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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人道)의 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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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2.07 조회2,9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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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人道)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道理)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도리는 무엇인가? 사람들은 대부분 이 질문에 대해서 인의예지, 삼강오륜, 충효열 등의 대답을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인도임에 틀림이 없으나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도리가 있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서 이미 알고 있지만, 흔히 잊고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의 삶을 생각할 때, 그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가장 근원적인 요소가 있다. 그것은 ‘생명(生命)’과 ‘수명(壽命)’과 ‘복록(福祿)’이다. 이것 중 어느 하나만 없어도 인간은 한순간도 삶을 유지할 수 없다. 은혜는 남이 나에게 베풀어주는 혜택인데, 생(生)과 수명과 복록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은혜이다. 그런데 이 은혜는 어디서부터 오는가? 그것은 상제님(上帝任)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다.

 

『대순진리회요람』에 “생과 수명과 복록은 천지의 은혜이니 성(誠)·경(敬)·신(信)으로써 천지(天地) 보은(報恩)의 대의(大義)를 세워 인도(人道)를 다하고…”라고 하였듯이 상제님의 은혜에 성·경·신으로 보답하는 것이 인도(人道)다. 보명(保命)과 안주(安住)에 대한 국가사회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국민의 도리(民道)고, 출생과 양육에 대한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효도(孝道)며, 교도 육성(敎導育成)에 대한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제도(弟道)고, 생활과 녹작(祿爵)에 대한 직업의 은혜에 충실과 근면으로 직분(職分)을 다하는 것이 직업인의 도리다.01

 

자식 된 도리를 다하는 것이 효도고, 국민 된 도리를 다하는 것이 민도며, 제자 된 도리를 다하는 것이 제도이듯, 인간 된 도리를 다하는 것이 인도다. 도전님께서는 “구천대원조화주신(九天大元造化主神)이신 구천상제님의 주재하의 인간임을 알아야 한다.”02고 강조하셨다. 인간에게 생과 수명과 복록을 주시고, 인간을 주재 관장하시는 분은 상제님이시다. 그러므로 인도의 근본은 상제님을 존숭(尊崇)하는 것이다.

 

『대순진리회요람』에는 도인의 신조(信條)로서 경천에 대하여 이렇게 쓰고 있다. “경천(敬天): 모든 행동에 조심(操心)하여 상제님 받드는 마음을 자나 깨나 잊지 말고 항상 상제께서 가까이 계심을 마음속에 새겨두고 공경(恭敬)하고 정성(精誠)을 다하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행동에 조심하여 상제님 받드는 마음을 자나 깨나 잊지 않는 것이 존(尊)이며, 항상 상제께서 가까이 계심을 마음속에 새겨두고 공경하고 정성을 다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이 숭(崇)이다.

 

도전님께서는 “상제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친은(親恩)에 보답하는 심신일여(心身一如)의 수신이 되어야 한다.”03고 하셨다. 친은(親恩)은 ‘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 하듯이 어버이처럼 친근하게 보살펴주시는 은혜를 말한다. 구천상제님의 주재 하의 인간으로서 생(生)과 수명(壽命)과 복록(福祿)을 주신 은혜에 마음으로부터 감사하면서도 늘 가까이 계시면서 살펴주시는 친은에 물심양면으로 몸과 마음을 다하여 보답하여야 한다. 그 성(誠)·경(敬)·신(信)의 일환으로 우리 도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모시는 월성(月誠)이 있다.

 

월성은 다과(多寡)를 논하지 않고 일정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삼일성(三日誠)의 정신으로 모셔야 한다. 기독교에는 십일조(十一租)가 있고 우리 도에는 삼일성(三日誠)이 있다. 십일조는 재산이나 소득의 1/10을 신에게 바치는 구약성서의 관습을 가리키는데, 오늘날 기독교인들 신앙생활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다. 삼일성은 한 달 30일 중에 삼일 일한 삯은 먼저 상제님께 올리고 나머지 27일분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것을 말한다.

 

성·경·신으로 상제님을 모시는 인도의 근본을 행하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을 짐수레의 바퀴에 비유하여 생각해보자. 인생이라는 짐수레에 바퀴가 나란히 달려 있다는 것은 인도를 올바르게 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인생의 길은 순탄하게 잘 굴러갈 것이다. 반면에 인도를 행치 않는다는 것은 바퀴가 아예 없거나 바퀴 한 짝이 없거나 두 바퀴가 있어도 나란하지 않고 삐딱하여 바퀴가 잘 굴러가지 않는것에 비유 할 수 있다. 상제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인생에는 고(苦)와 난(難)이 중첩하여 악순환이 끊이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이 점을 모른다. 자신의 삶이 왜 고난의 연속인지를! 상제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것은 인도의 근본을 폐(廢)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의 수레바퀴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언제나 상제님을 받들고 공경하고 정성을 다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 식고(食告)를 드린다. 성심이 깊은 사람은 물을 한 잔 마실 때도 식고를 드린다. 그런데 공기를 마실 때는 식고를 드리는가? 음식과 물은 장기간 섭취하지 않아도 목숨을 유지할 수 있지만, 공기는 5분만 못 마셔도 목숨이 위태롭다. 생명활동을 위한 은혜로 치면 음식보다 물이 더 소중하고 물보다 공기가 더 소중하다. 그 은혜를 생각한다면 공기를 마시면서도 감사의 식고를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상제님 종도인 박공우는 동학신도일 때 늘 “하느님 뵈어지소서.”라는 식고를 드렸다. 그러던 어느날 상제님께서 공우에게 “이제부터 네가 때마다 하는 그 식고(食告)를 나에게 돌리라” 하시니 공우가 그 말씀에 감탄하여 “하느님의 강림”이심을 깨닫고 상제님을 지성으로 받들기를 결심하였다.04 이처럼 상제님을 받들고자 하는 지극한 정성이 있으면 그에 따른 응답이 있게 마련이다. 이때 정성이란 늘 끊임이 없이 조밀하고 쉼과 틈이 없이 오직 부족함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이른다. 우리의 생명활동에서 이런 정성의 의미에 가장 부합하는 것은 호흡이다. 무슨 일을 행할 때 그것을 생활화하는 것을 ‘~을 밥 먹듯이 한다.’고 표현하듯이 상제님을 받들고 공경과 정성을 다하는 마음을 ‘숨 쉬듯이’ 하자.

 

우리 도에서 기도(祈禱)는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여 상제님을 가까이 모시는 정신을 모아서 단전에 연마하여, 영통(靈通)의 통일을 목적으로 공경하고 정성을 다하는 일념(一念)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지성으로 소정의 주문을 봉송하는 것’05이다. 기도의 본질은 ‘상제님을 가까이 영원토록 모시는 정신’에 있다. 이런 기도의 정신은 비단 기도 모시는 시간에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도인의 일상에서 생활화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기도 모시러 가는 길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의식적으로 깊이 호흡하면서 상제님께 감사의 념(念)을 올리자. 숨을 깊이 들이쉬면서 ‘상제님 감사합니다!’ 숨을 길게 내쉬면서 ‘상제님 감사합니다!’라고 한다. 더 나아가 『대순진리회요람』에는 “도즉아(道卽我) 아즉도(我卽道)의 경지에서 심령(心靈)을 통일하여 만화도제(萬化度濟)에 이바지하라.”06 하셨으니 숨을 들이쉬면서 상제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숨을 내쉬면서 상제님 뜻을 받들겠다는 마음을 다져 보자.

 

도전님께서는 “성은 거짓이 없고 꾸밈이 없이 한결같이 상제님을 받드는 일이다.”라고 하시며, “도인들은 대월상제(對越上帝)의 영시(永侍)의 정신을 권권복응(拳拳服膺)하여야 한다.”고 하셨다. 도인들은 일 호(一呼) 일 흡(一吸)에도 성·경·신을 붙여 상제님을 영원토록 받들어 공경하고 정성을 다하는 마음을 가슴에 깊이 새겨 잠시라도 잊지 말아야겠다.

 

 

01 『대순진리회요람』, p.20 참조.

02 『대순지침』, p.50.

03 『대순지침』, p.50.

04 교운 1장 25절 참조.

05 『대순회보』 118호, 「도전님 훈시」

06 『대순진리회요람』, p.16 참조.

 

 

<대순회보 1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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