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만복(萬福)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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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6.08.02 조회28,519회 댓글0건본문
상제께서 교훈하시기를 “인간은 욕망을 채우지 못하면 분통이 터져 큰 병에 걸리느니라. 이제 먼저 난법을 세우고 그 후에 진법을 내리나니 모든 일을 풀어 각자의 자유 의사에 맡기노니 범사에 마음을 바로 하라. 사곡한 것은 모든 죄의 근본이요,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 되니라. 이제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임하여 마음에 먹줄을 겨누게 하고 사정의 감정을 번갯불에 붙이리라. 마음을 바로 잡지 못하고 사곡을 행하는 자는 지기가 내릴 때에 심장이 터지고 뼈마디가 퉁겨지리라. 운수야 좋건만 목을 넘어가기가 어려우리라.” (교법 3장 24절)
인간의 마음에는 양심(良心)과 사심(私心)이 있다. 양심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성(天性) 그대로의 본심(本心)이요, 사심은 외적 사물에 대한 물욕(物慾)에 의해 일어나는 사사로운 욕심(慾心)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 양심과 사심을 구별하지 못하여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사사로운 생각을 모두 자신의 본심으로 여기고 욕심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데서 무도리(無道理)와 부조리(不條理)가 일어나게 된다.
인간은 내심으로 정한 바에 따라 행동하게 되는데 그 마음이 양심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도리에 알맞게 되지만, 물욕에 의하여 발동하는 욕심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예법과 도리에 어긋나는 언동을 감행하게 된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지 못하면 분통을 터뜨리고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며, 심지어는 하늘을 원망하기도 한다.
더욱이 선천에는 인간과 사물이 상극에 지배되어 누천년을 내려오며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三界)를 채웠으므로 천지는 상도(常道)를 잃고 갖가지 재화(災禍)가 번갈아 끊임없이 인세를 진탕하니,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와 사회의 상극적 배경이 인간의 사심 발동을 조장하고 양심의 소리는 미비하게 만든 것이다.
원시의 모든 신성과 불과 보살들이 인류와 신명계의 겁액(劫厄)을 구천에 하소연하여 이조 말엽 극도로 악화한 종교적ㆍ정치적ㆍ사회적 도탄기에 인세에 강세하신 상제님께서는 이 세상을 진단하시기를 “아버지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 무도함이요, 임금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 무도함이며, 스승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 무도함이다. 세상에 충이 없고, 세상에 효가 없으며, 세상에 열이 없으니, 고로 천하가 다 병이 들었느니라(忘其父者無道 忘其君者無道 忘其師者無道 世無忠 世無孝 世無烈 是故天下皆病).”(행록 5장 38절)고 하셨다.
충효열은 삼강(三綱)이고, 오륜(五倫)은 삼강에서 뻗어 나온 가지로 다섯 가지 실천 윤리이다. 그러니 충효열은 곧 삼강오륜(三綱五倫)이다. 상제님께서는 인세에 삼강오륜이 행해지지 않으니 천하가 다 병들었다고 하셨다. 삼강오륜은 인간 도리의 강령이고 인륜이다. 인륜은 사람이면 반드시 행해야 하는 도리이다. 인륜을 바로 행하는가 그렇지 못한가 하는 것이 인간과 금수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인세에 인륜도덕이 무너지고 병이 들면 금수세상이 되는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바로 이 무도병(無道病)을 고치시고자 이 세상에 강림하신 것이다.
대순진리회 수도인은 수도생활을 통하여 무도병을 고쳐나가고 있기 때문에 운수가 있다. 수도를 해도 무자기를 근본으로 하여 예법에 합당케 하고 도리에 알맞게 행하여 나감으로써 무도병을 고치지 않으면 운수를 받지 못한다. 그래서 상제님께서는 잘못 닦은 자는 운수자리에 갈 때 상제님을 따르지 못하고 엎어진다고 하시며 부디 마음을 부지런히 닦고 상제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당부하신 것이다.
수도하여 올바른 사람이 되면 도인이라 한다. 도인은 자기 자신이 올바른 사람이 되고, 올바른 일을 가르치며, 올바른 생활을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올바르다는 것은 언어ㆍ행동ㆍ처사가 이치와 경위(經緯)에 벗어남이 없이 옳고 바르다는 뜻이다. 도(道)가 경위이고, 경위가 도리다. 인세의 도리란 삼강오륜이다. 그러므로 삼강오륜에서 벗어난 도인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도인이 되어야 운수를 받을 수 있고 도통을 받을 수 있다. 훈회와 수칙을 비롯하여 도법과 도규를 잘 지키고 바르게 행하여야 도인이 된다. 그러려면 무자기(無自欺)가 되어야 한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여야 하는 것을 도리라 하고, 도리가 곧 도덕이다. 도덕의 근본 원리가 무자기이다. 이것은 말로만 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무자기가 되어 완전한 도인이 되면 욕심과 사심이 없어진다. 천성 그대로의 본심인 양심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도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다. 도전님께서 훈시하신 “내 마음을 거울과 같이 닦아서 진실하고 정직한 인간의 본질을 회복했을 때 도통에 이른다.”고 하신 것은 이를 두고 이르신 것이다.
사곡(邪曲)한 것은 모든 죄의 근본이고,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다. 사곡에서 ‘사(邪)’는 도리에 어긋나 올바르지 않은 것이고, ‘곡(曲)’은 대나무나 싸리로 만든 바구니 모양의 굽은 모양을 본뜬 글자로 ‘굽다’는 뜻에서 도리(道理)에 맞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사곡은 올바르지 않고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을 뜻한다. 사곡은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의 모든 죄악의 근원은 마음을 속이는 데서 비롯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결원(結冤)이 곧 작죄(作罪)라, 척(慼)을 짓는 것이 곧 죄를 짓는 것이다. 척은 나에 대한 남의 원한이니, 남을 미워하거나 언덕을 베풀지 않거나, 남을 억울하게 하거나, 남을 서운하게 하거나, 남의 호의를 거스르는 것 등이 모두 척을 짓는 행위이다. 척을 짓는 행위는 모두 자신의 양심에서 벗어난 언어ㆍ행동ㆍ처사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범사에 마음을 바로 하여 양심의 본질인 정직과 진실로써 일체의 죄악을 근절하여야 한다.
진실은 모든 복의 근원이다. 진실(眞實)은 ‘거짓이 없는 사실’이나 ‘마음에 거짓이 없이 순수하고 바르다.’는 뜻이다. ‘사실(事實)’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을 뜻하는 말이라면 ‘진실’은 ‘거짓이 없는 사실’을 뜻하는 말이다. 또 진실한 마음이라고 할 때의 진실은 참되고 순수하고 바르다는 뜻이다.
참 진(眞)은 금문(金文)에서 비수 비(匕)에 솥 정(鼎) 자를 합한 글자이다. 비(匕)는 수저를 본떠 솥에 숟갈로 물건을 채워 담는 모양에서 채우다→차다→참의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 믿을 신(信) 자와 통하여 속이 꽉 차 있는 진짜, 진실의 뜻을 나타낸다. 진(眞)에 솥 정(鼎) 자가 들어가는 것은 우리 도(道)의 진법(眞法)을 설정하신 도주님의 존호가 정산(鼎山)이시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인다.
열매 실(實)은 금문에서 집 면(宀)과 재물을 상징하는 조개 패(貝)에 두루 주(周) 자를 합한 글자이다. 주(周)는 ‘널리 미치다’는 뜻이다. 집 안에 재화가 널리 미치다는 뜻에서 ‘가득 차다’의 뜻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진실은 ‘참됨이 가득하다’는 뜻이다. 마음이 인간 본연의 참된 마음인 양심으로 가득 찬 상태가 진실이다. 도인은 도주님의 진법, 대순진리로 자신의 마음을 진실하게 채워나가야 한다.
참고로 거짓의 어원은 거죽이다. 거짓은 사실과 어긋나는 것이나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꾸미는 것이다. 거죽은 가죽과 같은 어원의 말인데, 가죽[皮]이 동물의 겉을 싸고 있는 부분이라면 거죽[表]은 물체의 겉 부분을 이르는 말이다. 거죽→거즛→거짓으로 변하였다. 거죽은 껍데기라는 소리이다.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가 거짓이다. 참된 마음인 양심이 아니라 껍데기 마음인 사심에 발동하는 것이 거짓이다.
복(福)은 보일 시(示)와 가득할 복(畐)을 합한 글자이다. 시(示)는 본래 신(神)께 제사를 지내는 제사상을 본떠 만든 글자이고 눈[目]으로 보다는 뜻의 볼 견(見) 자와는 달리 ‘신이 미래를 보여주거나 알려주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계시(啓示)는 ‘신이 일깨워주고[啓] 알려주다[示].’는 뜻이다. 복(畐)은 신께 올리는 술통을 상형한 문자다. 술은 해와 달, 별의 기운과 땅의 덕에 인공(人功)이 더해져 거둔 여러 가지 곡식으로 빚어 만든 천ㆍ지ㆍ인 정성의 정수이다. 제사는 이런 술과 음식을 신께 바치는 정성의 의식이다. 복(福) 자에는 상제님을 존숭하고 신명을 공경하며 조상님을 섬기는 제사를 잘 모시어 상제님과 신명, 조상님으로부터 복을 받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복은 우로(雨露)와 같이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것이다.
인간은 복을 받을 수는 있지만 줄 수는 없다. 남이 잘 되기를 빌어줄 수는 있다. 이것을 ‘축복한다.’고 말한다. 축복(祝福)이란 남을 위하여 그가 상제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수 있게 비는 것이다. 생과 수명과 복록은 상제님의 대은(大恩)이다. 모든 인간은 복의 근원처가 상제님이심을 자각하고 상제님께 성ㆍ경ㆍ신을 다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 된 근본 도리이다.
왜 진실이 만복의 근원이 되는가? 그것이 천리(天理)이고 상제님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상제님께서 직접 “사곡한 것은 모든 죄의 근본이요,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 되니라.”(교법 3장 24절) 하셨고, “나를 믿고 마음을 정직히 하는 자는 하늘도 두려워하느니라.”(교법 2장 7절) 하셨으며, “마음을 진실로 간직하면 복이 먼저 온다(眞心堅守福先來).” 하셨다.
시속에 ‘무척 좋다.’는 말이 있듯이 좋은 복은 척이 없는 데서 받게 되고 무척(無慼)은 무자기에서 비롯된다. 인성의 본질은 양심이고 양심의 본질은 정직과 진실이니, 도인은 모든 생활(수도생활, 가정생활, 사회생활)에서 사심을 버리고 양심인 천성을 되찾기에 전념하여야 한다. 우리 도인이 새로운 시대에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양심을 회복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에는 양심(良心)과 사심(私心)이 있다. 양심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성(天性) 그대로의 본심(本心)이요, 사심은 외적 사물에 대한 물욕(物慾)에 의해 일어나는 사사로운 욕심(慾心)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 양심과 사심을 구별하지 못하여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사사로운 생각을 모두 자신의 본심으로 여기고 욕심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데서 무도리(無道理)와 부조리(不條理)가 일어나게 된다.
인간은 내심으로 정한 바에 따라 행동하게 되는데 그 마음이 양심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도리에 알맞게 되지만, 물욕에 의하여 발동하는 욕심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예법과 도리에 어긋나는 언동을 감행하게 된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지 못하면 분통을 터뜨리고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며, 심지어는 하늘을 원망하기도 한다.
더욱이 선천에는 인간과 사물이 상극에 지배되어 누천년을 내려오며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三界)를 채웠으므로 천지는 상도(常道)를 잃고 갖가지 재화(災禍)가 번갈아 끊임없이 인세를 진탕하니,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와 사회의 상극적 배경이 인간의 사심 발동을 조장하고 양심의 소리는 미비하게 만든 것이다.
원시의 모든 신성과 불과 보살들이 인류와 신명계의 겁액(劫厄)을 구천에 하소연하여 이조 말엽 극도로 악화한 종교적ㆍ정치적ㆍ사회적 도탄기에 인세에 강세하신 상제님께서는 이 세상을 진단하시기를 “아버지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 무도함이요, 임금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 무도함이며, 스승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 무도함이다. 세상에 충이 없고, 세상에 효가 없으며, 세상에 열이 없으니, 고로 천하가 다 병이 들었느니라(忘其父者無道 忘其君者無道 忘其師者無道 世無忠 世無孝 世無烈 是故天下皆病).”(행록 5장 38절)고 하셨다.
충효열은 삼강(三綱)이고, 오륜(五倫)은 삼강에서 뻗어 나온 가지로 다섯 가지 실천 윤리이다. 그러니 충효열은 곧 삼강오륜(三綱五倫)이다. 상제님께서는 인세에 삼강오륜이 행해지지 않으니 천하가 다 병들었다고 하셨다. 삼강오륜은 인간 도리의 강령이고 인륜이다. 인륜은 사람이면 반드시 행해야 하는 도리이다. 인륜을 바로 행하는가 그렇지 못한가 하는 것이 인간과 금수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인세에 인륜도덕이 무너지고 병이 들면 금수세상이 되는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바로 이 무도병(無道病)을 고치시고자 이 세상에 강림하신 것이다.
대순진리회 수도인은 수도생활을 통하여 무도병을 고쳐나가고 있기 때문에 운수가 있다. 수도를 해도 무자기를 근본으로 하여 예법에 합당케 하고 도리에 알맞게 행하여 나감으로써 무도병을 고치지 않으면 운수를 받지 못한다. 그래서 상제님께서는 잘못 닦은 자는 운수자리에 갈 때 상제님을 따르지 못하고 엎어진다고 하시며 부디 마음을 부지런히 닦고 상제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당부하신 것이다.
수도하여 올바른 사람이 되면 도인이라 한다. 도인은 자기 자신이 올바른 사람이 되고, 올바른 일을 가르치며, 올바른 생활을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올바르다는 것은 언어ㆍ행동ㆍ처사가 이치와 경위(經緯)에 벗어남이 없이 옳고 바르다는 뜻이다. 도(道)가 경위이고, 경위가 도리다. 인세의 도리란 삼강오륜이다. 그러므로 삼강오륜에서 벗어난 도인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도인이 되어야 운수를 받을 수 있고 도통을 받을 수 있다. 훈회와 수칙을 비롯하여 도법과 도규를 잘 지키고 바르게 행하여야 도인이 된다. 그러려면 무자기(無自欺)가 되어야 한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여야 하는 것을 도리라 하고, 도리가 곧 도덕이다. 도덕의 근본 원리가 무자기이다. 이것은 말로만 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무자기가 되어 완전한 도인이 되면 욕심과 사심이 없어진다. 천성 그대로의 본심인 양심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도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다. 도전님께서 훈시하신 “내 마음을 거울과 같이 닦아서 진실하고 정직한 인간의 본질을 회복했을 때 도통에 이른다.”고 하신 것은 이를 두고 이르신 것이다.
사곡(邪曲)한 것은 모든 죄의 근본이고,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다. 사곡에서 ‘사(邪)’는 도리에 어긋나 올바르지 않은 것이고, ‘곡(曲)’은 대나무나 싸리로 만든 바구니 모양의 굽은 모양을 본뜬 글자로 ‘굽다’는 뜻에서 도리(道理)에 맞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사곡은 올바르지 않고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을 뜻한다. 사곡은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의 모든 죄악의 근원은 마음을 속이는 데서 비롯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결원(結冤)이 곧 작죄(作罪)라, 척(慼)을 짓는 것이 곧 죄를 짓는 것이다. 척은 나에 대한 남의 원한이니, 남을 미워하거나 언덕을 베풀지 않거나, 남을 억울하게 하거나, 남을 서운하게 하거나, 남의 호의를 거스르는 것 등이 모두 척을 짓는 행위이다. 척을 짓는 행위는 모두 자신의 양심에서 벗어난 언어ㆍ행동ㆍ처사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범사에 마음을 바로 하여 양심의 본질인 정직과 진실로써 일체의 죄악을 근절하여야 한다.
진실은 모든 복의 근원이다. 진실(眞實)은 ‘거짓이 없는 사실’이나 ‘마음에 거짓이 없이 순수하고 바르다.’는 뜻이다. ‘사실(事實)’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을 뜻하는 말이라면 ‘진실’은 ‘거짓이 없는 사실’을 뜻하는 말이다. 또 진실한 마음이라고 할 때의 진실은 참되고 순수하고 바르다는 뜻이다.
참 진(眞)은 금문(金文)에서 비수 비(匕)에 솥 정(鼎) 자를 합한 글자이다. 비(匕)는 수저를 본떠 솥에 숟갈로 물건을 채워 담는 모양에서 채우다→차다→참의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 믿을 신(信) 자와 통하여 속이 꽉 차 있는 진짜, 진실의 뜻을 나타낸다. 진(眞)에 솥 정(鼎) 자가 들어가는 것은 우리 도(道)의 진법(眞法)을 설정하신 도주님의 존호가 정산(鼎山)이시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인다.
열매 실(實)은 금문에서 집 면(宀)과 재물을 상징하는 조개 패(貝)에 두루 주(周) 자를 합한 글자이다. 주(周)는 ‘널리 미치다’는 뜻이다. 집 안에 재화가 널리 미치다는 뜻에서 ‘가득 차다’의 뜻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진실은 ‘참됨이 가득하다’는 뜻이다. 마음이 인간 본연의 참된 마음인 양심으로 가득 찬 상태가 진실이다. 도인은 도주님의 진법, 대순진리로 자신의 마음을 진실하게 채워나가야 한다.
참고로 거짓의 어원은 거죽이다. 거짓은 사실과 어긋나는 것이나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꾸미는 것이다. 거죽은 가죽과 같은 어원의 말인데, 가죽[皮]이 동물의 겉을 싸고 있는 부분이라면 거죽[表]은 물체의 겉 부분을 이르는 말이다. 거죽→거즛→거짓으로 변하였다. 거죽은 껍데기라는 소리이다.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가 거짓이다. 참된 마음인 양심이 아니라 껍데기 마음인 사심에 발동하는 것이 거짓이다.
복(福)은 보일 시(示)와 가득할 복(畐)을 합한 글자이다. 시(示)는 본래 신(神)께 제사를 지내는 제사상을 본떠 만든 글자이고 눈[目]으로 보다는 뜻의 볼 견(見) 자와는 달리 ‘신이 미래를 보여주거나 알려주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계시(啓示)는 ‘신이 일깨워주고[啓] 알려주다[示].’는 뜻이다. 복(畐)은 신께 올리는 술통을 상형한 문자다. 술은 해와 달, 별의 기운과 땅의 덕에 인공(人功)이 더해져 거둔 여러 가지 곡식으로 빚어 만든 천ㆍ지ㆍ인 정성의 정수이다. 제사는 이런 술과 음식을 신께 바치는 정성의 의식이다. 복(福) 자에는 상제님을 존숭하고 신명을 공경하며 조상님을 섬기는 제사를 잘 모시어 상제님과 신명, 조상님으로부터 복을 받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복은 우로(雨露)와 같이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것이다.
인간은 복을 받을 수는 있지만 줄 수는 없다. 남이 잘 되기를 빌어줄 수는 있다. 이것을 ‘축복한다.’고 말한다. 축복(祝福)이란 남을 위하여 그가 상제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수 있게 비는 것이다. 생과 수명과 복록은 상제님의 대은(大恩)이다. 모든 인간은 복의 근원처가 상제님이심을 자각하고 상제님께 성ㆍ경ㆍ신을 다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 된 근본 도리이다.
왜 진실이 만복의 근원이 되는가? 그것이 천리(天理)이고 상제님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상제님께서 직접 “사곡한 것은 모든 죄의 근본이요,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 되니라.”(교법 3장 24절) 하셨고, “나를 믿고 마음을 정직히 하는 자는 하늘도 두려워하느니라.”(교법 2장 7절) 하셨으며, “마음을 진실로 간직하면 복이 먼저 온다(眞心堅守福先來).” 하셨다.
시속에 ‘무척 좋다.’는 말이 있듯이 좋은 복은 척이 없는 데서 받게 되고 무척(無慼)은 무자기에서 비롯된다. 인성의 본질은 양심이고 양심의 본질은 정직과 진실이니, 도인은 모든 생활(수도생활, 가정생활, 사회생활)에서 사심을 버리고 양심인 천성을 되찾기에 전념하여야 한다. 우리 도인이 새로운 시대에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양심을 회복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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