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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Q.

    인간의 두 가지 마음, 양심(良心)과 사심(私心)에 대하여 설명해 주세요.

    『대순진리회요람』에는 양심과 사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일신(一身)의 주(主)이니 사람의 모든 언어 행동은 마음의 표현이다. 그 마음에는 양심(良心), 사심(私心)의 두 가지가 있다. 양심은 천성(天性) 그대로의 본심(本心)이요, 사심은 물욕(物慾)에 의하여 발동하는 욕심(慾心)이다. 원래 인성(人性)의 본질은 양심인데 사심에 사로잡혀 도리(道理)에 어긋나는 언동(言動)을 감행하게 됨이니 사심을 버리고 양심인 천성을 되찾기에 전념하라. 인간의 모든 죄악의 근원은 마음을 속이는 데서 비롯하여 일어나는 것인즉 인성의 본질인 정직과 진실로써 일체의 죄악을 근절하라. 1)

    인류의 역사에서 양심은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사람들은 양심을 중요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양심에 대한 관용어나 속담도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도덕은 변해도 양심은 변하지 않는다.” 하였고, 중국 속담에 “야망을 성취하기 위하여 자기의 양심을 희생시키는 사람은 재를 얻기 위하여 명화(名畵)를 불태우는 사람이다.” 하였으며, 영국 속담에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일거일동을 알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하느님과 양심이다.” 하였고, 독일 속담에 “양심은 매일의 삶에 있어 양념과도 같다.” 하였으며, 프랑스 속담에 “깨끗한 양심처럼 더없이 폭신한 베개는 이 세상에 없다.” 하였습니다.
    세계적인 문호, 정신적 지도자, 철학자들도 양심에 대하여 중요하게 언급하였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육체에 꼭 맞는 옷만을 입지 말고 양심에 꼭 맞는 옷을 입어라.” 하였고, 인도의 간디는 “선인(善人)은 자기의 양심의 명령에 따르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은 양심의 소리가 하느님의 소리라는 것을 터득하기 전에는 불가능하다.” 하였으며,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하늘에는 별이 있고 사람의 속에는 도덕적 의식이 있다.” 하였습니다. 도덕적 의식은 양심을 뜻하는 것이니, 결국 ‘하늘에는 별, 인간에게는 양심’이라는 말입니다. 하늘에는 별이 있어 밤하늘을 아름답게 하듯이 인간의 아름다움은 그의 가슴 속에 양심이 빛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양심이 없다면 금수와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헌법 19조」에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는 성문이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양심은 인류 역사상 사람들이 처세하는 불멸의 불문율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인세에 양심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회에는 금수도(禽獸道)가 판을 치고 약육강식의 장이 될 것입니다.
    『대학(大學)』에 나오는 명명덕(明明德)도 바로 이 양심[明德]을 밝힌다[明]는 의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도(道)의 훈회 1번, ‘마음을 속이지 말라.’에서 그 마음은 바로 양심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인간의 본래 마음은 양심입니다. 마음에는 도심(道心)과 인심(人心)이 있습니다. 도심이 양심이고 인심이 사심입니다. 양심이 본심(本心)이고 사심이 욕심(慾心)입니다.

    인간의 마음을 이야기하면서 신성(神性)의 작용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양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신성의 작용이 양심입니다. 신성이 체(體)라면 양심은 용(用)입니다. 성(性)이 체라면 심(心)이 용입니다. 이것이 심성(心性)의 관계입니다.
    양심은 우리 인간의 본질적인 성품입니다. 성(性)과 심(心)을 너무 분별할 필요가 없습니다. 양심 자리에서는 심과 성의 분별이 없습니다. 그래서 『대순진리회요람』에도 양심을 천성 그대로의 본심이라 한 것입니다. ‘양심(良心)이 곧 천성(天性)’이라는 말입니다. 양심이 인간의 본래 성품이라는 것은 양심이 인간이 쓰는 마음의 본바탕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인간들이 존재합니다. 양심의 지배를 받는 자와 양심을 저버린 자. 양심의 지배를 받는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양심은 신(神)의 직접적인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는 신의 명령에 순복(順服)하는 자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고대의 사람은 인간을 신의 종이라 표현하였는데 인간이 어찌 신의 종이겠습니까. 어떤 아버지도 자신의 자식을 종이라 여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인간을 신의 종으로 여기는 것은 하느님께 허물을 씌우는 것으로 잘못된 신관(神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어느 족속의 인류이건 간에 밉고 고움의 차별 없이 한결같이 다 사랑하십니다. 우리 인류는 상제님의 손(孫)으로 한 동기(同氣) 형제를 이루었으니 서로가 존중하고 사랑하며 화평(和平)하여야 합니다. 2)

    인간이 양심을 간직하고 그 명령에 따르며 양심에 비추어 자신을 성찰하는 것은 인격적 성숙의 표상입니다. 양심은 진리의 규준이며 신의 경종이요 만세(萬世)의 보감(寶鑑)이라, 우리는 양심으로 듣고 양심으로 보며 양심으로 말하고 양심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공자의 사물(四勿) 3)
    이 있지만, 우리는 예의 자리에 양심을 두어 양심이 아니면 보지 말고 양심이 아니면 듣지 말며, 양심이 아니면 말하지 말고 양심이 아니면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흔히 양심의 소리라 합니다. 사람들은 고래로 양심의 소리를 신(神)의 의지를 대변하는 것으로 여겨왔습니다. 양심은 신의 대변자입니다. 양심의 소리를 신의 소리로 알아야 합니다. 고대의 성현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던 내면의 미묘한 소리는 바로 신의 소리이고 이것을 대중이 보편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양심의 소리라 한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양심에 대한 상용구를 연구해보면 양심의 본질과 작용에 대한 단초를 얻을 수 있습니다. ‘양심 불량’이라는 말, ‘양심도 없냐.’는 말, ‘양심에 털이 났다.’는 말,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는 말, ‘양심의 자유’라는 말, 등등의 양심에 관한 상용구를 모아서 분석·분류·종합해보면 어떤 패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양심에 털이 났다.’는 말은 우리나라의 문화에서 나온 말입니다. 자, 생각해보세요. 밭에 잡초가 나면 뽑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몸에 잡초가 나지는 않습니다. 털이 나지요. 그런데 그 털은 나 있을 곳에 나야지 털이 없어야 하는 곳에 털이 있으면 흉한 것입니다. 털이 혀에 나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것은 흉한 것을 넘어 매우 불편할 것입니다. 눈동자에 털이 난다면 그것은 큰일 날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양심은 맑고 깨끗한 인성의 본질인데 여기에 털이 났다는 표현은 흉측하다는 것의 다른 표현입니다. 양심이 없는 언동을 경멸하고 경계하여 이르는 말입니다.
    ‘양심 불량’이라는 것은 양심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 기능이 장애를 일으킨 것입니다. 어둠은 빛의 부재(不在)입니다. 어두운 방에 불을 켜면 어둠이 어디로 도망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방이 밝아집니다. 어둠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니 사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양심의 부재가 사심입니다. 양심이 밝아지면 사심은 일어나지 못합니다. 이것이 도심이 지극하면 사심은 일어나지 못한다는 도전님 말씀의 의미입니다. 4)

    주자(朱子)도 『근사록(近思錄)』에 “사람을 가르쳐 지도할 경우에 그 사람의 양심을 양육해 주면 나쁜 마음은 자연히 소멸한다.” 하였습니다.
    양심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도를 닦는 것이니,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양심을 밝힌다는 뜻입니다. 양심 철학이 상생 철학입니다. 상생은 인간 내면의 양심의 교류입니다. 양심을 빼놓고 상생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서로 사랑하는 것, 자체가 양심의 작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생을 이야기할 때 양심도 같이 말해야 합니다. 양심이 음(陰)이면 상생은 양(陽)입니다. 마음이 음이면 몸은 양이요 삼요체가 음이라면 사강령은 양인 관계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양심이 없는 상생은 상생이 아닙니다. 그러니 상생 못지않게 양심이 중요한 것입니다. 상생 정치, 상생 문화, 상생 사회, 상생 철학, 상생 경제 등과 같이 양심 철학, 양심 문화, 양심 정치, 양심 경제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강조해야 합니다. 우리는 상생과 양심을 동시에 밀고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상생이 힘을 받게 됩니다. 상생만 외치지 말고 양심도 함께 외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양심이 조용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천기 자동으로 해원상생대도(解冤相生大道)의 향기가 사회에 퍼져나가는 소이연(所以然)입니다.
    선천의 인간 삶에 대한 슬픔의 역사는 인간의 사심(ego)이 연출한 것입니다. 이제 바야흐로 양심의 시대가 도래하였습니다. 양심이 진실로 답입니다. 인간사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는 양심에 있습니다. 모든 인간이 양심을 회복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세상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후천 선경입니다. 우리 도인들은 진실로 그 시대를 여는 선구자가 될 것입니다.

    1)『대순진리회요람』, pp.18~19.
    2)『포덕교화기본원리(1)』, p.10 참조.
    3)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는 네 가지 가르침.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말이다.
    4)“사(私)는 인심이요 공(公)은 도심(道心)이니, 도심(道心)이 지극하면 사심(私心)은 일어나지 못하느니라.” (『대순지침』, p.93)
     

  • Q.

    현대사회에서 수도가 꼭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순진리회 수도인들은 인간 완성을 이루고 화평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수도합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도는 종단의 모든 규정을 준수하며 인륜을 바르게 행하고 도덕을 밝혀 나가는 과정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고 도리를 행하는 일이므로 시대와 장소를 불문해야 하지만, 오늘날 특히 수도가 필요한 이유는 현대사회가 지닌 과도기적 특징 때문입니다.

    상제께서 “이후로는 천지가 성공하는 때라. 서신(西神)이 사명하여 만유를 재제하므로 모든 이치를 모아 크게 이루나니 이것이 곧 개벽이니라. 만물이 가을바람에 따라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성숙도 되는 것과 같이 참된 자는 큰 열매를 얻고 그 수명이 길이 창성할 것이오. 거짓된 자는 말라 떨어져 길이 멸망하리라. 그러므로 신의 위엄을 떨쳐 불의를 숙청하기도 하며 혹은 인애를 베풀어 의로운 사람을 돕나니 복을 구하는 자와 삶을 구하는 자는 힘쓸지어다.”라고 말씀하셨도다.(예시 30절)

    위에서 알 수 있듯이 천지의 운은 성공하는 과정에 있는 반면, 인간의 운은 참된 자의 운과 거짓된 자의 운이 있습니다. 의롭고 참된 자는 큰 열매를 얻어 창성할 것이지만, 불의하고 거짓된 자는 멸망하게 됩니다. 즉 개벽을 맞이할 현대인들은 멸망과 성공의 현상이 공존하는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현대사회는 최첨단이라 명명할 정도로 과학문명과 물질문명이 급속도로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하지만 정신문명은 상대적으로 지체되었고 물욕에 빠진 인간은 그 본성을 잃고 인륜과 도덕이 무너졌습니다. 부정부패와 거짓, 사기를 일삼아 인간 불신의 풍조가 만연하고 인륜의 기초인 부부, 부모 자식 간에 폐륜과 폐덕이 난무하며, 사제지간(師弟之間)에 폭행이 자행되는 등 무도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또 감각적이고 쾌락적인 문화에 길들여져 쉽게 자극 받으며 사소한 일에도 폭행과 극단적 범행을 저지르고 심지어는 이유 없는 살인과 방화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 지구 온난화 등으로 인해 각종 신종병과 이상기온이 발생하여 인류는 총체적인 환경재난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게다가 대량살상무기가 개발된 가운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자행될지 모르는 전쟁과 테러는 인류를 전멸의 위기에 몰아넣고 있습니다.
    이렇듯 인도(人道)를 잃고 세상이 참혹하게 된 것에 대해 상제님께서는 “세무충 세무효 세무열 시고 천하개병(世無忠 世無孝 世無烈 是故天下皆病)”이라고 진단하시고 그 원인이 물질에 치우친 문명과 상극으로 인해 세상에 원한이 쌓이고 맺힌 것에 있다고 밝혀주셨습니다. 1)

    이마두가 동양에 와서 지상천국(地上天國)을 건설하려고 하다가 실패하고 사후에 동양의 문명신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감으로써 서양의 문명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그 문명은 천상의 문명으로 하늘이 인간에게 베풀어준 혜택이었으나 인간은 도리어 탐욕과 자만으로 자연을 정복하고 하늘이 부여한 인간의 도리와 질서를 파괴함으로써 신도의 권위를 떨어뜨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또한 상극 세상의 억음존양으로 부정, 불응, 불평등이 생기고 이로 인해 원한이 쌓이고 맺혀서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고 재겁, 병겁, 전쟁이 난무하게 된 것입니다.
    이에 상제님께서는 상극의 참상과 무도병(無道病)으로부터 세상을 바로잡아 구하시고자 대도(大道)를 선포하셨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륜 도덕(人倫道德)과 해원상생(解冤相生)입니다. 인륜 도덕은 인도의 근원입니다. 이것으로써 끊어진 인도를 잇고 바로잡아서 세상을 구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대도를 인간들이 힘써 닦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므로 힘써 닦을 수 있도록, 닦은 바대로 운수를 받을 수 있는 대운 대통(大運大通)을 함께 열어놓으셨습니다. 대운대통은 인간이 완성의 경지인 도통에 이르고 지상천국을 누리는 것으로 천(天)·지(地)·인(人)·신(神)이 모두 성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현대사회는 무도병에서 벗어나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으나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知天下之勢者 有天下之生氣 暗天下之勢者 有天下之死氣(지천하지세자 유천하지생기 암천하지세자 유천하지사기)”(행록 5장 38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천하의 형세를 아는 자는 사는 기운을 지니지만 천하의 형세를 모르는 자는 죽는 기운을 지닌다는 뜻으로 대운 대통으로 가는 천하의 흐름에 맞추어야 함을 시사합니다. 대운 대통의 길은 “내가 도통줄을 대두목에게 보내리라. 도통하는 방법만 일러 주면 되려니와….”(교운 1장 41절)라는 상제님 말씀에서 알 수 있듯, 대두목에게 알려주신 도통 방법으로, 도주님과 도전님께서 마련해주신 수도 법방입니다. 따라서 천하의 흐름에 맞추어, 진멸지경의 세상에서 벗어나 인간완성과 화평한 세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수도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첫째, 인성(人性)의 본질인 양심을 회복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양심(良心)과 사심(私心)이 있는데 양심은 하늘의 성품을 그대로 이어받은 인간의 본심(本心)으로 정직과 진실이 바탕이 됩니다. 사심은 물욕(物慾)에 의해 일어나는 욕심으로 사심이 가득하면 정직과 진실이 가려져 거짓되고 도리에 어긋나는 언행과 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현대사회가 혼란한 이유도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사심이 마음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신명의 수찰이 있다는 것을 알고 무자기(無自欺)로 암실(暗室)에서조차 기심(欺心) 하지 말 것이며 매사에 정직과 진실로써 일체의 죄악을 근절하여야 합니다. 범사에 사심을 버리고 양심을 회복함으로써 인간 본래의 청정한 본질로 환원하였을 때 운수와 도통을 받을 수 있으며, 사회 또한 밝아져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입니다.

    둘째, 인륜을 바르게 행하고 도덕을 밝혀 나가는 데 힘써야 합니다. 인륜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질서입니다. 그러므로 인륜의 토대는 가정과 이웃, 사회, 국가이며 이 속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역할과 도리를 다하고 모든 행동을 예에 맞게 행해야 합니다. 그럴 때 무도병에서 벗어나 인격이 완성되고 가정이 화목하며 사회에 질서가 생기고 세계가 화평해지는 것입니다. 이에 도전님께서도 인륜의 근본인 충효열이 다른 것이 아니라 가정화목과 이웃화합, 세계평화를 이루는 것이며 인륜도덕을 잘 닦는 것에 도통과 해원상생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해원상생은 상극의 참상에서 완성된 세상으로 가기 위한 새로운 윤리입니다. 척이 있으면 운수를 받을 수 없으므로 천지에 가득 차고 넘쳐서 재앙을 일으키는 원을 먼저 풀어야 도통과 평화로운 세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인륜 도덕과 해원상생을 실천하여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면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 질서를 포덕·교화를 통해 널리 알리는 것이 도덕을 밝혀 나가는 것이며 남을 잘 되게 하고 지상천국을 건설하는 길입니다.

    셋째, 수도의 제 규정을 엄수하여야 합니다. 각종 의식 행사에 동참하고 준칙을 따르며 연운(緣運) 체계에 소속되어 수도해야 합니다. 각종 의식 행사에는 수도(공부·수련·기도), 월성(月誠), 치성(致誠), 수강, 연수 등이 있습니다. 이는 도통진경의 세상을 건설하는 진법이므로 잘 지켜야 하며 도전님의 유훈을 정성을 다해 봉행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연운체계를 지켜나가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지만 이를 인내하고 극복하는 가운데 마음이 닦이고 성질이 연마되어 인격완성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현대사회에서 수도가 꼭 필요한 이유와 실천항목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현대사회는 물질문명과 상극에 치우쳐 인간성 상실과 함께, 윤리 도덕의 붕괴와 환경오염으로 존멸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다행히 상제님께서 인간이 본성을 회복하고 인도를 찾아 다시 걸을 수 있도록 천운구인(天運救人)의 시대를 열어놓으셨습니다. 수도를 통해 본성과 인도를 회복하여 진멸지경의 세상에서 벗어나 인간 완성을 이루고 화평한 세상을 건설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인공지능시대의 서막이 열림으로써 한 차원 높은 천상문명을 실감하는 때입니다. 사회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함으로써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고 삶이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긍정적 반응과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는 부정적 반응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물질에 치우친 문명은 인류에게 재앙을 초래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적 교훈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상제님께서 내놓으신 해원상생과 인륜 도덕은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해법입니다. “너희들은 손에 살릴 생 자를 쥐고 다니니 득의지추(得意之秋)가 아니냐 마음을 게을리 말지어다.”(예시 87절)라는 상제님의 말씀을 되새겨 인륜을 바르게 행하고 도덕을 밝혀 나감으로써 자신의 인격을 연마하고 창생을 구제하는 데 성(誠)·경(敬)·신(信)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1) 교운 1장 9절, 공사 1장 3절 참조.
     

  • Q.

    대순진리회의 발전사를 간략하게 적어주세요.

    대순진리회의 발전사는 곧 대순진리회의 연혁(沿革)을 기술하는 것인데, 이는 상제님과 도주님, 도전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중심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대순진리회의 연혁이 대순진리의 연원(淵源)이신 세 분 중심으로 기술되는 것은 종단의 역사 자체가 바로 상제님으로부터 계시(啓示)로 종통이 도주님께 전수되고, 다시 도주님으로부터 유명(遺命)으로 도전님께 종통이 전수되는 천부적 종통계승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전 우주를 총할하시는 절대자이신 구천대원조화주신(九天大元造化主神)으로서 진멸지경(盡滅之境)에 이른 인류와 신명계의 겁액에 대한 청원과 하소연으로 삼계대권(三界大權)을 주재하시고 천하를 대순하시다가 한국 모악산 금산사 3층전 미륵금불에 영(靈)으로 30년간 머무셨습니다. 그곳에 머무시면서 최제우(崔濟愚)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계시하셨으되 그가 유교의 전헌(典憲)을 넘어 대도(大道)의 참 뜻을 밝히지 못하므로 갑자(1864)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시고 신미(1871)년 9월 19일에 직접 인간의 몸을 빌려 인세에 강세하셨습니다. 1)

    상제님께서는 상도(常道)를 잃은 천지도수를 정리하시고 후천의 무궁한 선경(仙境)의 운로를 열어 지상천국을 건설하고 비겁(否劫)에 쌓인 신명과 재겁(災劫)에 빠진 세계창생을 널리 건지시려고 순회주유하시며 하늘과 땅을 뜯어고쳐 신천지(新天地)를 개벽하는 천지공사(天地公事)를 신축(1901)년부터 기유(1909)년까지 9년간에 걸쳐 행하셨습니다.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음양합덕ㆍ신인조화ㆍ해원상생ㆍ도통진경의 대도의 진리로써 신인의도(神人依導)의 이법으로 해원(解冤)을 위주로 하여 보은(報恩)으로 종결하시니 해원상생(解冤相生)ㆍ보은상생(報恩相生)의 양대 도리로 만고에 쌓였던 모든 원울이 풀리고 세상은 상극이 없는 도화낙원(道化樂園)이 이루어지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상제님께서 대순하신 진리인 것입니다. 2)

    상제님께서는 신통자재(神通自在)하시어 구애됨이 없이 허다한 방편으로 40년간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진리를 인세에 선포하셨습니다. 기유(1909)년 4월 28일에 도주님께 천명(天命)을 내리시고 이해 6월 24일에 해탈초신(解脫超神)으로 상계(上界)의 보화천존(普化天尊) 제위에 임어하셔서 삼계(三界)를 통찰(統察)하시고 무한무량한 세계를 관령(管領)하시니 지존(至尊) 지엄(至嚴)하신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상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上帝)이십니다.3)

    상제님의 천지공사를 이어 해원상생 대도를 펼치실 도주님께서는 을미(1895)년 12월 4일에 탄강하셨습니다. 부조전래의 배일사상을 품으신 도주님께서는 한일합방이 결정단계에 있음을 개탄하시고 부친, 숙부 등과 같이 기유(1909)년 4월 28일, 15세 시 만주 봉천으로 향하셨습니다. 도중에 대전역의 기차 안에서 그날 그 시각 종도들을 거느리시고 대전역에 마중 나오신 상제님으로부터 그대는 삼계의 진주(眞主)이니 삼계를 광구하라는 천명(天命)을 받드시고, 망명 중 동지들과 구국운동에 활약하시다가 도력으로 구국제세(求國濟世)할 뜻을 정하시고 입산공부를 하셨습니다. 4)

    입산공부를 하시던 도주님께서는 정사(1917)년 2월 10일, 23세 시에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에 감오득도(感悟得道)하시고 종통계승의 계시(啓示)를 받으셨습니다. 이해 4월에 귀국하신 도주님께서는 전국각지를 편력수도하시다가 을축(1925)년 4월에 전북 구태인 도창현에 도장을 건립하시고 종단 무극도(无極道)를 창도하셨습니다.
    일제의 유사종교단체 해산령으로 종교활동을 일시 중단하신 도주님께서는 을유(1945)년 7월에 조국광복을 맞이하시어 신앙자유의 국시에 따라 종교활동을 부활하셨습니다. 무자(1948)년 9월에 도본부를 경상남도 부산시에 설치하시고, 정유(1957)년 11월에 도인의 각종 수도방법과 의식행사 및 준칙 등을 설법 시행하셨습니다. 5)

    도주님께서는 무술(1958)년 3월 6일에 상제님께서 펼치신 삼계의 대도를 전체 인류가 수도, 신앙할 수 있도록 대도의 진법(眞法)을 50년 공부(工夫)로 종필(終畢)하시고, 유명(遺命)으로 종통을 도전님께 전수하시고 화천(化天)하셨습니다.
    도주님으로부터 유명으로 종통을 계승하시어 해원상생 대도(大道)를 현창하실 도전님께서는 정사(1917)년 11월 30일에 충북 괴산군 장연면 방곡리(忠北槐山郡長延面方谷里)의 죽산박(竹山朴) 씨 문중에서 탄강하시니 성은 박 씨이요 존휘는 한경(漢慶)이시고 자함은 경호(景浩)이시며 존호는 우당(牛堂)이십니다.
    도전님께서는 상제님께서 화천하신 기유(1909)년으로부터 한 갑자(60년) 후인 기유(1969)년 4월에 전반적인 기구를 개편하시고 종단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시고, 포덕ㆍ교화ㆍ수도의 3대 기본사업과 3대 중요사업으로 구호자선사업·사회복지사업·교육사업을 연차적 계획으로 추진케 하시니 도세는 일취월장하였습니다.

    도전님께서 입도하신 병술(1946)년 4월로부터 을해(1995)년 12월 4일까지 50년 동안 대도를 현창하시니, 한때 도인 수는 800만에 이르고 여주본부도장을 포함하여 전국에 5대 도장을 건립하셨고, 대진대학교를 비롯하여 산하에 6개 고등학교를 설립하셨으며, 분당제생병원, 동두천제생병원, 고성제생병원의 건립을 추진하시어 분당제생병원은 현재 개원 중입니다.
    전국 5대 도장의 건립은 기유(1969)년 4월부터 서울시 성동구(현 광진구) 중곡동에 중곡도장을 건립하기 시작하시어 병인(1986)년에는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가야리에 여주본부도장(驪州本部道場)을 건립하셨는데, 당시는 여주도장으로 명명하였으나 계유(1993)년에 본부를 중곡도장에서 여주도장으로 옮겨오심에 따라 여주본부도장이 되었습니다.
    도전님께서 제주도 노형동(老衡洞)에 제주수련도장(濟州修鍊道場)을 건립하셨는데, 기사(1989)년 1월 25일에 기공식을 하시고 5월 27일에 상량식을 거행하신 후 6월 16일에 준공하셨으며, 6월 24일에 상제님의 화천치성 겸 봉안치성을 거행하셨습니다. 임신(1992)년 6월 24일에는 포천수도장을 건립하시고 봉안치성을 올리셨습니다.

    갑술(1994)년 12월 3일에 금강산토성수련도장 기공식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인흥리에서 거행하시고, 이듬해 을해(1995)년 3월 12일에 상량식을 올리셨으며, 그해 12월 13일에 영대봉안치성을 올리셨습니다.
    대학교 공사는 신미(1991)년 2월 29일 오(午)시에 대진대학(大眞大學) 신축 기공식이 경기도 포천군 포천읍 선단리(京畿道抱川郡抱川邑仙壇里)의 대학공사부지 현장에서 거행되었습니다. 이로부터 10개학과 400명 정원으로 신입생을 모집하고, 공사 시작 후 1년도 못되어 임신(1992)년 2월 8일에 학교부지 60~70만 평 규모의 대진대학교를 개교하니 많은 사람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더구나 대학건립공사에는 도(道)의 임원들과 선·교무 이상 교직자들만이 참여하였으며 이들은 오직 도전님의 덕화만을 믿고 공사에 임하여 건축기술자들도 해내기 어려운 큰 공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도전님께서는 경전과 교재 발간에도 힘을 기울이시어 갑인(1974)년 3월 9일에 『전경(典經)』을 발행하셨고, 을묘(1975)년 5월 24일에는 『포덕교화기본원리(布德敎化基本原理)』를 발행하셨습니다. 무오(1978)년 2월 7일에 대순진리회 교무부에서 『채지가』를 발행하였습니다. 그해 12월 23일에는 『증산의 생애와 사상』이 대순진리회 출판부에서 발행되었습니다. 도전님께서는 임술(1982)년 4월에 『대순성적도해요람(大巡聖跡圖解要覽)』을 발간하시면서 각 방면 선무당 1권씩 배부하여 도설(圖說)의 통일을 기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계해(1983)년 6월 16일에 《대순회보》 창간호를 종무원 교무부에서 편집하고 대순진리회 출판부에서 발행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너희는 나의 말을 바르게 인식하고 실천하여 생활화되도록 하라.”고 당부하신 훈시(訓示)의 대지(大志)를 받들어 교무부에서 1980년 1월부터 1984년 3월까지 도인들에게 내리신 분부의 요의(要義)를 정리하여 갑자(1984)년 3월 25일에 『대순지침(大巡指針)』을 발간하였습니다.
    도전님께서는 교무부 산하에 연구기관으로 연구위원회와 연구소를 두셨는데, 임술(1982)년 4월 2일에 서울대 장병길 교수를 소장으로 하여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에 대순종교문화연구소를 개설하시고, 을축(1985)년 7월 30일에는 교무부 내에 연구위원회를 발족하셨습니다.
    도전님께서는 대순진리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시기 위하여 영화제작에도 관심을 기울이셨습니다. 경신(1980)년에 영화감독 김태원에게 명하시어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를 세상에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영화를 제작하도록 분부하셨습니다. 김태원은 감독 강대진, 상제님 역에 전운, 도주님 역에 이순재 등을 섭외하고 영화 제작을 총지휘하여 1980년 12월부터 시나리오를 작성하여 제작기간 4년만인 1984년 11월 17일에 영화 ‘화평의 길’을 아세아극장에서 개봉하여 21일 동안 상영하고, 대구 만경관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상영하였습니다.
    도전님께서는 도인들의 교화육성을 위하여 수강과 연수를 실행하셨습니다. 경신(1980)년 6월 30일에 제1기 수강이 개강되었는데, 24명을 한 반으로 2박 3일간 진행되었습니다. 병인(1986)년 여주본부도장을 지으시고 10월 25일에 여주 수강원에서 수강을 실시하셨습니다. 기사(1989)년 9월 7일부터 제주수련도장에서 120명의 도인을 1개 반으로 하여 5박 6일 일정으로 연수를 시행하셨고, 을해(1995)년부터 금강산토성수련도장에서 5박 6일간 연수가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도주님께서 설정하신 삼계(三界)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진법(眞法)인 시학ㆍ시법공부를 도전님께서 실제로 실행하시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은 도전님께서 도주님의 진법을 계승하신 천부적인 종통의 계승자이심을 증명하는 확고한 증표입니다.
    도전님께서는 갑인(1974)…
  • Q.

    전경의 구성과 내용을 설명해 주세요.

    『전경(典經)』은 대순진리회 신앙의 대상이신 상제님의 행적, 말씀, 가르침을 기록한 성스러운 경전입니다. 『대순지침』에 따르면 “대순진리는 『전경』을 근본으로 하여 참다운 도인이 되도록 교화하여야 한다.” 1) 라고 하여,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흔히 ‘경전(經典)’이라고 하면 단순한 책 이상의 특별한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신앙인들 사이에서 신성시됩니다. 이처럼 경전은 신앙생활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므로 『전경』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합니다.

    신미(1871)년 9월 19일에 인신(人身)으로 강세(降世)하신 상제님께서는 39년간에 걸친 설법(說法)과 설유(說諭)로써 종도들을 깨우치셨으며, 수많은 기행(奇行)과 이적(異蹟)을 보여주셨습니다. 상제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한 기록과 정리는 상제님을 따르던 종도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대해 도전님께서는 우리 대순진리회의 『전경』은 구천상제님의 천하 대순으로 9년간 천지공사하신 공사기(公事記)로서 도주님께서 봉천명(奉天命) 9년 만에 상제님의 계시를 받으시고 회국(回國)하신 후 상제님의 공사에 시종(侍從)하여 온 종도들로부터 수록하셨던 기록에 의하여 성편(成篇)된 것임을 밝혀주셨습니다. 2)

    이처럼 『전경』은 상제님을 따르던 종도들이 수집한 기록들을 토대로 편찬된 것입니다. 구체적인 작업은 1958년 도주님으로부터 종통을 계승하신 도전님께서 기유(1969)년 4월에 전반적인 기구를 개편하시고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시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결과 1974년 4월 1일에 대순진리회 교무부에서 『전경』 초판을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교정과정을 거쳐 2010년에 13판을 발행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전경』의 구성은 행록, 공사, 교운, 교법, 권지, 제생, 예시로 총 7편 17장 837절로 이루어져 있고, 각 편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행록편(行錄篇)
    행록편은 총 5장 223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강세하신 강증산 성사께서 구천상제님으로서 행한 말씀과 행적들을 연대기적인 기록을 엮은 것입니다. 여기에는 상제님의 강세로부터 유년시절, 청년시절, 주유천하(周遊天下)와 천지공사(天地公事), 그리고 화천(化天)에 이르기까지의 행적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인 특징은 유년시절의 기행 이적과 동학, 의병운동, 러일전쟁 등 19세기말 조선사회의 격동기를 이룬 시대적 상황, 종도들과의 만남 그리고 사례별 교화를 두루 다루고 있습니다.

    공사편(公事篇)
    공사편은 총 3장 106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서는 상제님의 대역사에 해당하는 천지공사 9년간의 기록을 다루고 있습니다. 천지공사는 크게 범주별로 천계공사(天界公事), 지계공사(地界公事), 인계공사(人界公事)로 분류될 수 있는데, 이는 모두 천ㆍ지ㆍ인 삼계를 개벽하기 위한 공사입니다. 『전경』에는 이와 같은 공사에 해당하는 내용을 모아서 종도들의 증언과 함께 고루 소개하고 있습니다. 시기별 구분은 명확하지 않으며, 다만 공사에 관한 기록을 전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편과 구분되고 있습니다.

    교운편(敎運篇)
    교운편은 총 2장 132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상제님께서 선포하신 대순진리의 이념을 포함하여 그 가치실현을 위한 종통계승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상제님의 진리는 도주님에 이르러 체계화되고, 이것이 계승되어 오늘날의 대순진리회를 이루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제1장에는 상제님의 진리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전해지는가를 다루고 있으며, 2장에서는 상제님의 종통을 계승한 도주님의 생애와 도전님의 종통계승이 주 내용입니다.

    교법편(敎法篇)
    교법편은 총 3장 173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수도와 신앙생활의 규범이 될 만한 내용을 중심으로 상제님께서 남기신 가르침들을 모아서 전하고 있습니다. 수도인으로서의 마음자세, 실천방법, 믿음의 문제, 대사회적인 문제, 윤리도덕의 문제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교법(敎法)은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설법 또는 설교에 해당합니다. 도덕적 사항과 종교적인 계율에 대한 말씀의 기록이고, 수도생활의 길잡이입니다.

    권지편(權智篇)
    권지편은 총 2장 71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서는 상제님께서 재세(在世) 시에 지녔던 초월적 권능(權能)과 예지(叡智)를 다루고 있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약 40년간 인세에 머무시면서 신통자재(神通自在)로 구애됨이 없이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한 인간의 몸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상제님으로서 행하신 권능과 지혜는 이미 범인(凡人)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의 고난을 해결하고 뭇 소원을 이루어줌으로써 상제님께서 지닌 절대능력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켰습니다. 이로써 상제님에 대한 신앙을 발생시키고 많은 사람이 상제님을 추종하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상제님의 주요 권능으로는 자연의 조화를 마음대로 하시며, 인간의 수명을 주관하고 모든 신명을 다스리는 것 등이 있습니다. 또한 예지력으로는 과거ㆍ현재ㆍ미래에 통달하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것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권지(權智)는 종교적 기적입니다. 기적은 이성적 지식이 미치지 못하는 신비한 영역입니다.

    제생편(濟生篇)
    제생편은 총 1장 44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서는 상제님께서 재세 시에 행하신 수많은 민생구제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천하창생을 구제하고 후천선경을 여시고자 9년간의 천지공사를 단행하시며, 고통 받는 생민의 고난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수많은 방편과 설법으로써 불치병을 치료하고 민생들이 소망하는 바를 모두 이루어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이러한 상제님의 행적을 쫓아서 그 전해오는 사실들을 제생편에 기록하고 있으며, 상제님께서 만인의 추앙을 받게 된 역사적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예시편(豫示篇)
    예시편은 총 1장 88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서는 상제님께서 재세 시에 행하신 천지공사의 기록에 입각하여 앞으로 펼쳐지는 후천선경의 미래상을 살필 수 있는 대목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천지공사에는 상제님께서 지니신 절대권능으로 인류와 천하창생이 맞이하게 되는 희망찬 미래를 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인류사회는 세계문명과 자연환경, 우주와 신명 세계에 있어서 해원상생이 지배하는 도화낙원(道化樂園)이 주어지게 됩니다. 예시편은 바로 그 구체적인 실상과 변화의 과정을 상세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전경』의 구성과 주요 내용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전경』의 각 편은 저마다의 고유한 사실과 교훈, 그리고 신앙의 근거가 되는 내용을 전체적으로 함축하고 있습니다. 『전경』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경전적 가치와 신앙체계의 주요한 축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도인은 언제나 『전경』을 수지(受持) 봉독(奉讀)하는 것에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도전님께서 『전경』을 100번 읽으라고 하신 말씀을 상기시켜 봅니다.

    대순진리회는 민족종교라고 합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배타적 민족주의적 종교와는 확연히 구분하여야 합니다. 배타적 민족주의적 종교는 ‘민족’을 ‘종교’보다 우선시하는 자민족 중심적이며 타 종교나 타 민족, 또는 타 집단에 대해 배타적 성향을 드러냅니다. 대순사상이 이러한 배타적 민족주의적 종교로 왜곡ㆍ축소된다면 세계적 보편종교로 발전하는데 있어서 큰 장애가 될 것입니다. 세계적 종교 특성은 민족종교를 바탕으로 발생하였지만, 민족의 차이를 초월하고 세계 인류를 똑같이 구제한다는 방침에 입각한 종교입니다. 대순사상은 목적에 있어서 지상신선실현(地上神仙實現)이라고 하는 개인의 인간완성을 지향함과 동시에 지상천국건설(地上天國建設)이라고 하는 세계적 이상(理想)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민족주체성과 구국제민(救國濟民)의 창도이념을 지닌 대순진리회는 민족종교이면서도 상제님의 광구천하(匡救天下)의 뜻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인류평화사상을 담고 있는 세계적 종교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학』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처럼 천하를 경영하기 위해서는 ‘수신제가치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따라서 상제님의 광구천하를 통한 지상천국 건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민족주체성 계도를 통한 국리민복(國利民福)에 먼저 이바지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도전님께서는 “도주님의 구국제민의 창도이념을 명심하여야 한다.” 1) 하시며 “본도는 민족종교이니 민족주체성 계도에 앞장서야 한다.” 2) 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대순진리회가 지니고 있는 한국적인 특성과 세계 종교적 특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한국적인 특성은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먼저 대순진리회는 한국 땅에서 발생한 자생종교라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신앙의 대상이신 상제님께서는 신미(1871)년 9월 19일에 현 전북 정읍군 덕천면 신월리 강씨가에서 인간의 모습을 빌어 강세하셨고,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에 감오득도하시고 종통계승의 계시(啓示)를 받으신 도주님께서는 을미(1895)년 12월 4일에 경남 함안군 칠서면 회문리에서 탄강하셨으며, 도주님으로부터 유명(遺命)에 의해 종통을 계승하신 도전님께서는 충북 괴산군 장연면 방곡리에서 정사(1917)년 11월 30일에 탄강하셨습니다. 신앙의 대상이신 상제님, 창도주이신 도주님, 영도자이신 도전님께서 모두 한국 땅에 오시어 이 땅에서 먼저 도를 펼치셨습니다.

    두 번째, 대순진리회는 신명대접을 잘 하는 민족의 고유한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조선과 같이 신명을 잘 대접하는 곳이 이 세상에 없도다. 신명들이 그 은혜를 갚고자 제각기 소원에 따라 부족함이 없이 받들어 줄 것이므로 도인들은 천하사에만 아무 거리낌 없이 종사하게 되리라.”(교법 3장 22절)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민족은 세계 그 어느 민족보다 신명대접을 잘해 왔기 때문에 천지신명들이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받들어 대접한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또한 “서교는 신명의 박대가 심하니 감히 성공하지 못하리라.”(교법 1장 66절)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제사를 통해 조상을 잘 모셔왔습니다. 매년 명절 때마다 조상 선령께 차례를 올리는 제례는 뿌리와 근본을 잊지 않으려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심성을 잘 나타내줍니다. 제사는 신명을 대접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예(禮)입니다. 그래서 대순진리회는 치성의례을 통해 양위상제님과 천지신명 그리고 조상님을 극진히 모시고 있습니다. 우리 종단에서 매월 양위상제님과 천지신명 전에 올리는 치성의례는 우리 민족의 보본(報本)의 민족정서와 서로 상통하는 부분입니다.
    대순진리회의 세계적 종교 특성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먼저, 대순진리회는 상제님께서 펼치신 해원상생 대도(大道)의 진리가 사상적인 면에서 전 우주적이고 전 세계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상제님께서 보이신 이 땅 한국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조선이 예로부터 신명대접을 극진히 잘하는 곳일 뿐 아니라, 참화 중에 묻힌 무명의 약소민족을 먼저 도와서 만고에 쌓인 원을 풀어 주려 함이라고 말씀하신 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3)

    그리고 상제님께서 “내가 보는 일이 한 나라의 일에만 그치면 쉬울 것이로되 천하의 일이므로 시일이 많이 경과 하노라”(교법 3장 7절)고 말씀하셨듯이 우리 대순진리회는 분명히 민족종교를 넘어 세계적 종교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만국 활계 남조선(萬國活計南朝鮮) 청풍 명월 금산사(淸風明月金山寺) 문명 개화 삼천국(文明開花三千國) 도술 운통 구만리(道術運通九萬里)”(예시 14절)라 하신 것도 천하만국을 다 잘 되게 하는 계획이 남조선에서 시작되나 그 후천개벽은 남조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삼천국, 구만리에 퍼져나간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대순진리회가 세계적 종교 특성을 갖는 것은 둘째로 대순진리회의 최종 목적이 세계개벽ㆍ지상천국 건설이라는 데 있습니다. 세계개벽은 인류평화사상으로서 민족적ㆍ지리적ㆍ사상적 경계를 초월하여 전체 인류가 화평한 세상을 만들자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삼계가 개벽되지 아니함은 선천에서 상극이 인간지사를 지배하였으므로 원한이 세상에 쌓이고 따라서 천ㆍ지ㆍ인(天地人) 삼계가 서로 통하지 못하여 이 세상에 참혹한 재화가 생겼나니라.”(예시 8절)고 말씀하시며, 삼계(三界)가 개벽되지 않은 이유와 원인에 대해서 밝히셨습니다. 따라서 세계개벽공사는 단순히 인간세계의 병폐와 모순을 개혁하려는 차원을 넘어 천ㆍ지ㆍ인(天地人)의 상극적인 요소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 바로 잡는 전 우주적인 차원입니다. 이 공사는 다른 종교나 사상을 모방하거나 계승한 것이 아니며, 과거나 현재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상천국을 건설하기 위한 세계개벽공사는 다른 종교와 사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행해졌습니다. 따라서 이 목적 자체가 민족종교를 넘은 세계적 종교 특성인 것입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순진리회는 가장 한국적인 민족종교이면서 가장 세계적 종교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순사상은 편협한 배타적 민족주의나 고루한 국수주의가 아니라 세계창생의 행복과 만국활계를 생각하며 이질적인 문화문명을 통일하려는 전 인류의 평화사상인 것입니다.

    1)『대순지침』, p.25.
    2) 상동.
    3) 권지 1장 11절 참조.

  • Q.

    도장은 어떤 곳인가요?

    도전님께서 1969년에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시고 서울 광진구(옛 성동구) 중곡동에 중앙본부도장을 창건하셨습니다. 이는 상제님의 대순하신 유지(遺志)와 도주님의 유법(遺法)을 숭신하여 인간개조 정신개벽으로 포덕천하 구제창생 지상천국 건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1)

    먼저 도장(道場)을 보면, 중곡도장을 시작으로 여주수도장(1986년 준공), 제주수련도장(1989년 준공), 포천수도장(1992년 준공), 금강산 토성수련도장(1996 준공)이 지어졌습니다. 특히 여주수도장은 1990년에 현본전(現本殿)인 영대(靈臺) 그리고 시학원ㆍ시법원ㆍ정심원ㆍ내정이 새로 지어져 준공되었고, 1993년 2월에 종단본부가 중곡도장에서 여주수도장으로 이전되어 이후로는 여주본부도장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도전님께서 “도장(道場)은 늘 정결(淨潔)하고 신성(神聖)한 곳입니다. 양위 상제님을 봉안하고 천지신명(天地神明)이 가득한 신성한 성지(聖地)입니다.”2)라고 하셨습니다. 특히 영대를 보면, 대순진리회 신앙의 대상이신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님, 조성옥황상제님, 서가여래, 명부시왕, 오악산왕, 사해용왕, 사시토왕, 관성제군, 칠성대제, 직선조, 외선조, 칠성사자, 우직사자, 좌직사자, 명부사자, 진법주(眞法呪)의 15신위 그리고 48장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 이외에도 도장에는 28수(宿)와 24절후(節侯)를 비롯하여 많은 천지신명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러한 도장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예의(禮儀)와 관련하여 도전님께서는 “숭도문(崇道門) 안을 정내(庭內)라 하고 그 안에 들어서면서 본전(本殿)을 향해 읍배(揖拜)를 올린다. 영대 앞을 본정(本庭)이라 이르며 본정에서는 최경(最敬)의 예로써 진퇴에 지성지경(至誠至敬)을 다하여야 한다.”3)라고 훈시하셨습니다.
    대순진리회는 여러 곳에 도장이 있지만, 특히 여주본부도장은 도인의 생명보다 소중한 시학ㆍ시법공부가 돌아가고 있고, 매월(每月) 대행사(大行事)로 본부성(本部誠)이 있습니다. 시학공부는 1991년 6월 21일에 처음 시작되었고, 시법공부는 1991년 9월 19일에 처음 시작된 이래로 지금까지 1분 1초도 쉼이 없이 계속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학ㆍ시법공부가 진법으로 ‘참 진’의 진법(眞法)이요, ‘진칠 진’의 진법(陳法)으로 ‘자리공부’라고 합니다. 이 공부의 영향이 군생만물에 미치며, 우리의 도통과 앞으로 후천 5만년 지상천국의 천지도수가 이 공부에 달려 있어 생명보다도 중요하다고 도전님께서 누차 강조하셨습니다. 그 옛날 천존(天尊)시대인 태호복희 때에는 신봉어천(神封於天)하여 신명이 하늘에 봉해졌고, 이후 지존(地尊)시대인 문왕(文王) 시절에는 신봉어지(神封於地)하여 신명이 땅에 봉해졌으며, 지금은 인존(人尊)시대로 신명이 도장에 모셔져 있고 신봉어인(神封於人)으로 신명이 인간에게 봉해지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여주본부도장은 매월(每月) 본부성(本部誠) 날의 행사가 있습니다. 이 날은 모든 상급 임원이 맡고 있는 도인들의 성(誠)을 모셔 도장으로 옵니다. 본부성 날 유시(酉時: 오후 5시)에 모든 상급 임원이 영대에 올라가 상제님께 상고(上告)하는데 이를 성일(誠日)의 참배라 합니다. 또 대부분의 치성이 여주본부도장에서 거행되고, 교직자를 교육하는 수강(受講)과 도장수호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수도에서 도장의 신성성과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도장은 보금자리로 마치 상제님의 품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도인은 이 속에 담긴 의미를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도전님께서 “상제님의 덕화(德化)에 힘입어 마음과 몸을 깨끗하고 맑고 밝게 하라.”4) 하셨습니다. 상제님의 덕화로 우리의 마음과 몸이 깨끗하고 맑고 밝게 됨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도인은 도장을 자주 와야 합니다. 도전님께서 방면의 임원들에게 ‘참배사업’이라 하시며 도장참배를 많이 하라고 강조하신 것도 이 때문입니다.

    참배란 도인들이 수도생활 중에 도장으로 직접 찾아가 영대배례를 통해 신앙의 대상께 인사드리는 것을 뜻합니다. 참배의 의의는 도인들이 수도생활 중에 도장에 와서 상제님께 봉심을 올림으로써 신심(信心)을 고취하고, 상제님께서 대순하신 진리의 유지(遺志)와 도주님의 유법(遺法), 도전님의 유훈(遺訓)을 가슴깊이 새겨 지상천국 건설과 자신의 완성을 위해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는 계기로 삼기 위함입니다.
    참배의 중요성은 첫째, 도장은 상제님과 천지신명이 모셔진 곳으로 상제님의 공사를 받드는 도인이라면 누구나 영대배례를 통하여 직접 인사를 드리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는 데 있습니다. 둘째, 도장은 늘 신성하고 정결한 곳으로 나의 도심과 신심을 돈독하게 하고, 수도 중 풀어지거나 나태해진 마음을 새로이 쇄신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며, 무엇보다 세상 사람들을 구제하는 사업(事業)을 위해 많은 기운을 모실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셋째, 입도한 초심자에게는 도장의 건물과 벽화를 통하여 도의 이치를 깨우쳐 줄 수 있고, 대순진리회의 종통을 바르게 이해시켜 신앙심을 제고하는 계기가 된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도인은 올바른 수도생활과 사업을 위해서는 자주 참배를 하여야 합니다.
    도장은 양위 상제님과 천지신명을 모신 신성하고 정결한 곳으로, 장차 이곳에서 우리는 도통을 받고 운수를 받게 됩니다. 도전님께서 “도인들은 항상 어디서나 신명의 수찰이 있음을 명심하고 속임과 거짓이 없이 도인의 본분을 바로 지켜야 한다.”5)라고 하셨습니다. 특히 도장에서는 더욱 마음가짐을 정결히 하고 몸을 바르게 해야겠습니다. 우리 도는 신도(神道)로서 신명으로부터 공판과 운수를 받는다는 것과 항상 신명이 나의 마음에 먹줄을 겨누고 있다는 것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끝으로 우리는 도장의 소중함을 늘 간직하고 도전님의 그 은덕(恩德)을 잠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에 보답하는 길은 우리 모든 도문소자가 나의 마음가짐, 행동, 걸음걸이까지도 상제님과 천지신명이 환하게 보고 계심을 생각하고 느껴 심신을 깨끗이 함으로써 오직 참된 도문소자가 됨에 있음을 명심하고 또 명심하여야겠습니다.

    1)『대순진리회요람』, p.6 참조.
    2)《대순회보》 35호,「도전님 훈시」
    3)『대순지침』, pp.83~84.
    4)『대순지침』, p.81.
    5)『대순지침』, p.39.

  • Q.

    체계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이 도를 닦는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상제님께서 이 세상을 “망기부자무도(忘其父者無道), 망기군자무도(忘其君者無道), 망기사자무도(忘其師者無道), 세무충(世無忠) 세무효(世無孝) 세무열(世無烈) 시고천하개병(是故天下皆病)” 1)이라고 진단하셨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도전님께서는 “세상에 삼강오륜이 없어짐으로 인해 천하가 다 병들었다 하셨고, 이 병을 고치시려고 상제님께서 오셨으며, 이 병을 고침으로써 도통(道通)도 있고 우리의 대운(大運)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2)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천하개병의 세상을 고칠 수 있는 진리가 바로 무극대운(無極大運)의 해원상생(解冤相生) 대도(大道)입니다. 이 해원상생 대도는 천ㆍ지ㆍ인 삼계(三界)를 화평하고 평화롭게 하는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진리입니다. 이 대도로 상통천문(上通天文)과 하달지리(下達地理) 뿐만 아니라 중찰인사(中察人事)까지 하여 천ㆍ지ㆍ인이 하나로 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천에는 상통천문 하달지리하기 위하여 길성(吉星)이 비치는 장소나 명당을 찾아서 심산유곡에서 수도하였지만, 우리 대도는 중찰인사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산속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 즉 사회적 인간관계 속에서 인사도리를 하며 도를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일러 인(人) 중(中) 수도라고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가정생활, 사회생활이 있고, 수도인에게는 여기에 수도생활이 더 들어갑니다. 그리고 수도인에게 있어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은 수도생활의 연장이지 서로 분리되는 게 아닙니다. 인간의 생활은 인륜을 근본으로 이루어지나, 우리의 수도생활은 일정한 조직체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대순진리회의 연원(淵源)과 연운(緣運)에 근거한 조직체계입니다. 대순진리회는 구천상제님ㆍ도주님ㆍ도전님의 세 분을 연원이라고 합니다. 이 연원을 따라 형성된 인간 간의 관계를 연운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연운의 체계는 조직체제로서 포덕한 업적에 따라 형성됩니다. 이 체계는 상급임원인 선감ㆍ교감ㆍ보정, 중간임원인 차선감ㆍ교령ㆍ정무, 선사ㆍ교정ㆍ정리, 선무ㆍ교무 및 일반 도인으로 구성됩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포정원(布政院)에는 선정부(宣正部)ㆍ교정부(敎正部)가 있어, 선정부에는 선감ㆍ차선감ㆍ선사ㆍ선무가 있고 교정부에 교감ㆍ교령ㆍ교정ㆍ교무가 있습니다. 또, 정원(正院)에는 보정ㆍ정무ㆍ정리가 있습니다. 각 부서에서 하는 일을 보면 선정부는 포덕 업무를 관장하고, 교정부는 선정부가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보좌하고 지도감독하며 교화를 관장하고, 정원은 모든 도인이 도법에 어긋나지 않도록 바르게 지도육성(指導育成)하는 것입니다. 각 부처가 하는 일이 다르다 해도 포덕하여 올바른 도인으로 육성하기 위한 목적은 동일합니다. 이 목적이 같기 때문에 각 부서는 서로 합심하여 한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임원 상호 간의 융화(融和)는 물론이고, 모든 도인이 한마음 한뜻이 됨이 그 요체이자 핵심입니다.

    우리 대순진리회는 해원상생의 진리에 의한 종교적 법리가 포덕ㆍ교화ㆍ수도 공부로 이를 기본사업(基本事業)이라고 합니다. 이 사업을 통해 모든 인류를 정신개벽(精神開闢)ㆍ인간개조(人間改造)하여 이 세상에 인륜과 도덕을 바로 세우고, 동시에 ‘완전한 인격’의 소유자로 가르쳐 나가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인간이 누구나 소원하는 인도가 있다. 임금이 되기를 원하나 누구나 임금이 될 수 없고, 어버이가 되기를 원하나 누구나 어버이가 될 수 없고, 스승이 되기를 원하나 누구나 스승이 될 수는 없다. 임금은 있으나 신하가 없으면 그 임금이 어디에 설 것이며, 아버지는 있으나 자식이 없으면 그 아버지가 설 곳이 어디 있으며, 스승은 있으나 배울 제자가 없으면 그 스승이 설 곳이 어디 있으리요.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천지의 귀와 신이 굽어 살피고 있다(所願人道 願君不君 願父不父 願師不師 有君無臣其君何立 有父無子其不何立 有師無學其師何立 大大細細天地鬼神垂察).” 3) 라고 하셨습니다. 이 상하ㆍ상호 간의 체계질서로 서로 인륜과 도덕을 배우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가정이나 직장 등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게 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 도의 수칙(守則)에는 “삼강오륜은 음양합덕 만유조화 차제도덕의 근원이라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며 부부 화목하여 평화로운 가정을 이룰 것이며 존장을 경례로써 섬기고 수하를 애휼(愛恤) 지도(指導)하고 친우 간에 신의로써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체계질서에서 상하ㆍ상호 간에 막힘과 걸림이 없어야 하고 그 관계는 자모지정(慈母之情)이어야 합니다. 이 체계질서로 인해 우리 종단이 유지되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체계는 사심(私心)이 아닌 도심(道心)으로써 바로 확립되어야 하고 도심은 위ㆍ아래의 도인들이 서로 믿으며 변하지 않고 신뢰하는 데 있습니다. 체계 확립의 요체는 믿음으로 만약에 서로 간에 불신과 의심이 있다면 대화로써 풀고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서로가 자모지정(慈母之情)과 은사지의(恩師之義)의 심정으로 마음이 통하고 인정과 관용심으로 융화단결하고 자기의 직분을 바르고 성실하게 하여 체계질서를 바르게 세우는 데서 완전한 도인이 되어 갑니다. 상하ㆍ상호 간에 서로 고마워하고 아낀다면 설령 누가 끼어들어 체계질서를 깨뜨리려고 해도 깰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서로가 은의를 망각하고 혈기의 충동으로 대립하면 이는 상극을 자초(自招)하는 것으로 상제님의 뜻과는 어긋나게 됩니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어찌 운수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체계질서를 통하여 운수도 받고 도통도 하는 것이므로 체계질서를 잘 지켜나가는 것이 바로 도를 잘 닦는 것입니다.

    도전님께서는 체계질서의 확립에 대해 체계질서는 상하의 은의(恩義)로써 세우고, 예(禮)로써 지키며, 덕화(德化)로써 유지하고, 대순진리를 바르게 알고 가르쳐 정립(定立)해 나가라고 하셨습니다.4)
    임원들은 아래 도인들이 잘 따라주는 것이 고맙고, 아래 도인들은 임원이 잘 가르쳐 주는 것을 고맙게 여기면 이것이 바로 해원상생의 원리입니다. 이렇게 될 때 모두가 화합단결하여 일심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특히 선감ㆍ교감ㆍ보정의 상급 임원은 화합해야만 아래 도인들을 완전한 도인으로 가르칠 수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불화가 있다면 이는 해원상생에 어긋나고 완전한 도인으로 만들지 못 할 것입니다.

    화합은 해원상생ㆍ보은상생 대도의 이치를 깊이 깨닫고 힘써 실천할 때 가능합니다. 모든 수도인이 공감하는 바와 같이 실제로 화합을 이루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화합단결의 소중함을 명심하고 실천하여, 몸과 마음에 배게 하여야 합니다. 이 화합단결은 반드시 체계질서 속에서 이루어져 밀가루 반죽처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해원상생의 진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대순(大巡)은 막힘이 없고 걸림도 없이 둥근 것입니다. 둥글다는 것은 무극이고 근본자리요 걸릴 것 없이 통하는 것입니다. 서로 상통하고 화합하여 하나로 뭉쳐 올바른 사람, 완전한 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완전한 도인이 되면 원래의 천성과 본성으로 돌아가 인간의 양심을 찾게 됩니다. 여기에는 욕심도 사심도 없으며 유리알같이 깨끗하고 맑은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도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으로 이는 체계질서를 바르게 세워 수도해야만 이룰 수 있음을 명심하여야 하겠습니다.

    1) 행록 5장 38절.
    2)《대순회보》12호, ⌜도전님 훈시」.
    3) 공사 1장 40절.
    4)『대순지침』, p.65~71 참조.

  • Q.

    언덕을 잘 가져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세요.

    언덕을 잘 가져야 한다는 데 대해 『대순진리회요람』에서는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습니다. “말은 마음의 소리요 덕(德)은 도심(道心)의 자취라. 나의 선악(善惡)은 말에 의하여 남에게 표현되는 것이니, 남에게 말을 선(善)하게 하면 남 잘 되는 여음(餘蔭)이 밀려서 점점 큰 복(福)이 되어 내 몸에 이르고, 말을 악(惡)하게 하면 남 해치는 여앙(餘殃)이 밀려 점점 큰 재앙이 되어 내 몸에 이른다. 화(禍)와 복(福)은 언제나 언덕(言德)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이니 언덕(言德)을 특별히 삼가하라.” 1)

    언덕(言德)이란 ‘말의 덕’이라는 뜻으로, 구체적으로는 상제님께서 “악장제거 무비초 호취간래 총시화(惡將除去無非草 好取看來總是花) 2)
    라. 말은 마음의 외침이고 행실은 마음의 자취로다. 남을 잘 말하면 덕이 되어 잘 되고 그 남은 덕이 밀려서 점점 큰 복이 되어 내 몸에 이르나 남을 헐뜯는 말은 그에게 해가 되고 남은 해가 밀려서 점점 큰 화가 되어 내 몸에 이르나니라.”(교법 1장 11절), “뱀도 인망(人望)을 얻어야 용이 되나니 남에게 말을 좋게 하면 덕이 되나니라.”(교법 1장 26절), “어디서 무슨 부족한 일을 보고 당하여도 큰일에 낭패될 일만 아니면 항상 남을 좋게 말하기를 힘쓰라.”(권지 2장 24절)고 말씀하신 것처럼, 남을 좋게 말하여 주는 것입니다. 이는 남이 잘 되도록 말로써 덕을 베풀어주라는 말의 분명한 사용 목적을 포함하고 있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상제님께서 “금산사(金山寺) 미륵전(彌勒殿) 육장금신(六丈金神)은 여의주를 손에 받았으되 나는 입에 물었노라”(행록 2장 16절)고 하셨습니다. 용이 여의주를 물고 천지조화를 부리듯이 사람에게 있어서 말은 곧 여의주(如意呪)입니다. 옛말에 “말이 씨가 된다.” 하였듯이 뿌려진 말씨는 반드시 자라서 그 결실을 맺습니다. 말씨는 인격의 꽃입니다. “길화개길실(吉花開吉實)하고 흉화개흉실(凶花開凶實)”(행록 5장 38절)이라 하셨듯, 상서로운 꽃은 좋은 열매를 맺고 흉한 꽃은 그 열매도 흉한 법입니다. 가령 덕 있는 말은 서로가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게 하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사람들에게 언제나 활력 있는 생기를 불어 넣어주기도 합니다. 거친 말은 반항과 좌절을 부르고, 부주의한 말은 시비(是非)를 유발하며, 잔인한 말은 일생을 망치게 하고, 모진 말은 미움을 유발하며, 폭언은 폭행을 부릅니다.

    이렇듯 말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대단한 힘을 가진 도구이자, 말의 힘을 빌리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기에 일상생활에서 언제나 언행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말할 때는 말에 덕을 붙여 사용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값없이 하는 말이라고 험악하게 하지 말고 언덕을 잘 가질 때 서로에게 복(福)이 됩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은 말의 힘을 보여주는 만고의 진리입니다.

    좋은 말에는 좋은 파장이 나오고 나쁜 말에서는 좋지 않은 파장이 나옵니다. 현대 물리학이 밝힌 바와 같이 모든 만물은 본질에 있어서 파동입니다. 사람의 말은 강력한 파장을 일으키며 사람과 물질에 작용합니다. 여기 사람의 말에 따라 사물이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데 대한 좋은 실례가 있습니다.
    일본의 과학자 에모토 마사루(江本勝, 1943~2014)박사는 사람의 말과 생각, 문자, 음악에 반응하는 물의 결정사진을 찍어 세상에 발표함으로써 인류의 영적 의식 성장에 큰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그의 저서에서 물의 결정구조가 사람들의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생각과 언어에 특정하게 반응함으로써 물이 의식을 가진 존재처럼 행동한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긍정적인 기운을 받은 물은 아름다운 결정모양을 나타내고 부정적인 기운을 받은 물은 결정구조가 깨지고 흉한 모습을 나타내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하는 말과 생각이 주변 사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데 대한 결정적인 단서입니다.
    모든 존재는 파동으로 존재하는 만큼, 이 세상 만물은 인간의 생각과 말의 파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특히 사람의 인체는 70%가 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물이 언어와 생각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언어습관과 생각의 패턴을 긍정적으로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게 됩니다. 사람이 생각을 발하고 말을 하는 순간 그 사람의 신체를 이루는 물의 결정구조는 정확히 그것을 반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을 먼저 좋게 하지 않고서는 남을 좋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먼저 해치지 않고서는 남을 해치지 못합니다. 말하고 생각하는 순간 자신의 몸의 물이 먼저 반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링컨이 말한 “사람이 40세 이후의 관상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의 의미가 이 뜻입니다. 몸은 마음의 표현입니다.

    잘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예수의 모델을 찾아다닌 끝에 결혼을 앞두고 기쁨과 사랑에 빠진 한 청년을 발견하고 그를 예수의 모델로 선정하여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그로부터 10년 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배신자 유다의 초상을 그리기 위하여 일그러진 자화상의 어둡고 암울한 모습의 모델을 발견하고 그에게 모델이 되어 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그로부터 뜻밖의 사실을 듣게 됩니다. 자신이 그 옛날 예수의 모델을 했던 바로 그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이 이야기는 인간의 마음이 육체의 형상을 규정한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사랑에 빠진 아름다운 청년에서 일그러진 배신자의 모습으로 변한 그는 자신의 내면의 신성(神性)을 배신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항상 맑고 밝은 긍정적인 사고와 언어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주변 환경은 정확히 자기 자신의 의식수준을 반영하는 법입니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또 한 가지 사실은 말은 마음의 소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덕을 잘 가지기 위해서는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훈회’에서 언덕을 잘 가지기에 앞서 먼저 첫 번째로 ‘마음을 속이지 말라’, 즉 인간 본연의 순수한 양심을 회복할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말을 함에 있어서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진실성이 있어야 합니다. 진실로부터 우러나온 말은 힘이 있지만 거짓된 말은 모래 위에서 누각을 쌓는 것과 같아서 힘이 없습니다. 도전님께서는 “‘있는 말로 일을 꾸미면 천하가 부수려 해도 못 부술 것이요, 없는 말로 일을 꾸미면 부서질 때는 여지가 없나니라.’ 하셨으니 무자기(無自欺)를 뜻하심이다” 3)
    라고 하셨습니다. 거짓말로 일을 도모하면 일시적으로 성공이 있는 듯이 보여도 이내 무너지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상제님께서 “말함에 있어서 언제나 더듬거리기를 바라라.”(행록 3장 49절)고 하셨듯이 말할 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되 말을 하기에 앞서 한 번 더 생각하여 신중을 기하여야 합니다. 말은 한번 뱉으면 엎질러진 물과 같아서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인세를 살아가면서 남에게 베풀 수 있는 덕 중에 큰 것이 언덕을 잘 가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이를 잘 실천하면 말을 통해서 남을 잘 되게 하고자 하는 덕이 넘치는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될 것임이 분명합니다. 곧 사회 사람들에게 처음 만난 사이라도 오래된 친구처럼 편안하면서도 진실하게 한 마디 한 마디의 덕을 갖춘 말로써 대한다면 우리와 그들과의 관계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 수도인은 인간 세상의 처세에서 부드러움을 귀히 여기고 부디 언덕을 잘 가져야 하겠습니다.

    1)『대순진리회요람』, p.19.
    2) 나쁘게 생각하여 장차 제거하고자 하면 풀이 아닌 것이 없고 좋게 생각하여 취하고자 하면 모두가 꽃이니라.
    3)『대순지침』, p.24.

  • Q.

    일심(一心)을 가지기 위한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심(一心)을 가지기 위한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하기에 앞서 수도인은 왜 일심을 가져야 할까요? 『대순진리회요람』에는 신(信)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한 마음을 정(定)한 바엔 이익(利益)과 손해(損害)와 사(邪)와 정(正)과 편벽(偏辟)과 의지(依支)로써 바꾸어 고치고 변(變)하여 옮기며 어긋나 차이(差異)가 생기는 일이 없어야 하며 하나를 둘이라 않고 셋을 셋이라 않고 저것을 이것이라 않고 앞을 뒤라 안하며 만고(萬古)를 통(通)하되 사시(四時)와 주야(晝夜)의 어김이 없는 것과 같이 하고 만겁(萬劫)을 경과하되 강하(江河)와 산악(山岳)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이 하고 기약(期約)이 있어 이르는 것과 같이 하고 한도(限度)가 있어 정(定)한 것과 같이 하여 나아가고 또 나아가며 정성(精誠)하고 또 정성하여 기대(企待)한 바 목적(目的)에 도달(到達)케 하는 것을 신(信)이라 한다.

    신(信)은 두 마음을 품지 않고 한 마음으로 “나아가고 또 나아가며 정성하고 또 정성하여 기대한 바 목적에 도달케 하는 것”이며 이는 일심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상제님의 대순(大巡)하신 진리를 믿고 따르기로 했다면 그 마음에 흔들림이나 변함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상제님을 따르겠다고 결심했다면 이해타산이나 의심에 의해 마음이 동요되어서는 안 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진리를 지키려는 마음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는 『전경』 교법 3장 17절의 최풍헌의 고사에서 최풍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끝까지 그를 믿은 류훈장과 같은 마음가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경』에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길 “이것이 남조선 뱃길이니라. 혈식 천추 도덕 군자가 배를 몰고 전 명숙(全明淑)이 도사공이 되니라. 그 군자신(君子神)이 천추 혈식하여 만인의 추앙을 받음은 모두 일심에 있나니라. 그러므로 일심을 가진 자가 아니면 이 배를 타지 못하리라”(예시 50절)고 하셨듯이 일심은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인 도통을 이루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필요조건입니다.

    그러면 일심을 가지기 위한 노력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음의 흔들림이나 변심은 확고한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 이겨낼 수 있습니다. 도에 대한 믿음은 대순진리를 바르게 깨닫기 위해 노력해야만 흔들리지 않습니다. 진리를 바르게 깨닫기 위해서는 공부ㆍ기도/수련ㆍ교화ㆍ포덕ㆍ종단의 행사 및 공사 등을 받드는 일에 성ㆍ경ㆍ신을 다하여야 하며, 이런 과정에서 일심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수도의 목적인 도통(道通)을 이루기 위해서, 그리고 추진하는 일의 성공을 위해서 일심을 가져야 하지만 일심을 간직하는 것이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상제님께서도 “진실로 마음을 간직하기란 죽기보다 어려우니라.”(교법 2장 6절)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일심을 간직하기가 죽기보다도 어렵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일심을 갖기가 어려운 것이므로 우리는 마음을 닦는 수도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수심(修心)이 되고 연성(煉性)이 되어진 만큼 일심을 간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심을 간직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은 바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수도생활입니다. 일심을 간직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기도ㆍ수련입니다. 『전경』에 “오는 잠 적게 자고 태을주를 많이 외우라.”(교운 1장 60절)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공부는 잠 안자는 공부입니다. 오는 잠을 적게 자고 태을주를 많이 읽으면 정혼이 굳게 뭉치게 되므로 태을주의 주력(呪力)이 쌓이면 예전보다는 훨씬 일심을 간직하기 위한 마음의 힘을 얻기 쉬울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ㆍ수련의 본질은 늘 상제님께서 가까이 계시다는 영시(永侍)의 정신을 모아 단전에 연마하여 자나 깨나 잊지 않고 상제님께 정성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상제님을 성ㆍ경ㆍ신으로 받드는 일심입니다. 상제님을 모시는 정신을 기도ㆍ수련을 할 때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생활 속에서 움직일 때나, 정지할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起居動靜坐臥]에 늘 잊지 않고 생활하는 것이 기도를 모시는 올바른 정신입니다.
    우리 도에서 외수들은 도에서 하는 작업이 공부라고 하였습니다. 실로 외수들은 작업을 통하여 일심에 이르는 정신력을 배양할 수 있습니다.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일에서부터 망치로 못을 하나 박는 일에도 정신이 집중되어 심신(心身)의 일체를 이루지 못하면 능숙하게 일을 하지 못합니다. 작업을 오래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서툴지만 차츰 일에 익숙해지고 일에 익숙해지는 만큼 마음의 힘도 크게 길러지는 것입니다.

    일심을 간직하기 위한 노력은 포덕하는 과정을 통해서도 이루어집니다. 포덕에 대하여 도전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훈시하셨습니다. “우리의 수도는 포덕에서 시작됩니다. 포덕을 하기 위해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형태의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겪는 고통(苦痛)과 인내(忍耐)속에서 우리의 마음이 연성(煉性)이 되는 것입니다. 주문만을 많이 읽고 마음만을 닦는다고 소원(所願)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포덕을 통해 나 자신이 연성(煉性) 되고 연질(煉質)이 되어야 운수를 받게 되며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1)

    “그리고 포덕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신통일(精神通一)이 되어 영(靈)이 맑아져야 합니다. 자나 깨나 항상 한 마음 한뜻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도인의 포덕하는 정신입니다.” 2)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듯 포덕을 하기 위해서는 정신통일이 되어야 하므로 포덕하는 과정 역시 일심을 간직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 되는 것입니다.
    일심을 간직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교화 역시 중요합니다. 모든 기회를 통하여 교화를 듣고 대순진리에 대한 자각을 높이는 것이 일심을 간직하기 위한 전제조건입니다. 그리고 수도를 통하여 깨달은 바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 위하여 교화하는 것 또한 나의 일심을 제고하는 데 기여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는 수도에 힘쓰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교화에 힘쓰는 과정이 곧 일심을 간직하기 위한 노력이 될 것입니다.
    도전님께서는 “포덕ㆍ교화ㆍ수도 및 모든 일이 성ㆍ경ㆍ신을 떠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시며, “성ㆍ경ㆍ신으로 해원상생을 이루며 생사판단도 결정되는 것이다.” 3) 라고 하셨습니다. 일심을 간직하기 위한 노력 역시 성ㆍ경ㆍ신을 떠나서 달리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매 순간 어떤 일을 대하든 진심으로 성ㆍ경ㆍ신을 지극히 하는 것이 일심을 간직하기 위한 일상의 노력이라 하겠습니다.

    1)《대순회보》, 45호, 「도전님 훈시」
    2) 상동.
    3)『대순지침』, p.54.

  • Q.

    성ㆍ경ㆍ신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세요.

    우리 도(道)의 교리체계는 종지(宗旨), 신조(信條), 목적(目的)으로 구성됩니다. 그 중 신조는 신앙에 관한 진리를 실천적 방법으로 다루고 있으며 사강령(四綱領)과 삼요체(三要諦)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삼요체인 성(誠)․경(敬)․신(信)은 수도인의 생활에서 하나의 규범으로 받아들여지는 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전님께서는 성은 자신의 양심을 속임[欺心]이 없어야 하고 경은 예절을 바르게 행하는 것이며 신은 의심을 품지 말아야 한다고 하시고, 성․경․신으로 해원상생을 이루며 생사판단도 결정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이처럼 삼요체는 수행에서 반드시 이해하여야 하는 세 가지의 핵심 요결입니다.
    ‘성(誠)’이란 정성을 뜻합니다. 마음은 자신의 몸을 주관하며 전체를 통솔(統率) 이용하여서 몸을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은 오직 마음에 있습니다. 성은 항상 끊임없이 조밀하고 틈과 쉼이 없이 오직 부족함을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2) 도전님께서 “참된 정성이 있는 곳에 상제님의 하감(下鑑)하심이 있는 것이며, 천지신명의 보살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라고 하셨듯이 수도 생활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대순지침』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4)

    (가) 성(誠)은 사람의 정․기․신(精․氣․神)의 합일의 진성(眞誠)이다.
    (나) 천도의 운행이 차착(差錯)이 없으므로 남이 모름에 괘의치 말아야 한다.
    (다) 불일이이(不一以二)의 본심인 인선(仁善)의 자성(自誠)이 도성(道誠)의 정석(定石)이 되므로 성이 아니면 만물도 존재하지 못한다.
    (라) 전경에 “성을 지극히 하라”하셨으니 성의 소귀(所貴)함을 깨달아 봉행하여야 한다.
    (마) 성은 거짓이 없고 꾸밈이 없이 한결같이 상제님을 받드는 일이다.

    이를 통해 성의 의미를 살펴보면, 첫째 성은 거짓이 없고 꾸밈이 없이 한결같이 상제님을 받드는 일입니다. 이는 성의 보배로운 소중함을 깨달아 상제님을 지극히 받든다는 뜻입니다. 둘째, 성은 남이 모르는 곳에서도 극진하게 행하는 참된 정성입니다. 천도의 운행은 어그러져서 순서가 틀리고 앞뒤가 서로 맞지 아니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참된 정성은 만물을 존재하게 합니다. 특히 참된 정성은 상대방의 간여도 증감도 견제도 할 수 없고 오직 자신의 심정(心定)한 바에 따라 이루어지며, 정성으로 이루어 놓은 자신의 성탑(誠塔)은 상대방이 무너뜨린다 해서 무너지지 않고 신명 또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5)
    셋째, 성은 사람의 정․기․신(精․氣․神)의 합일의 진성(眞誠)입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 몸, 정신이 합일된 참된 정성을 뜻합니다. 수도 생활에서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정성이 중요하며 가면 가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결국 성이란 상제님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가식이 없는 참된 정성으로써 자신과 상대방에게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하는 것입니다.
    ‘경(敬)’이란 공경을 뜻합니다. 경은 심신(心身)의 움직임을 받아 일신상(一身上) 예의에 알맞게 행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6)
    여기서 경의 의미는 예의에 입각한 몸가짐을 가리킵니다. 곧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신명과 인간에게 예를 행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대순지침』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7)

    (가) 모든 일이 내심의 소정(所定)에 따라 몸으로 표현되는 법이다.
    (나) “사람은 누구나 마음을 먹는 대로 행동하게 되는데, 옳은 일도 마음에 두지 않으면 바로 행하지 못한다(有其心 則有之 無其心 則無之).” 하였으니, 도인들은 대월상제(對越上帝)의 영시(永侍)의 정신을 권권복응(拳拳服膺)하여야 한다.
    (다) 지성봉축(至誠奉祝)에 변함이 없고 양면이 없어야 경이라 하는 것이다.
    (라) 경은 예의범절을 갖추어 처신 처세하는 것이다.

    윗글에서 나타난 경의 의미를 살펴보면, 첫째, 경은 상제님에 대한 신앙을 바탕으로 공경하는 것입니다. 수도인이 항상 상제님을 가까이 영원토록 모시는 정신을 마음에 깊이 새겨 잊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둘째, 경은 신명과 인간에 대해 예의범절을 갖추어 처신 처세하는 것입니다. 예란 인간으로서 항상 정도를 넘는 일이 없이, 공경하는 마음으로 자기를 낮추고 상대방을 높여 주는 인도(人道)를 갖추는 일입니다. 8)
    여기서 예의 대상은 인간뿐만 아니라 신명까지도 포함합니다. 셋째, 경은 자신의 마음이 움직일 때 도리에 벗어나지 않도록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수도인이 언제나 몸가짐을 삼가고 조심해서 도리에 맞게 행동한다는 의미입니다. 신명의 수찰이 있어서 속임과 거짓이 없이 도인의 본분을 바로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경이란 상제님에 대한 공경을 중심으로 신명과 인간에게 적합한 예의를 갖추는 것입니다.
    ‘신(信)’이란 믿음을 뜻합니다. 신은 한마음을 정한 바엔 이익과 손해로써 바꾸어 고치는 일이 없어야 하며 사시(四時)와 주야(晝夜)의 어김이 없는 것과 같이하여 정성하여 기대한 바 목적에 도달케 하는 것입니다. 9)
    즉 신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도전님께서는 “무릇 성(誠)이라 하는 것은 정성을 뜻하며, 경(敬)이라 하는 것은 공경을 말함이며, 신(信)이라 하는 것은 믿음을 말하는 것으로, 믿음이 없으면 정성과 공경도 있을 수 없으며 안심(安心)ㆍ안신(安身)도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10) 라고 하시며 삼요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신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대순지침』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1)

    (가) 자각이 없으면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나) 전경에 “농부가 곡식 종자를 갈무리하여 두는 것은 토지를 믿는 까닭이라” 하셨으니 가식(假飾)이 없는 신앙의 본의(本意)에 위배됨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 백성이 국가를 믿지 않고 자식이 부모를 믿지 않는다면 난신적자(亂臣賊子)가 될 것이다.
    (라) 수도자가 믿음이 부실하면 결과적으로 난법난도자가 된다.
    (마) 일관성의 믿음을 사실화하여 삼계삼법(三界三法)의 성․경․신으로 자아대성(自我大成)을 위한 작업이 신(信)인 것이다.
    (바) 믿음은 의심 없는 굳은 신념인 것이다.

    위의 내용으로 신의 의미를 살펴보면, 첫째, 신은 상제님에 대한 신앙을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이는 상제님에 대한 믿음을 확실히 하여 신앙의 참된 뜻을 굳게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신은 상제님의 크신 뜻을 자각하여 대순진리를 굳게 믿는 마음입니다. 수도인이 천하창생을 살리려는 상제님의 크신 뜻을 깨달아 많은 사람에게 대순진리를 바르게 알리는 것입니다. 셋째, 신은 일관성의 믿음을 사실화하여 자신을 크게 이루기 위한 일입니다. 믿음이란 마음에 의심이 없는 굳은 신념을 말하며 의심이 없어야 막히는 것이 없게 됩니다. 이러한 믿음이 부실하면 난신적자와 난법난도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신이란 상제님에 대한 신앙을 확고히 하는 것을 기반으로 자기 일을 신망(信望), 신임(信任), 신의(信義)로써 해나가는 일입니다.
    삼요체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상제님에 대한 신앙이 전제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신은 상제님을 신앙하며 상제님의 말씀을 이루는 방법입니다. 『대순지침』에서 확인했듯이 삼요체는 한결같이 상제님을 받드는 일이고 상제님을 가까이 모시는 영시의 정신을 마음에 새겨 예의에 알맞게 행하는 것이며 신앙의 본의(本意)에 어김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뜻에서 성․경․신의 대상이 상제님을 시작으로 해서 천지 만물에 퍼져 나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농부가 땅에 씨를 뿌리는 것은 땅을 믿기 때문이며 가을이 올 줄 알기 때문인 것처럼 모든 일은 상제님에 대한 믿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12) 따라서 수도인은 항상 상제님을 받들고 마음에 변함이 없고 가식이 없는 진실한 성․경․신을 행해야 합니다.
    수도인의 복록(福祿)과 수명(壽命)은 삼요체에 달려있습니다. 성․경․신은 복록 수명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어서 복록과 수명은 모두 성․경․신을 얼마나 잘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13…

  • Q.

    종단에서 모시는 치성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의례(儀禮)는 의식과 예법으로 형식을 갖춘 예의(禮儀)입니다. 우리 도(道)의 의례는 신앙의 대상이신 상제님을 중심으로 천지신명께 행하는 종교의례입니다. 이러한 의례의 효시(嚆矢)는 상제님의 대순진리에 감오득도(感悟得道) 하시고 종통계승의 계시를 받으신 도주님께서 종단 무극도(无極道)를 창도하시고 정유(1957)년 11월에 수도인의 각종 수도방법과 의식행사 및 준칙 등을 설법 시행하시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도주님의 유명(遺命)에 의한 종통계승을 받으신 도전님께서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신 후에 의례 시행을 계승하시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1) 이 글에서는 의례 중 도장에서 모시는 치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도장 치성은 종단의 정기적인 주요 기념일을 기리기 위하여 구천상제님과 옥황상제님, 서가여래를 비롯한 영대(靈臺)의 모든 천지신명과 조상 선령신께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예를 갖추는 의식입니다. 도전님께서는 치성을 드리는 일에 정성의 예를 갖추어야 하므로 사념(邪念)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공경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 따라서 치성은 상제님과 천지신명께 정성을 다하여 예를 갖추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장 치성의 장소는 영대입니다. 영대는 상제님의 영(靈)을 모셔놓은 가장 신성한 성전(聖殿)입니다. 그리고 진법주(眞法呪)의 15신위(神位)를 봉안한 신성한 공간입니다. 영대의 신위를 보면, 원위(元位)는 구천상제님(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姜聖上帝)ㆍ옥황상제님(趙聖玉皇上帝)ㆍ서가여래(釋迦如來)이시며, 재위(再位)는 명부시왕(冥府十王)ㆍ오악산왕(五嶽山王)ㆍ사해용왕(四海龍王)ㆍ사시토왕(四時土王)이시고, 삼위(三位)는 관성제군(關聖帝君)ㆍ칠성대제(七星大帝)ㆍ직선조(直先祖)ㆍ외선조(外先祖)이시며, 사위(四位)는 칠성사자(七星使者)ㆍ우직사자(右直使者)ㆍ좌직사자(左直使者)ㆍ명부사자(冥府使者)이십니다. 또한 48장의 신명을 모시고 있습니다. 특히 여주본부도장의 영대는 종단의 모든 치성 의식과 제반 행사 및 공부가 봉행되는 성전입니다.

    도장 치성의 시간과 복장 및 식순을 보면, 치성 시간은 각 도장에서 축시(丑時, 1시∼3시 사이)에 모시며 절후치성은 각 절후가 드는 시각에 맞추어 모십니다. 복장은 전원이 한복을 착용합니다. 의식을 진행하는 순서는 ① 진설(陳設), ② 정렬(整列)ㆍ취석면수(取席俛首) ③ 분향(焚香) ④ 봉헌관배례(奉獻官拜禮) ⑤ 초헌정저(初獻正箸) ⑥ 일동배례(一同拜禮) ⑦ 아헌정저(亞獻正箸), 개기(開器)ㆍ삽시(揷匙) ⑧ 봉헌관배례(奉獻官拜禮) ⑨ 삼헌정저(三獻正箸) ⑩ 일동배례(一同拜禮) ⑪ 일동부복(一同俯伏), 고유(告諭) ⑫ 일동흥(一同興), 일동법좌(一同法坐) ⑬ 태을주(太乙呪), 기도주(祈禱呪), 도통주(道通呪) 각 4독(讀) ⑭ 퇴갱(退羹)ㆍ반개(半蓋) ⑮ 유식(侑食) ⑯ 하시(下匙)ㆍ합개(合蓋) ⑰ 일동배례(一同拜禮) ⑱ 예필(禮畢)ㆍ국궁(鞠躬), 퇴(退) 순으로 진행됩니다.
    도장 치성의 종류는 상제님의 강세와 화천치성, 도주님의 탄강과 화천치성, 도주님 봉천명치성, 도주님 감오득도치성, 영대봉안치성, 명절치성(원단, 대보름, 중추절), 중양절치성, 절후치성[四立二至: 입춘, 입하, 하지, 입추, 입동, 동지] 등이 있습니다. 치성 일자는 음력으로 정하여 거행하고 절후치성은 양력으로 행합니다. 또한 치성을 모시고 다음 치성이 5일 안에 들면 모시지 않습니다. 도장에서 모시는 치성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원단치성(元旦致誠): 음력 1월 1일
    새해를 맞아 음력 정월 초하룻날 모시는 치성입니다. 원단(元旦)이란 설날 아침이란 뜻으로 이날은 일 년의 첫날 아침이자 사시(巳時)의 시작으로 신성시되었습니다. 도장에서 모시는 원단 치성은 상제님과 천지신명께 감사드리고 새해의 화평과 평안을 기원하며 모시는 치성입니다.

    대보름치성: 음력 1월 15일
    정월 대보름에 한 해의 건강과 풍년을 기원하며 모시는 치성입니다. 정월 대보름은 설날, 추석날과 더불어 우리 겨레가 즐겨온 큰 명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자로는 상원(上元), 상원절(上元節), 원소(元宵), 원소절(元宵節)이라고 하며, 줄여서 대보름 혹은 대보름날이라 합니다. 이날은 도주님께서 선돌부인(상제님의 누이동생)으로부터 상제님의 봉서(封書)를 받으신 날이기도 합니다.

    도주님 감오득도치성(道主任 感悟得道致誠): 음력 2월 10일
    도주님께서 상제님의 대순진리에 감오득도(感悟得道)하신 날을 기념하기 위한 치성입니다. 정사(1917: 23세 시)년 2월 10일에 입산 공부하시던 도주님께서는 상제님의 대순진리에 감오득도하시고 종통계승의 계시(啓示)를 받으셨습니다. 도주님께서 을미(1895)년 12월 4일에 탄강하시어 15세에 봉천명(奉天命)하시고, 23세에 상제님의 대순진리에 감오득도하시는 것은 천부적인 종통계승의 신성한 연속성입니다. 도주님께서는 상제님의 대도(大道)의 참뜻을 음양합덕ㆍ신인조화ㆍ해원상생ㆍ도통진경의 종지(宗旨)로 밝히셨고, 도전님께서는 이 종지를 대순진리로 명명하셨습니다. 대순진리의 대순에는 삼계대순 개벽공사의 의미가 담겨 있고 상제님의 대도의 참뜻이 구현되어 있습니다.

    도주님 화천치성(道主任 化天致誠): 음력 3월 6일
    도주님께서 화천하신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올리는 치성입니다. 상제님으로부터 천부적인 종통계승을 받으신 도주님께서는 50년 공부(工夫) 종필(終畢)의 과정을 마치신 무술(1958)년 음력 3월 6일(양력 4월 24일, 64세 시)에 도전님께 유명(遺命)으로 종통(宗統)을 전수하시고 화천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도주님께서 50년 공부로 마련해 놓으신 진법(眞法)이 도전님께 이어지게 되었고, 도전님을 통하여 대순진리회가 창설된 것입니다. 도주님의 화천은 50년 공부를 통한 진법의 완성과 도전님께 종통이 계승되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상제님의 유지(遺志)가 도주님을 통하여 진법으로 완성되었고, 다시 도주님의 진법은 도전님을 통하여 유훈(遺訓)으로 수도인에게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도주님 봉천명치성(道主任 奉天命致誠): 음력 4월 28일
    도주님께서 상제님으로부터 종통계승의 계시를 받으신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올리는 치성입니다. 기유(1909)년 음력 4월 28일은 창도주(創道主)이신 도주님께서 15세 시에 부친과 함께 고국을 떠나 이국땅 만주 봉천 지방으로 향하신 날입니다. 이날 도주님께서는 15진주(眞主)로서 상제님의 계시로 천명을 받들어 천부적인 종통을 계승하셨습니다. 그 후 9년간의 입산수도 중에 감오득도하시고 태을주로 본령합리(本領合理)를 이루어 종통계승의 계시를 받으셨습니다.

    구천상제님 화천치성(九天上帝任 化天致誠): 음력 6월 24일
    상제님께서 화천하신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올리는 치성입니다. 기유(1909)년 음력 6월 24일은 인신(人身)으로 강세하신 상제님께서 40년간 순회 주환(巡回周環)하시며 천지공사(天地公事, 1901∼1909)를 마치시고 화천하신 날입니다. 상제님께서 행하신 천지공사로 인하여 이 세상은 수천 년간 쌓이고 맺힌 모든 원울이 풀리고 상극이 없는 도화낙원(道化樂園)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중추절치성(中秋節致誠): 음력 8월 15일
    추석을 맞아 음력 8월 보름에 모시는 치성입니다.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인 추석은 음력 8월 보름을 일컫는 것으로 중추절(仲秋節), 한가위, 가위, 혹은 가배(嘉俳)라고도 불렀습니다. 도장에서 모시는 중추절치성은 천지의 운행을 주관하시는 상제님과 천지신명께 감사드리며 한 해의 결실에 대해 조상님의 음덕에 감사함을 표시하는 치성입니다.

    구천상제님 강세치성(九天上帝任 降世致誠): 음력 9월 19일
    구천상제님께서 강세하신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올리는 치성입니다. 신미(1871)년 음력 9월 19일은 상제님께서 강세하신 날입니다. 상제님께서는 구천대원조화주신(九天大元造化主神)으로서 삼계대권을 주재하시고 천하를 대순하시다가 상도를 잃은 천지도수를 정리하시고 후천의 무궁한 선경의 운로를 열어 지상천국을 건설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인신(人身)으로 직접 내려오셨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천하를 대순하시다가 모악산 금산사 삼층전 미륵금불에 임어하시어 30년간 머무르시면서 최제우(崔濟愚, 1824∼1864)에게 제세대도(濟世大道)의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리셨으나 그가 유교의 전헌(典憲)을 넘어 대도의 참뜻을 밝히지 못하므로 갑자(1864)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시고 신미(1871)년에 강세하셨습니다.

    여주본부도장 영대봉안치성(驪州本部道場 靈臺奉安致誠): 음력 10월 25일
    여주본부도장의 영대에 구천상제님의 진영을 봉안한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올리는 치성입니다. 여주본부도장에서는 병인(1986)년 음력 10월 25일에 15진주(眞主)를 비롯한 천지신명을 영대에 봉안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치성을 모시고 있습니다. 영대는 도장에서 가장 신성한 성전으로, 종단의 모든 치성 의식과 제반 행사 및 공부가 봉행되는 곳입니다. 본전은 외부에서 볼 때는 3층이지만 내부적으로는 4층으로 된 한옥양식의 건물이며, 4층이 영대입니다. 도장에서 가장 안쪽에 있어 바로 앞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그 모습이 드러납니다. 본전 내부에는 신선도, 사군자, 십장생, 춘하추동의 사계 등 선경세계의 모습을 담은 벽화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영대는 15신위와 48장의 신명을 모신 성전입니다.

    도주님 탄강치성(道主任 誕降致誠): 음력 12월 4일

    도주님께서 탄강하신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올리는 치성입니다. 을미(1895)년 음력 12월 4일은 상제님으로부터 종통을 계승하신 도주님께서 탄강하신 날입니다. 도주님께서는 기유(1909)년 4월에 만주로 망명하시어 반일 구국운동에 활약하시다가 도력으로 구국제세 할 뜻을 정하시고 입산공부 중 상제님의 대순진리에…
  • Q.

    무자기가 도인의 옥조(玉條)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삼계대권을 주재하시는 상제님께서 천하를 대순하시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진멸지경에 빠진 인간과 신명을 구제하여 영원한 화평(和平)이 있는 지상선경(地上仙境)으로 인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지상선경을 마련하고자 하신 이러한 상제님의 의지는 도주님께 계승되었으며, 1925년 무극도(无極道)를 창도하시면서 선포하신 목적(目的)에 온전히 드러나 있습니다. 특히 목적 가운데 수도의 근본인 ‘무자기(無自欺)’는 인간 본래의 청정(淸淨)한 양심에 관한 것으로 수도의 목적인 도통을 이루는 근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자기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고 거짓된 언행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수도인이 공명정대(公明正大)한 양심(良心)을 간직하고 도리에 맞는 언행을 하는 것입니다. 도전님께서는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며 “‘있는 말로 일을 꾸미면 천하가 부수려 해도 못 부술 것이요, 없는 말로 일을 꾸미면 부서질 때는 여지가 없나니라.’ 하셨으니 무자기(無自欺)를 뜻하심이다.” 1)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무자기의 의미는 마음속 천성 그대로의 양심을 되찾아 자신을 속이지 않고 사심(私心)에 사로잡혀 상대방에게 도리에 어긋나는 언행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자기에 대해서는 훈회와 수칙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수칙 세 번째인 ‘무자기는 도인의 옥조(玉條) 2) 니, 양심을 속임과 혹세무민(惑世誣民) 3) 하는 언행과 비리괴려(非理乖戾) 4) 를 엄금함’에서는 무자기의 실천을 위해서 자신을 속이는 ‘양심을 속임’과 상대를 속이는 ‘혹세무민하는 언행’과 ‘비리괴려’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훈회 첫 번째인 ‘마음을 속이지 말라’에서도 확인됩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물욕에 의해 쉽게 사심에 사로잡혀 천품성인 양심을 속이고 도리에 어긋나는 언행을 감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훈회에서는 모든 언어ㆍ행동ㆍ처사에서 사심을 버리고 양심을 회복하기에 전념해야 하며, 바르고 곧은 마음으로써 모든 죄를 근절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무자기는 수도의 목적인 도통을 이루는 근본이 됩니다. 무자기를 근본으로 인간 본래의 맑고 깨끗한 본질로 되돌아가서 무욕청정(無慾淸淨)이 되었을 때 도통에 이르는 것입니다. 5) 『대순지침』에 “마음이 참되지 못하면 뜻이 참답지 못하고, 뜻이 참되지 못하면 행동이 참답지 못하고, 행동이 참되지 못하면 도통진경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心不誠 意不誠 意不誠 身不誠 身不誠 道不誠).” 6)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마음에서 뜻이 생기고, 뜻에 의해서 행동이 이루어지는데 마음이 참되어야 참된 행동을 하게 됩니다. 특히 우리 도에서 수도의 목적으로 삼고 있는 도통도 마음을 바로 해야만 실현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도전님께서는 「훈시」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무자기(無自欺)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즉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거짓을 행하게 되면 잘못된 일이 생기게 되고 이것이 척이 되어 나타나게 되며, 이 척이 자신의 앞길을 막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도통을 바라고 큰 운수를 보고 나아가는데, 도통과 운수를 바라기만 하면 무엇하겠습니까! 나 자신이 그 자리에 참여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을 처리함에 있어 매사에 경위(經緯)가 바르게 서야 합니다. 사람도 경위가 바로 선 것을 인격을 갖추었다고 합니다. 경위란 쉽게 말해서 도리입니다.7) 이 말씀은 무자기의 실천이 도통의 자리에 참여하는 바탕이 된다는 뜻입니다. 수도인이 무자기를 실천하지 못하여 자신과 상대에게 거짓을 행하게 되면 척이 되어 자신의 앞길을 막게 되고 결국 도통의 자리에 참여하지 못하게 됩니다. 도통은 상제님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자신의 마음을 거울과 같이 닦아서 진실하고 정직한 인간의 본질을 회복했을 때 받게 되는 것입니다. 8)

    그러므로 무자기는 도통을 하기 위한 가장 근본이 되는 가르침입니다. 무자기가 수도인의 옥조(玉條)로 제시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도통은 수도인의 수도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바르게 수도한다는 것은 마음을 유리알과 같이 맑고 깨끗하게 닦아 일심(一心)이 되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는 도통이 될 때 유(儒)ㆍ불(佛)ㆍ선(仙)의 도통신들이 모두 모여 각자가 심신(心身)으로 닦은 바에 따라 도에 통하게 된다고 하시고, 9)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임하여 마음에 먹줄을 겨누게 하고 사정의 감정을 번갯불에 붙이리라. 마음을 바로 잡지 못하고 사곡을 행하는 자는 지기가 내릴 때에 심장이 터지고 뼈마디가 퉁겨지리라. 운수야 좋건만 목을 넘어가기가 어려우리라.”(교법 3장 24절)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도통이란 어느 누가 물품을 수수하듯이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각자가 마음을 바르게 닦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신명공판(神明公判)은 도통을 받는 자리에 가서 있는 것이 아니고 수도 과정에서 먼저 받게 됩니다.

    무자기의 실천 여부는 신명의 수찰을 통해 판단됩니다. 자신의 마음을 속이는 것은 인간적인 도덕적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명과의 관계를 맺습니다. 자신을 속이는 것은 자신을 버리는 것이고 마음을 속이는 것은 신명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도인은 항상 신명의 수찰이 있음을 깊이 새겨 속임과 거짓이 없이 도인의 도리를 지켜야 합니다. 10)

    도전님께서 “우리가 수도한다는 것은 도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자기를 근본으로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이 바로 천지신명을 속이지 않는 것입니다.” 11) 라고 하셨듯이 천지신명은 인간의 크고 작은 일을 살피고 있으므로 수도인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양심을 속일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무자기는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으며 거짓된 언행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자기가 수도인의 옥조(玉條)가 되는 이유는 인간 본래의 청정(淸淨)한 본질인 양심을 찾는 방법으로 수도의 목적인 도통을 받기 위한 근본이 되기 때문입니다. 수도한다는 것은 도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것이니 우리는 무자기를 근본으로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수도인은 본래의 천성으로 돌아가 양심을 찾게 되고 욕심과 사심이 없어져 유리알같이 깨끗하고 맑은 마음이 됩니다. 모든 수도인은 자신의 도리를 다하며, 무자기를 바탕으로 수도에 온 정성과 힘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1) 『대순지침』, p.24.
    2) 옥조(玉條)란 매우 중요한 조목이나 규칙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의 출처는 한(漢)나라 양웅(揚雄)의 『극진미신(劇秦美新)』에 있는 “아름다운 법도[六律]와 도량형(度量衡), 금옥(金玉)과 같은 법률(法律), 신령스런 점괘, 선왕의 전적(典籍)들이 모두 피어나도다(懿律嘉量, 金科玉條, 神封靈兆, 古文畢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3)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미혹하게 하여 속임.
    4) 도리에 어그러져 온당하지 않음.
    5)『대순지침』, p.39 참조.
    6)『대순지침』, p.76.
    7)《대순회보》 12호, 「도전님 훈시」
    8)『대순지침』, p.38 참조.
    9) 교운 1장 41절 참조.
    10)『대순지침』, p.42 참조;『대순지침』, p.39 참조.
    11)《대순회보》 12호, 「도전님 훈시」

  • Q.

    『전경』에 요순의 도가 다시 나타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요순의 도가 다시 나타난다는 상제님의 말씀은 『전경』에 “류 찬명이 어느 날 상제를 모시고 있을 때 상제로부터 요ㆍ순(堯舜)의 도가 다시 나타나리라는 말씀을 들었다고 전하는 도다.”(교운 1장 46절)라는 성구에 나옵니다. 요순의 도가 다시 나타난다는 의미는 요순시대의 덕치가 다시 나타나리라는 것과 그것은 구천상제님에서 도주님으로 다시 도전님으로 이어지는 종통계승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옛적에 신성(神聖)이 입극(立極)하여 성ㆍ웅(聖雄)을 겸비해 정치와 교화를 통제 관장(統制管掌)하였으되 중고 이래로 성과 웅이 바탕을 달리하여 정치와 교화가 갈렸으므로 마침내 여러 가지로 분파되어 진법(眞法)을 보지 못하게 되었느니라. 이제 원시반본(原始返本)이 되어 군사위(君師位)가 한 갈래로 되리라.”(교법 3장 26절)라고 하셨습니다. 앞으로 오는 시대에는 군사위가 한 갈래로 되는 진법이 회복됨으로써 정치와 교화가 통합되는 덕치(德治)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덕치는 요순의 도에 잘 나타납니다.
    ‘요순의 도’를 요임금과 순임금이 도로써 천하를 다스렸던 심법(心法)이라고 본다면, 그 심법은 오늘날 「서전서문(書傳序文)」 속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서전서문」에 의하면, 이제삼왕(二帝三王)의 정치(政治)는 도(道)에 근본을 두고, 그 도는 마음에 근본을 두니 그 마음을 얻은 즉, 도덕정치(道德政治)를 이룩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악과 교화는 마음의 발(發)함이요, 온갖 제도와 문물은 마음의 드러남이요, 집안을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케 함은 마음을 미루어 확장하는 것이니, 참으로 마음의 덕이 크다고 했습니다. 이 마음을 간직하면 천하가 다스려지고, 이 마음을 잃으면 천하가 어지러워지니, 다스림과 어지러워짐의 나뉨은 이 마음을 간직하느냐 잃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요순의 도는 이처럼 마음의 덕과 도에 근본을 두고 백성을 다스린 심법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심법은 정일집중(精一執中)입니다. 정일집중은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의 준말로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여 잃어버리기 쉬우니 정일하게 하여 그 중을 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음에 근본을 둔 요순의 도는 일상(日常)에서 행하여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상도(常道)를 이룩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순의 도가 실제로 행하여지고 있을 때에는 천자에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도가 실천되고 있었습니다. 나라에서 오륜이 반포되었고, 관리를 보내서 민정을 시찰하며 백성이 이를 잘 지키는 지 살피기도 하였습니다. 나라 차원에서 오륜을 장려하였고 무도함을 경계했던 것입니다. 천자는 하늘을 받들어 상제와 산천(山川)에 제사를 지내는 것을 통치의 근본으로 삼았습니다. 관리에게 명하여 천기를 살펴 백성들이 농사의 때를 알려 주기도 하였습니다. 가급적 형벌은 삼가고 관용과 덕으로 용서했고 감화시켰습니다. 천자의 자리를 물려줄 때에도 서로 양보하고 사양하였습니다. 이러한 어진 임금 아래에서 백성들은 오륜을 잘 지켰고 태평성세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세월이 지나 은나라 말기에 오면서 천자는 무도해지고 역성혁명에 의하여 주나라가 세워집니다. 주나라에 오면 은시대에 상제를 모시던 신(神) 중심의 국가에서 예(禮)를 중시하는 인문주의(人文主義)적 풍토의 국가로 바뀌게 됩니다. 주나라 말기에 오면 예가 무너지고 힘에 의한 통치시대가 됩니다. 이때는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온갖 사상이 나와 갖가지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 중에서도 유가(儒家)와 법가(法家)만이 위정자의 선택을 받아 전국시대의 통치 이념이 됩니다. 그러나 법가는 하나의 통치 논리로서 정권을 장악하는 술로서 작용할 뿐 도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유가는 요순시대를 이상으로 삼았지만 현실적으로 이미 정치권에서부터 도가 아닌 힘과 권력에 의해 통치하는 시대로 넘어와서 돌이킬 수 있는 역량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공자와 맹자 같은 분이 되돌리려고 노력했으나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정치권에서부터 도(道)로써 정치하려 하지 않고 통치자는 권력의 맛에 취해 도덕보다는 힘에 의한 통치에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위에서부터 도를 멀리 하고 힘을 앞세우니 백성들 사이의 풍속도 점차 무도해져 갔습니다.
    근ㆍ현대에 이르러 이러한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서양문명은 물질에 치우쳐 신도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천도와 인사의 상도가 어겨지고 삼계가 혼란하여 도의 근원이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천ㆍ지ㆍ인 삼계가 진멸할 지경에 이른 이러한 때 신성ㆍ불ㆍ보살이 하소연으로 구천대원조화주신(九天大元造化主神)이신 상제님께서 인신으로 강세하시게 된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강세하시어 전무후무한 진리의 도를 선포하시고 9년간의 천지공사를 보심으로써 수천백 년간 쌓이고 맺힌 무수무진한 원울이 풀리고 지상선경의 운로가 펼쳐져 세상에는 ‘요순의 도가 다시 나타나리라’는 예시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도주님께서 구천상제님으로부터 계시로 종통을 계승하시고, 도전님께서 다시 유명으로 종통을 이어 받으셔서 창설하신 대순진리회에는 이러한 요순의 도의 속성으로 덕치사상이 있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우리의 공부를 ‘치천하 공부’라고 하셨습니다.『전경』에 의하면 상제님께서 “내가 평천하(平天下)할 터이니 너희들은 치천하(治天下)하라. 치천하는 50년 공부이니라. 매인이 여섯 명씩 포덕 하라.”(행록 3장 31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포덕(布德)이 곧 치천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곧 덕을 펼쳐 천하를 다스리는 덕치인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포덕으로써 인도(人道)를 선도하여 윤리도덕의 상도를 바로 이룩하는 것이기도 합니다.1)

    요순의 도가 다시 나타나리라는 말씀의 의미는 상제님과 도주님 그리고 도전님으로 이어지는 종통계승을 상징한 것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요순의 도는 왕위를 물려주는 과정에서도 드러납니다. 요임금은 왕위를 자신의 아들에게 세습하지 않고, 혈통과는 무관한 덕이 있는 순에게 전하였습니다. 상제님의 천부적인 종통이 혈식이나 친자 종도가 아닌 도주님께 전수된 것이 이와 유사합니다.
    도주님께서 신유(1921)년 국화 꽃이 반개하는 9월 5일에 상제님의 성골을 모셔오고 도주님께서 15세 시 봉천명하신 수리와 같은 15일이 지나니 상제님께서 구제제민하시고자 강세하신 날이 되었습니다. 이날 통사동 재실에서 상제님 강세치성을 올린 후 “시시묵송 공산리 야야한청 잠실중 분명조화 성공일 요순우왕일체동(時時黙誦空山裡 夜夜閑聽潛室中 分明造化成功日 堯舜禹王一切同)” 2) 이라는 칠언절구의 시를 읊어 주셨습니다. 요순의 도가 전승되는 과정을 비유하여 ‘요순우왕일체동(堯舜禹王一切同)’이라 하신 말씀 속에 천부적 종통계승의 상징이 담겨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요순의 도가 다시 나타나리라는 말씀의 의미는 앞으로 오는 세상에서는 성인의 심법을 닦은 사람들이 천하를 다스리는 이상세계가 펼쳐진다는 것과 상제님으로부터 도주님께 계시로 종통이 계승되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라 보면 큰 과차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 도는 해원상생 대도입니다. 『대순진리회요람』에 “항상 남을 사랑하고 어진 마음을 가져 온공ㆍ양순ㆍ겸손ㆍ사양의 덕으로써 남을 대할 때 척을 짓지 않도록 하라.”3) 하였고, 도전님께서는 “인류의 평화는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여 인보상조의 미덕으로 밉고 고움이 없이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도의 무한대한 진리에 있음을 이해하라.”4)하셨습니다. 요순의 시대가 다시 나오는 새로운 시대에는 천심(天心)을 가진 자만 살아남는 것이니, 해원상생 대도의 진리를 면이수지(勉而修之)하고 성지우성(誠之又誠)하여 수도의 완성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1)『대순지침』, p.19 참조. 2) 교운 2장 23절 참조. 3)『대순진리회요람』, p.20. 4)『대순지침』, p.20.
  • Q.

    불고가사(不顧家事)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불고가사’는 『전경』 공사 3장 39절의 “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 爲天下者不顧家事”라는 성구에 나옵니다. ‘위천하자불고가사(爲天下者不顧家事)’를 직역하면 ‘천하를 위해 일하는 자는 가사를 돌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직역에 따른 표면적인 이해는 수도인들에게 가정을 등한시 하게 하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구절에 대해 도전님께서 “위천하자 불고가사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을 다 내 가족과 같이 사랑하라는 뜻이다.”1) 라고 일러주신 바 있습니다. 내 가정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은 실제로 가정을 방치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 가족에 대한 사랑을 이웃과 사회, 더 나아가 전체 인류에 확장하여 남을 언제나 내 가족과 같이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불고가사’의 진정한 의미는 내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듯이 세상 사람들을 다 자기 가족처럼 여겨 천하를 화평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불가(佛家)에서는 수도를 위해 출가(出家)했습니다. 반면에 우리 도는 미륵의 도, 어른의 도로서 절대 가정을 멀리하지 않습니다. 불가에 계율이 있듯이, 우리 도에는 훈회(訓誨)와 수칙(守則)이 있습니다. 이 수칙에 있는 가정화목 관련 내용을 볼 때, 우리 수도에서 가정은 반드시 지키고 보살펴야 할 대상입니다.

    도전님께서 “가정화목ㆍ사회화합ㆍ인류화평으로 세계평화를 이룩하는 것이 대순진리이다.”2) 라고 하셨습니다.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를 천하에 펴는 일은 가정과 이웃을 떠난 막연한 이상이 아닙니다. 가정화목이 곧 선경(仙境)의 초입문이요, 이웃화합이 선경의 토대인 것입니다. 도전님께서 “가화가 있는 곳에서 공(功)을 거둘 수 있으니 가정화합에 대한 교화를 먼저 하라.” 3)하셨고, 『도헌』의 도인의 권리 의무에서 제9조는 “도인은 가정에서 자기 위치의 도리를 다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순진리회 수도인은 도를 닦는다고 하면서 가족을 등지는 일을 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도(道)로 인하여 가정에 불화가 생긴 경우에는 믿음을 일시 중지하는 한이 있더라도 가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도전님께서는 “도를 믿은 후부터 가정의 불화가 야기되었을 경우 가정화합에 전력을 기울이며, 가정화합이 불가능할 시는 믿음을 중지(中止)하도록 권고하여 가정의 평온을 회복시켜야 한다.” 4)
    라고 하셨습니다. 가족 구성원이 도에 대한 믿음을 반대하는 이유는 우리 도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서운한 마음을 품거나 척을 짓지 말고 잘 이해시켜 나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상제님께서 이 세상에 강세하신 이유는 세상에 충(忠)이 없고 효(孝)가 없으며, 열(烈)이 없어 천하가 다 병이 들었기 때문에 해원상생ㆍ보은상생의 법리로 세상을 광제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윤리와 도덕의 강륜을 세우는 것이 무도(無道)한 세상을 건지는 처방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전님께서는 “수도란 인륜을 바로 행하고 도덕을 밝혀나가는 일”5) 이라 하셨습니다.

    인륜도덕을 숭상하는 것이 우리 도의 강령인데 “불고가사”를 가사를 돌보지 못한다는 의미로만 보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도전님께서 도를 전할 때는 “모든 사람들을 가족과 같이 사랑하고 아껴서 마음으로 따르도록 하여 포덕하라.” 6) 고 하셨습니다. 도전님의 이 말씀에서 ‘불고가사’의 의미는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가족과 같이 사랑하고 존경하며 인륜을 행하라는 뜻임을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위천하자 불고가사’는 내 가족을 소중히 여기듯이 ‘남의 가족과 세상 사람들을 다 자기 가족처럼 아끼라.’는 것이며, 상제님 받드는 정성과 노력에 일심을 다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1) ⟪대순회보⟫ 118호 「청계탑」 참조
    2)『대순지침』, p.20.
    3)『대순지침』, p.29.
    4)『대순지침』, p.30.
    5)『대순지침』, p.37.
    6)『대순지침』 p.77.
  • Q.

    선ㆍ후각 관계를 개선하고 잘 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상제님께서 칠산(七山) 바다에서 잡히는 조기도 먹을 사람을 정하여 놓고 그물에 들며, 농사도 먹을 사람을 정하여 놓고 맺게 되며 심지어는 물 한 그릇조차도 연고가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세상만사 모든 게 인연(因緣)입니다. 우리의 선ㆍ후각(先ㆍ後覺) 간(間)의 만남 역시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선ㆍ후각의 만남은 상제님께서“삼생(三生)의 인연이 있어야 나를 쫓으리라.” 교법 1장 4절 참조. 고 하신 말씀과 관련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는‘무릇 뜻있고 연운(緣運)있는 모든 중생은 해원상생(解冤相生) 지상천국(地上天國)을 지향하는 대순진리회에 동귀(同歸)함을 목적으로 이에 취지(趣旨)를 선포하는 바이다.’2) 란 글에서‘동귀(귀착점이 같아 함께 돌아감)’속에 담겨진 심오(深奧)한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도문소자(道門小子)는 상제님ㆍ도주님ㆍ도전님 세 분을 연원(淵源)으로 하여 선ㆍ후각의 연운(緣運)관계로 만났습니다. 이는 해원상생의 진리로 지상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 사람 사이의 관계인 연운에 대해서는 『도헌(道憲)』에 명확히 규정되어 있습니다. 우선 제14조에 의하면,“도인은 사사상전(師師相傳)에 의(依)하여 연운(緣運)의 상종관계(相從關係)가 성립(成立)된다.”라고 했고, 또 제15조에,“도인(道人)은 전도인(傳道人)의 은의(恩義)를 영수불망(永受不忘)한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인연에 대해 우리는 바르고 명확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선천(先天)의 수천 백 년간 상극(相克)으로 쌓이고 쌓여 있던 무수한 막힘과 대립이 소용돌이치며 나타나는 난법(亂法)의 사회 현상과 동시에 후천(後天)의 상생(相生)의 진법(眞法)이 세워지는 해원(解冤)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특징은 남녀의 분별을 틔워 제각기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모든 것을 다 풀어 각자의 자유의사에 맡겨 놓았다는 데 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 사회는‘나는 나, 너는 너’라는 개인ㆍ이기주의의의 상극(相克)과‘우리’라는 상생(相生)의 두 흐름이 섞여 있습니다.

    개인ㆍ이기주의의 사회현상은 상극으로‘너는 너, 나는 나’라고 하는 무도병(無道病)의 병리현상입니다. 대순진리회는 바로 이러한 세상을 바로 잡기 위해 창설되었고, 그 핵심 사상은 상생(相生)의 법리로‘우리’를 지향하며,‘너와 나’의 조화와 화합 즉 융화단결(融和團結)을 생명으로 하는 종단(宗團)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 종단은 기존의 종교와는 달리 체계(體系)가 있습니다. 이 체계는 선감ㆍ교감ㆍ보정, 차선감ㆍ교령ㆍ정무, 선사ㆍ교정ㆍ정리, 선무ㆍ교무 및 일반 도인으로 구성됩니다.3) 이 체계는 조직체제(組織體制)로서 포덕한 업적에 따른 연운에 근거하며 이 체계로 상하(上下)ㆍ상호(相互)의 인간관계가 자연히 형성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할 일과 도리가 있고 이는 『도헌(道憲)』에 상세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해원상생을 종교적 법리(法理)로 하여 포덕ㆍ교화ㆍ수도의 사업을 합니다. 이로써 정신개벽 인간개조로 인간완성을 이룸과 동시에 사회적으로 인도를 바르게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이 사업의 핵심은 해원상생을 바르게 알고 실천하는 것이며, 이는 한 마디로‘남에게 척(慼)을 짓지 말고 남을 잘 되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척이란 나에 대한 남의 원한이고 척신(慼神)이란 나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 신을 의미합니다. 수도는 한마디로 척신을 푸는 것입니다. 척신은 나의 마음이나 몸으로 발동하지만, 특히 선각이나 후각 또는 주변 사람을 통해 발동하여 보복할 수도 있음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럴 경우에는 상대방이 괜히 나를 못마땅하게 여길 수도 있는데 이때는 상대방과 맞서기보다는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지 않은가 하고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래서『전경』에서 그 실례를 보게 되면, 김형렬이 출타하였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예수교 신자인 김중구에게 혹독하게 능욕을 당하고 돌아와 상제님께 사실을 아뢰니, 상제님께서“청수를 떠 놓고 네 허물을 살펴 뉘우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후 김중구가 사경을 헤매였다는 사정을 듣고 재차 충고하시면서“금후에 그런 일이 있거든 상대방을 원망하기에 앞서 먼저 네 몸을 살피는 것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4) 우리가 수도하며 실제 이런 상황에 처하면 상대방에 대한 분노나 원망이 앞서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상제님께서는 상대방에 대한 원망에 앞서 먼저 나에게서 찾을 때 그 허물이 풀린다는 가르침을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처럼 상대방이 자꾸 싫어하고 방해할 경우 전생에 내가 지은 죄가 척이 되어 다른 사람을 통하여 나에게 갚는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그러는 게 아닙니다. 이럴 경우 내가 똑같이 상대하면 그 사람은 괜찮지만, 나 자신이 잘못된다는 것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누구 하나 척 없는 사람이 없고, 수도하다보면 여러 장애물이 자꾸 닥치게 됩니다. 대운(大運)을 받는데 어찌 마(魔)가 없겠습니까? 남에게 눈 한 번만 흘겨도 척이 맺히니, 척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사람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전생에 나의 척신이 그렇게 함을 알고 오히려 고마워하고 이를 통해 뉘우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우리는 모든 게 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생활하여야 합니다. 여기서 척이 풀어지게 되고 상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상생은 대화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선ㆍ후각 간에 조금이라도 의심과 거리낌이 있다면 기탄없이 대화를 나누고 의논하여 풀어야 합니다. 이로 인해 걸림과 막힘이 없어져 서로가 화합하여 하나로 되는 게 해원상생입니다. 하지만 이와 달리 현재 선ㆍ후각의 관계가‘나는 나, 너는 너’라면 상대방을 탓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을 깊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과연 해원상생의 진리를 바로 알고 실천하고 있는가? 상제님께서는 모든 일에 옳고 그름이 다 나에게 있다 하셨고, 도전님께서도 수도를 잘하고 잘못함은 자의(自意)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선ㆍ후각이 서로 막히고 벽이 있는데 어찌 삼계(三界)에 투명(透明)하고 우주 삼라만상의 곡진이해(曲盡理解)에 무소불능(無所不能)한 한마음이 되겠습니까?

    도주님께서는“오도자 금불문 고불문지도야(吾道者今不聞古不聞之道也)라 믿고 닦기가 어려우니라.” 5) 라고 하셨습니다. 전도인(傳道人)이 있어 도를 만났고 상제님과 삼생의 인연으로 도문소자가 되었는데 이보다 더 소중한 인연이 어디 있겠습니까? 진실한 도인이라면 『도헌(道憲)』 제15조의“도인(道人)은 전도인(傳道人)의 은의(恩義)를 영수불망(永受不忘)한다.”는 조항을 가슴에 새겨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자모지정(慈母之情)과 은사지의(恩師之義)의 통심정으로 선ㆍ후각이 하나되어 지상천국건설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야 합니다. 선ㆍ후각이 관계를 개선하고 잘 통하여 하나되는 그 첩경(捷徑)은 바로 나부터‘해원상생의 생활화(生活化)’에 달려 있음을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겠습니다.

    1) 교법 1장 4절 참조.
    2)『대순진리회요람』, p.9.
    3)『도헌(道憲)』⌜제6장 포정원(布政院)」과『대순지침』, p.63 참조.
    4) 교법 2장 28절 참조.
    5) 교운 2장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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