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호생(好生)의 덕을 쌓아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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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0.06.25 조회25,745회 댓글0건본문
원일이 자기 집에 상제를 모시고 성인의 도와 웅패의 술을 말씀 들었도다. 그것은 이러하였도다. “제생 의세(濟生醫世)는 성인의 도요 재민 혁세(災民革世)는 웅패의 술이라. 벌써 천하가 웅패가 끼친 괴로움을 받은 지 오래되었도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상생(相生)의 도로써 화민 정세하리라. 너는 이제부터 마음을 바로 잡으라. 대인을 공부하는 자는 항상 호생의 덕을 쌓아야 하느니라. 어찌 억조 창생을 죽이고 살기를 바라는 것이 합당하리오.”
(교운 1장 16절)
신원일(辛元一, 1867~1916) 종도는 전라북도 부안(扶安) 사람으로 1905년 (음) 2월경 김형렬(金亨烈) 종도의 매제인 이환구(李桓九)의 천거로 처음 상제님을 배알하게 된다.01 위 성구에서 신원일에게 주신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은 항상 호생의 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씀인 것 같다. 왜, 그에게 이러한 내용의 가르침을 내리신 것일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먼저 위 성구의 말씀이 이루어진 맥락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뒤 구절을 보면 그가 억조 창생을 죽이고 살기를 바라는 잘못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너는 이제부터 마음을 바로 잡으라.’라고 훈계하셨으리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하며 그러한 잘못된 마음을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 있다. 그는 상제님께 개벽공사를 빨리 행하시기를 간청한 적이 있었다. 이때 상제님께서는 기회와 천시(天時)를 억지로 써서 개벽공사를 빨리 행하게 되면 무수한 생명을 억지로 앗아가는 결과를 낳게 되므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히신다. 그러함에도 그는 “방금 천하가 무도하여 선악을 분별하기 어려우니 속히 이를 잔멸하고 후천의 새 운수를 열어 주시는 것이 옳을까 하나이다”라고 말하며 고집을 꺾지 않고 다시 청원하니 상제님께서 매우 괴로워하셨다고 한다.02 당시의 세상이 무도(無道)하여 선악을 분별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그는 속히 이를 잔멸(殘滅)하고 후천을 열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억조 창생을 죽이고 살기를 바라는 것이 왜 부당한가를 설명하시며 마음을 바로 잡으라고 교훈하시는 내용으로 위 성구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또 신원일은 무슨 까닭에 그러한 마음을 가진 것일까?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체결하며 일제(日帝)가 국권(國權)을 유린함으로써 당시는 나라가 소멸할 위기에 놓여있었다. 이에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 일본군과의 전투가 계속되었고 민생은 도탄에 빠져 신음하고 있었다.03 이렇게 암울한 시대 상황을 고려해 보자. 신원일과 더불어 여러 종도의 마음속에 일제를 비롯하여 민생을 도탄에 빠지게 한 무도한 세력들을 하루빨리 잔멸하고 후천의 새 운수를 열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가득하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는 위 성구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제생 의세(濟生醫世)’란 뭇 생명을 고통과 재난으로부터 구제하여 병든 세상을 고친다는 뜻이다. ‘재민 혁세(災民革世)’는 무수한 백성에게 재앙을 끼치며 (무력에 의한 강압으로) 세상을 급격하게 바꾼다는 의미다. 그리고 ‘성인(聖人)’과 상반된 의미를 지닌 ‘웅패(雄覇)’는 걸출한 능력을 지닌 패자(霸者: 무력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자)를 뜻하는 말이다. ‘도(道)’와 ‘술(術)’은 원래 ‘길’이나 ‘방법’ 등을 의미하는 말로써 거의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술’을 ‘도’와 상반되게 부정적 가치를 지닌 말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곧, 제생 의세는 여러 성인이 추구하고 실제로 행했던 길이고, 재민 혁세는 무수한 웅패가 자행했던 길이라는 말씀인 것이다.
‘의세’와 ‘혁세’는 모두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뜻을 담고 있으나 의미상은 차이가 있다. ‘의(醫: 고치다)’는 병든 상태를 고친다는 치료의 의미를 지니는 데 비해, ‘혁(革: 고치다)’은 털을 벗긴 짐승 가죽을 본뜬 글자로 털을 벗겨내듯이 다른 모습으로 뜯어고친다는 의미다. 또한, 변화시키는 행위가 누구를 위함인가 하는 목적성에서는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성인이 행했던 ‘의세’는 고통과 재난에 빠진 민생을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일이다. 반면에, 웅패가 자행했던 ‘혁세’는 자신의 야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이기적인 행위였다. 오직 자신의 야욕을 위함이니 무수한 백성의 희생이 뭐 그리 대수로웠겠는가. 맹자(孟子)는 몇몇 성인에 대해 “한 가지 불의(不義)라도 행하고 한 사람의 무고한 생명을 죽여서 천하를 얻을 수 있다 할지라도 (이 성인들은) 모두 하지 않을 것이다.”04라고 평하였다. 성인은 천하를 얻는 것보다 무고한 한 사람의 생명을 더 소중히 여긴다는 말이다. 이러한 성인과는 너무도 확연하게 대조적이다.
인류 역사에는 요·순임금이나 석가모니를 비롯한 여러 성인이 있었지만, 대표적으로 우(禹)임금의 경우를 보자. 중국에 홍수가 크게 범람하여 끝없이 넓게 산을 에워싸고 언덕까지 올라가 백성들이 혼란에 빠졌다. 이에 우(禹)는 전국을 다니며 큰 도랑을 깊이 파서 물이 내[川]에 이르게 하고, 그 냇물을 다시 강으로 흐르게 하여 바다에 이르게 하였다. 이렇게 홍수를 평정하고 땅에 곡식을 심어 백성들의 양식을 충족하게 하니 중국 천하가 안정되었다고 한다.05 이러한 치적에 대해 맹자는 우임금이 8년 동안 치수(治水) 사업을 하면서 세 번이나 자기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못했다고 말하며, “성인이 백성을 걱정하는 마음이 이와 같았다.”라고 칭송하였다.06 우임금의 공적(公的) 헌신으로 이루어 낸 이러한 위대한 업적이 바로 ‘제생 의세’인 것이다.
반면에, 웅패로는 대표적으로 역사상 흔하게 회자하는 춘추오패(春秋五霸)07를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중국의 춘추시대 때 주(周)나라의 제후들로 시대를 달리하는데, 침략전쟁으로 주변의 약소국을 병탄(倂呑: 강제로 빼앗음)하고 부국강병을 실현하여 일정 기간씩 중국의 패권을 차지하였다. 제 환공은 30여 나라를 병탄하였다고 하니 춘추시대 300여 년간 얼마나 전쟁이 빈번했으며 또 얼마나 많은 민생이 희생되었겠는가. 이들은 막강한 무력을 바탕으로 무수한 백성에게 재앙을 끼쳐서라도 세상을 바꾸어 자신들의 통치권 아래에 두고자 했던 웅패들인 것이다. 더욱 극단적인 인물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를 들 수 있다. 그가 자행한 임진왜란으로 희생된 조선의 사망자는 최소한 1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당시 조선의 인구는 1,000만 명 정도였다.)08 이처럼 무수한 인명의 희생은 가까스로 살아남은 가족이나 이웃들에게 그 후 수십 년 동안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겨 주었다. 이들이 자행했던 이러한 참담한 일들이 바로 ‘재민 혁세’이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이러한 임진왜란을 비롯하여 병자호란, 몽고의 침략 등등 크고 작은 많은 병화(兵禍)를 당해왔다. 그렇다면 전 세계적으로는 또 얼마나 무수한 침략전쟁이 있었겠는가. 여기에는 항상 패권을 차지하고자 혈안이 되었던 패자들이 있었다. 지중해에서 인도대륙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알렉산더나 몽골제국의 칭기즈칸을 비롯하여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인물이 있다. 이들은 모두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웅패인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이러한 웅패들이 자행한 침략전쟁에 목숨을 잃거나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이에 대한 말씀이 ‘벌써 천하가 웅패가 끼친 괴로움을 받은 지 오래되었도다.’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제님께서는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이제는 상생의 도로써 화민 정세(化民靖世)하겠다고 선언하셨다. ‘화민 정세’란 백성들을 교화하여 세상을 화평(和平)하게 다스려 나간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이제’는 ‘말씀하시는 그 순간부터 앞으로’라는 의미다. 상생의 도로써 화민 정세하는 대역사(役事)를 이제부터 시작하신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바로 지금 상제님 앞에 있는 신원일부터 ―천하가 무도하다고 하여 그것이 잔멸되기를 바라는― 상극적인 마음을 고쳐서 바로 잡으라는 교화의 말씀인 것이다.
이 화민 정세의 큰 뜻(大義)은 광구천하(匡救天下)와 광제창생(廣濟蒼生)에 있으며, 이를 이루기 위해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하셨다.09 ‘천하’는 인간 세상을 뜻하고, ‘창생’은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화민 정세는 이 세상의 모든 인류를 구제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는 여러 성인이 지향했던 제생 의세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제생 의세는 한 나라나 일정한 지역에 국한된 반면, 화민 정세는 지구촌 전체로 그 영역이 확대된다는 것이다. 또한, 단순히 몇몇의 고통과 재난으로부터 구제한다는 차원이 아니다. 상극적인 질서와 수·화·풍(水·火·風) 등의 자연재해를 비롯한 일체의 고통과 재난으로부터 근본적으로 구제한다는 것이다. 천지공사는 후천(後天)의 무궁한 선운(仙運)을 열어 낙원을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대인을 공부하는 자는 항상 호생의 덕을 쌓아야 하느니라.’라는 가르침은 위 성구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며, 신원일의 마음이 왜 잘못인가를 일깨워주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여기 ‘대인(大人)’은 사전적으로 큰 덕(德)을 갖춘 사람을 뜻하는데, 이 문맥에서 ‘대인을 공부하는 자’는 구체적으로 신원일처럼 상제님을 따르는 종도들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호생의 덕’은 뭇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덕성(德性)을 의미한다. 따라서 위 말씀은 대인이 되고자 공부하는 사람은 항상 모든 생명을 아끼고 사랑함으로써 그러한 덕을 차곡차곡 쌓아나가야 한다는 뜻인 것이다.
상제님께서 강세(降世)하신 목적은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음으로써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 참혹하게 된 이 세상에서 창생을 구하시기 위함이었다. 이를 위해 천지공사를 행하셨고 상생의 도를 펼치셨다. 만약 천하가 무도하여 선악을 분별하기 어렵다고 이를 잔멸한다면 무수한 생명을 희생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결단코 이는 오직 천하의 모든 생명을 구하고자 하시는 상제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다. 상제님을 신앙하며 수도하는 우리 도인들에게 올바른 수도란 상제님의 뜻을 마음에 새기고 그 가르침을 바르게 실천하는 것이다. 천하가 무도하여 선악을 분별하기 어렵다는 이유도, 또는 그 어떠한 이유도 결코 소중한 생명을 희생시킬 수 있는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오직 우리는 이러한 상제님의 큰 뜻에 어긋남이 없도록 항상 호생의 덕을 쌓아나가야 할 일이다.
01 제생 16절 참고.
02 공사 2장 24절 참고. 이 일이 있고 난 후 1908년 (음) 7월에 이르러 상제님께서는 다시 그를 데리고 부안 변산의 개암사(開岩寺)에 가셔서 풍우를 크게 일으켜 홍수가 범람하는 권능을 보여주셨다. 이러한 후 천지를 수국(水國)으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며 개벽도 이렇게 쉬운 것이니 믿고 때를 기다리라고 타이르셨다. 그리고 바로 그를 자기 집으로 돌려보내셨는데, 그가 와서 보니 자기 동생의 집이 폭우에 파괴되어 동생 가족이 그의 집에 피난하여 있었다고 한다.(공사 2장 27ㆍ28절 참고)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겪고 나서 아마도 그가 상제님을 자기 집에 모시고 위 성구의 말씀을 들은 것 같다.[‘대순종교문화연구소, 「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67)」, ≪대순회보≫ 131호, p.21’에서도 이러한 순서로 사건들을 서술하였다.]
03 1906년 전반기 6개월 동안 충청·강원·경상·전라·경기 등의 60여 개 군에서 의병 투쟁이 전개되었고, 1907년에 들어서는 서울 주변 지역까지 의병 투쟁이 미쳤다. 1907년 7월 ‘정미7조약’의 체결로 내정권(內政權)을 빼앗기자 의병 투쟁은 전국적으로 크게 확대되었다. 대표적인 의병장으로는 평민 출신의 신돌석이 있으며 군세는 3,00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조성오, 『우리 역사 이야기 2 - 조선후기에서 식민지시기까지』 (서울: 돌베개, 1993), pp.181-182.]
04 『맹자』, 「공손추(公孫丑) 상」, “行一不義, 殺一不辜, 而得天下, 皆不爲也.” 이 말은 제자인 공손추와의 대화 속에 등장한다. 맹자는 백이(伯夷)와 이윤(伊尹)이 공자(孔子)에게는 못 미치지만 모두 성인이라고 말하며, 이 세 분은 모두 이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평하였다.
05 『서경(書經)』, 「우서(虞書)」, ‘익직(益稷)’ 편 참고.
06 『맹자』, 「등문공(滕文公) 상」, “禹八年於外, 三過其門而不入. … 聖人之憂民, 如此.”
07 제(齊)나라의 환공(桓公), 진(晉) 문공(文公), 진(秦) 목공(穆公), 송(宋) 양공(襄公), 초(楚) 장왕(莊王) 등이다. 한편, 제 환공, 진 문공, 초 장왕, 오왕(吳王) 합려(闔閭), 월왕(越王) 구천(勾踐) 등으로 보는 설도 있다.
08 김성수, 「삼한당(三恨堂)에 대한 연구」, 『상생의 길』 창간호 (2004), pp.104-105.
09 『포덕교화기본원리』 2, p.5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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