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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잘 되게 하는 공부(교법 1장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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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2.22 조회1,1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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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은 남을 잘 되게 하는 공부이니라. 남이 잘 되고 남은 것만 차지하여도 되나니 전 명숙이 거사할 때에 상놈을 양반으로 만들고 천인(賤人)을 귀하게 만들어 주려는 마음을 두었으므로 죽어서 잘 되어 조선 명부가 되었느니라(교법 1장 2절)

 

 

『대순진리회요람』에 의하면, “남을 잘 되게 함은 상생대도의 기본원리요 구제창생의 근본이념이라. 남을 위해서는 수고를 아끼지 말고, 성사에는 타인과 힘을 합하여야 된다는 정신을 가져 협동생활에 일치협력이 되게 하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남을 잘 되게 한다는 것은 남을 구제한다는 의미와 남과 협력하여 일을 이룬다는 협동의 의미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전경』의 위 구절은 구제적 측면에서 남을 잘 되게 하는 공부를 뜻합니다.

 

구제적 측면에서 남을 잘 되게 하는 것은 구제가 필요한 사람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행위입니다. 남을 구제하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가기 위하여 기본적으로 필수적인 것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육신이 필요로 하는 의·식·주뿐만이 아니라 정신이 필요로 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의 위로나 사랑과 같은 것도 포함합니다. 더 나아가 종교에서 말하는 구제는 심령(心靈)적인 것에도 미칩니다.

 

전명숙이 천인을 해방하여 귀하게 만들어 주려 했던 것은 사회적 억압과 구속으로부터 해방하여 인간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인간 존재의 본질인 자기 결정권인 자유를 회복시키려는 것으로 이는 정신적 차원이라 할 것입니다. 당시에 천인들은 양반의 보호 아래 있어서 오히려 일반 평민보다 의·식·주 측면에서는 보장된 측면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놈을 양반으로 만들어 주려 했던 것은 만년 제 2계급에서 벗어나 평등하게 대접받고 존경받고 싶은 인간 보편적 심정을 해원케 하는 것으로 정신적 차원의 구제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갈망했고 원했던 것이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 종교에서 말하는 심령적 차원의 구제는 포덕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는 상제님의 강세하심과 천지공사의 대의(大義)를 알려주어 보은의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도주님의 포유문에서도 심령(心靈)을 구하기 위한 전제로서 ‘나의 심기를 바르게 하고 의리를 세우라’ 는 구절이 있듯이, 심령이란 도덕적인 것으로서 인간 존재의 본질입니다. 바로 이 도덕에 의하여 인간은 자신의 본성을 회복하고 심령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포덕에 의한 심령적 차원의 구제는 은혜를 망각하고 무도에 빠진 인간에게 보은의 길을 열어주어 상도를 회복케 함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포덕으로 사람을 살리게 되는 근거입니다.

 

남 잘 되게 하는 공부는 자신의 마음공부기도 합니다. 그 일이 성공했느냐 아니냐 보다는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다음의 『전경』 구절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오직 마음을 볼 뿐이로다. 머리와 무슨 상관하리오.”01

 

 

“너희는 시장판에나 집회에 가서 내 말을 믿으면 살길이 열릴 터인데 하고 생각만 가져도 그들은 모르나 그들의 신명은 알 것이니 덕은 너희에게 돌아가리라.”02

 

 

전명숙은 천인을 귀하게 만들어주려는 마음으로 동학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동학혁명이후 갑오개혁에 의해 일시적으로 천인이 해방되기는 하였으나 다시 정부가 이를 번복(飜覆)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당시에는 실패한 혁명이었습니다. 당시 동학혁명에 가담한 많은 사람들 중 왕후장상의 꿈 즉, 자신의 출세가 목적이었던 사람들은 죽어서 차경석과 함께 상제님의 동학신명 해원공사에 의해 해원합니다.03 전명숙은 혁명에 실패했으나 남을 잘 되게 하려는 마음을 품었으므로 죽어서 잘 되어 조선 명부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기 도통만을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타인의 운수와 구제를 위하여 즉, 남을 잘 되게 하려는 마음으로 수도를 해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남을 잘 되게 하려는 노력이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은 선천의 상극적 환경이 그에 부합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생의 도가 이루어진 후천의 세계에서는 그러한 환경적 장애가 사라지기 때문에 상생의 마음이 곧바로 실현되는 것입니다. 후천의 상생적 환경에서는 상생의 마음이 저절로 나오지만, 선천의 상극적 환경에서 상생의 마음을 쓰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상극적인 환경인 선천에서는 실패한 경우라도 상생의 마음 자체가 고귀(高貴)한 것으로 이를 상제님께서 쓰시는 것입니다.

 

남이 잘 되고 남은 것만 차지하여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선천은 물자와 자원의 한계로 서로 먼저 차지하려고 앞을 다투어 싸우는 상극적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생의 도가 펼쳐져 상제님의 덕은 무한(無限) 무량(無量)한 것입니다. 마음 또한 눈에 보이는 물자와 달리 아무리 나누어도 모자라지 않고 나눌수록 더 커지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마음만을 보실 뿐이라고 하셨고, 남 잘 되게 하려는 마음을 가진 자가 더욱 크게 성공하게 됨을 전명숙의 예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이치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포덕하여 구제창생하는 것은 우리의 재주나 능력에 따른 것이 아니라 오직 남을 잘 되게 하려는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남 잘 되게 하는 상생의 마음을 실천하여 구제창생에 이바지해야 할 것입니다!

 

 

01 교법 2장 10절

02 예시 43절.

03 공사 2절 19절.

 

<대순회보 1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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