 하시며, 인간의 수명을 주관하고 모든 신명을 다스리는 것 등이 있습니다. 또한 예지력으로는 과거ㆍ현재ㆍ미래에 통달하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것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권지(權智)는 종교적 기적입니다. 기적은 이성적 지식이 미치지 못하는 신비한 영역입니다.

    제생편(濟生篇)
    제생편은 총 1장 44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서는 상제님께서 재세 시에 행하신 수많은 민생구제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천하창생을 구제하고 후천선경을 여시고자 9년간의 천지공사를 단행하시며, 고통 받는 생민의 고난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수많은 방편과 설법으로써 불치병을 치료하고 민생들이 소망하는 바를 모두 이루어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이러한 상제님의 행적을 쫓아서 그 전해오는 사실들을 제생편에 기록하고 있으며, 상제님께서 만인의 추앙을 받게 된 역사적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예시편(豫示篇)
    예시편은 총 1장 88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서는 상제님께서 재세 시에 행하신 천지공사의 기록에 입각하여 앞으로 펼쳐지는 후천선경의 미래상을 살필 수 있는 대목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천지공사에는 상제님께서 지니신 절대권능으로 인류와 천하창생이 맞이하게 되는 희망찬 미래를 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인류사회는 세계문명과 자연환경, 우주와 신명 세계에 있어서 해원상생이 지배하는 도화낙원(道化樂園)이 주어지게 됩니다. 예시편은 바로 그 구체적인 실상과 변화의 과정을 상세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전경』의 구성과 주요 내용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전경』의 각 편은 저마다의 고유한 사실과 교훈, 그리고 신앙의 근거가 되는 내용을 전체적으로 함축하고 있습니다. 『전경』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경전적 가치와 신앙체계의 주요한 축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도인은 언제나 『전경』을 수지(受持) 봉독(奉讀)하는 것에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도전님께서 『전경』을 100번 읽으라고 하신 말씀을 상기시켜 봅니다.

    대순진리회는 민족종교라고 합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배타적 민족주의적 종교와는 확연히 구분하여야 합니다. 배타적 민족주의적 종교는 ‘민족’을 ‘종교’보다 우선시하는 자민족 중심적이며 타 종교나 타 민족, 또는 타 집단에 대해 배타적 성향을 드러냅니다. 대순사상이 이러한 배타적 민족주의적 종교로 왜곡ㆍ축소된다면 세계적 보편종교로 발전하는데 있어서 큰 장애가 될 것입니다. 세계적 종교 특성은 민족종교를 바탕으로 발생하였지만, 민족의 차이를 초월하고 세계 인류를 똑같이 구제한다는 방침에 입각한 종교입니다. 대순사상은 목적에 있어서 지상신선실현(地上神仙實現)이라고 하는 개인의 인간완성을 지향함과 동시에 지상천국건설(地上天國建設)이라고 하는 세계적 이상(理想)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민족주체성과 구국제민(救國濟民)의 창도이념을 지닌 대순진리회는 민족종교이면서도 상제님의 광구천하(匡救天下)의 뜻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인류평화사상을 담고 있는 세계적 종교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학』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처럼 천하를 경영하기 위해서는 ‘수신제가치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따라서 상제님의 광구천하를 통한 지상천국 건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민족주체성 계도를 통한 국리민복(國利民福)에 먼저 이바지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도전님께서는 “도주님의 구국제민의 창도이념을 명심하여야 한다.” 1) 하시며 “본도는 민족종교이니 민족주체성 계도에 앞장서야 한다.” 2) 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대순진리회가 지니고 있는 한국적인 특성과 세계 종교적 특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한국적인 특성은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먼저 대순진리회는 한국 땅에서 발생한 자생종교라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신앙의 대상이신 상제님께서는 신미(1871)년 9월 19일에 현 전북 정읍군 덕천면 신월리 강씨가에서 인간의 모습을 빌어 강세하셨고,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에 감오득도하시고 종통계승의 계시(啓示)를 받으신 도주님께서는 을미(1895)년 12월 4일에 경남 함안군 칠서면 회문리에서 탄강하셨으며, 도주님으로부터 유명(遺命)에 의해 종통을 계승하신 도전님께서는 충북 괴산군 장연면 방곡리에서 정사(1917)년 11월 30일에 탄강하셨습니다. 신앙의 대상이신 상제님, 창도주이신 도주님, 영도자이신 도전님께서 모두 한국 땅에 오시어 이 땅에서 먼저 도를 펼치셨습니다.

    두 번째, 대순진리회는 신명대접을 잘 하는 민족의 고유한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조선과 같이 신명을 잘 대접하는 곳이 이 세상에 없도다. 신명들이 그 은혜를 갚고자 제각기 소원에 따라 부족함이 없이 받들어 줄 것이므로 도인들은 천하사에만 아무 거리낌 없이 종사하게 되리라.”(교법 3장 22절)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민족은 세계 그 어느 민족보다 신명대접을 잘해 왔기 때문에 천지신명들이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받들어 대접한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또한 “서교는 신명의 박대가 심하니 감히 성공하지 못하리라.”(교법 1장 66절)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제사를 통해 조상을 잘 모셔왔습니다. 매년 명절 때마다 조상 선령께 차례를 올리는 제례는 뿌리와 근본을 잊지 않으려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심성을 잘 나타내줍니다. 제사는 신명을 대접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예(禮)입니다. 그래서 대순진리회는 치성의례을 통해 양위상제님과 천지신명 그리고 조상님을 극진히 모시고 있습니다. 우리 종단에서 매월 양위상제님과 천지신명 전에 올리는 치성의례는 우리 민족의 보본(報本)의 민족정서와 서로 상통하는 부분입니다.
    대순진리회의 세계적 종교 특성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먼저, 대순진리회는 상제님께서 펼치신 해원상생 대도(大道)의 진리가 사상적인 면에서 전 우주적이고 전 세계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상제님께서 보이신 이 땅 한국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조선이 예로부터 신명대접을 극진히 잘하는 곳일 뿐 아니라, 참화 중에 묻힌 무명의 약소민족을 먼저 도와서 만고에 쌓인 원을 풀어 주려 함이라고 말씀하신 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3)

    그리고 상제님께서 “내가 보는 일이 한 나라의 일에만 그치면 쉬울 것이로되 천하의 일이므로 시일이 많이 경과 하노라”(교법 3장 7절)고 말씀하셨듯이 우리 대순진리회는 분명히 민족종교를 넘어 세계적 종교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만국 활계 남조선(萬國活計南朝鮮) 청풍 명월 금산사(淸風明月金山寺) 문명 개화 삼천국(文明開花三千國) 도술 운통 구만리(道術運通九萬里)”(예시 14절)라 하신 것도 천하만국을 다 잘 되게 하는 계획이 남조선에서 시작되나 그 후천개벽은 남조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삼천국, 구만리에 퍼져나간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대순진리회가 세계적 종교 특성을 갖는 것은 둘째로 대순진리회의 최종 목적이 세계개벽ㆍ지상천국 건설이라는 데 있습니다. 세계개벽은 인류평화사상으로서 민족적ㆍ지리적ㆍ사상적 경계를 초월하여 전체 인류가 화평한 세상을 만들자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삼계가 개벽되지 아니함은 선천에서 상극이 인간지사를 지배하였으므로 원한이 세상에 쌓이고 따라서 천ㆍ지ㆍ인(天地人) 삼계가 서로 통하지 못하여 이 세상에 참혹한 재화가 생겼나니라.”(예시 8절)고 말씀하시며, 삼계(三界)가 개벽되지 않은 이유와 원인에 대해서 밝히셨습니다. 따라서 세계개벽공사는 단순히 인간세계의 병폐와 모순을 개혁하려는 차원을 넘어 천ㆍ지ㆍ인(天地人)의 상극적인 요소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 바로 잡는 전 우주적인 차원입니다. 이 공사는 다른 종교나 사상을 모방하거나 계승한 것이 아니며, 과거나 현재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상천국을 건설하기 위한 세계개벽공사는 다른 종교와 사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행해졌습니다. 따라서 이 목적 자체가 민족종교를 넘은 세계적 종교 특성인 것입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순진리회는 가장 한국적인 민족종교이면서 가장 세계적 종교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순사상은 편협한 배타적 민족주의나 고루한 국수주의가 아니라 세계창생의 행복과 만국활계를 생각하며 이질적인 문화문명을 통일하려는 전 인류의 평화사상인 것입니다.

    1)『대순지침』, p.25.
    2) 상동.
    3) 권지 1장 11절 참조.

  • Q.

    도장은 어떤 곳인가요?

    도전님께서 1969년에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시고 서울 광진구(옛 성동구) 중곡동에 중앙본부도장을 창건하셨습니다. 이는 상제님의 대순하신 유지(遺志)와 도주님의 유법(遺法)을 숭신하여 인간개조 정신개벽으로 포덕천하 구제창생 지상천국 건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1)

    먼저 도장(道場)을 보면, 중곡도장을 시작으로 여주수도장(1986년 준공), 제주수련도장(1989년 준공), 포천수도장(1992년 준공), 금강산 토성수련도장(1996 준공)이 지어졌습니다. 특히 여주수도장은 1990년에 현본전(現本殿)인 영대(靈臺) 그리고 시학원ㆍ시법원ㆍ정심원ㆍ내정이 새로 지어져 준공되었고, 1993년 2월에 종단본부가 중곡도장에서 여주수도장으로 이전되어 이후로는 여주본부도장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도전님께서 “도장(道場)은 늘 정결(淨潔)하고 신성(神聖)한 곳입니다. 양위 상제님을 봉안하고 천지신명(天地神明)이 가득한 신성한 성지(聖地)입니다.”2)라고 하셨습니다. 특히 영대를 보면, 대순진리회 신앙의 대상이신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님, 조성옥황상제님, 서가여래, 명부시왕, 오악산왕, 사해용왕, 사시토왕, 관성제군, 칠성대제, 직선조, 외선조, 칠성사자, 우직사자, 좌직사자, 명부사자, 진법주(眞法呪)의 15신위 그리고 48장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 이외에도 도장에는 28수(宿)와 24절후(節侯)를 비롯하여 많은 천지신명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러한 도장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예의(禮儀)와 관련하여 도전님께서는 “숭도문(崇道門) 안을 정내(庭內)라 하고 그 안에 들어서면서 본전(本殿)을 향해 읍배(揖拜)를 올린다. 영대 앞을 본정(本庭)이라 이르며 본정에서는 최경(最敬)의 예로써 진퇴에 지성지경(至誠至敬)을 다하여야 한다.”3)라고 훈시하셨습니다.
    대순진리회는 여러 곳에 도장이 있지만, 특히 여주본부도장은 도인의 생명보다 소중한 시학ㆍ시법공부가 돌아가고 있고, 매월(每月) 대행사(大行事)로 본부성(本部誠)이 있습니다. 시학공부는 1991년 6월 21일에 처음 시작되었고, 시법공부는 1991년 9월 19일에 처음 시작된 이래로 지금까지 1분 1초도 쉼이 없이 계속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학ㆍ시법공부가 진법으로 ‘참 진’의 진법(眞法)이요, ‘진칠 진’의 진법(陳法)으로 ‘자리공부’라고 합니다. 이 공부의 영향이 군생만물에 미치며, 우리의 도통과 앞으로 후천 5만년 지상천국의 천지도수가 이 공부에 달려 있어 생명보다도 중요하다고 도전님께서 누차 강조하셨습니다. 그 옛날 천존(天尊)시대인 태호복희 때에는 신봉어천(神封於天)하여 신명이 하늘에 봉해졌고, 이후 지존(地尊)시대인 문왕(文王) 시절에는 신봉어지(神封於地)하여 신명이 땅에 봉해졌으며, 지금은 인존(人尊)시대로 신명이 도장에 모셔져 있고 신봉어인(神封於人)으로 신명이 인간에게 봉해지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여주본부도장은 매월(每月) 본부성(本部誠) 날의 행사가 있습니다. 이 날은 모든 상급 임원이 맡고 있는 도인들의 성(誠)을 모셔 도장으로 옵니다. 본부성 날 유시(酉時: 오후 5시)에 모든 상급 임원이 영대에 올라가 상제님께 상고(上告)하는데 이를 성일(誠日)의 참배라 합니다. 또 대부분의 치성이 여주본부도장에서 거행되고, 교직자를 교육하는 수강(受講)과 도장수호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수도에서 도장의 신성성과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도장은 보금자리로 마치 상제님의 품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도인은 이 속에 담긴 의미를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도전님께서 “상제님의 덕화(德化)에 힘입어 마음과 몸을 깨끗하고 맑고 밝게 하라.”4) 하셨습니다. 상제님의 덕화로 우리의 마음과 몸이 깨끗하고 맑고 밝게 됨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도인은 도장을 자주 와야 합니다. 도전님께서 방면의 임원들에게 ‘참배사업’이라 하시며 도장참배를 많이 하라고 강조하신 것도 이 때문입니다.

    참배란 도인들이 수도생활 중에 도장으로 직접 찾아가 영대배례를 통해 신앙의 대상께 인사드리는 것을 뜻합니다. 참배의 의의는 도인들이 수도생활 중에 도장에 와서 상제님께 봉심을 올림으로써 신심(信心)을 고취하고, 상제님께서 대순하신 진리의 유지(遺志)와 도주님의 유법(遺法), 도전님의 유훈(遺訓)을 가슴깊이 새겨 지상천국 건설과 자신의 완성을 위해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는 계기로 삼기 위함입니다.
    참배의 중요성은 첫째, 도장은 상제님과 천지신명이 모셔진 곳으로 상제님의 공사를 받드는 도인이라면 누구나 영대배례를 통하여 직접 인사를 드리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는 데 있습니다. 둘째, 도장은 늘 신성하고 정결한 곳으로 나의 도심과 신심을 돈독하게 하고, 수도 중 풀어지거나 나태해진 마음을 새로이 쇄신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며, 무엇보다 세상 사람들을 구제하는 사업(事業)을 위해 많은 기운을 모실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셋째, 입도한 초심자에게는 도장의 건물과 벽화를 통하여 도의 이치를 깨우쳐 줄 수 있고, 대순진리회의 종통을 바르게 이해시켜 신앙심을 제고하는 계기가 된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도인은 올바른 수도생활과 사업을 위해서는 자주 참배를 하여야 합니다.
    도장은 양위 상제님과 천지신명을 모신 신성하고 정결한 곳으로, 장차 이곳에서 우리는 도통을 받고 운수를 받게 됩니다. 도전님께서 “도인들은 항상 어디서나 신명의 수찰이 있음을 명심하고 속임과 거짓이 없이 도인의 본분을 바로 지켜야 한다.”5)라고 하셨습니다. 특히 도장에서는 더욱 마음가짐을 정결히 하고 몸을 바르게 해야겠습니다. 우리 도는 신도(神道)로서 신명으로부터 공판과 운수를 받는다는 것과 항상 신명이 나의 마음에 먹줄을 겨누고 있다는 것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끝으로 우리는 도장의 소중함을 늘 간직하고 도전님의 그 은덕(恩德)을 잠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에 보답하는 길은 우리 모든 도문소자가 나의 마음가짐, 행동, 걸음걸이까지도 상제님과 천지신명이 환하게 보고 계심을 생각하고 느껴 심신을 깨끗이 함으로써 오직 참된 도문소자가 됨에 있음을 명심하고 또 명심하여야겠습니다.

    1)『대순진리회요람』, p.6 참조.
    2)《대순회보》 35호,「도전님 훈시」
    3)『대순지침』, pp.83~84.
    4)『대순지침』, p.81.
    5)『대순지침』,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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