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신을 삼고 있는 부친을 가리켜 차꼬를 벗는 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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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1.11.01 조회21,367회 댓글0건본문
상제의 부친이 말년에 짚신을 삼아 호구를 하시는 어려운 생활을 하였도다. 그러던 어느 날 상제께서 짚신을 삼고 있는 부친을 가리켜 차꼬를 벗는 중이라고 말씀하셨도다. (예시 63절)
『전경』을 보면 종도들이 상제님을 처음으로 따르게 될 때 상제님께서는 반드시 자신이 살아오면서 지은 허물을 낱낱이 회상케 한 후 허물을 사하여 주시기를 마음속으로 빌게 하셨다. 만약 미처 생각지 못한 허물이 있을 때는 깨우칠 수 있게 하나하나 일러 뉘우치게 하신 후 허물로 인한 척신과 겁액을 풀어 주셨다.01
허물을 뉘우쳐 푸는 것은 비단 상제님을 따르는 종도에 한한 것은 아니다. 상제님께서는 부친께도 일생을 살아오시는 중에 잘못된 일을 빠짐없이 기록하게 하신 후 그 내용을 보시고 불사르시며 이제 잘못된 과거는 다 풀렸으나 짚신을 더 삼으셔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로부터 부친은 임자년(壬子年)까지 8년 동안 짚신을 더 삼으셨고, 상제님께서는 짚신을 삼고 있는 부친을 가리켜 차꼬를 벗는 중이라고 말씀하셨다.02
상제님의 부친께서 말년에 짚신을 삼게 된 까닭은 일생을 살아오면서 지은 허물 때문이다.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실수와 잘못하여 저지른 일을 허물이라 이른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다’라는 말처럼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허물을 가지고 있다. 비록 허물이 있어도 성찰을 통해 스스로 허물을 발견하고 이를 고치려는 행위는 자신을 혁신하기 위한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상제님께서도 상제님을 믿고 따르는 자는 누구든지 가장 먼저 허물을 뉘우치게 하신 후 허물로 말미암은 척신과 겁액은 모두 풀어 주셨다.
하지만 성찰을 통해 허물을 뉘우쳐 고치는 개과(改過)의 과정은 종도들 각자에게 요구하셨다. 상제님께서 부친에게 짚신을 삼게 하신 것도 일생을 살아오면서 지은 허물을 뉘우치게 하여 부친의 앞길을 닦아 드리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상제님께서는 부친께서 일상생활에서 의존심을 갖지 않고 또 평소의 허물을 뉘우쳐 앞길을 닦아 드리고자 종도들로부터 물품이나 그 밖의 도움을 받는 것도 일절 금하셨다. 그런데 상제님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한 한 종도는 상제님의 부친을 위하는 마음으로 집 한 채를 사 드렸다. 이에 상제님께서는 “네가 어찌 나의 부친에게 허물을 만들어 드리느뇨. 아직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불효라고 하겠으나 나는 부모의 앞길을 닦아 드리려고 내가 형편을 살피고 있으니 너희들이 부친을 도울 생각이 있으면 나의 허락을 얻어 행하라”고 명하셨다.03 이는 상제님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한 종도가 오히려 부친께 허물을 가중하는 행위를 한 것이다.
그렇다면 상제님께서는 허물을 뉘우치는 방법으로 왜 짚신을 더 삼게 하셨으며, 짚신 삼는 부친의 모습을 차꼬를 벗는 것에 비유하셨을까?
『전경』에도 짚신을 삼는다는 표현이 있듯 예로부터 짚신을 만드는 것을 ‘짚신을 삼는다’고 표현했다. 짚신을 삼는다 함은 날줄에 씨줄을 먹이는 것을 말한다.04 짚신도 옷감처럼 날줄을 걸고 씨줄로 바느질하듯 오가며 엮어 삼는데, 짚신의 날줄과 씨줄은 항상 올바르게 균형이 맞아야 한다.05 예부터 날줄과 씨줄을 엮는 과정을 사리와 도리에 빗대어 왔다. 사리는 사물의 이치를 뜻하고, 도리는 사람이 어떤 처지에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길을 뜻한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오면서 사리나 도리에 맞지 않는 행위를 하여 허물이 생기면 그것을 반성하여 뉘우쳐 바른길로 나아가야 한다. 짚신의 씨줄과 날줄이 올바르게 교차하는 것처럼 사람도 이치와 경위가 올바를 때 허물도 적어지는 것이다.
조선 시대만 하더라도 가난했던 서민들은 가장 흔한 재료인 지푸라기로 엮은 짚신을 서로 주고받으며 조금이나마 삶의 곤궁을 덜어냈다. 조선 시대에 백성들이 짚신을 주고받을 때 그 짚신에는 새로운 길로 나아가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06 그뿐만 아니라 불교에서는 지혜가 뛰어나고 덕망 있는 고승대덕(高僧大德)이 도(道)를 이룬 상징으로 짚신을 신고 표연히 나타나 연기처럼 사라진 설화로 말미암아 짚신을 도의 상징으로 여긴다. 그런가 하면 짚신은 인간세계를 뛰어넘은 보살의 세계에서 보살이 자신의 참모습을 남기고자 할 때 자신이 신고 다니던 짚신을 그 징표로 여겼다 하여 허물을 벗은 참모습을 상징하기도 한다.07
한편, 짚신을 삼아 자신의 허물을 벗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개과의 과정은 차꼬와도 관련이 있다. 차꼬는 조선 시대에 죄인의 발목에 채우는 형구로 정식명칭은 착고(着庫)이지만, 차꼬, 족가(足枷), 질(桎) 등으로도 불렸다.08 모양은 두 개의 기다란 나무토막을 맞대어 그사이에 구멍을 파 두 발목을 넣고 자물쇠를 채우는 형태이다. 차꼬는 형벌을 제정할 때 작은 죄가 있으면 발에 차꼬를 채웠는데, 이는 그 행위를 금지하여 더 큰 악행을 행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사람에게 작은 잘못이 있을 때는 나무로 만든 차꼬를 채웠는데, 발에 차꼬를 채워 초기에 징계하면 허물이 없게 된다고 여겼다.09
그런데 사람이 죄를 지어 허물이 있을 때 허물을 뉘우치게 하는 용도로 사용된 차꼬의 형상은 짚신 삼는 모습과도 매우 흡사하다. 지금이야 짚신을 신지 않아 짚신 만드는 방법을 익혀 직접 만들어 신지 않지만, 조선 시대만 하더라도 짚신은 서민들이 직접 엮어 신었을 만큼 대중적인 신발이었다. 짚신을 삼을 때는 새끼줄을 꼬아서 만드는데, 감은 새끼줄은 허리에 묶어둔 후 발에 짚신 가닥을 걸어두고 삼았다.10 발과 허리에 새끼 줄을 둘러 고정한 채 힘을 줘가며 긴 시간을 한 자세로 앉아있는 불편함을 감내해야 한 켤레의 짚신이 완성되는데, 짚신을 삼기 위해 발에 걸어둔 새끼줄과 허리춤에 두른 새끼줄은 짚신 바닥을 다 삼아야 비로소 벗어낼 수 있었다.
▲ 『김득신 필 풍속도 화첩』 짚신 삼기, 18세기 말~19세기 초
그림에서 보는 바처럼 허물이 있는 죄인이 발에 차꼬를 차고 있는 모습과 짚신 삼을 때 짚신 가닥을 발에 걸고 있는 모습은 흡사하다. 허물을 벗어 자신의 참모습을 찾고 새로운 길로 나아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짚신과 허물을 지은 사람이 허물을 뉘우쳐 더 큰 악행을 금지하는 용도로 사용된 차꼬는 모두 허물과 관련된다. 개과의 과정을 통해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허물을 살펴야 하는데 상제님께서 부친에게 짚신을 삼게 하신 것과 그 모습을 차꼬를 벗는 것에 비유하신 것도 허물을 뉘우쳐 개과하게 하기 위함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도주님께서도 인간의 허물은 “인숙무죄(人孰無罪)요 개과하면 족하니라(교운 2장 15절)”고 말씀하셨듯 누구나 살아가면서 허물은 생기기 마련이고 허물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수도 과정에서 허물을 뉘우쳐 고치는 일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지속해서 자신을 성찰하고 살펴야 한다. 도전님께서 일상 자신을 반성하여 과부족이 없는가를 살펴 고쳐 나가라는 말씀 또한 허물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일상에서 자신의 허물을 살펴 고치는 일은 수도의 자기성찰과도 맞닿아 있기에 생활화하여 매일 자신을 성찰한다면 하루하루 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성숙할 것이다.
01 교운 1장 2절 참고.
02 교법 1장 39절 참고.
03 교운 1장 43절 참고.
04 『백제의 짚신』,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03, p.136.
05 같은 책,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03, p.137.
06 대한민국 기획재정부,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8275239).
07 배도식, 「짚신의 민속적 고찰」 (2), 『한국민속학』 24, 1991, pp.112-113 참고.
08 「착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
09 『주역: 정이천 『역전』 완역』, 정이천 주해, 심의용 옮김 (경기도: 글항아리, 2015), pp.456-457 참고.
10 배도식, 「짚신의 민속적 고찰」 (1), 『한국민속학』 23, 1990, pp.111 참고./ 『백제의 짚신』,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03, pp.21-23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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