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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修道) : 신앙심과 인격의 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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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2.10 조회2,1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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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修道)란 종단을 수호하고, 종단의 법과 규율을 준수하며, 종단의 발전에 기여하는 개인적·집단적, 정신적·육체적인 활동 일체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수도는 그 범위가 아주 넓고 깊이 또한 심오하기 때문에, 모두 헤아려 표현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그 범위를 한정하여 신앙심과 인격의 함양에 초점을 두었다.

  수도란 도(道)를 닦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도(道)란 무엇인가? 도(道)란 상제께서 밝혀 놓으신 우주만물의 이치(理致)를 말한다. 그 성질을 살펴보면, 도(道)는 “부단불식(不斷不息)하여 무형무적(無形無跡)하고, 무성무취(無聲無臭)하지만 공명정대하여 무위무가(無僞無假)하며, 무편무사하여 두과지리(豆瓜之理)와 같다.”(『대순지침』, 91~92쪽) 즉 도(道)란 끊임이나 쉼이 없고 그 형태나 자취가 없으며, 소리도 냄새도 없지만, 거짓이 없고 편벽(偏僻)됨이나 사사(私私)로움이 없기 때문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진리와 같다는 말이다. 이러한 공명정대(公明正大)함을 함양하기 위해 힘써 갈고 닦는 일을 수도라 한다.

  또한 수도란 양심을 되찾으려는 일이다. 양심을 되찾으려는 일, 이것은 신앙심과 인격의 함양에 있어 첫 번째 길인 동시에 지름길이다. 마음에는 양심(良心)과 사심(私心)이 있다. 양심은 천성(天性) 그대로의 본심(本心)이요, 사심(私心)은 물욕(物慾)에 의하여 발동하는 욕심이다. 원래 인성의 본질은 양심이지만, 사심에 사로잡히면 도리에 어긋나는 언동(言動)을 감행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 수도인들은 수도(修道)를 통해 사심을 버리고 양심인 천성을 되찾기에 전념해야 한다. 인간의 모든 죄악(罪惡)의 근원은 마음을 속이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에, 인성의 본질인 정직과 진실로써 일체의 죄악을 근절해야 한다.

  우리 도(道)에서는 수도를 원활하고 효과적으로 실천수행하기 위한 방법으로 여러 가지 법방(法方)을 마련해 놓고 있다. 법방은 도법(道法)을 지키고 실행하기 위한 성스러운 방법으로서, 구천상제님(九天上帝)께서 기초를 세우시고 도주님과 도전님께서 체계화하셨다. 수도의 법방으로는 기도(祈禱) ·수련(修鍊)·공부(工夫) 등이 있다.

  “도(道)란 마음에 두지 않으면 보아도 볼 수 없고, 들어도 들을 수 없고, 먹어도 그 맛을 알 수 없고, 만져도 느낄 수 없다.”(『대학』)고 하였듯이, 수도를 할 때는 무엇보다 마음의 집중이 중요하다. 수도의 올바른 자세는 마음과 몸을 침착(沈着)하고 잠심(潛心)하여 상제님을 가까이 모시고 있는 정신을 모아서 단전(丹田)에 연마하여, 영통(靈通)의 통일을 목적으로 공경하고 정성을 다하는 일념을 스스로 생각하여 끊임없이 잊지 않고 지성으로 봉축하여야 하는 것이다.

  수도의 목적은 도통(道通)이다. 도통(道通)이란 무엇인가?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인간 본래의 청정무구(淸淨無垢)한 본성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닦고, 성품을 연마(鍊磨)하고, 자기 자신의 기질(氣質)을 단련하여, 대순진리의 음양합덕·신인조화·해원상생·도통진경을 체인체득(體認體得)하기 위하여 힘써 닦아 정성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 이러한 마음으로 도가 곧 나(道卽我)요 내가 곧 도(我卽道)라는 경지를 바르게 깨달아 환하게 도(道)에 통하게 되면, 천·지·인(天地人) 삼계(三界)를 꿰뚫어 볼 수 있게 되고, 우주 전체의 이치를 온갖 정성을 다하여 깨달음으로써, 어떤 것이든 가능하지 않은 일이 없게 되는데, 이것을 일컬어 영통(靈通) 또는 도통(道通)이라고 한다.

  수도(修道)란 상제님의 진리에 따라 인륜(人倫)을 바로 행하고 도덕(道德)을 밝혀나가는 일이기 때문에, 이것을 실천하지 못하면 도통을 할 수 없다. 도통이란 물품을 수수하듯이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도인들 자신의 수도 여하에 달려 있다. 또 도통은 선후의 차등이 없고 오직 바르게 닦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래서 수도를 할 때는 항상 일체의 자부자찬(自負自讚)의 마음을 버려야 한다. 어떤 자부자찬(自負自讚)이건 이것은 수도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적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나 부족한 마음으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개선해 나가는 것이 올바른 수도의 자세이다. 그러므로 한때의 성과로 자만하고 거만해지는 것은 수도인의 본분을 망각한 행위가 되는 것이다.

  상제께서는 “죄가 없어도 있는 듯이 잠시라도 방심 말고 조심하라.”(교법 1장 36절)고 말씀하셨다. 아무리 존경받는 신앙인이고 인격자라도 이 세상을 살면서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끊임없이 반성하고 올바른 마음자세를 갖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음으로써, 인망(人望)과 신망(神望)을 얻게 된 것이다. 우리 수도인은 상제님의 이 말씀을 항상 가슴에 새겨 죄를 멀리하고 자만자족(自慢自足)하지 않고 반성을 생활화함으로써, 신앙심이 돈독한 수도인, 남에게 존경받는 인격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상제님께서는 “지금은 신명시대니 삼가 힘써 닦고 죄를 짓지 말라. 새 기운이 돌아 닥칠 때에 신명들이 불칼을 들고 죄 지은 것을 밝히려 할 때에 죄 지은 자는 정신을 잃으리라.”(교법 3장 5절)고 말씀하셨다. 인간이 물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듯이, 수도인이 수도를 멀리하면 그 생명이 다한 것이나 다름없다. 후천개벽시대를 진심으로 원하고 그 시대의 도래를 믿는 자라면, 항상 수도에 만전을 기하여 죄악을 근절해야 한다. 이것이 신명시대에 올바른 수도인의 자세이다.   

《대순회보》 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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