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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복종이 크다 하므로 북도수를 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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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1.11.01 조회20,7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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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에 응종이 상제의 분부를 받고 식혜 아홉 사발을 빚고 태인 신 경원의 집에 가서 새 수저 한 벌을 가져오고 단지 한 개를 마련하여 상제께 드리니 상제께서 식혜를 단지에 쏟아 넣으시니 단지가 꼭 차는지라. 또 상제께서 양지와 백지와 장지를 각각 준비하여 놓으시고 가라사대 “비인복종(庇仁覆鍾)이 크다 하므로 북도수를 보노라. 북은 채가 있어야 하나니 수저가 북채라. 행군할 때 이 수저로 북채를 하여야 녹이 진진하여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양지와 백지와 장지를 각각 조각조각 찢으시고 조각마다 글을 써서 단지에 넣고 그 단지 입을 잘 봉하여 깨끗한 곳에 묻으셨도다.  (공사 3장 11절)

 

  위의 성구는 1907년 12월 어느 날, 상제님께서 고부 와룡리(현 전북 정읍시 정우면 회룡리)에서 보신 북도수이다. 『전경』에 상제님께서 행하신 공사를 읽어보면 대부분 온전하게 이해하기란 어렵다. 북도수도 행하신 전체과정을 보면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북도수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 ‘비인복종이 크다 하므로 북도수를 보노라. 북은 채가 있어야 하나니 수저가 북채라. 행군할 때 이 수저로 북채를 하여야 녹이 진진(津津: 물건 따위가 풍성하게 많다는 뜻)하여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상제님의 말씀을 위주로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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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인복종(庇仁覆鍾)이 크다’라는 상제님의 말씀에서 비인복종은 부내복종이라고도 하며 현재 충남 서천군 종천면 종천리(舒川郡 鍾川面 鍾川里)에 있는 명당 터의 이름이다. 『전경』에는 상제님께서 ‘비인복종’이라고 하셨지만, 『서천군지』나 지명유래와 관련한 책자를 보면 서천군 부내의 지명을 따서 부내복종이라고 하고 있다. 부내는 본래 비인군 일방면(庇仁郡 一方面: 당시 행정 구역) 지역으로 북내[현 종천천(鍾川川)] 가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우리말 지명으로 북내 또는 종천이라고도 한다.01 이 지명유래를 통해 상제님께서 ‘비인복종’이라고 하신 말씀을 보면 상제님 재세 시 부내복종 터가 비인군에 속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따라서 비인복종이란 비인군 부내에 있는 명당 터인 복종혈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비인복종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전설이 『서천군지』에 다음과 같이 수록되어 있다.02


  중국에 사신으로 간 조선 선비가 조선으로 돌아오려고 할 때쯤, 풍수에 밝은 중국 도학자가 선비에게 지도가 그려진 부채를 선물하였다. 선비에게 부채를 건네주며 말하기를, “그 지도에 그려진 곳에 땅을 파면 금싸라기 서 되가 나올 것이니, 조선으로 돌아가면 그러한 장소를 찾아 그 땅에 묘를 쓰면 유명한 사람이 나오며, 집안의 영화를 누릴 것이다”라고 하였다. 조선으로 돌아온 선비는 전국을 돌며 부채의 지도와 같은 장소를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현재 서천군 종천면 종천[鍾川: 부내 또는 북내]에 이르러 지도와 비슷한 곳을 발견하였다. 그는 그곳 주위를 파보았으나, 금싸라기는 나오지 않았다.
  선비가 죽고 난 뒤, 그곳은 부내복종이라는 명당 터로 전국에 알려지며,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 1517-1578)에게도 이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부내복종 터를 찾기 위해 백일동안 기도를 올렸는데, 어느 날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그대에게 내가 이 명당 터를 알려 줄 테니 그대는 구경만 하여라”라고 그 장소를 알려 주었다. 산신령이 알려 준 장소를 발견하고 땅을 파보니 금싸라기가 나왔다. 그곳에 지장풀로 묶어 표시해두고 집에 돌아와 잠이 들었는데, 그때 노한 얼굴로 다시 산신령이 나타나 “명당자리를 구경하라고 했지, 그 장소에 표시하라고 했느냐.”고 그에게 호통쳤다. 그곳을 다시 찾아간 이지함은 그 주변으로 지장풀이 모두 묶여있었다. 그는 처음 팠던 곳을 찾아 파보았으나 금싸라기는 나오지 않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 산신령이 나타나 “그대가 쓸 명당은 아니야”라고 하며 사라졌다. 그 후 다시는 부내복종의 터를 찾지 못했다. 이지함은 죽기 전에 “천하의 명당은 부내에 있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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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여러 풍수지리가도 찾지 못한 명당 터다. 전설이란 역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지만, 그 내용에 대한 허구성은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부내복종의 전설에서 천하의 명당이며 누구도 찾지 못한 감추어진 명당 터라는 이야기는 사실로 여겨진다.
  천하의 명당인 비인복종의 복종혈은 풍수지리에서 어떠한 형국으로 설명하고 있을까? 복종이라는 한자 뜻에서 그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 복(覆)은 엎어져 있는 모양을 뜻하고, 종(鍾)은 우리말로 쇠북이라고 하는데, 신호를 알리는 금속 기구를 말한다. 이렇듯 복종혈은 종을 엎어놓은 형국으로 종이 땅에 누워 있는 모습을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복종혈이 깃든 곳이 종의 꼭대기나 종을 치는 종의 채에 있다고 한다.03
  앞에서 종은 우리말로 쇠북이라고 하는 것에서 보듯, 옛날에는 쇠로 만든 종도 북에 포함하였다고 한다.04 북은 역사가 오래된 타악기로, 옛날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장고(杖鼓), 쇠북[金鼓], 청동북[靑銅金鼓] 등 채를 두드려 소리 내는 기구를 북이라 통칭하였다. 이것을 볼 때, 상제님의 말씀에서 비인복종의 종과 북도수의 북은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또 복종혈이 깃든 곳과 관련하여 상제님의 말씀이 있다. 복종의 혈 자리가 종의 꼭대기 혹은 종의 채에 깃들어 있다는 데에서 ‘북은 채가 있어야 하나니’라는 말씀과 연결 지어 보면 상제님께서 비인복종 혈을 발음하기 위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북채에 대해 상제님께서 ‘수저가 북채라. 행군할 때 이 수저로 북채를 해야 녹이 진진하여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비인복종의 혈을 발음하기 위해 채가 있어야 하는데, 상제님께서는 신경원(辛京元)의 집에서 가져온 수저를 북채로 정하셨다. 수저는 숟가락만을 말하거나 숟가락·젓가락을 아울러 이르는 우리말로 우리나라의 식문화를 대표하는 도구이다. 수저는 우리 생활 전반에 오랜 세월 동안 스며들어 있는 도구로 옛날부터 복록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생각해 왔다. 그 사례로 조선 후기, 한말(韓末)에는 숟가락에 복(福), 수(壽), 희(囍) 등의 길상어문(吉祥語文: 운수가 좋기를 바라며 새긴 한자 무늬)을 장식하여 사용했다는05 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수저는 우리 민족의 식문화에 꼭 필요했던 도구이기에 복록이라는 상징성이 자연스럽게 부여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수저는 복록을 누리고자 했던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있는 물건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러한 이유에서 상제님께서 수저를 북채로 해야 한다는 말씀은 수저에 담긴 복록의 상징성 때문은 아닐까 추정해 본다. 아울러 북도수에 북채로 쓰인 수저는 신경원의 집에서 가져온 것으로, 이후에 상제님께서 ‘경원의 집에 복록소(福祿所)를 정하노라’라고 하심도 이 북도수와 연관성이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06
  ‘북은 채가 있어야 하나니.’라는 상제님의 말씀은 세상 사람들이 찾지 못한 비인복종이 종의 꼭대기나 종의 채에 그 혈이 깃들어 있기에 그 명당을 발음케 하신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행군할 때 이 수저로 북채를 해야 녹이 진진하여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은 수도인들이 복록을 누리면서 나아갈 수 있도록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함이 아닐까?

 

 

 

 


01 한글학회, 『한국지명총람4』 충남편ㆍ하 (서울: 한글학회, 1988), p.129.
02 서천군지편찬위원회, 『서천군지』 제1권 (금강인쇄사, 2009), pp.539-541 참조.
03 박인태, 『풍수리학대사전』 (서울: 혜성출판사, 2015), p.546; 정경연, 『정통풍수지리』 (서울: 평단문화사, 2006), p.755 참조.
04 「북」,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5 정미영, 「한국의 수저 사용 문화 연구」 (진주교육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18), pp.19-20..
06 예시 46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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