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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질로 사람이 상한다는 말이 옳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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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9.05.07 조회24,2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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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께서 또 3월 어느 날 “학질로도 사람이 상하느냐”고 자현의 지혜를 떠보시니라. 자현이 “학질은 세 축째에 거적을 갖고 달려든다 하나니 이 말이 상한다는 뜻으로 알고 있나이다”고 대답하니 상제께서 “진실로 그러하리라”고 말씀하셨다. (행록 5장 12절)


팔순인 자현의 모친이 3월 어느 날에 학질을 세 축 앓다가 갑자기 죽었도다. 이 소식을 들으시고 상제께서 “학질로 사람이 상한다는 말이 옳도다.”고 말씀하시니라. (행록 5장 13절)



기유(1909)년 3월 어느 날 상제님께서 학질에 대한 김자현의 지혜를 떠보고자 하셨다. “학질로도 사람이 상하느냐”는 상제님의 물음에 그는 “학질은 세 축째에 거적을 가지고 달려든다 하나니 이 말이 상한다는 뜻으로 알고 있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이달 어느 날 김자현의 모친이 학질을 세 축 앓다가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신 상제님께서는 “학질로 사람이 상한다는 말이 옳도다”라고 하셨다.
학질(瘧疾)은 ‘학(虐)’이라고도 하는데, 몸을 벌벌 떨며 주기적으로 열이 나는 병이다. 학질에 한 번 걸리면 사람이 견디지 못할 정도로 포학한 질병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01 『황제내경』에는 학질을 여름철에 더위로 몸이 상하면 가을에 발병하는 병으로 기록하고 있으며,02 허준이 편찬한 『동의보감』도 이 견해를 따르고 있다. 학질에 걸리면 일정한 시간을 두고 오한과 열증이 반복되는 증상을 보이는데 발작은 하루나 이틀, 때로는 사흘 걸러 규칙적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발생하는 학질은 삼일열이다. 학질에 한 번 걸리면 한열왕래(寒熱往來)라 하여 턱이 떨릴 정도로 심한 오한(惡寒)과 39~41℃ 이상의 높은 열이 나는 증상이 48시간마다 반복적으로 나타나 사람을 빈사(瀕死) 상태로 만든다.
김자현이 “학질은 세 축째에 거적을 갖고 달려든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세 축’이란 병증의 주기성과 관련된 표현으로, 학질에 걸렸을 때 첫 번째의 열 발작을 한 축째(또는 한 직째)라고 한다. 두 번째 열 발작이 일어나면 두 축째(또는 두 직째)라 하고 세 번째의 열 발작, 즉 세 축째에는 십중팔구 목숨을 잃을 만큼 당시에는 마땅한 대책이 없었다.03 그리고 ‘거적’은 짚으로 거칠게 듬성듬성 엮어 자리처럼 만든 것이다. 옛날에 사람이 죽으면 이 거적으로 덮어 두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거적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학질은 조선 시대 가장 흔한 질병 중의 하나였다. 학질에 걸렸다가 회복된 데서 유래한 “학을 떼다”라는 말은 죽을 것 같은 지독한 상황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러한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 선조들은 학질과 관련된 어떤 주체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환자를 겁주어 그 대상을 물리침으로써 학질을 치료하려는 의식들이 많이 행해졌다. 실제로 당시 사람들은 학질을 일으키는 병마(病魔)를 물리치기 위해 여러 가지 민간요법을 시행하였다. 일례로 박지원의 시문집인 『연암집』을 보면, “…학질을 앓는 남녀들을 관운장 좌상(座牀) 밑에 들여보내면 정신이 놀라고 넋이 나가 추위에 떠는 증세가 달아나고 만다.”라고 하였다. 옛사람들은 학질을 일으키는 병마를 물리치기 위해 관운장 신명(神明)의 도움을 받는 것을 대단히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김자현도 “세 축째에 거적을 갖고 달려든다”는 말의 의미를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했을 것이다. 학질에 걸려 한 축, 두 축을 겪으면서 기력이 소진된 환자가 세 축째에 죽음에 이르는 경우를 보고 어떤 병마가 거적을 갖고 달려든다고 이해한 것이다.
이 학질은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만연했던 토착성 질병인데, 지금은 ‘말라리아’로 잘 알려져 있다. 이것은 얼룩날개모기에게 물려 말라리아 병원충에 감염됨으로써 발생하는 질환이다. 위생상태가 좋지 못한 후진국이나 농촌에서 과거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대표적인 감염성 질병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사』에 “1122(예종 17)년 12월에 학질이 창궐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다.”04라는 기록이 보일 정도로 오래되고 흔한 전염병이었다.
조선 말기 제중원(濟衆院: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에서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1885년 한 해 동안 진료한 환자 중에 말라리아에 걸린 환자가 884명으로 가장 많았다.05 1932년 경무국 조사에서 말라리아 감염자 수는 조선인 127,580명, 일본인 6,437명, 외국인 177명 합계 134,794명에 이르렀고, 사망자 수도 적지 않아 한 해 동안 학질로 인한 사망자가 2,000명에 육박했다.06 그 후 우리나라는 WTO와 함께 말라리아 퇴치 사업을 벌인 결과 1979년에 말라리아 완전 퇴치 지역으로 인정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93년 휴전선 인근에서 군의관이 학질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된 이후 매년 수천 명 이상의 환자가 발생하였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발생 환자 수가 줄어들고 있으나 완전히 근절되지는 않았다.07
이처럼 학질, 즉 말라리아는 현대의학으로 어느 정도 예방과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다. 하지만 옛사람들은 열악한 환경과 영양결핍으로 인해 쉽게 학질에 걸렸으며, 한 번 걸리면 치료가 대단히 어려운 병이었다. 학질은 걸리면 바로 죽는 치명적인 질병은 아니지만, 주기적으로 감염자의 기력을 소진해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상제님께서 김자현에게 학질에 대해 물으신 후 그의 모친이 학질로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시고 “학질로 사람이 상한다는 말이 옳도다”고 하시면서 그 위험성을 인정하셨다. 그러고 나서 우리나라에서 학질로 인한 사망자 수가 점차 줄어들었고 현재는 학질로 인한 피해가 미미한 수준이다. 이것으로 보아 상제님께서 김자현 종도와의 대화를 통해 학질로 고통받고 죽음에 이르던 사람들을 구제하시고자 행하셨던 공사로 추정된다.

 

 

 

01 『동의보감』은 이 병의 증상을 “처음 발작할 때에는 먼저 솜털이 일어나고 하품이 나고 춥고 떨리면서 턱이 마주치고 허
리와 잔등이 다 아프다. 춥던 것이 멎으면 겉과 속이 다 열이 나면서 머리가 터지는 것같이 아프고 갈증이 나서 찬물만 마시
려고 한다.”고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 「학질」, 『네이버 백과사전』
02 『황제내경』, 「소문」, 12장 ‘虐疾門’, “夏傷於暑 秋爲痎瘧”
03 대순종교문화연구소, 「화천을 암시하시고 태을주와 운장주를 가르치심」, 《대순회보》 143호, pp.18-19 참고.
04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권19, p.542.
05 여인석, 「학질에서 말라리아로」, 『의사학』 20 (2011), p.55 참고.
06 같은 글, p.66 참고.
07 송헌호 외, 「삼일열 말라리아 환자의 임상적 특성」, 『대한내과학회지』 63 (2001), p.547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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