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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순의 도가 다시 나타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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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0.10.06 조회39,1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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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찬명이 어느 날 상제를 모시고 있을 때 상제로부터 요ㆍ순(堯舜)의 도가 다시 나타나리라는 말씀을 들었다고 전하는도다.

(교운 1장 46절)

 

 

  위의 구절은 상제님께서 어느 날 류찬명에게 “요·순의 도가 다시 나타나리라”고 말씀하셨다는 내용이다. 상제님의 이 말씀은 요순시대에 있었던 도(道)가 다시 나타난다는 의미일까? 이와 관련된 연구로는 《대순회보》 169호의 Q&A 게시판과 『대순사상논총』 31집의 ‘대순사상의 요순관’이 있다. 《대순회보》 169호에서는 ‘요·순의 도’를 ‘요순의 덕치(德治)’로 이해하고 대순진리회의 포덕(布德)을 요순시대의 덕치가 재현되는 것으로 보았으며, 상제님 도주님 도전님으로 이어지는 종통계승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보았다.01 ‘대순사상의 요순관’에서는 상제님께서 이 땅에 강세하여 선포하신 ‘상생의 도’를 다시 나타나는 요순의 도라고 이해했다.02 하지만 이 글에서는 위의 상제님 말씀을 삼계 개벽공사에 의해 펼쳐질 후천선경에서 상생의 도에 기반한 덕치가 펼쳐지는 이상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내용을 살펴보아야 한다. ‘요·순의 도’란 무엇을 일컫는 것이며, ‘다시 나타나리라’고 하신 말씀 속에 담긴 뜻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상제님께서 남기신 말씀의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요·순의 도

  ‘요·순의 도(道)’에서 요·순(堯舜)은 상고시대의 임금인 삼황오제(三皇五帝) 중 오제에 해당하는 요임금과 순임금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동아시아의 유교문화권에서 오랜 세월 동안 가장 대표적인 성인(聖人)이자 성군(聖君)으로 널리 추앙받아 온 인물이다. 이들이 살았던 시대는 신성(神聖)이 입극(立極)하여 성(聖)과 웅(雄)을 겸비해 정치와 교화를 통제 관장하던 시기였다.03 그러므로 ‘요·순의 도’란 요임금과 순임금이 천하를 다스리던 정치와 교화의 이법(理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후세 사람들은 요순의 도(堯舜之道) 또는 요순의 덕치(堯舜之治)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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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자(孟子)는 “요순의 도로도 어진 정치를 실행하지 않으면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릴 수 없다.”04라고 하였고, 정자(程子)는 “요순은 천하를 다스렸고, 부자(夫子: 공자)는 또한 그 도(道)를 미루어 만세(萬世)에 가르침을 남겼으니, 요순의 도가 공자를 얻지 않았다면 후세에 또한 무엇을 근거로 삼았겠는가.”05라고 하였다. 이처럼 요임금과 순임금이 천하를 다스렸던 이치[道]는 요순을 조종(祖宗)으로 받들며 유학의 학문적 전통을 세운 공자와 맹자에 의해 후대에 전해지게 되었다. 상제님께서 많이 읽으면 도에 통한다고06 하신 「서전 서문(書傳序文)」에서는 “이제삼왕(二帝三王)의 정치는 도(道)에 근본하고 이제삼왕의 도는 마음에 근본을 둔다.”07라고 하였다. 여기서 이제(二帝)는 요임금과 순임금을 말하는데, 그들이 행한 도(道)는 예악과 문물, 정치와 교화를 통해 세상에 펼쳐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순의 도는 요·순·우가 서로 전한 심법인 정일집중(精一執中)을 통해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정일집중’은 요임금과 순임금이 제위(帝位)를 넘겨줄 때 천하를 다스리는 법으로써 전수한 심법이다. 요임금이 순(舜)에게 제위를 선양(禪讓)할 때, “아! 너 순아, 하늘의 역수(曆數)08가 너의 몸에 있으니, 진실로 그 중(中)을 잡도록 하라.”09고 했다. 순임금이 우(禹)에게 선양할 때 여기에 다시 덧붙여 전한 말이 “인심(人心)은 위태롭고 도심(道心)은 은미하니, 오로지 정밀하게 살피고 오로지 한결같이 하여 진실로 그 중(中)을 잡으라”10는 것이었다. 이는 사사로운 인심(人心)과 공적인 도심(道心)을 잘 가려 인심이 도심을 따르게 하고 정사(政事)의 처리를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게 하라는 것으로,11 이것이 곧 정일집중에 담긴 중(中)의 의미다. 이처럼 요(堯)가 덕(德)으로 백성들을 교화하고 ‘무위의 정치(無爲之治)’12를 펼친 후 순(舜)에게 전한 것은 중도(中道)였다. 요(堯)를 계승한 순(舜)도 천명을 받들고 민심을 따르면서 ‘중’으로써 정치와 도덕의 근본으로 삼고, 그것을 다시 우(禹)에게 전한 것이다.13 이와 관련해 주자(朱子)는 순임금은 모든 사물에 양극단이 있듯이 선(善) 가운데에 그 두 끝을 잡고 헤아려 중(中)을 취함으로써 과불급이 없는 도(道)를 행한 것이라고 하였다.14

  이러한 도(道)에 기반한 요순의 덕치(德治)가 어떠했는지는 『서경』 「우서(虞書)」와 『사기』 「오제본기(五帝本紀)」, 『논어』, 『맹자』 등에 잘 기록되어 있다. 먼저 요임금은 성이 이기(伊祁)이고 이름은 방훈(放勳)이며, 오제의 한 사람인 제곡(帝嚳) 고신씨(高辛氏)의 아들이다. 처음에 도(陶)라는 곳을 다스렸고 나중에 당(唐)으로 옮겨서 도당씨(陶唐氏)라 불렀으며, 국호가 당(唐)이었기 때문에 역사에서는 ‘당요(唐堯)’라고 부른다. 요임금은 하늘처럼 자애롭고 신처럼 총명했다. 그래서 백성들은 따사로운 태양처럼 그를 흠모하고, 단비를 내려 대지 위의 만물을 촉촉이 적시는 구름처럼 그를 우러러보았다. 그는 공명정대할 뿐만 아니라 고상한 인품과 덕행을 지니고 있었기에 구족(九族)15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화목하게 지낼 수 있었다. 또한 모든 관리들이 맡은 책무를 명확히 알고 이를 충실히 이행하도록 하니 전국 각지의 제후들이 서로 반목하지 않고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다.

  요임금은 희씨(羲氏)와 화씨(和氏)에게 해와 달과 별의 운행을 관찰케 하여 역법(曆法)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땅을 갈고 파종할 시기를 신중하게 가르치게 했다(曆像日月星辰敬授人時). 상제님께서 “당요(唐堯)가 일월의 법을 알아내어 백성에게 가르쳤으므로 하늘의 은혜와 땅의 이치가 비로소 인류에게 주어졌나니라”16고 말씀하신 것도 이때의 일이다. 요임금이 제위(帝位)에 오른 지 70년 만에 순(舜)을 얻어 3년간 그를 시험해 보고 천자의 정사(政事)를 대행케 하고 은거한 지 28년만에 붕어했다. 그러자 백성들은 자신의 부모를 잃은 것처럼 슬퍼하였고,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 사방의 모든 사람이 음악을 연주하지 않고 그를 추모하였다. 유교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군주로 꼽히는 요임금의 치적은 훗날 천자와 제후들의 모범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런 요임금에 대해 공자는 “위대하도다. 요의 임금됨이여! 드높고 크도다. 오직 하늘만이 광대하다 하지만, 요임금만이 그것을 본받았도다.”17라며 칭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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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임금은 성이 요(姚) 또는 유우(有虞)이고 이름은 중화(重華)이며, 오제의 한 사람인 전욱(顓頊) 고양씨(高陽氏)의 후손이다. 여기서 중화는 ‘거듭 빛나다’는 뜻인데, 순임금이 요임금의 뒤를 이어 덕(德)을 더욱 밝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국호를 우(虞)라고 했기 때문에 역사에서는 ‘우순(虞舜)’이라고 부른다. 순(舜)은 스무 살 무렵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한 대효(大孝)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서른 살에는 천하를 다스릴 만한 인재로 사악(四岳)18의 추천을 받았다. 요임금은 순에게 두 딸을 시집보내고 아홉 명의 아들도 함께 생활하며 일거일동을 살펴보게 했다. 순이 역산(歷山)에서 경작을 하자 역산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 다투어 경작지의 경계를 양보하였고, 뇌택(雷澤)에서 고기잡이할 때는 그 지역 사람들이 살 곳을 마련해주었다. 황하의 강가에서 그릇을 구우니 조악하고 깨진 그릇이 없어졌다. 순이 사는 곳은 1년이 지나면 취락을 이루었고, 2년이 지나자 읍(邑)이 되었으며, 3년이 지나면 도시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처럼 순의 인품과 재능은 많은 사람이 그가 머무는 곳으로 모여들게 하였고 생활도 윤택하게 만들었다.

  요임금이 순을 등용하여 오교(五敎)19를 백성들에게 교화하고 보급하는 사도(司徒)의 직책을 맡기니 집안이 화목해지고 세상은 태평하게 되었다. 벼슬아치들을 관장하는 백규(百揆)의 직책을 맡기니 모든 일이 순조롭고 질서정연하게 처리되었다. 순이 사문(四門)에서 손님을 맞으면 사방에서 찾아온 제후들과 빈객들은 그의 고상한 인품과 덕행에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그가 산림을 관장하는 직책에 있을 때는 열풍(烈風: 맹렬한 바람)과 뇌우(雷雨: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옴)에도 흔들림이 없이 맡은 바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순은 중용되어 28년간 천자의 일을 대행하면서 많은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그러다가 요임금이 붕어하자 삼년상을 치른 뒤 요의 아들 단주에게 제위(帝位)를 양보했다. 그러나 천하의 제후들이 모두 순에게 귀의하자 마침내 그는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순임금은 요임금의 정치를 계승하여 덕으로써 세상을 교화하고 다스렸다. 어진 신하들을 등용하여 정사(政事)를 올바르게 펼치니 요임금 때와 같은 태평성세를 구가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맹자는 “순임금은 사물의 이치에 밝았고 인륜을 잘 살펴서 인의(仁義)에 따라 실천했을 뿐, 인의를 억지로 행한 것은 아니다”20라고 평했다.

  이와 같은 요임금과 순임금의 덕치는 요순과 같은 성인들이 인간의 마음에 천명(天命)으로 내재한 본연의 덕(德)을 밝히기 위해 행한 중도(中道), 즉 중용의 도를 통해 세상에 펼쳐지게 되었다. 이러한 ‘요순의 도’는 유학의 오랜 전통 속에서 공자, 맹자, 자사(子思), 주자(朱子)와 같은 성현(聖賢)들에 의해 면면히 이어지며 후대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다시 나타나리라’에 담긴 의미 

  상제님께서 “요·순의 도(道)가 다시 나타나리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다시 나타나리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요순시대와 같은 덕치(德治)가 이 땅에서 다시 실현된다는 것이다. 도주님께서 내려주신 「전교(傳敎)」에 의하면 황제(黃帝)로부터 시작되는 초통(初統)의 초회(初會)에는 대대로 성군(聖君)이 나왔는데, 요임금과 순임금도 이러한 시대에 속한 고대의 성군이었다.21 상제님께서 앞으로 도래할 후천은 천하가 한 집안이 되어 위무와 형벌을 쓰지 않고도 조화로써 창생을 법리에 맞게 다스리고 선(善)으로써 먹고 사는 성인시대라고 말씀하셨다.22 이렇게 후천에서는 성인들이 요순시대와 같은 덕치를 행하여 창생들을 조화로써 법리에 맞게 다스리고 선으로써 먹고 살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순시대와 후천 성인시대의 덕치에는 큰 차이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덕치의 바탕이 되는 도(道)가 다르다는 것이다. 

  요임금과 순임금이 살았던 시대는 아직 선천에서 쌓인 원(冤)으로 인해 천지의 도수(度數)가 어그러지거나 상극으로 크게 치우치지 않았고, 성군이 다스려 평화로웠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나 부족, 개인 간의 분쟁과 갈등이 존재했고 개개인의 잘못을 처벌하는 형벌[五刑]23도 있었으며, 천재지변(天災地變)에 의한 자연재해도 발생하였다. 이러한 시대를 다스렸던 요순의 도(道)는 비록 성인의 마음에 바탕을 두고 인륜(人倫)을 밝히며 어진 정치와 교화를 행한 것이지만 선천의 법과 제도라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공자는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어 많은 사람을 구제할 수 있다면 인(仁)하다고 할 수 있느냐는 제자의 질문에 요순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근심으로 여겼다고 대답한 바 있다.24 그러나 상제님께서 강세하셔서 이 땅에 펼치신 상생의 도(道)는 천지의 도수가 상극에 지배되고 오랜 세월 동안 누적된 원(冤)으로 멸망할 지경에 이른 천하 창생을 구하기 위해 마련해 놓으신 전무후무한 진리의 도(道)이다. 이러한 상생의 도(道)는 삼계 개벽공사의 주된 원리임과 동시에 신명과 조화를 이룬 도통군자들이 후천의 세상을 다스려 나가는 법리(法理)이다. 따라서 후천에서는 신인조화를 이룬 도통군자들이 상생의 도, 즉 해원상생과 보은상생의 법리에 따라 조화로써 천하 창생들을 다스려 나가는 세상인 것이다.

  둘째는 상제님 재세 시에 살았던 사람들이 꿈꿔온 이상세계가 앞으로 펼쳐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순의 도’가 당대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인들은 요순시대를 이상적인 정치가 베풀어져 백성들이 평화롭게 살았던 태평성세로 여겼다. 그 시대에는 백성들의 생활이 풍요롭고 여유로워 심지어 군주의 존재까지 잊고 격양가(擊壤歌)를 불렀다는 설이 있다.25 또한, 요순은 공맹(孔孟) 유학 사상의 연원으로 이상적 인간상인 성인(聖人)과 성군(聖君)의 표상으로서 인도(人道)의 모범이자 도(道)의 표본이었다.26 조선의 유교 사회에서도 요순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닮아야 하는 모범적인 인간상이었다. 특히 군주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요순과 같은 성군이 되기를 끊임없이 요청받았고, 요순의 다스림으로 태평성세를 구가해야 할 책임을 져야만 했다. 대표적으로 정암 조광조,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등은 당시의 임금을 요순과 같은 성군으로 만들어 태평성세를 이루고자 노력했다.27

  이러한 인식은 서양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 속에서 근대화의 물결이 밀려오던 상제님 재세 시에도 유교의 오랜 전통 속에 면면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요순의 도’는 유교문화권에 있던 당대의 사람들에게 태평성세가 실현된 이상세계의 전형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따라서 ‘다시 나타나리라’고 하신 상제님의 말씀은 당대의 사람들이 희망하고 꿈꿔왔던 대동사회(大同社會)처럼 이상적인 세계가 앞으로 펼쳐지게 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요순시대로의 복귀가 아닌 상제님의 천지공사에 의해 오랜 세월 동안 쌓이고 맺힌 모든 원한이 사라지고 상극(相克)에 지배되었던 도수가 상생(相生)으로 바뀜에 따라 죄로써 먹고사는 선천 영웅시대에서 선(善)으로 먹고사는 후천 성인시대로의 극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상생의 도로써 운영되는 후천에서는 신명과 인간이 조화를 이룬 가운데 벼슬하는 자는 화권이 열려 분에 넘치는 법이 없고, 백성은 원울과 탐음의 모든 번뇌가 사라지게 된다. 또한 만국이 화평하여 시기, 질투와 전쟁이 끊어지고, 수·화·풍의 삼재(三災)가 없어져서 상서(祥瑞)가 무르녹는 지상선경(地上仙境)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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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상제님께서는 “요·순의 도가 다시 나타나리라”는 말씀을 통해 요순시대의 덕치(德治)와 같은 이상적인 정치가 행해지고, 이상세계의 전형으로 여겼던 대동세계와 같은 태평성세가 도래한다는 사실을 예시해 놓으셨다. 그 세계는 삼계대권을 주재하시는 상제님께서 광구천하·광제창생으로 지상낙원을 건설하기 위해 행하신 천지공사에 따라 이룩되는 후천의 지상선경을 말씀하신 것이다. 도인들이 이러한 사실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순결한 마음으로 천지공정(天地公庭)에 참여하여 일심(一心)으로 노력해 나가면, 모든 인류가 꿈꿔온 이상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될 것이다.

 

 

 

 

 

01 교무부, 「Q&A게시판」, 《대순회보》 169 (2015), pp.106-109. 

02 이경원, 이은희, 「대순사상의 요순관」, 《대순사상논총》 31 (2018), pp.115-116 참고.

03 교법 3장 26절 참고.

04 『맹자』 「이루(離婁) 상」, 孟子曰, “堯舜之道, 不以仁政, 不能平治天下.”

05 『맹자집주』 「공손추(公孫丑) 상」, 程子曰, “蓋堯舜治天下, 夫子又推其道, 以垂敎萬世, 堯舜之道, 非得孔子, 則後世亦何所據哉.”

06 교법 2장 26절.

07 『서집전(書集傳)』, 「서(序)」, “二帝三王之治, 本於道, 二帝三王之道, 本於心.”

08 1. 제왕들이 서로 계승하는 차례로, 세시와 절기의 선후와 같다. 2. 제왕의 지위로 하늘의 사명을 가리킨다.

09 『논어』 「요왈(堯曰)」, “堯曰, 咨爾舜, 天之曆數在爾躬, 允執其中.”

10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11 한국사상연구회, 『조선유학의 개념들』 (서울: 예문서원, 2002), pp.271-272 참고.

12 무위(無爲)로 다스렸다는 것은 성인(聖人)의 덕(德)이 융성함에 백성이 저절로 교화되어 작위(作爲)하는 바가 있기를 기다리지 않았다는 의미다. 『논어』 「위령공(衛靈公)」, “無爲而治者, 聖人德盛而民化, 不待其有所作爲也.” 참고.

13 『유교대사전』, p.805, p.1026 참고.

14 『중용장구(中庸章句)』 6장, 朱子註 참고.

15 고조부터 증조ㆍ조부ㆍ부(父)ㆍ자기ㆍ자손ㆍ증손ㆍ현손까지의 동종(同宗) 친족을 통틀어 이르는 말.

16 교운 1장 30절.

17 『논어』 「태백(泰伯)」, “子曰: 大哉, 堯之爲君也. 巍巍乎, 唯天爲大, 唯堯則之.”

18 사방의 제후들을 나누어 관장하던 수령들.

19 ‘오전(五典)’과 같은 말로, 아버지의 의리[父義], 어머니의 자애[母慈], 형의 우애[兄友], 아우의 공손[弟恭], 자식의 효도[子孝] 이 다섯 가지 윤리를 일컫는 말이다. 사마천, 『사기 본기』, 정범진 외 옮김 (서울: 까치, 2001), p.15 참고.

20 『맹자』 「이루(離婁) 하」, 孟子曰, “舜明於庶物, 察於人倫, 由仁義行, 非行仁義也.”

21 교운 2장 26절, “傳囂頊嚳勛華禹 初統初會世世聖”

22 예시 81절, 교법 2장 55절.

23 오형(五刑): 중국 고대의 다섯 가지 형벌로 묵(墨: 이마에 상처를 내고 먹물을 넣어 죄를 표시하는 것)ㆍ의(劓: 코를 베는 것)ㆍ비(剕: 발뒤꿈치를 베는 것)ㆍ궁(宮: 생식기를 없애는 것)ㆍ대벽(大辟: 목을 베어 죽이는 것)을 말한다. 『네이버지식백과(한국고전용어사전)』, 「오형(五刑)」 참고.

24 『논어』 「옹야(雍也)」 28 참고.

25 공상철 외 3인, 『중국, 중국인 그리고 중국문화』 (서울: 2001, 다락원), pp.116-117 참고.

26 이유란, 「맹자의 요순관에 관한 연구」,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0), pp.12-13 참고.

27 이경원, 이은희, 앞의 글, pp.101-102 참고.

28 예시 8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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