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비방을 탓하지 않으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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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9.12.11 조회35,460회 댓글0건본문
상제께서 일정한 법에 따라 공사를 보시지 않고 주로 종이를 많이 쓰시기에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리켜 종이만 보면 사지를 못 쓴다고 비방하니라. 상제께서 그 말을 듣고 종도들에게 “내가 신미(辛未)생이라. 옛적부터 미(未)를 양이라 하나니 양은 종이를 잘 먹느니라”고 비방을 탓하지 않으셨도다. (공사 3장 16절)
상제님께서는 공사를 보실 때마다 일정한 법에 의거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오직 상제님만의 권능으로 삼계대권을 행하셨다. 쏟아지는 큰 비를 멈추게 하시려고 종도들에게 화로에 불덩이나 술잔을 두르게 하시거나 말씀으로도 하시고 그밖에 풍우·상설·뇌전을 일으키는 천계대권을 행하실 때나 그 외에도 일정한 법이 없으셨다.(공사 1장 4절) 그 중에서도 특히 위의 성구처럼 상제님께서는 종이를 사용하여 여러 공사를 다양하게 보셨다. 그러자 상제님을 모르는 어떤 사람이 종이만 보면 사지를 못 쓴다고 비방하니 상제님께서는 그 비방을 탓하지 않으셨다.
인류사에서 종이의 발명은 혁명적 사건이었다. 기존 동서양의 죽간, 비단, 양피지는 무거울 뿐만 아니라 쓰기 어렵고 고비용 때문에 대중화시키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가볍고 보존성이 우수한 종이의 발명으로 인류는 획기적으로 지식과 정보의 확산을 이룰 수 있었다. 특히 종교적으로 종이는 경전을 기록하여 보존하거나, 소지(燒紙)를 통한 기도(祈禱)나 기원(祈願), 그리고 여러 형태의 도구로 제작하여 쓰였다. 불교인은 성인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종이에 필사하거나 책으로 찍어 소유함으로써 경전의 성스러운 힘을 얻는다고 믿었다.01
종교적으로 종이는 소지(燒紙)를 통한 기도나 기원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유교에서도 종이는 경전 기록이 중심이었지만, 제례에서 축문(祝文)으로도 사용되었다. 축(祝)은 신명에게 고함으로써 빌고 바라는 것을 성취하는 수단이었다.02 유교적 제의에서 소지는 축문이나 제문을 읽고 이를 사르는 행위로 신에게 기원을 하거나 적힌 종이를 불살라서 신에게 고하거나 요청하는 형식이었다.
이러한 기존의 종교전통에서 쓰임과 다르게 상제님께서는 종이를 천지공사의 여러 용도로 활용하셨다. 이를 방법적인 측면에서 보면, 종이를 소지하시거나 종이를 이용하여 어떤 형태를 만들어 공사를 보셨다. 먼저 종이에 글을 써서 소지하는 방법은 단순한 기도나 기원이 아닌 천지공사의 일환으로 신명을 부르는 것이었다.03 상제님께서는 길이 질면 양지에 글을 쓰고 불사르시어 땅을 굳게 하셨다.(권지 1장 13절) 또한, 기운을 붙이거나 병을 치유하실 때에도 종이에 글을 써서 불사르셨다. 그리고 종이에 여장군(女將軍)이라 써서 불사르시니 갑자기 여인이 기운을 얻고(권지 1장 17절), 문공신의 모친이 요통으로 고생하고 있음을 상제님께서 들으시고 매실 한 냥쭝을 종이에 싸서 들보에 매어달고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곧 제생되었다.(제생 36절)
다른 방법으로 상제님께서는 종이를 여러 형태로 제작하여 천지공사를 행하기도 하셨다. 『전경』을 살펴보면 “글을 쓰고 그 종이를 가늘게 잘라 잇고 집의 뒷담에서 앞대문까지 펼치”(행록 5장 6절)기도 하셨고, “백지 한 권을 길이로 잘라 풀로 이어 붙이고 절반을 말아 두 덩이로 만들고 … 종이 덩어리를 하나씩 풀어서 창구멍으로 들여보내”(공사 1장 14절)기도 하셨다. 이러한 상제님의 공사는 범인들이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상징적 행위를 통하여 나중에는 실제로 발현되었다.
그 예로 상제님께서 일진회와 아전 사이의 교쟁을 해결하는 공사를 보신 것이 있다. 전주에서 일진회와 아전의 교쟁이 일어나자, 상제님께서는 “종이에 글을 쓰고 그 종이를 여러 쪽으로 찢어 노끈을 꼬아서 그 주막의 문돌쩌귀와 문고리에 연결”(행록 3장 14절) 하셨다. 그러자 일진회와 아전이 싸움을 멈추고 화해하였다.
이렇듯 상제님께서는 천계, 지계, 인계의 삼계를 뜯어 고치는 개벽공사를 보시면서 다양한 방법에 따라 행하셨으며 특히 종이를 공사에 자주 활용하셨다. 이러한 상제님의 공사는 광구창생(匡救蒼生)의 공사로 천지에 확증하셨다. 이로써 현실적인 인간의 문제가 무위이화로 해결되었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러한 공사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제님을 광인(행록 3장 34절)으로 몰아세우며 비방하였다.
이러한 비방에 대하여 상제님께서는 “내가 신미(辛未)생이라. 옛적부터 미(未)를 양이라 하나니 양은 종이를 잘 먹느니라”라고 하시며 비방을 탓하지 않으셨다. 양(羊)은 십이지의 여덟 번째 동물로서 주로 나무껍질을 벗겨 먹는 동물이다. 소화력이 왕성한 양은 나무의 셀룰로스 성분을 분해해 당으로 만드는 능력이 어떤 다른 동물보다 탁월하므로 종이를 잘 먹는다는 속설이 있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는 그 비방에 대하여 종이를 잘 먹는 양을 언급하시면서 그 비방을 탓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상제님을 몰라보았기 때문에 상제님의 공사를 비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나를 모르는 자가 항상 나를 헐뜯나니 내가 만일 같이 헐뜯어서 그것을 갚으면 나는 더욱 어리석고 용렬한 자가 되니라”(교법 1장 27절)고 남의 비방을 탓하지 않으셨다. 이는 종도들에게 “어디서 무슨 부족한 일을 보고 당하여도 큰일에 낭패될 일만 아니면 항상 남을 좋게 말하기를 힘쓰라”(권지 2장 24절)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 공부가 남을 잘 되게 하는 공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01 유요한ㆍ윤원철, 「반복과 소유-한국불교 재가신자들의 불경 이용 방식: 비교종교학적 관점의 경전 연구의 한 예」, 『종교와 문화』 17 (2009), p.12.
02 같은 글, p.34.
03 공사 1장 10절, “상제께서 계묘년 정월에 날마다 백지 두서너 장에 글을 쓰거나 또는 그림(符)을 그려 손이나 무우에 먹물을 묻혀 그것들에 찍고 불사르셨도다. 그 뜻을 종도들이 여쭈어 물으니 ‘그것은 천지공사에 신명을 부르는 부호이노라’고 알려 주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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