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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를 활을 다루듯이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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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1.12 조회3,1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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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를 활을 다루듯이 하라. 활을 너무 성급히 당기면

활이 꺾어지나니 진듯이 당겨야 하느니라. (교법 2장 35절)

 

 

믿음이란 인륜의 근본으로 인·의·예·지·신 오상(五常)에서 믿음은 그 중심에 있다. 오행(五行)에서도 토(土)가 근본이요, 오상에도 신(信)이 근본이다. 나무가 흙이 아니면 어디에 뿌리를 내리겠고, 불도 흙이 아니면 어디에 비칠 것이며, 쇠가 흙이 아니면 어디에 묻히고, 물도 흙이 아니면 어디에 의지하여 흐르겠는가. 흙은 이렇듯 오행에서도 체(體)가 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어진 마음이 믿음이 아니면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예가 믿음이 아니면 어디서 서겠으며, 의리는 믿음이 아니면 어디서 나오겠는가. 의리는 믿음의 결실이다. 그래서 인간사회에서는 신의(信義)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고 지혜는 믿음의 길을 타고 온다.

 

믿음은 사회의 신용선(信用線)이다. 사회는 인간들 상호 간에 기본적인 믿음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불신사회가 되면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생활의 모든 면에서 믿음이 생활의 토대가 된다. 믿음에 대한 이런 기본적인 인식이 전제되어야 믿기를 활시위 당기듯 하라는 말씀의 진의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믿음은 인사(人事)의 토대인데, 믿기를 활시위 당기듯 하라는 것은 무슨 의미이겠는가? 궁술의 교본인 『사법비전공하(射法秘傳攻瑕)』의 「사법약언(射法約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힘써 반드시 가득 당기고, 굳히고 또 굳히고, 바르고 또 바르게 하라(務期滿而又滿 固而又固 正而又正).” 사법에 만(滿)·고(固)·정(正)하라 하였다. 믿음에서도 만·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법의 만·고·정과 믿음의 만·고·정은 약간의 의미적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본 정신은 같으니 믿음에서 만·고·정의 만은 믿음을 자신의 심중에 가득 채우는 것이다. 고는 믿음을 사실화하여 흔들림 없이 믿는 확고한 신념이다. 정은 믿음의 길이다. 진리를 바로 알고 옳게 믿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믿기를 활시위 당기듯 하라는 것의 두 번째 의미는 문자 그대로 진득이 당기라는 것이다. 성급하게 당기면 활이 꺾어질 염려가 있다. 활시위 당기듯 믿는 것은 믿음에 실제적인 앎과 실천을 섞어가며 진득이 믿는 것이다. 욕속(慾速)은 부달(不達)이라 하였다. 범사에 욕심이 앞서게 되면 정성이 사무치지 못하는 법이다. 이것은 마치 떡을 찌면서 급한 마음에 자꾸 뚜껑을 열어보아 떡이 설익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 모든 일이 성(誠)·경(敬)·신(信)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욕심만 앞세워서는 되는 일이 없는 것이다.

 

믿기를 활시위 당기듯 하라는 것의 세 번째 의미는 목표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화살이 과녁에 적중하기 위해서는 궁수의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믿음의 길은 한번 마음을 정한 바엔 어떠한 이유에서건 바꾸어 고치고 변하여 옮기며 어긋나 차이가 생기는 일이 없이 기대하는 바의 목적을 향해 정성에 정성을 다하여야 한다. 목표가 옮겨 다녀서야 어떠한 일도 이룰 수 없다. 이것이 믿을 신 자, 신 없으면 매사불성(每事不成) 되는 이유다.

 

하나의 목표가 정해졌다 하더라도 화살을 날려 목표에 명중시키기 위해서는 표적을 겨눌 때 목표를 두리뭉실하게 겨누어서는 안 되고 표적의 핵심을 겨누어야 한다. 핵심 중의 핵심을 겨누어야 한다. 대순진리회의 목적은 ‘정신개벽 - 지상신선실현 - 지상천국건설’이지만 그 핵심에는 인간완성(도통)이 있다. 상제님께서도 이 세상을 도화낙원으로 만드시는 방법을 다름이 아니라 해원상생(解?相生)·보은상생(報恩相生)의 종교적 법리로 인간을 개조하면 자연히 정치적 보국안민과 사회적 지상낙원이 실현될 수 있다는 데서 구하셨다.01

 

궁수가 활시위를 당기는 것은 목표에 적중시키기 위함이다. 만작(滿酌)에 이를 때 잡아당긴 활시위를 더욱 굳세게 잡아야 하듯이 일이 완성단계에 갈수록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여야 한다. 우리 수도의 목적은 도통이다. 운수가 조아들수록 우리가 도를 믿는 목적이 대운대통에 있음을 잠시도 잊지 말아야겠다.

 

강물이 흐를 때 중심부와 강가는 똑같은 강이라도 흐름의 상황이 다르다. 강의 중심부로 갈수록 강물은 유유히 흐르고 평온하다. 강가는 강바닥과 강변 흙과의 마찰이 심하고 어느 곳에서는 역류하며 소용돌이도 발생한다. 강의 흐름이 우리의 마음의 흐름이라면 우리는 마음의 중심부로 깊이깊이 들어가야 한다. 오행의 중심에 흙[土]이 있듯이 마음의 심연에 확고한 믿음이 있고 평화가 있다. 우리의 소원하는 바에 대한 확신이 마음의 평화를 가져온다. 풍랑이 일고 세상이 격동할수록 마음의 분란을 종식하고 안심(安心)·안신(安身)을 이루는 방안은 우리 인생의 중심 목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슴 깊이 간직하는 것이다. 대운 대통이라는 목표에 도달토록 나아가고 또 나아가며, 정성하고 또 정성하는 고(固)·정(正)된 믿음으로 기대하는 바의 소원을 성취하여야겠다.

<대순회보 1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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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대순진리회요람』, pp.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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