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견수 복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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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9.12.23 조회28,291회 댓글0건본문
최 수운의 가사에 “도기장존 사불입(道氣長存邪不入)”이라 하였으나 상제께서는 “진심견수 복선래(眞心堅守福先來)”라 하셨도다.
(교법 2장 3절)
『전경』에는 동학 관련된 내용이 여러 군데 등장한다. 특히 상제님께서 동학 가사나 수운 가사 구절 등을 자주 인용하면서 종도들에게 설명하시는 부분이 나타난다.01 이것은 상제님의 종도 중 일부가 동학의 신도였던 만큼 그들이 알고 있는 동학을 통해 상제님의 도를 이해시키시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위 구절은 상제님께서 수운의 시와 대비해 ‘진심견수 복선래’의 의미를 말씀하신 것이라 할 수 있다.
수운이 지은 ‘도기장존 사불입’은 그 뒤에 ‘세간중인 부동귀(世間衆人不同歸)’라는 구절과 이어져 있는데,02 그가 저술한 『동경대전(東經大全』의 「입춘시(立春詩)」에 등장한다. 이 시는 수운이 득도하기 전해인 1859년 입춘을 맞아 구도(求道)를 위한 새로운 결의를 다짐하는 마음에서 지은 것이다. 이때 수운은 자신의 이름을 ‘제선(濟宣)’에서 어리석은 세상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제우(濟愚)’로 바꾸는데03 이를 통해 세상을 구하려는 뜻을 다짐한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수운이 세상과 멀리한 채 뜻을 세운 데에는 그의 파란만장한 수도 과정과 관련이 있다. 그는 31세가 되던 1854년 경주 용담에서 세상을 구할 수 있는 도를 깨닫기 위해 수도를 선택했다. 그러던 중 다음 해 3월에 어떤 스님으로부터 책 한 권을 얻었는데 여기에 기도(祈禱)에 관한 가르침이 담겨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수운은 성리학(性理學)에서 말하는 천리(天理)로서의 천이 아닌, ‘섬겨야 할 대상으로서의 천[事天]’, ‘기도해야 할 대상의 천[祈天]’으로 그 인식을 전환한 것이다.04
그렇지만 그의 구도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1856년 봄, 경남 양산 천성산(千聖山)에 있는 내원암(內院庵)에서 입산수도를 시작했지만 깨달음의 결과가 없었고 일정한 수입이 없이 수도에만 매진하다 보니 생활고까지 겪게 되었다. 수운은 자신의 논을 담보로 돈을 빌려 철점(鐵店)05을 경영했지만, 2년 만에 실패해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다. 이렇게 돈을 갚을 능력이 어렵게 되자 날마다 빚 독촉에 시달리기까지 하였다.
이런 서글픈 체험을 온몸으로 겪은 후에 지었던 그의 시에는 어떠한 과정에서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의와 한편으로 세상과 단절한 채 도기(道氣)를 쌓아 가겠다는 자세가 엿보인다. 수운이 표현한 도기는 수련에 지극히 정진할 때 생기는 기운06으로 오랫동안 수련을 해야만 가능한데, 외부에서 발생하는 삿된 기운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내면의 기(氣)를 쌓기 위한 시간적 노력이 요구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당시 수운의 시는 민중의 염원을 구제하려는 의미보다는 세속과의 단절을 통한 자신의 구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운의 시가 기(氣)를 지속해서 쌓음으로써 외부의 삿된 기운을 막는 상태를 지향했다면 상제님의 시는 진실한 마음을 지켜나감으로써 당시의 민중들이 염원하였던 복을 얻게 해주시려는 측면을 보여준다. 상제님께서는 “인간의 복록은 내가 맡았으나 맡겨 줄 곳이 없어 한이로다. 이는 일심을 가진 자가 없는 까닭이라. 일심을 가진 자에게는 지체 없이 베풀어 주리라”라고 말씀하셨다.07 이렇게 본다면 진심을 지켜나가는 것이 일심을 가진다는 의미가 되며 이때 복이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실한 마음일까? 도전님께서는 “진실이란 인간에게 주어진 본래의 참된 마음씨니, 자식이 부모를 위하는 마음, 조상추모(祖上追慕)의 마음, 제자가 스승을 받들고 배우는 마음, 경신존천(敬神尊天)의 마음이다. 인간의 진실한 천품성(天稟性)이니, 이 천품성이 인간의 윤리 도덕의 바탕이 된 것이다”08라고 말씀하셨다. 즉, 진심은 상대를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이며 윤리 도덕 실천도 이러한 진심이 바탕이 되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상제님께서 “진실로 마음을 간직하기란 죽기보다 어려우니라”09라고 하신 말씀에서 진심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느낄 수 있다. 한편으로 이것은 인간에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사심(私心) 역시 강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남을 잘되게 하라는 상제님의 도를 닦는 과정에서도 나의 이익을 먼저 생각할 때 순간 사심에 치우쳐버리게 된다. 처음 먹었던 진실한 마음이 변질되어 거짓된 행동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진심을 굳건히 지켜 복을 얻게 된 과정을 상제님께서 비유하신 머슴 이야기에서 잘 알 수 있다. 머슴은 선술을 얻기 위해 스승을 믿는 마음에 10년 동안 진심갈력(盡心竭力)으로 진실하게 머슴살이를 했었다. 스승이 물 위에 뻗은 버드나무 가지에 올라가서 물 위에 뛰어내리라는 말을 할 때도 진실로 그 말을 그대로 믿고 뛰어내려 결국 신선이 되어 천상으로 올라가게 되었다.10 10년 동안의 진심을 마지막 순간까지 보임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복을 얻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수도는 진심을 지켜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수도 과정이 어려운 것은 진심을 지켜나가는 과정에서 순간순간 발동하는 내면의 사심에 의해 진심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진심을 지킬 것인지, 사심을 지닐 것인지는 결국 나의 자유의사에 달려있다. 이런 점에서 상제님으로부터 복을 받고 못 받고는 자신의 주체적 선택에 달린 것이다. 상제님께서 아무리 복을 주고자 하시지만, 선택은 결국 우리의 몫으로 남는다.
수운의 시가 내면의 기운을 쌓아나가는 노력을 통해 삿된 것이 오지 못하도록 경계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었다면 상제님의 시는 나 자신이 인간 본연의 천품성인 진실한 마음과 남을 잘 되게 하려는 실천으로 덕을 펴나갈 때, 복을 받게 된다는 점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상제님의 시는 주체적 의지를 통해 진심을 굳건히 지켜나갈 때 덕화(德化)를 모실 수 있게 됨을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01 동학 가사로 표현된 구절은 공사 3장 21절, 교법 1장 35절, 교법 2장 9절, 교법 2장 42절이며 수운 가사로 표현된 구절은 행록 5장 17절, 공사 2장 3절, 교법 1장 33절, 교법 3장 32절이 있다.
02 ‘도의 기운이 오래 머물러 있으면 삿된 것이 들어오지 못하니 자신이 득도할 때까지 세상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03 『天道敎會史』, 「天統」 : “自是로 大神師 山外에 不出을 盟誓하시고 名을 改하야 濟愚라 하시고”
04 김용휘, 「崔濟愚의 侍天主에 나타난 天觀」, 『韓國思想史學』 20집, 한국사상사학회, 2003, p.222참조.
05 금점(金店)·은점(銀店)·동점(銅店)과 같이 철제품을 생산하는 업을 말한다. 대장간 정도로 오해하는 이가 있으나 철점이란 철광업을 총칭하는 말이다. 철점에는 채광업과 용광업과 용선업(鎔銑業)이 있다. 채광업은 토철과 사철(砂鐵)을 채취하여 판매하는 업이고, 용광업은 토철과 사철을 사다가 용광로에 녹여 편철(片鐵)을 만들어 파는 업이다. 용선업은 편철을 사다가 솥이나 보습과 같은 쟁기나 가구를 주조하여 파는 업이다. 수운은 그중 용광업 분야의 철점을 경영하였다. (표영삼, 『동학』 1통나무(2004). p.83.)
06 윤석산 역주, 『동경대전』, 모시는사람들, 2006, p.82.
07 교법 2장 4절.
08 「도전님 훈시」 (1985.10.19.)
09 교법 2장 6절.
10 예시 8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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