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생지덕(好生之德)
페이지 정보
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9.03.25 조회3,001회 댓글0건본문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현재 환경문제로 온갖 몸살을 앓고 있다. 연일 매스컴을 통해 병든 자연과 파괴된 환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심각하게 들려오고 있다.
그러면 유사이래 없었던 환경파괴문제는 왜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그 근원적 해답은 자명하다. 환경을 이용하고 있는 인간들에게서 도(道)가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지의 사실로 도는 우주대원(宇宙大元)의 진리이며 경위(經緯)이고 법(法)이다. 도로 인해 만상만물(萬象萬物)이 질서를 잡고 길을 갈 수 있다. 그 속에서 우리의 생활도 건강하고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환경이 건강을 잃고 썩어가고 있으니 이것은 도가 제자리를 못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도가 제자리를 못 잡는다는 것은 무도(無道)하다는 것이다. 무도(無道)의 심각성은 우리의 몸을 예로 들어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밥을 먹어 인간은 소정의 소화작용을 통해 힘을 얻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소화작용이 길을 잃어 소화를 시킬 줄 모른다면 우리는 곧 소화불량에 걸리고 힘을 잃어 생명을 보존치 못하게 된다. 이것은 무도(無道)가 낳은 결과이다.
숨을 쉬는 것도, 심장이 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인체 모든 기관의 작용이 통제에 따르지 않고 길을 잃어버리면 인간의 육신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러한 원리를 확장해서 보면 우주도 마찬가지이다. 우주를 이루는 요소들이 무질서와 혼란을 거듭한다면 거대한 우주도 생명을 잃고 병고로 신음하는 환자의 몸과 같게 된다.
이 세상의 무도(無道)는 충·효·열(忠孝烈)의 상실로부터 야기되었다고 상제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로『대병과 소병이 무도에서 나왔다. 세상에 충효열이 없어서 천하가 모두 병들었다』(행록 5장 38절)고 말씀하신 내용이다.
일면으로 충효열이 없는 무도를 야기시킨 것은 웅패(雄覇)의 술 때문이다. 웅패란 힘을 앞세워 도덕(道德)을 억누르고 무력으로 질서를 파괴시키는 무리를 가리킨다. 남과 시비(是非)를 다투는 일을 항상 마음에 두고 남이 잘되는 것을 비방하고 타인의 좋은 것을 부정한 방법으로 빼앗아 천하에 재난을 일으키고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무리이다.
상제님께서는『재민혁세(災民革世)는 웅패의 술이라 벌써 천하가 웅패가 끼친 괴로움을 받은지 오래되었도다』(교운 2장 16절) 『시속에 어린 학동에게 통감을 가르치는 풍습이 생겼나니 이것은 어릴 때부터 시비로써 성품을 기르려는 것이니 웅패의 술이로다. 어찌 합당하다 하리오』(교법 2장 25절)라고 하시어 선천시대에 웅패로부터 일어난 폐해를 경계하시고 인간성품의 타인과의 상생성(相生性)을 강조하셨다.
수도(修道)는 남을 잘 되게 해 주고 타인과 원한이 없이 서로 화합(和合)하여 화평(和平)스럽게 살아가는 진리를 배워 실천하는 것이다. 웅패의 술을 내 마음에서 모두 불태워버리고 성인(聖人)의 도(道)를 바탕으로 마음을 닦고 영웅의 도략으로 상제님의 천지대도(天地大道)를 온 천하 사람들에게 알려나가는 성(誠)이고 경(敬)이며 믿음(信)이다. 이 일은 우리 도인들이 사명(司命)으로 삼는 것이며 성스러운 직(職)이고 업(業)이다.
상제님께서『천하가 웅패가 끼친 괴로움을 받은지 오래되었도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상생(相生)의 도로써 화민정세하리라. 이제부터 마음을 바로 잡으라 대인을 공부하는 자는 항상 호생(好生)의 덕(德)을 쌓아야 하느니라. 어찌 억조 창생을 죽이고 살기를 바라는 것이 합당하리오』(교운 1장 16절)라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 도인들은 호생의 덕을 가져야 한다.
지금 이 시대 호생의 덕은 자연과 인륜이 파괴된 무도(無道)한 세상 속에 살면서 그 무도를 모르고 해원 세상의 조류를 따라 그저 인생을 장식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덕이다.
파괴되고 오염된 우주가 살 수 있는 길이 상제님께서 선포하신 대순진리(大巡眞理) 안에 있다. 상제님께서 대순 하신 진리는 끝 말(末)을 고쳐 근본의 도(道) 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생명구원의 대도이다.
이러한 상제님의 대도를 전하는 포덕(布德)은 만천하의 백성을 구제하고 세상을 조화롭고 화평하게 만들어 가는 대인(大人)이 되는 공부이며 도통(道通)에 이르게 하는 가장 큰 수도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