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중에 노름의 죄가 크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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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2.06.04 조회23,640회 댓글0건본문
▲ 투전, 김준근, 기산풍속도, 조선 말기
죄 중에 노름의 죄가 크나니라. 다른 죄는 혼자 범하는 것이로되 노름 죄는 남까지 끌어들이고 또 서로 속이지 않고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이니라.(교법 1장 58절)
『전경』에는 노름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다.01 노름은 돈이나 재물을 걸고 주사위, 골패, 마작, 화투, 트럼프 등을 사용해 서로 내기를 하는 일로 도박을 말한다. 최근에 이러한 노름은 온라인 환경뿐만 아니라 카지노 산업에서 성행하는 사행성 오락게임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상제님께서는 “죄 중에 노름의 죄가 크나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노름을 인간의 규범과 윤리에 어긋나거나 반하는 행위인 죄 중에서도 죄질이 무겁고 큰 범죄로 규정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상제님의 말씀 당시에 노름은 어떤 사회적 문제와 범죄를 일으켰던 것일까? 또 노름의 목적을 위해 남을 끌어들이고 서로가 속이는 행위는 왜 큰 범죄의 원인이 되는 것일까? 이 글에서는 노름 죄에 대한 교훈이 담긴 성구의 함의를 이해하기 위해 조선말에 성행했던 노름의 실태와 문제를 살펴보고, 그 노름 죄가 시사하는 바를 오늘날 수도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노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쾌락의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즐기던 유희였다. 특히 조선 후기는 ‘노름 천국’이라고 칭할 정도였다. 여러 문헌에서는 그 노름을 도박(賭博), 잡기(雜技), 잡희(雜戲) 등으로 명시하였다.02 당시에 여러 종류의 노름이 있었는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바둑, 장기, 쌍륙(雙六), 골패(骨牌), 투전(鬪牋), 윷놀이 등을 가장 유행하는 노름 종목으로 꼽았다. 그리고 이 중에서도 투전과 골패의 폐단이 심각하다고 밝혔다.03 『정조실록(正祖實錄)』에서 “위로는 사대부의 자제들로부터 아래로는 항간의 서민들까지 집과 토지를 팔고 재산을 털어 바치며 끝내는 몸가짐이 바르지 못하게 되고 도적의 마음이 점차 자라게 됩니다.”04라는 사직(司直) 신기경(愼基慶)의 상소문을 볼 때 노름은 개인의 일탈을 넘어 사회의 문제로 대두되었다. 당시 나라에서는 노름을 도둑질보다 더 큰 해를 끼친다고 하여 법[『대명률(大明律)』]으로 “재물을 걸고 도박하는 경우 모두 장 80에 처하고 노름판의 재물은 관에 귀속시킨다.”05라고 엄금했으나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조선말에 이르러 투전과 골패 중에서 더 널리 유행한 것은 투전이었다. 『전경』에 상제님께서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하시면서 종도(從徒)들과 민중들의 교화를 위해 언급하셨던 ‘진주 노름’과 ‘독조사’, 그리고 ‘가구판 노름’ 역시 당시 사회의 저변에 정착했던 투전과 관련된 용어들이다. 투전은 두꺼운 종이에 기름을 먹여 만들었다. 너비는 손가락 굵기만 하고 길이는 15cm 정도로 그림이나 글귀로 끗수를 표시하였다. 80장이 한 벌이지만 보통 40장만을 사용하였다.06 당시 조선 사회에서 투전은 곧 노름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면 투전이 대표적인 노름으로 확산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확산 배경에는 투전이 대부분 끗수를 맞추어 높은 자가 이기는 방식이므로 다른 노름에 비해 규칙이 간단하여 배우기 쉽다는 것과 투전이 돈을 먼저 건 뒤에 패를 뽑아가며 승부를 겨루는 방식이므로 쉽게 승부가 결정되어 금전의 왕래가 빠르다는 것이 강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07
투전의 간편성과 순환성은 도박자가 일시에 거금을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이 되므로 전문적인 노름꾼 집단이 출현하는 계기가 되었다. 도박의 경험과 기술을 갖춘 노름꾼들이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남을 속여가며 돈을 따내 풍성하게 소비하였고 이는 일반 민중들이 도박에 빠지는 계기로 작용하였다.08 노름꾼들은 도박의 조건과 상황에 따라 투전 외에도 윷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는 상제님께서 용두리에서 공사를 보실 때 남의 돈을 빼앗기 위해 윷판을 벌린 노름꾼들을 훈도하셨던 『전경』의 내용[권지 1장 18절]09에서도 확인된다. 조선말에 노름은 망국병이라 할 정도로 사회적 병폐가 되었다. 1878년 의정부(議政府)에서는 많은 백성이 빈털터리가 되어 유랑하거나 도적이 되는 원인을 투전의 확산이라고 판단했다.10 투전의 폐해는 가산을 탕진하고 절도를 저지르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투전에 빠져서 생긴 노름빚, 즉 고리대금을 갚는 과정에서는 사기와 폭행이 동반된 것은 다반사였고 심지어 살인과 같은 흉악한 범죄들 또한 빈번하게 발생했다.11 노름이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언제나 그랬듯이 다른 범죄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상제님께서 “죄 중에 노름의 죄가 크나니라.”라는 말씀은 단순 절도뿐만 아니라 패륜적 범행의 원인이 되었던 노름과 그 폐단이 발생했던 조선말 사회적 문제와도 연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노름은 중독성과 투기성이 심각하여 개인뿐만 아니라 집안 전체가 망하는 패가망신의 지름길이었다. 하지만 도박자들이 상습적인 노름을 중단할 수 없었던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오늘날 도박연구자들은 도박의 개입 수준 및 도박 문제의 심각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동기를 금전 추구 동기로 파악하고 있다. 도박자가 도박에 빠지게 되면, ‘무엇’을 위해 존재했던 사용 가치로서의 돈은 의미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점차 확대되어 지배적 가치로 급부상한다. 즉 ‘돈을 따서[복구해서] 무엇인가를 하겠다’가 아니라, ‘돈을 따기 위해[복구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로 의미가 변해가는 것이다.12 도박 동기로서 금전 추구는 바로 돈과 재물을 걸고 내기를 하는 노름의 본질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도박자의 금전 추구는 노름의 동기이자 노름의 목적이 된다. 노름에 빠진 도박자는 결국 남의 돈과 재물을 쟁취하고자 하는 강렬한 금전 추구의 욕망 때문에 노름에 대한 집착을 쉽게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이때 도박판에서 생기는 돈의 이득과 손실은 소유권의 이동이지 전혀 생산적이지 못하다. 도박자가 자신의 도박행위를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되면 정상적인 직업과 생산활동을 버리고 도박판에만 몰입하게 된다.
▲ 투전, 성협 풍속화첩 국립중앙박물관소장
상제님께서는 “노름 죄는 남까지 끌어들이고 또 서로 속이지 않고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이니라.”라고 교훈하셨는데, 여기서 ‘노름 죄’와 관련하여 말씀하신 ‘목적’ 또한 노름의 목적인 금전 추구[돈과 재물을 쟁취]라는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도박자가 금전 추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남을 끌어들이고 서로 속이는 범죄 행위를 반드시 감행하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남에 대한 유인과 속임의 행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노름꾼들이 노름판에서 범하는 가장 흔한 범죄이다. 노름은 혼자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유인해서 노름판으로 끌어들여야 했다. 그 유인의 대상은 대부분 노름에 대해 전혀 지식이 없거나 세상의 물정에 어두운 사람들이었다. 이때 노름꾼들은 승패 조작을 통해 점차 흥미를 유발한 후에 현란한 손놀림과 눈속임 등을 통해 가진 돈을 모두 갈취하여 노름빚을 지도록 유도했다.13 또 노름꾼들은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들키는 것은 돈을 잃는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표정 관리와 허위적 언행 등을 이용하여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 서로가 속이는 행위로 승률을 높이고자 했다.14 노름에서 목적을 위해 행해지는 모든 유인과 속임은 허구성(虛構性)과 허위성(虛僞性), 즉 거짓을 본질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병적 도박에 관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도박자들은 유인과 속임을, 즉 거짓 행위를 도박에 적합한 일반적인 행동 양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도박에 참여하는 빈도와 금액이 높을수록 허위성이 몸에 배게 된다고 한다.15 이처럼 노름은 거짓과 속임의 위험성을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는 단적인 실례라고 할 수 있다.
▲ 투전허고, 김준근, 기산풍속도, 조선 말기
상제님께서 말씀하셨던 ‘노름 죄’에 대한 『전경』의 성구[교법 1장 58절]는 ‘노름 죄가 큰 죄인 것은 남을 끌어들이고 속이지 않고서는 목적을 이룰 수 없는 까닭이다’라고 요약정리할 수 있다. 이를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관계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남을 끌어들이고 속이는 것이 곧 큰 범죄이다’라는 논리적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수도 생활에서 유인과 속임의 본질인 거짓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상제님께서는 “사곡한 것은 모든 죄의 근본이요,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 되니라.”(교법 3장 24절)고 교훈하셨다. 이 말씀을 도전님께서는 “진실은 만복(萬福)의 근원이요, 거짓은 모든 죄악의 근본이 된다”16라고 하여 ‘사곡’이 ‘거짓’임을 분명하게 밝혀 주셨다. 따라서 상제님과 도전님의 말씀을 통해 ‘거짓[사곡한 것]은 모든 죄악의 근본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도전님께서는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거짓으로 “위세를 부려 지위를 노리는 것, 자존(自尊)으로 남을 멸시하는 것, 공리(功利)를 과장하기 위하여 자기 사람을 만들기에 힘쓰는 것, 허물을 은폐하기 위하여 아첨하는 것”17을 예로 들어 말씀하셨다. 우리의 수도에서 진실과 거짓은 곧 수도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척도가 된다고 할 것이다. 『대순진리회요람』에 “인간의 모든 죄악의 근원은 마음을 속이는 데서 비롯하여 일어나는 것인즉 인성의 본질인 정직과 진실로써 일체의 죄악을 근절하라.”18고 명시되어 있다. 수도의 성공은 결국 모든 죄악의 근원이 되는 거짓, 즉 마음을 속이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다.
지금까지 상제님께서 “죄 중에 노름의 죄가 크나니라”고 천명하셨던 『전경』의 성구를 조선말 사회적 문제였던 노름의 실태와 폐단을 통해서 살펴보았다. 특히 노름 죄와 관련하여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남을 끌어들이고 서로 속이는 거짓이 큰 범죄의 원인이 된다고 밝혀 주셨는데, 이 가르침은 우리의 수도 생활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시사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도박만이 아니다. 모든 일에서 거짓말과 거짓 행동을 반복하게 되면 허위의 습관이 길러지고 결국 자신의 자아를 거짓되게 만드는 것에 이르게 한다. 수도의 목적인 도통(道通)은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무자기(無自欺)를 실현할 때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도통을 받기 위해서는 모든 죄악의 근원이 되는 거짓을 근절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대한 수도의 과제가 된다. 상제님께서는 “남을 속이지 말 것이니 비록 성냥갑이라도 다 쓴 뒤에는 빈 갑을 반드시 깨어서 버려야 하나니라.”(교법 1장 57절)고 말씀하셨다. 노름 죄의 교훈은 수도에서 모든 죄악의 근본이 되는 거짓, 즉 남을 속이는 행위에 대한 성찰과 경계의 가르침이라는 점에서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01 행록 3장 65절, 교법 1장 58절, 교법 3장 36절, 권지 1장 18절.
02 유승훈, 『다산과 연암, 노름에 빠지다』 (경기: 살림, 2006). p.13.
03 정약용, 『목민심서(牧民心書)』, 「형전(刑典)·금포(禁暴)」.
04 『정조실록(正祖實錄)』 33권, 정조 15년 9월 19일 신묘.
05 『대명률직해』 제26권, 형률(刑律), 잡범(雜犯) 402조 도박(賭博)
0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encykorea.aks.ac.kr)
07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편, 『한국민속대관』 4 (서울: 문정사, 1982), p.2577.
08 유승훈, 「투전고」, 『민속학연구』 11 (2002), p.155.
09 상제께서 김 덕찬ㆍ김 준찬 등 몇 종도를 데리고 용두리에서 공사를 행하셨도다. 이곳에 드나드는 노름꾼들이 돈 八十냥을 가지고 저희들끼리 윷판을 벌이기에 상제께서 저희들의 속심을 꿰뚫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저 사람들이 우리 일행 중에 돈이 있음을 알고 빼앗으려 하나니 이 일로써 해원되니라” 하시고 돈 五十냥을 놓고 윷을 치시는데 순식간에 八十냥을 따시니라. 품삯이라 하시며 五푼만을 남기고 나머지 돈을 모두 저희들에게 주며 말씀하시니라. “이것은 모두 방탕한 자의 일이니 속히 집으로 돌아가서 직업에 힘쓰라.” 저희들이 경복하여 허둥지둥 돌아가니라.…(권지 1장 18절).
10 『고종실록(高宗實錄)』 15권, 고종 15년 11월 19일 갑자.
11 전경목, 「고문서와 검안에 나타난 조선말기 노름의 실상」, 『고문서연구』 50 (2017), pp.58~68.
12 김용근, 「도박중독자가 구성하는 돈과 도박의 의미」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6), p.6.
13 전경목, 앞의 글, p.57.
14 공정식, 「상습도박 중독자들의 심리와 처우」, 『한국범죄심리연구』 3 (2007), p.6.
15 공정식, 앞의 글, p.10.
16 「도전님 훈시」(1985.10.19)
17 「도전님 훈시」(1985.10.19)
18 『대순진리회요람』,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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