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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덕의 의미과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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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2.24 조회2,8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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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지침』에 의하면 포덕의 의미는 다음 6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01
 
1) 포덕은 해원상생ㆍ보은상생의 양 원리인 대도의 이치를 바르게 알려주는 것이다.
2) 포덕이란 상제님께서 광구천하와 광제창생하시려고 하신 9년간의 천지 공사를 널리 알려 지상 낙원의 복을 받게 하는 일이다.
3) 포덕에서 우주를 주재하신 권능의 주인으로서 상제의 무량하신 덕화와 무변하신 권지의 소유주이심을 널리 알려야 한다.
4) 포덕은 인도를 선도하여 윤리도덕의 상도를 바로 이룩하는 것이다.
5) 포덕은 ‘덕을 편다’는 말이니 겸허와 지혜의 덕으로 사로 인하여 공을 해치지 말고 보은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6) 포덕은 『전경』을 바탕으로 하여 상제님의 대순하신 광구천하의 진리로 구제창생하기 위한 대인 접촉이다.
  포덕의 의미에는 사실을 알려 준다는 인지적인 측면과 수도를 바탕으로 한 실제적인 행을 요하는 실천적인 측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지(認知)적인 측면이 1), 2), 3)이라면, 실천적인 측면은 4), 5), 6)이라 할 수 있다. 사실을 알린다는 것은 교화적인 요소이다. 『대순지침』에 의하면 “교화는 신앙심을 높이는 길잡이가 되므로 임기응변하지 말고 진실을 알려 전폭적으로 믿도록 하여야 한다.”02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포덕 안에는 ‘진실을 알린다’는 면에서 인지적 요소로서 교화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우선, 도를 전하는 포덕은 인지적 측면으로서 진실을 알리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해원상생과 보은상생의 양대 진리를 알리는 것이고, 상제님의 천지공사를 알리는 것이며, 우주를 주재하시는 구천상제님의 무량한 덕화와 무변하신 권지의 소유주이심을 알리는 것이다. 이와 같이 포덕의 인지적 측면으로서 진리를 전폭적으로 믿게 하는 것은 실천수행의 전제가 된다.
  진리를 전폭적으로 믿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수도 과정에서 큰 차이가 있다. 해원상생의 진리를 전폭적으로 믿게 되면 실천수도에 있어서 이전의 생활과 많이 달라지는데, 이전에는 상극적으로 행동했던 것이 매사에 해원상생의 진리로 너그럽게 이해하는 생활태도로 바뀌게 된다.
  진리를 바탕으로 한 굳건한 믿음은 마음에 새겨지게 되는데, 언어 행동은 마음의 표현이므로 진리가 새겨진 마음은 언어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특히 마음에는 양심과 사심이 있는데, 양심과 사심의 갈림길에서 물욕에 사로잡히지 않고 양심을 취해야 할 이유가 분명해지게 된다. 양심을 취해야 할 분명한 동기가 진리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더욱 확고해지면 물욕의 유혹을 쉽게 떨쳐 버릴 수 있는 것이다. 도전님께서는 이와 관련하여 “사(私)는 인심이요 공(公)은 도심이니, 도심이 지극하면 사심은 일어나지 못하느니라.”03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를 바르게 알도록 하는 것은 향후의 실천 수도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다음으로 포덕의 실천적 측면은 인도를 선도하여 윤리도덕의 상도를 바로 이룩하는 것이고, 겸허와 지혜의 덕으로 사로 인하여 공을 해치지 말고 보은의 길을 열어 주는 것이며, 상제님의 진리를 바탕으로 구제창생하는 대인 접촉이다.
  선도(先導)라는 말은 앞에 서서 인도한다는 뜻이다. 인도를 선도한다는 말은 솔선수범으로 인도(人道)를 실천하면서 수반으로 하여금 따라 행하도록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자신은 실천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시키는 것으로는 심복의 도인을 만들기 어렵다. 그래서 『대순지침』에는 이와 관련하여 “자신은 실천하지 않고 수반들에게만 강요한다든지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는 도리어 배신당하는 처사가 된다.”04라고 하였다.
  겸허(謙虛)는 자신을 낮추고 내세우지 않는 것이다. 겸허의 허는 빌 허(虛)이다. 자신을 내세우는 것은 사(私)가 된다. 공(公)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마음을 비울 때 나타나는 것이다. 마음을 비운 그 자리에 상제님을 향한 마음이 자리 잡게 된다. 인간으로 태어나 생과 수명과 복록에 대한 천지의 은혜를 자각하여 상제님께 성·경·신을 다하는 것은 인간의 근본도리이다. 그러므로 상제님을 향한 믿음으로 인도하여 보은의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수반을 권위적으로 대하면서 자신을 내세우는 것은 사로 인하여 공을 해치는 것으로 수반으로 하여금 자신을 따르게 하면서 상제님으로 인도하여 주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포덕은 보은의 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 우리는 무도한 세상에 살고 있다. 상제님께서는 이 세상을 진단하시면서 충·효·열이 세상에 없어서 천하가 다 병이 들었다고 하셨다. 충·효·열이 없는 것은 은혜를 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망기부자무도(忘其父者無道), 망기군자무도(忘其君者無道), 망기사자무도(忘其師者無道)라 하였다.05 그러므로 포덕은 입도자에게 보은의 의미를 알려주고 그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입도하여 수도한다는 것은 무도했던 자신의 일상을 반성하고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하여 성·경·신을 수도의 삼요체로 삼고, 안심·안신과 경천·수도를 해나가는 것이다. 포덕하는 가운데 전도인과 사사상전(師師相傳)하는 연운(緣運)의 상종관계와 영수불망(永受不忘)하는 보은의 관계가 형성된다. 이러한 연운체계 속에서의 수도는 인륜을 바로 행하고 윤리도덕을 밝혀나가는 수도가 된다. 그 가운데 점차적으로 윤리도덕의 상도를 바로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대인접촉이라는 것은 포덕을 위한 인간적인 만남을 의미한다. 대인접촉에서는 ‘비인정 불가근(非人情不可近)’이라 했듯이 말재주 보다는 행동과 처신으로 상대를 감화시키고, 모든 사람을 가족과 같이 사랑하고 아껴서 마음으로 따르도록 하여 포덕하여야 한다. 진리는 단순히 말이 아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인접촉에서는 상대방의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방의 마음을 열게 하려면 먼저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여야 한다.
  세상 사람은 자기의 말을 들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 서로 자기주장을 하고 싶어하지만 누구도 자기 말에 잘 귀 기울여 주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원과 한이 쌓여도 하소연할 데가 없다. 그것은 마음에 묻어 둔 채로 재리(財利)와 명리(名利)만을 향해서 줄달음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삶에 지쳐 자신의 삶을 돌아보려고 할 때가 있다. 이것이 심심유오(深深有悟) 단계다. 이때 도인이 다가와 그의 고민을 들어 주고 조언을 해준다면 그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 것이며 이때 상제님의 진리는 그에게 가뭄에 단비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포덕의 참된 의미와 실천은 상제님께서 우주를 주재하시는 권능의 소유주로서 천지공사를 행하신 진리가 해원상생 보은상생의 양대 진리임을 알리고, 이러한 상제님의 진리를 바탕으로 보은의 길을 열어줌으로써 인도를 선도하여 윤리도덕의 상도를 이룩하여 구제창생하는 대인접촉이다. 그 속에 참 정성과 상제님의 덕화가 함께 있는 것으로 이것이 진정한 포덕의 실천이라 할 것이다.

《대순회보》 1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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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대순지침』, p.19, p.21.
02 『대순지침』, p.45.
03 『대순지침』, p.93.
04 『대순지침』, p.47.
05 행록 5장 38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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